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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거짓 예언자가 전하는 말

- 하느님이 걸오 오시는 시비 -

 

                                                                                [경향잡지 1980.8월호]

 

우리 한번 겨루어 보자. 걸핏하면 신이 죽었노라고 떠들면서 내 부고장이나 돌리는게 대수인 자들아! “야훼여! 일어나소서, 악인들 맞받아 때려누이시고 칼로써 끝장내어 이 목숨 구하소서. 야훼여! 손을 펴소서”(시편 17, 13~14) 너희 입에서 곧잘 듣는 소리다.

 

물론 기도는 거룩한 것이다. 너희 남은 한 가닥 길이 기도일 때가 없지 않다. 너희 가운데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또 그를 위하여, 기도를 해야 한다(야고 5, 13). 희망을 가지고 환난 속에서 참으며 꾸준히 기도하는(로마 12, 12) 것이 너희 도리다. 너희 온 백성의 울부짖음과 속죄의 눈물이 내게 오르면 나는 그 기도를 반드시 들어준다. 기도에서 내 뜻을 분별하는 평정을 찾고, 정의의 법을 따라 살아갈 은총과 용기를 받는다면 보람이 크다.

 

그러나 제발 너희 현장 기피에 나를 끌어 대지는 말라. 내가 살인청부업자는 아니지 않느냐?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이사 55, 9) 그러니 너희 젊은이와 늙은이가 길바닥에 쓰러지고 이 나라 처녀 총각들이 쓰러지더라도(애가 2, 21) “우리 하느님이 어찌 되셨느냐?”고 부르짖지 말라. 내가 반문한다. “아담(사람)아, 너희 어디 있느냐? 어디 있었느냐?”(창세 3, 9)

 

나는 너희를 내 장막 그윽히 감춰 두지 아니하리라. 나가서 싸우다 죽으라고 내 장막에서 몰아내리라. 너희는 처자권속과 나라와 세계를 건사할 만큼은 철이 들었다. 내 말씀이 모퉁이의 머릿돌만큼 짐스러운(예레 23, 34) 것은 사실이지만,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누구나 산산조각이 날 것이며 이 돌에 깔리는 사람은 가루가 되고 말 것이다.”(루가 20, 18)

 

실천 판단의 어려움을 빙자하는 자는 이 한 가지만 상기하라. 무죄한 인간들이 쓰러지고 치욕으로 일그러질 때에 거기 내 모습이 죽어 넘어지고 피 흘리고 공포에 오그라들어 있다. 사람의 시체마다 내가 누워 있는 것이다. 무죄한 자가 죄를 뒤집어쓰고 매달리는 십자가마다 내 아들 그리스도가 매달려 있는 것이다. 너희의 무거운 침묵을 나는 본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창세 4, 9)는 나의 물음에 너희 대답은 카인보다 드세다.

 

내 백성을 자처하는 너희 모두에게 내가 시비를 걸고 있다. 그러니 누구에겐들 손가락질 말라. 나라를 펴는 일은 너희 모두의 본분이려니와 착한 목자는 양떼를 앞서 가고(요한 10, 4)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요한 10, 11) 법이지, 양떼의 뒤를 따라가서 이리에게 찢겨 죽은 양들의 무덤에 성수나 듬뿍 뿌리는 일이 어디 할 짓이냐?

 

“나는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 너희나 너희 후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신명 30, 19) 너희는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 한다. 이렇게 하늘을 보고 날씨를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하느냐? 이 세상 어디든 둘러보아라. 전세계가 어떤 판국을 향해 치닫고 있음이 보이지 않느냐? 어둠이 내리고 있다. “그 날은 다만 깜깜할 뿐 한 가닥 빛도 없으리라.”(아모 5, 20)

 

달콤한 위안과 거짓 평안을 찾아 성전에 드는 자들은 조심하라. “야훼는 그럴 분이 아니다. 우리가 전쟁과 기근을 당하다니, 그럴 리 없다. 예언자들이란 공연히 지껄이는 바람 같은 것들! 그런 벌은 저희나 받으라지”(예레 5, 12~13) 하는 자들은 빚을 져야 한다.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는다”(루가 12, 47)고 했다. 너희 땅에서 저질러지는 모든 악을 내 이름을 아는 너희가 속죄하지 아니하면, 예언자들이 말하던 불길한 재앙이 이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쏟아져 내리리라.

