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04. 02발행 [8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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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는 밤하늘 작은 별빛되고 싶다"


<1>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3월25일 새 추기경 서임 축하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모습.<2> 정 추기경이 서임축하미사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서 추기경 반지를 받고 있다. <3>정 추기경이 축하미사 참례를 위해 입장할 때 신자들이 사진을 찍으며 환호하고 있다.<4> 교황청립 한국신학원에서 열린 축하연 후 정 추기경과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3월25일 오전 7시30분 참가단이 서임 축하미사를 봉헌하려 호텔에서 버스를 탈 때 하늘은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기세였다. 그러나 성 베드로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날이 조금씩 맑아지더니 행사가 시작될 때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참가단은 8시에 광장에 제일 먼저 도착해 제대 거의 앞부분에 자리를 잡았다. 10시30분까지 2시간을 꼬박 앉은 채로 기다렸지만 교황과 추기경을 가까이서 본다는 설레임에 누구 하나 지루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새 추기경을 위한 묵주기도는 끊이지 않았다.
 
 ○…서임 축하미사가 시작되자 교황은 15명의 추기경과 함께 중앙 제대를 향해 입장했다. 추기경들과 교황을 눈 앞에서 본 각국 신자들은 환호성과 함께 국기를 흔들며 감격을 드러냈다. 교황은 특히 평화방송ㆍ평화신문 공식 참가단 앞을 지나치면서 관심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축복했다. 더울 정도로 기온이 올라갔지만 간간이구름으로 태양이 가려져 더없이 쾌청한 날씨와 분위기에서 미사가 봉헌됐다.
 
 ○…이날 미사 보편지향기도에서는 한국인이 한국어로 기도를 바쳐 눈길을 끌었다. 기도를 바친 이는 정인식(스테파노, 여행업)씨로 교황청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자리에 서게 됐다.

 "주 그리스도님, 새 추기경들과 추기경단, 그리고 모든 주교와 사제, 부제들을 주님 나라의 제자로 부르시어 주님을 따르게 하셨으니, 그들이 베드로의 후계자들과 온전히 일치하여 가톨릭 신앙의 진리를 힘차게 선포하는 증인이 되도록 하소서."

 성 베드로 광장에서 우리말 기도가 낭랑히 울려퍼진 뜻깊은 순간이었다. 미사 봉헌예절에도 한국인 부부 한쌍이 참여했으며 한홍순 한국평협회장 부부가 교황으로부터 직접 성체를 영했다.
 
 ○…축하미사가 끝나고 이어진 일정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최로 교황청립 한국신학원에서 열린 추기경 서임 축하연.

 박정일(전 마산교구장)주교와 성염 대사 부부를 비롯해 이탈리아에 있는 100여명의 사제들과 외교 관계자들, 공식 참가단, 로마 한인 신자 등 500명이 함께 했다. 아쉽게도 정 추기경은 교황청 일정으로 점심식사는 같이 하지 못했다.

 경향잡지 100주년 순례팀과 함께 로마에 온 박정일 주교는 "추기경은 전 세계를 함께 생각해야 하는 책임있는 자리"라면서 "지금까지 조용하게 살아오셨던 정 추기경이 이제는 세계교회 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염 바티칸 주재 한국대사는 "교황청이 한국교회를 얼마나 중요시하고 눈여겨보는지 실감하고 있다"며 한국교회의 높아진 위상과 한국교회에 대한 교황청 관심을 설명했다.

 뒤늦게 축하연장에 도착한 정 추기경은 후미오 하마오(일본) 추기경과 함께 축하공연에 참석했다. 뒤이어 김수환 추기경도 합류, 현지 신자들이 준비한 성악 공연과 아프리카 민속춤, 풍물놀이 등을 흥겹게 감상했다. 축하공연이 끝나고 정 추기경은 참석자들의 사진촬영 요청에 일일이 응하느라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정 추기경은 축하공연이 끝나자마자 한국신학원 성당에서 토요 특전미사를 주례했다. 서임 축하미사 이후 첫번째로 주례한 미사였다.

 정 추기경은 이날 미사 강론에서 "1969년 김수환 추기경이 임명됐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한국교회 위상을 실감했다"면서 "이 모든 것은 국민들 열과 성의 덕분인 것을 안다"고 감사인사를 건넸다.

 이어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는 추기경이 되고 싶다"고 밝힌 뒤 "마음과 영혼의 평화를 줄 수 있는 밤하늘 작은 별빛이 되길 바란다"고 말해 신자들에게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미사 후에는 한인 신자 어린이들이 정 추기경에게 축하 꽃다발을 전했고 로마한인본당 성가대는 축하 특송을 준비했다. 성가대는 성악 전공 유학생이 많아서인지 최고 수준이었다. 정 추기경은 이날 길게 늘어선 참석자들을 한명씩 모두 축복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 정 추기경 한국신학원 토요특전미사 강론 요지

 신학원 축성 이후 오늘처럼 많은 이가 모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1969년 김수환 추기경이 처음 추기경이 됐을 때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지금은 다르다. 그만큼 국력이 신장한 것이다. 명의성당도 이곳과 가깝다. 다른 추기경들이 가까워서 좋겠다고 부러워하는데 그것도 국력 때문이다. 첫 추기경이 났을 때는 한국교회가 겨우 한국 안에만 머무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엄청 다르다. 추기경 위상도 국력에 따라 올라간 것이다. 아시아에서 할 일이 많다. 동남아 신학생들을 데려와서 양성하는 것이 서울대교구 추기경으로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국력이 이만큼 커진 것은 모두 국민들의 열과 성의 덕분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마음의 평화, 영혼의 평화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는 추기경이 되고 싶다. 밤하늘의 작은 별빛이 되고 싶다. 나를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절로 미소가 머무는 그런 사람이라야 신앙인이 아니겠는가. 조그만 위로가 되는 추기경으로 살고 싶다. 여러분에게 처음 드리는 말씀이다.

 추기경 서임식에 참석하러 멀리 한국에서 온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일일이 악수도 다 못했는데 정말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