전순란 글방

지리산 휴천재 일기
2025년 2월 6일 목요일. 맑음
얼마 전부터 보스코가 식사 중 오른쪽 윗어금니가 아프다며 씹는 음식을 싫어했다. 평생 오른쪽으로 씹어오다 그게 안되니 신경이 쓰인다고, 입속이 항상 소태맛이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 말겠지 싶어 미뤄오다가 어제는 남원의료원 치과엘 가보기로 했다. 워낙 병원에는 가기 싫어하고 치과는 더 싫어하지만, 노인들이 이가 망가지면서 먹는 데 소홀해지고 그러다 체력과 활기를 잃어 급격히 쇠약해진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서울 갈 때까지 미루기보다 남원으로 가서 진찰이라도 받기로 했다.
그곳 친절한 치과의는 오른쪽 윗니가 흔들린다면 엑스레이를 찍어보고서는 2년전 임플란트 했던 윗어금니 잇몸이 부실해졌다면서 임플란트한 곳에 가서 인공 잇몸을 다시 심어야 할 것이라고 일러준다. 이 추위에 서울까지 가려니 정말 싫은지 3월 ‘정기 상경’[석달에 한 번 보훈병원에 폐 검진받고 약 타러 가는 날] 기일에 가 보잔다. 그러다 ‘데꼬 들어온 딸’ 미루가 임플란트 이가 흔들리면 빨리 병원에 가보시라고, 서울 치과의원에서도 당장 올라와 치료에 임하라고 하니 하는 수 없이 담주 월요일에 버스로 서울 다녀오기로 정했다.
그런데 오늘 아주 가까운 분이 대장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서 퇴원하는 길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보스코와 동갑인데 아주 씩씩하고 초연한 모습으로 자기 처지를 얘기해 주면서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는 언제 부르셔도 맘 편히 따라나서겠다."는 그분 말을 듣는 순간, "아, 우리에게도 남은 날이 적구나, 함께 할 날이!"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 강추위에 버스 편에 남편을 혼자 보내려던 마음을 고쳐 먹고 서재로 갔다. “월요일 내 차 타고 같이 갈래요?.” 하니 만면에 웃을 띄우며 “나야 조오치!” 하며 반긴다.
'매일 붙어 있어도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인데...' '마주 바라만 봐도 좋아하는 사람인데...' 하면서 이젠 그가 어디를 가도 혼자 보내서는 안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모처럼 요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밤에 큰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달 18일에 며느리가 작은손주 시우랑 한국에 다니러 온단다. 지선이의 치아가 말썽을 부려 치료차 서울에 와서 3월 1일에 스위스를 돌아간다니 우리도 그때로 상경 날짜를 고쳐 잡았다.
나도 로마에 살 적에 서울서 온 호박엿을 먹다가 이가 엿에 묻어 나온 적 있었다. 이탈리아 치과에서는 치료하는 기한도 하세월인데다 치료비도 터무니없이 비싸서 차라리 왕복비행기값을 물고 한국에 와서 치료받았는데 그게 훨씬 더 경제적이었다. 어멈도 같은 계산을 하고 일시 귀국을 하나보다.
퍼온 그림, 퍼온 사진
요즘은 국회의 ‘비상계험 청문회’와 헌재의 재판에 나타나는 '내란 수괴'와 '국민의 적' 일당의 철면피한 언행을 견뎌내느라 우리 평범한 사람들도 속이 뒤집힐 대로 뒤집힌다. 평생 죽을 죄를 지었노라 사죄해도 모자라는데 내란죄가 죄라는 의식도 못하고 살아온 족속들과 한반도에서 함께 살아왔다니 말 그대로 戴天之怨讐(대천지원수), '하늘을 함께 이고서 살 수 없는 종자들'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커간다. 어느 스님 말대로 '오로지 악귀들에게 사로잡힌 패거리'요 그리스도교 표현을 쓰자면 '부마(付魔)한 집단'처럼 보인다.
어제 남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실상사에 잠깐 들렀다. ‘지리산종교연대’ 새해 첫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동지들 얼굴이라도 잠깐 보러 들렀더니 회의는 끝나고 저녁공양도 끝마치던 시간이었다. 도법스님도 뵙고 동지들도 만나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절 마당의 얼어붙은 흰 눈과 찬바람이 절집을 더 상큼하게 한다.
멀리 천왕봉에는 눈이 오는지 회색 구름이 오가고 그 강추위에도 귀요미 미루와 이사야는 산청에서 열리는 ‘윤석열 탄핵촉구 수요집회’에 간다며 서둘러 떠났다. 길거리에서 이 찬바람 속에 피켓을 들고 우리 목소리를 대신하는 젊은이들이 있어 저런 윤가들의 악행에서 대한민국이 지켜지는구나 하며 미루네 부부가 고마웠다. 보스코는 우리도 집회에 참석하러 가자 했지만 추위와 찬바람이 보스코의 폐암에 제일 해롭다는 주치의의 경고가 있어 보스코를 말려야 했다.
오늘 저녁에 조카 성해영 교수(서울대 종교학과)가 새해 인사를 해왔다. 작년말 광주가톨릭대학에 초빙받아가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종교사상을 강의했는데, ‘성염 교수님의 조카’라는 총장님 소개에 큰 박수를 받았단다. 또 큰아버지가 번역한 『고백록』에서 인용을 해가며 강연을 했단다. ‘경세원’에서 나온 고백록은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기에 이번 5월까지는 ‘한길사’에서 ‘그레이트북스’ 전집으로 나온다는 정보도 조카 교수에게 알려주었다.
조카의 소식을 들은 보스코도 기분이 좋았고, 큰작은서방님(성준)도 하늘나라에서 아들의 의젓한 교수 활동에 흐뭇한 웃음을 지으리라 본다. 우리 사부인이 우리를 두고 ‘학자 집안’이라고 치켜세워주는 말도 듣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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