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신문 2003. 12. 07발행 [751호]

 
"한국- 교황청 외교관계 발전 40돌"

외교관계 수립 이전부터 '돈독한 관계'


대한민국과 외교관계 수립 이전부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온 교황청은 UN 등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주권국가로 승인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진은 1962년 2월3일 서울 명동대성당 문화관에서 개최된 제5대 교황사절 환영식 행사에서 교황사절 안토니오 델 쥬디체 대주교와 노기남 대주교(당시 서울대교구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1일은 한국과 교황청이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정확히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과 교황청의 외교 관계는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40년 전 한국과 교황청이 수립한 외교관계는 대사급이 아니라 공사급이었다. 주교황청 초대 공사는 이한빈 주 스위스대사가 겸임했고, 주한교황청 초대 공사는 제5대 교황사절로 한국에서 재임중이던 안토니오 델 쥬디체 대주교가 임명됐다.

 이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황청은 한국과 공식 외교관계가 없었을 때도 이미 교황사절을 파견했었다.

  초대 교황사절은 교황 비오 12세가 파견한 패트릭 번 주교(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재임 1947.10-1950.7)였다. 교황사절 파견은 국제 관례상 교황청이 한국을 주권국가로 승인한 것으로 이해돼 한국 독립이 국제적 승인을 얻는 과정에 큰 힘이 됐다.

  비오 12세는 실제로 1948년 제3차 UN총회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에 대해 지원할 것을 교황청 국무장관 몬트니 대주교와 재불 교황청 대표 론칼리 대주교에게 명령하는 등 외교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양국관계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 우익독재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와 정부와의 관계가 상당히 불편해졌고, 경향신문 폐간 등 이승만 정권과 노기남 주교 사이의 불화는 교황청에까지 비화되면서 양국 관계가 차츰 냉각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62년 한국 천주교회 교계제도 설정을 계기로 양국 관계는 다시 회복되면서 이듬해인 1963년에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1966년에는 대사급으로 승격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주 스위스대사 겸 초대 교황청대사를 지낸 정일영(77, 당시 40세)씨는 "당시 교황청과 외교는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기반을 넓혀 나가는 중요한 버팀목이었다"면서 중요한 외교 문제들을 교황청 도움으로 해결한 적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정 대사는 또 대사 재임 중 교황 바오로 6세를 알현, 일본보다 교세가 4배나 큰(60년대 통계) 한국교회에 추기경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선처를 호소했는데 3개월 후에 김수환 추기경 서임 소식을 듣고는 무척 기뻤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교황청 외교적 역할에 대해 중요성을 크게 인식한 한국정부는 1974년 주 교황청 한국대사관을 설치해 상주대사를 파견했다. 초대 상주대사는 신현준(요아킴)씨였다. 정부는 이때부터 가톨릭신자(제7대 김흥수 상주대사 제외)를 대사로 파견했다

 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방한 때 전두환 대통령과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했고, 이후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공식 면담을 한 바 있다.

 성염 주 교황청 한국대사는 "외교수립 40주년 을 맞아 양국 관계가 더욱 성숙하고 돈독해지기 위해 11일 교황청 국무원과 주교황청 한국대사관이 공동으로 로마 한인신학원에서 40주년 축하 행사를 갖는다"면서 "교황청이 아시아에서 한국 교회의 비중을 중시하고 있는 만큼 양국의 외교 관계도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