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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간첩사건 유감 [正義 1989.7]

조회 수 4483 추천 수 0 2010.07.15 20:26:11

어느 간첩사건 유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正義 1989.7 제6호]

 

 

‘이야기는 1985년 4월, 한국신학대학 출신이자 미국장로교단 소속인 성낙영 목사가 서독 북한공작원으로 분장하면서 시작한다. 물론 증거는 없다. 개신교 목사가 가톨릭 신자를 북한 간첩으로 포섭한다. “함평 고구마”로 불리는 농민 서경원은 86년 1월 유고를 방문하여 단 하룻밤에 속성 간첩교육을 받고, 교육 수료를 축하하는 뜻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88년 8월이면 무대는 미국 뉴욕으로 바뀌고 서경원 의원을 만나는 교포들은 모조리 “친북 교포”로, 윤한봉씨를 중심으로 하는 “재미한국청년연합”이 “북한전위조직”으로 등장한다.

 

북한 김일성 주석과 면담을 준비하기 위한 메모라고 검찰대변인이 밝힌 쪽지(한겨레신문, 7월 13일자)가 포섭 간첩이 북한 주석에게 바치는 “국내정세보고자료”로 변한다. 국가 주석이 일개 간첩과 일일이 면담할 만큼 이북 관리들은 한가한가 보다. 이 간첩은 부디 남조선에 평화통일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북괴 총수의 지령을 일일이 메모지에 적어 충실히 간직한다. 방북자의 평양 구경도 “세뇌공작”에 속하는데, 이 간첩은 세뇌공작을 받은 기념으로 이곳저곳 접선 장소에서 흑백사진 30여 장 찍고 그 사진을 남한 신문기자에게 자랑삼아 보여 준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북 갔다 왔다고 자랑하고 다닌다.’

 

제헌절 무더운 오후 3시에 라디오나 텔레비전 앞에 있던 시청자들이 듣고 본 안기부 차장의 ‘서경원 간첩 사건’은 대강 이런 줄거리였다. 증거물도 지극히 빈약한 이 발표는 과학적이고 법리적이라기보다는 창작적이었다. 그에게 씌워진 3류 간첩혐의에 관한 발표는, 20여 일간 헌법에 보장된 변호사 접견까지 유린당한 사람에 관한 것이므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아닌지는 변호사 접견 이후라야 진위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반공편집증 환자들이 아닌 바에야 상식과 논리를 초월한 이런 발표를 관변언론이 전달해 주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국민을 참담한 심경으로 만드는 것은 언론들의 추악한 얼굴이다. 진실․사실 여부의 확인, 당사자의 발언은 안중에 없는 듯, 농민의 권리와 통일을 추진해 온 인사에 대한 증오와 보복으로 내달았다는 것이 그간의 신문 머릿기사들에 나타나 있다. 아마도 문 목사와 서 의원의 방북과 수사를 전후한 이 3개월은 한국언론사상 가장 수치스런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야당들도 그 추악한 얼굴을 폭로하였다. 재야입당파 하나를 미련 없이 잘라 버리고 공안당국에 넘긴 평민당은, 안기부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자기 당에 사건이 비화되지 않은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는 표정이다. 서 의원의 행위가 “국가의 기강을 극도로 문란시킨 범죄로 ‘밝혀진’ 이상” 혹은 “간첩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판명된’ 이상” 엄벌하라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발표는 확정 판결 이전에는 누구도 피의자일 뿐이라는 법상식까지도 무시하였다.

 

요 몇 달간 공안 사건에 대해서 사전영장과 구속영장, 각종 압수수색영장을 끊임없이 남발하는 대신에 5공 핵심인사들에게는 관대하기 그지 없는 지금의 사법부에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국민은 법정의와 사회정의가 거기서나마 이루어지기를 한가닥 희망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의 19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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