 

나는 내 백성이 얼마나 고생하는지(출애 3, 7), “너희가 나를 거슬러 얼마나 엄청난 죄를 지었는지 죄다 알고 있다.”(아모 5, 12) 그러나 “아무리 귀를 씻고 들어 보아도 당연히 할 말을 하는 놈은 하나도 없다.”(예레 8, 6) “내가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던가” 하며 잘못을 뉘우치는 자도 하나 없다. 도리어 나의 종들에게 그 죄를 뒤집어 씌웠고, 보라, 온갖 거짓에 뜻있는 사람도 입을 다물고(아모 5, 13) 천하가 함께 미쳐 돌아가고 있구나.

나 야훼가 하는 말이다. 내가 보낸 자들이 아닐린 색소를 발리우고 줄줄이 죽음의 행진을 하는 광경을 눈여겨 보아 두라. 그들은 내가 보낸 표징이다. 너희가 장차 당할 운명을 체현하고 있다.

 

“살고 싶으냐? 나를 찾아오너라. 살고 싶으냐?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여라.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 흐르게 하여라.”(아모 5, 4. 14. 24) 이 땅의 죄를 속죄하고 더 이상 죄 없는 피를 흘리지 않게 하여라. 너에게 자비를 베풀 만한 때에 네 말을 들어 주고 너를 구원해야 할 날에 너를 도와준다(2고리 6, 2).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이다. “살인범은 반드시 사형을 받아야 한다.”(민수 35, 16) 뉘우치고 속죄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용서받지 못한다. 무리가 저지른 죄는 그 당대에 벌하리라.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찾았을 때에도 죄 없는 사람이 열 사람만 있었더라도 그들을 보아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았을 것이다(창세 18, 32). 그리고 너희 모든 죄악을 나의 종에게 지웠다. 나의 종은 너희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이사 53, 8). 너희는 그 죽음을 골고타에서 두 눈으로 보았다. 또 아벨에게서 시작하여 너희 무죄한 의인들에게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무리가 똑같은 죽음을 체현하고 있다. 그러나 의인의 죽음이 세상의 죄를 씻는다 하여 너희 살인자의 죄값이 결코 줄지는 않는다.

 

지금이라도 소스라쳐 무릎 꿇고 옷을 찢고 잿더미 위에 올라 앉으라! 온 나라에 재계(齋戒)를 선포하고 온 겨레가 단식하라! 그러지 않으면 “마침내 무죄한 아벨의 피로부터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된 바라키야의 아들 즈가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서 흘린 모든 무죄한 피값이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분명히 말해 둔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다.”(마태 23, 35~36)

 

평화와 안보를 너희가 극진히 염려함을 안다. 그러나 너희는 그것을 나보다, 나의 법과 정의보다 앞세워 우상으로 받들고 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요한 14, 27) “정의가 내 앞을 걸어 나갈 때 비로소 평화가 그 발자취를 따라가리라.”(시편 85, 13) “내가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집 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면, 내가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일”(시편 127, 1)임을 명심하라.

 

“서슴지 말고 그 망측한 우상을 내 앞에서 치워 버리라.”(예레 4, 1) 그 우상이 두려워 너희가 모든 죄악을 용인한다면, 너희가 제아무리 방비된 성이며 군졸과 병기며 파라오와 이집트의 그늘을 의지하더라도, 잘 들어라, “시온은 갈아 엎은 밭 모양이 되고 예루살렘은 돌무더기가 되고 성전이 서 있는 이 산은 잡초만이 무성한 언덕이 되리라.”(예레 26, 18)

(경향잡지 1980.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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