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2002.1월호: 야곱의 사다리]



시간이라는 은총을 타고

 


“내가 살아남는다면...”

 
 일년의 가치를 알려거든 재수생에게 물어보라.
  한달의 가치를 알려거든 조산아를 낳아 키우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라.
  한 주간의 가치는 주간지 편집인에게, 하루의 가치는...
  한 시간의 가치는 데이트에 늦는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보라.
  일분의 가치를 알려거든 방금 기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보라.
  일초의 가치를 알려거든 방금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사람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십분의 일초의 가치를 알려거든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사람에게
  물어보라.”


어디선가 읽었던 유모어지만 시간에 관해 날카로운 혜안을 담은 글이었다. 독자가 타고 가던 자동차가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앞바퀴가 빠져나가 그 넓은 길을 왼편으로, 오른편으로 지그재그 굴러가다 가로등을 들이받고서야 멈추어섰는데 그 넓고 그 번화한 거리에 하필 그 시각에만 자동차 한 대도 없어 사고를 면하였다고 상상해 보시라(필자가 1980년 신문로 네거리에서 겪었던 일이다)!

40여년전 아직도 설악산이 한가하던 시절, 군대의 특수작전지역이어서 입산금지중인 줄을 모른 채로 여나믄 청년들이 대청봉에서 오색 쪽으로 하산하다 바위 모서리를 도는 순간 “정지! 수하!”하는 소리와 더불어 발사된 총알이 뜨거운 열기를 남기며 귀밑으로 스쳐가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 보시라! 군인들은 특식으로 술이 거나한 상태였고, 바위 모서리에서 난데없는 등산객 무리를 보고 놀란 척후병이 무조건 갈기고 본 총질이었다(필자가 1964년에 겪었던 일이다).

“내가 살아남는다면 밤마다 만갈래 생각 속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리라. 내가 살아남는다면....” 사하라에 추락한 비행사의 심경을 그린 쌩떽쥐베리의 이 한 줄은 우리의 삶이 덤으로 주어진 선물이요 시간이 얼마나 고마운 은총인지 절감케 한다. 서강대의 한 원로교수는 교통사고후 몇 달간의 투병을 거친 뒤 혼잣말처럼 자주 이렇게 탄식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파란 하늘을 쳐다볼 수 있다는 게... 이 캠퍼스에서 숨쉴 수 있다는 게... 내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ROMA ↔ AMOR

"로마는 나의 사랑!“ (ROMA라는 철자를 거꾸로 읽으면 AMOR(사랑)가 되는데, 1998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로마 시청을 방문하여 행한 발언으로 한결 유명해진 말이다. 그때 교황은 ”나는 로마 시민이올시다“(CIVIS ROMANUS SUM)라는 로마 시대의 명구도 발언하였다. 로마 제국 시대에 식민지에서 범행을 한 로마 시민권자가 이 선언을 하면 현지에서의 재판을 면하고 로마로 압송되어 황제의 재판을 받았다. 사도 바울로도 이 특권을 행사하였다(사도 22.22-29 참조).

1999년 1월의 로마. 필자가 안식년으로 20개월을 이 ”영원한 도시“에서 보내고 귀국하기 열흘 전에 집에 불이났다. 로마 아피아 안티카 초입에 있는 성칼리스토 카타콤바의 수위실이어서 몇 백년된 흙집인데 이층으로 아담하게 꾸며 우리 부부 두 사람이 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80년대 이탈리아 유학시절에 제대로 배운 게 시에스타(낮잠)뿐이었는지 그때도 나는 곧잘 낮잠을 잤다.

그러나 그날 따라 아내가 윗집으로 케이크를 만들러 가자면서 이층 침실로 올라가는 나를 붙잡았다. 윗집에는 나의 서재가 있었고, 아내는 그곳 살레시오 신부님들의 부엌을 자기 부엌마냥 마음대로 썼다. 서재에서 일하다가도 졸리면 다시 아랫집으로 내려가 낮잠을 자는 버릇이 있었으므로, 아내는 케이크 만드는데 쓰일 재료를 산다면서 시장까지 나를 끌고 갔다. 그날은 마른 번개와 날벼락이 유난히 로마를 스산스럽게 하였다. 오후 다섯시경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옷을 갈아입으려고 집문을 여는 순간 새까만 연기로 집안이 가득하였고 모든 가전제품이 다 녹아 있었다. 날벼락이 카타콤바 정문의 감시 TV 카메라선을 타고 들어와 가전제품에 화재를 일으켰던 것이다. 창문이 이중이요 벽이 워낙 두꺼워 산소가 부족해 집안은 저절로 진화된 상태였다. 연기가 나가게 이층 창문을 열러 올라갔다가 단 두 번 검은 연기를 마셨는데도 의식을 잃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을 보면, 요새 화재마다 타 죽는 일보다 독가스로 질식해 죽는 까닭을 알 만하였다. 그때에 벽에 걸려있던 플라스틱 십자고상은 다 녹은 채 한센씨병 환자의 용모를 하고서 지금도 우이동 서재의 벽에 걸려 있다. 그 날 이후의 목숨 오로지 거저 주신 은총임을 소리없이 일러주면서....

“주님은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의 아빠와 같으셔요. ‘걸음마, 걸음마!’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부추기시지만 한 걸음 앞서 가시면서 우리 발 끝에 걸려 넘어질만한 돌팍과 유리 조각과 장애물은 모조리 치워주시지요." 어렷을 적 읽었던 소화 데레사의 글 한 구절) 물가에 심겨진 포플러나무가 그 풍부한 물기의 고마움을 어찌 알까? 마냥 푸른 풀밭으로 돌아 다니는 새끼양이 목동의 고마움을 언제나 알까?


물 속에 잠긴 찻잔의 물처럼

  
마치 가을날 나뭇잎이 하나씩 둘씩
  차례로 떨어져 나중엔 나뭇가지가
  제 벗은 옷을 고스란히 흙 위에 내려다보듯
    (단테 「신곡」 지옥편 112-114)

죽은 이들을 사랑하는 계절 11월이 노루꽁지만큼 짧게 지나가고 한 아기의 탄생을 맞느라고 캐롤과 선물과 대림초와 성가연습과 판공성사 중에 마지막달을 보내고 나니 세월은 어느덧 2002년이라는 아름다운 대칭숫자를 우리 눈앞에 빤짝거려 보인다. 지구라는 커다란 숲에서 지난 해에도 무수한 잎이 지고 무수한 잎이 움을 틔웠다. 내가 아직 나무에 매달려 녹음을 자랑하고 있다면, 비록 삶이 고달프고 외롭더라도 시간이 얼마나 은혜로운 것이며 존재에로 불리워온 일이 얼마나 큰 은총임을 절감할 만하다.

한 잔에 담긴 커피가 마실수록 줄어들 듯이 나이가 들고 회복할 가망이 없이 병상에 누우면 시간이 한정된 선물임을 절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평소 우리의 삶은 물동이에 푸욱 잠긴 물잔 같아서 언제나 물로 가득 차 있어 시간이라는 은총을 고마워할 틈새가 없는 듯하다. 하기야 고마움을 느끼던 못 느끼던 “그게 무슨 대순가? 모든 것이 은총인걸”(Qu'‘est ce que c'est la fait? Tout est la grace!: 베르나노스 「어느 시골본당신부의 일기」 끝줄에서)

[ 경향잡지 2002년 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