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

 

1. ㉯ R.Cantalamessa, “너의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2006. ㉯해 연중 31)

 

 

1. Raniero Cantalamessa, “너의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

(2006. B. XXXI Domenica del Tempo ordinario)

Amerai il Signore Dio tuo

 

어느 날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접근한다. 율법의 어느 계명이 첫째가는 계명이냐고 묻는다. 예수님은 율법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이렇게 대답하신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여러 번 들었고 첫 계명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을 이으시면서 둘째 계명이 있다고 분명하게 지적하신다. 둘째는 첫째 계명과 비슷하다는 말씀도 하신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율법학자의 질문이든 예수님의 답변이든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한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에는 두 가지 사조가 있었다. 하나는 율법과 계명을 부지기수로 늘리려는 경향으로서 일상생활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규정과 의무를 제시하려는 풍조였다. 다른 풍조는 이런 세세하고 번거로운 규정들을 떠나서 하느님과 영혼에게 참말로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 찾아내려는 움직임이었다.

 

율법학자의 질문이나 예수님의 답변은 율법의 핵심을 찾는 사조에 들어맞는 문답이었다. 수천가지 부차적인 계율에 헤매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배울 점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 삶에서는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안 하더라도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것들이다. 그 반대로 시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우리가 봉착하고 있는 위험은 시급한 일 때문에, 대개는 아주 부차적인 일 때문에 참으로 중요한 일들을 체계적으로 말살시키고 희생시키는 짓이다.

 

이런 위험에 대처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우리한테 도움이 되는 얘기가 있다. 어느 날 노교수 한 사람이 미국의 대기업 간부들에게 자기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에 관해서 전문가로서 강연을 해 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 교수는 한 가지 실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강연을 경청하겠다는 인사들을 앞에 두고서 연사는 일어선 채로 책상 밑에서 커다란 유리그릇을 끄집어냈다. 속이 비어 있었다. 그리고 테니스 공만한 돌멩이 여남은 개를 집어서 하나씩 하나씩 유리그릇 속에 집어넣었다. 가득 찰 때까지. 그러다 그릇에 넣을 다른 돌멩이가 더 없자 청강생들에게 물었다. “그릇이 가득 찼다고 봅니까?” 모두가 “예!”라고 대답하였다. 교수는 한 참 망설이더니 “확실합니까?” 라고 물었다. 일동이 다시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책상 밑에서 상자를 하나 끄집어냈다. 자잘한 조약돌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조심조심 돌멩이 틈으로 그 조약돌들을 부어 넣었다. 조약돌들이 큰 돌멩이 사이에 제대로 들어가게 그릇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이젠 그릇이 가득 찼습니까?” 교수의 질문에 청중은 보다 신중해졌는지, 교수의 의중을 알아챘는지 “아마 아직 덜 찼을 것입니다.”라는 대답들을 했다. “좋아요.” 교수는 이렇게 대답하고서 이번에는 책상 밑에서 모래 주머니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것을 조심조심 그릇 위에 쏟아 부었다. 모래는 돌멩이와 조약돌 사이의 빈 공간을 메워갔다. “이번에는 가득 찼나요?” 교수가 묻지 일동은 일제히 “아니요!”라고 대답하였다. 교수는 알았다는 듯이 탁자위에 있던 물병을 집어 들어 유리그릇에 붓기 시작했다. 가장자리까지 물이 올라왔다.

 

그 시점에서 교수는 눈을 들어 청중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 실험이 무슨 진리를 우리에게 깨우쳐 준다고 생각합니까? “시간 관리”라는 세미나 제목을 알고 있던 사람 하나가 용감하게 답변을 하였다. “우리 일정표가 빼꼭히 찬 것처럼 보이더라도 선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일과를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교수는 대답했다. “아니올시다. 그게 아닙니다. 이 실험이 보여준 것은 전혀 다른 얘깁니다. 먼저 큰 돌을 넣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큰 돌을 그 자리에 넣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자 일동은 조용해졌다. 교수의 발언이 갖는 명료한 의미를 한참 음미하는 것 같았다.

 

 교수는 말을 이었다. “여러분의 삶에서 큰 돌멩이, 즉 우선을 두는 일은 무엇입니까? 건강? 가정? 친우? 소송에 이기는 일? 마음에 품은 뜻을 이루는 일? 중요한 일은 큰 돌멩이를 먼저 여러분의 일정표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만약 사소한 수백 수천가지 일에 우선을 둔다면 여러분의 삶은 하찮은 것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정작 중요한 일에 시간을 할당하는 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자주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십시오. “내 삶에서 커다란 돌멩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먼저 여러분의 일정표에 넣으십시오. 그 다음 노교수는 청중에게 따뜻한 인사의 제스처를 남기고서는 강당에서 나갔다.

 

교수가 지적한 커다란 돌멩이ㅡ 건강, 가정, 친구에 다른 두 가지를 보태야 할 것 같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가장 큰 계명 두 가지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 말이다. 실상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계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특전이다. 특전적인 허용이다. 우리가 어느 날엔가 하느님을 만나 뵙게 된다면 하느님께 중단 없이 감사를 드릴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라는 것을 계명으로 내리신 사실을 두고 깊이 감사를 드리리라. 그 사랑을 키우는 일 위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