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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네 빵을 쪼개어 나누시오

-제41회 국제성체대회의 메시지 -

 

                                                                                   [경향잡지 1976.10월호]

 

지난 1976년 8월 1일부터 8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국제성체대회는 과연 미국인다운 대스펙타클이었다고들 한다. 독립 200주년의 축제 분위기의 필라델피아에 44명의 추기경, 주교 461명을 위시하여 120여 만명의 가톨릭 신자가 운집하여 공전의 대집회를 이룬 것이다.

 

한 주일 내내 각종 전례집전(대전례집전이 58회, 민속전례가 27회)이 거행되고, 세계 문제와 교회 문제를 토론하는 심포지엄, 종교전람회와 종교예술전시회가 개최되고, 저녁마다 야외극과 연주회가 열려 신자들은 마치 디즈니랜드를 헤매는 기분이었고, 외부인들의 눈에는 흡사 ‘가톨릭 올림픽대회’가 열린 듯한 인상이었던 것이다.

 

성체께 대한 신심을 권장하고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의 현존을 돈독한 신앙으로 흠숭하자는 뜻에서 국제성체대회는 시작하였다. 불란서의 릴리에서, 그것도 마리 타미시에(Márie Tamisier)라는 평신도 여성이 나서서 주선하여 첫 대회가 열렸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가톨릭의 위용을 과시하고 교회와 세계 문제를 함께 토론하며 신자들의 신앙 부흥을 도모하는 국제대회(Statio Orbis)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시할 것은 이번 성체대회의 표어와 주제이다. "인류 가족의 굶주림!' (Hungers of the Family!)" 이것이 이 대회의 주제였다. 미국 주교단은 지난 1년간 신자들에게 성미(誠米) 운동을 실천케 하여 이 주제를 일깨워 왔다. 또 대회 중 개최된 각종 심포지엄은 한결같이 인간의 굶주림(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굶주림, 진리에 대한 굶주림, 상호 이해, 자유와 정의, 정신 가치, 평화에 대한 굶주림 포함)을 주제로 삼아 세계의 저명인사들을 초청하여 토론을 가진 것이다.

 

8월 9일. 필라델피아 대주교 크롤(John Krol) 추기경은 대회에 참석한 고위 성직자들을 초대하여 오찬을 가졌다. 비가 내리는 세인트 찰스 신학교 교정에 천막을 치고 야채와 치즈, 빵과 생선튀김만을 차린 ’가난한 이의 식사‘였다.

 

물론 고위 성직자들이 상징적으로 먹어 본 ‘가난한 이의 식사’가 방글라데시 같은 곳에서는 잘 차린 잔치가 아니겠느냐고 비웃거나 대회에 들인 그 많은 돈(준비 경비만도 60만 불)으로 가난한 이들을 구제했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비양거릴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발등에 부어지는 향료가 아까워 투덜거리는 유다스에게 주님은 퉁명스럽게 대답하신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여자 일에 간섭하지 마시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당신들과 함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요한 12, 7~8)

 

지난해 미국 신자 가정은 끼니를 줄인 성미운동으로 5백만 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식량을 사서 방글라데시에 보냈다. 천만 명의 젊은이가 1천 8백만 시간의 무료 봉사를 하였다.

 

이번 대회에서 사람들의 눈에 가장 뚜렷이 비친 세 얼굴을 꼽는다면 우리는 이 대회의 메시지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캘커타 빈민굴의 마더 테레사,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인 헬더 까마라 대주교, 미국의 풍요한 빈민들에게 정신 가치를 일깨워 온 풀톤 쉰 주교가 모두의 시선을 모았던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기아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테이블에 빵을 차려놓고 그것을 쪼개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상징적 행동을 하였고 곁에 앉은 인사들에게도 따라 하도록 권하였다. 인도의 가장 처참한 빈민굴에서 수십 년간 생활하면서 빵을 쪼개어 나눠 먹는 기쁨을 체험해 온 테레사 수녀의 확신어린 행동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예수회 총장 베드로 아루페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미국 가톨릭 신자들이 일주일에 한 끼니만 거르면 연간 250억 불이 모금된다고 한다. 크리스천들이 배부르게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아니라, 숟가락을 들기 전에 자기가 먹을 빵을 쪼개어 나누어 먹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굶주린 그리스도의 심판을 자초하리라는 말은 다들 알고 있다. 인류의 1/3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법도대로 살기를 작정한 사람들이라면, 나머지 인류의 기아와 영양실조나 비인간적 상황을 크리스천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마땅한 것이다.

 

미국 가톨릭 교회의 최대의 이슈가 되고 있는 임신중절의 문제도 이 각도에서 재강조될 수 있었다. 대회 폐막일의 예전에 참석한 포드 대통령도 “생명에 대한 점증하는 불경을 여러분과 함께 우려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식탁의 빵을 새로 태어날 자녀와 나누어 먹기조차 두려워하는 이기심과 향락주의에 대해 가톨릭 교회만이 최후의 저지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의 말대로 ‘가난한 이들의 쪼들린 얼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뵙는’ 자선심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카마라 대주교가 외친 바와 같이 ‘먹을 권리는 기본되는 정의’이며, 궁극적으로 부요한 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본시 가난한 자들의 것이므로 “각자에게 자기 몫을 돌려줌이 마땅하다”는 정의감이 가장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들은 식탁의 찌꺼기와 호주머니의 잔돈을 구호 바구니에 털어 넣고서 우월감과 양심의 평안을 만끽할 것이며, 세계의 부를 모조리 긁어 모으는 자기네 조직적 착취의 손을 뒤로 감출 것이다.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예식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에우카리스티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성된 빵을 쪼개어 나누어 먹는 경건한 식사[성찬]이며, 이 사랑이 가득한 친교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현존을 감지하는 모임인 까닭이다.

 

코린토인들이 바울로의 지탄을 받았던 대로, ‘우리가 받아 모시는(먹는) 바가 우리의 삶이 되지 않으면’ 미사가 결코 주님의 성찬이 되지 못하며,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이 된다.”(1고린 11, 29)

 

제41회 국제성체대회는 성체성사가 ‘성찬’으로서 갖는 의미를 모든 신자들에게 일깨우고 폐막하였다. 이 달(1976년 10월)에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만인에게 자유와 정의를!' (Liberty and Justice for All!)이라는 주제로 회의를 갖는 것도 이 대회가 남긴 메시지를 실행에 옮기는 길을 찾는 노력이 아닌가 여겨진다.

(경향잡지 197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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