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613일 목요일. 맑음


배나무가 자라니까 그러나? 매해 배를 싸는 봉지 숫자가 늘어난다. 싸다보니 꾀가 생겨서 싸기 불편하거나 눈을 가로막고 성가시게 하는 배알과 잎은 모두 제거한다. 우리 둘이서 닷새째 배봉지를 싸느라 오늘 아침 드디어 휴천재 배봉지싸기는 끝이 났다(예년에는 이틀 걸렸다). 혹시 보스코 허리가 탈나지 않을까 눈길을 뗄 수가 없다. 무거운 거 들지 말래도 나 모르게 물건을 들어 나르니 그를 지키는 것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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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밭에 열무를 심었을 때는 배추벌레 약을 치지 않았어도 떡잎 하나 벌레먹지 않았는데, 이번엔 파란 배추벌레가 줄기마다 잎을 끌어안고 맛있는 아침식사 중. 저렇게 3일만 두었다가는 열무 잎새는 흔적 없고 잎줄기만 남아 마치 부춧잎처럼 되겠기에 어제 몽땅 뽑아다 김치를 담가버렸다.  벌레와 나눠 먹자는 친환경 농법’도 있다니 열무김치 먹다가 고기맛이 나면 이게 배추벌레구먼!’ 하면 된다


아반테 수리를 인월 동아공업사에 맡기고 돌아와 점심을 먹고나서 내일 느티나무독서회에서 읽을 책을 뒤지고 있다, 생각지도 않았던 임실 김원장님의 방문을 받았다. 대구 다녀오다 우리가 궁금해 들렸단다. 언제 봐도 반가운 친구다. 원장님도 밭일 산일로 우리와 같이 얼굴이 까맣게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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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몇 차례 중병사고를 친 보스코를 생각해서는, 또 나의 무릎 건강을 배려해서라도 가급적 늦기 전에 서울로 올라가라고 권유해오시던 분인데 우리 속마음을 알아내셨는지, 여기에 계속 살려면 의료상의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보스코의 확고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신다. 누구나 어떤 계획인들 못 세우겠는가만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우리는 신앙인이고 지금 여기까지 이끌어오셨듯이 그분의 섭리에 우리의 마지막을 맡겨드린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하셨듯이 나머지 생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좋으신 하느님께서 잘 마무리 짓도록 인도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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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일본에서 인도무용가 강미나 선생님이 오셨다고 방곡 승임씨네서 점심을 함께 먹고 매달 13일 오후 3시에 하는 파티마성모님께 바치는 평화의 기도를 바치자는 초대가 있었다미나 선생님은 80년대부터 승임씨 소개로 알고 사귀어온 분이다. 인도 영성에 심취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도인이기도 하다.


더구나 오늘은 파티마 성모발현이 있었던 613일(첫 발현은 5월 13일: 1917년)이니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가자의 학살을 지켜보면서 세계평화를 근심하는 이들이라면 각별한 기도를 바칠만한 날이다. 서울서, 전주서 기도자들이 모여 아가페 점심을 나누고 미나 선생님 인도대로 한 시간 가량 기도회를 가졌다. 주변에 병고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도 했다. 지리산 산속 공기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이웃들과의 만남과 기도의 나눔은 우리가 누리고 소중히 간직하여 마지막날까지 이어갈 갈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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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느티나무 독서회'에서 읽은 책은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였다 이 책은 내가 추천해서 읽는 책이다. 내용이 너무 좋아 두 권을 사서 서울집과 여기에 두고 성서 잠언집처럼 자주 펴읽으면서 인간과 사회를 사랑하며 제바른 정신으로 살아가도록 마음을 다스린다. 이렇게 가까이 읽는 시집이 또 있다면 타골의 시집이다. 


박노해 시인은 1957년생으로 낮에는 노동자로 살며 밤에는 선린상고를 나와 노동하며 글을 쓴 노동자 시인이다. 198427세의 그가 쓴 첫시집 '노동의 새벽은 전두환 시대에 금서조치에서도 100만부가 팔리며 사노맹이란 단체를 결성했다 하여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76개월의 수감생활 끝에 김대중 정권에서 사면 복권되었다. 시인의 형님 박기호 신부님의 책에 보스코가 추천사를 쓴 적도 있다. 

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371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세계가 온갖 악속에 묻혀있어도 희망의 세계를 꿈꾸고 기대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의 말대로 희망은 불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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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집, 노동의 새벽, 참된 시작, 다른 길, 사람만이 희망이다등 그의 시 전체를 흐르는 정신은 가장 처참하고 참혹한 상황에 처한 분쟁지역에서까지 사회적 약자와 그들의 아품을 공유하며 듣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시인의 양심적 언어와 사진으로 우리를 일깨운다. ‘저주받은 시인이고, ‘실패한 혁명가이며, ‘추방 당한 유랑자이면서도 "삶은 기적이다"라고 외치는 실천적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는 이 책을 가볍게 읽으라지만 아픔에 뛰어들지 못한 양심은 늘 무겁다. 그는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로 시를 쓴다고 한다.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절망하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지금처럼 절망에 빠진 우리 국민과 세계 분쟁지역에 내어놓은 희망의 메시지다.


씨앗이 할 일은 단 두 가지 다

자신을 팔아넘기지 않고 지켜내는 것

자신의 자리에 파묻혀 썩어내리는 것

희망 또한 마찬가지다.

헛된 희망에 자신을 팔아 넘기지 않는 것

정직한 절망으로 대지에 뿌리를 내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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