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란 글방

지리산 휴천재 일기
전날 뭘 먹었는지 밤새 몸을 긁적거리던 보스코가 때늦게 새벽녘에야 알러지약을 먹더니 아침기도를 하며 내내 졸고 있다. 아이들이 조는 것도 우습지만 노인이 졸고 있는 모습은 처량하다. 보다 못해 '티벳 요가'는 포기하고 아침밥보다 자는 게 더 요긴하겠다 싶어 침실에 가서 자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나 맛나게 자는지! 평소에 잠을 적게 잔다고 내게서 잔소리를 듣던 그는 “남은 날이 적어 살아 있는 게 고맙고 아까워 잠을 못 잔다.”는 핑계였는데... ‘남은 날이 적어서선지’ 그는 요즘 이런저런 일을 깜박깜박 잊는다. 잊어버린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노인들에게 많은 경우 잊어야 할 일도 안 잊히는 경우가 있나 보다.
화요일에 윗동네를 지나가다 아짐들이 정자에 앉아 있고 나더러 “잠깐 얼굴 좀 뼈져(보여줘)!” 하는 바람에 아짐틀 틈에 끼어 앉았다. 거기 강영감도 앉아 있어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느 아짐에게 "강염감을 봐도 자기가 할 일, 일러준 일은 몽땅 잊어버리더라"고 하던 말을 들은 터라서 우리와의 악연도 잊었을 듯하여 내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대포 같은 고함소리로 내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아니, 남 망하게 하고, 그딴 짓을 하고 인사가 나와?" 나이가 죄다 잊게 만들어도 원망스러운 기억은 사라지지 않나 보다.
10여년전 이명박 삽질 시절! 전국에서 만들어지는 댐 주변 잔디를 덮는다는 짚방석을 생산하는 공장이 마을 앞 휴천강가에 세워지려던 참이었다. 환경단체들이 진주와 사천 일대의 식수원이라며 강변에 '공장건설'을 말렸고, 함양군 관련회의는 공장허가를 취소하였다. 그 분란은 사법처리까지 초래하였다.
그 공장이 지어지면 강영감 아들이 공장장으로 취직한다던 소문이 있었고, 그 일이 무산되어 서운했던지 강영감 부부는 그 뒤 수년간 우릴 볼 적마다 그 아쉬움에 욕설을 퍼붓곤 했다. 세월이 가 아낙은 요양원에 입원했고 강영감도 여기저기 아프다는 소문이 나돌았는데, 엊그제 보니 우리 부부한테 서운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듯하다. 아짐들도 놀라서 얼른 몸으로 울타리를 싸서 나를 감싸주었다.
어제 보스코와 “아우구스티누스 시편 상해”라는 대작을 함께 번역하고 있는 안수녀님이 협의차 서울에서 버스로 내려왔다. 읍에 나가 마중하고 소박한 점심을 먹고서 상립숲을 걸었다. 그 길에 운봉-인월 본당에서 일하는 인보성체회 양수녀님도 상림에서 만났다. 김용민 신부님이 계실 때 함양본당에 있던 분이다. 안수녀님은 "하얀전쟁'의 저자 안정효 선생의 따님답게 성서학자로서 벌써 많은 역저서를 낸 분이다.
우린 서로 반가워 ‘콩꼬물’에서 눈꽃빙수도 먹고 정여창 선생의 고택도 함께 방문했다. 세월이 가도 시간이 정지된 역사 속에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집들을 보면 집도 사람과 똑같음을 느끼게 된다. 조선시대 유명한 유학자라든가 무오사화로 비극을 당했다는 사실보다, 돈 있고 벼슬 높고 저렇게 고대광실 대저택을 남긴 인물이 자기 호를 ‘일두(一蠹)’ 곧 ‘좀 벌레 한 마리’라고 지은 겸허함에 머리가 숙여졌다.
안수녀님은 모처럼 지리산 방문에 쌍둥이 언니('30분 먼저 언니')와 함께 오기로 했는데, 중요한 일로 못 함께 못 와 몹시 아쉬워한다. 휴천재에 돌아오자 한국 교회에서 이름난 번역작가 둘이서는 무슨 의논인가를 오래오래 하였고, 내가 차린 이탈리아식 저녁을 먹고서 보스코는 자기가 뜻한 바를 다 이뤄 아주 만족하다는 표정으로 9시도 안돼 깊은 잠에 빠졌다.
어제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한마디로 '고온다습(高溫多濕)'. 너무 더워 문을 열고 잤는데, 휴천강에 흐르던 물안개가 우리 창문을 넘어 들어와 베갯잎과 이부자리까지 축축하게 적셔 놓았다. 안수녀님은 미아동에 있는 수녀원의 당신 3층 침실이 워낙 ‘찜질방’이었다면서 "습기는 받아 들이는 대신 더위는 참는 쪽을 택하였노라."는, 수도자다운 인내를 보여주었다. 오늘 목요일은 처서(處暑)여서 인천 사는 큰딸네는 '바람불고 선선하다' 자랑하지만 아무튼 8월말까진 마음 독하게 먹고 무더위를 견뎌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에 처음 왔다는 안수녀님과 아침기도를 함께 바치고 아침을 먹자마자 뱀사골 산행을 정했다. 가는 길에 우리나라 '불교 사회운동'의 메카 실상사를 잠시 둘러보았다.
뱀사골에 차를 세우고 그 골짜기 데크길을 걸었다. 지난밤 큰 비로 물은 크게 불었지요, 태풍 ‘종달이’가 지나가는 아침이라 산행객들이 크게 준 길을 걸었고, 수녀님은 뱀사골 넓이와 길이와 경관에 놀라워했다. 사진을 찍을 적마다 '30분 먼저 언니'에게 내가 찍어드린 현장 사진을 띄우는 것으로 보아 참 사이좋은 자매다. 뱀사골로 계속 오르면 삼도봉 쪽으로 지리산 능선 화개재에 도달한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2591
2시 30분 서울행 차표를 사둔 터여서 서둘러 돌아오는 길. 오도재를 넘으며 비구름 덮인 지리산 기나긴 허리도 구경하고, '지리산 제일 문'에서 멀리 덕유산 자락도 건너다보았다. 수녀님은 "어제 오늘 이틀간 찍어주신 사진이 제가 평생 찍은 사진보다 많겠네요. 그리고 평생 보아온 산보다 더 많은 산을 보았네요."라는 인사를 나누고 1시 50분 차로 차표를 바꿔 서울로 떠났다. 이렇게 지리산을 배경으로 끈끈한 인연들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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