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6일 일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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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하던 일도 안하다 보면 하기 싫고 뭘 해야 할지 순서도 가물가물 하다. 사람들이 찾아와도 뭔가 함께 먹을 생각 보다 어딜 데려가서 뭘 먹일까 하는 궁리가 앞선다. 그러나 '내가 아직 그럴 나이(75)가 아니다' 다짐하면서 털고 나면, 했던 일들이 머리보다 손에서부터 일감을 찾는다.


명절이 가까우면 보스코는 그간 그리웠든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들인다. 아직은 할 만하니 나도 열심히 해 보련다. 아마 80까지는 해야 할 듯하다. 내가 자기보다 한참 어리니 그에게 나는 늘 젊은 여자로 보이는 듯하다.


그가 서강대학교에 있을 때는 나가서 사람을 만나도 밥 먹으러 우이동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곤 했다. 그때는 나도 기운이 좋았고 그가 무엇을 먹을지도 모르고 고민하느니 집에 데려와 맘 편히 얘기하는 게 좋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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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 이엘리는 내가 일하는 게 싫다고 지리산에 오더라도 아예 동네 함바집 '엄천식당'에서 밥을 시켜 놓고 자기 왔노라고 밥 먹으러 나오라고 전화를 하는데, '혜지'까지 데려왔는데 그렇게 보내고 나면 맘이 영 안 좋다. 아마 자기가 일에 너무 지치다 보니까 나라도 구원하고 싶었나 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은 한계가 있고, 이엘리는 대가족을 건사하느라 그 한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여자로 태어난 게 죄'로 보이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 동네에서는 '남자로 태어난 게 베슬'이고.


토요일. 일요일이면 빵고 신부도 설 쇠러 오고 엄엘리 부부도 인사 온다고 해서 읍내에 장을 보러갔다. 설날 한 주간 연휴를 맞아 인천공항으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해도 슈퍼에도 사람이 제법 보이고 '강쇄네 고깃집'에도 사람이 붐빈다. 모처럼 나도 떡국거리 고기를 샀다. 밤에는 강도처럼 식칼을 들고 텃밭에 내려가 봄동을 몇 개 뽑아 다 쇠고기 된장국을 끓여놓았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한 배추는 다디달다. 세상사를 다 겪어낸 사람의 진국 같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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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집 집사 안젤라와 전화하며 서울집 1층 화장실 전등을 자기 손으로 교체한 것을 칭찬해줬다. 그동안 8명의 집사가 그 집을 거쳐 갔는데, 안젤라와 강레아 둘만 여자였고 여섯은 남자였다. 그런데 집을 간수하는데, 두 여자가 있을 때는 걱정할 일이 없었다. 남자들은 한 명 정도 제외하고, 자기들 방에 전등이 나가 캄캄해도 '전등을 갈아본 일이 한번도 없다'는 터여서 보다 못해 보스코가 갈아주곤 했다.


이번 안젤라도 한번도 갈아 본 적이 없다기에 등 파는 가게와 다는 방법을 설명해줬더니 회사에서 전동 드릴까지 빌려와 작전 완수를 했다는 희소식. 그리고 그미의 소감이 더 맘에 들었다. '살아가는데 자신감이 생겼고 자기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라나? "맞아, 여자는 남자가 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한 가지 더 할 수 있어! 남자는 절대 못하는 일! 애 낳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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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요일 26. 새벽 같이 수도원을 떠난 빵고신부가 설을 지내려 10시 조금 넘어 휴천재에 도착했다. 아래층 식구들도 빵고를 반기고 늘 '나중에!'를 입에 달고 사는 보스코가 아들이 온다고 이틀 전부터 서재에 미사 준비를 하느라 마음이 부산했다. 내가 아들을 사랑하는 표현의 방법은 밥을 열심히 만들어 먹이는 거고, 보스코는 아들의 미사집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주일복음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38

잠시 후에 오후에나 도착할 줄 알았던 꼬맹이 엄엘리부부도 서울에서 도착하여 10시 30분에 주일미사를 함께 드렸다. 아들이 오면 우리 셋이서 드리던 조촐한 미사가 아래층 식구들과 함께 9식구로 늘어나니 무척 풍족하다. 엘리네 '조서방'을 만난지도 3년이나 되었으니 너무 반가웠다.


역시 설은 만나야 할 사람들에게 좋은 구실을 만들어준다. 우리를 모시고 나가 점심 대접을 하기로 했다는데 집에서 준비된 음식을 먹으며 시국 얘기, 탄핵심판 얘기로 우리들의 얘기는 끝 간 줄 몰랐다.


윤가가 자기 손바닥에서 읽은 王은 '개'犭(犬) 부수가 앞에 붙은 狂(미친개)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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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엘리네는 3시가 넘어 서울로 떠났고 우리는 또 일상으로 돌아간다. 축제나 우울한 날도 어김없이 지나간다. 후한무치하게 미꾸라지로 펄떡거리던 윤가가 드디어 구속기소됐다는 뉴스가 떴다. 작년 12월 3일밤부터 전국민이 두어 달 앓고 있는 '계엄 불면증' 내지 '탄핵 우울증'에서 벗어나 발 뻗고들 자겠다. 국민의 짐 노릇을 한 여당은 귀향객들을 만날 적마다 "새해 벌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받는다나?


우리가 사는 문정리를 화폭에 담은 연규현 화백의 그림이 페북에 떴다. 최세현 선생의 드론 사진을 놓고 그렸다는데 우리 마을과 뒷산 법화산이며 마을 앞을 흘러가는 휴천강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참 반갑다.


https://m.blog.naver.com/hanee3289/223072035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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