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USTITIA의  어원학적 고찰: 초창기 라틴문학에 나타나는
IUS, IUSTUS, IUSTITIA 용례

                                           1990 서양고전학연구 4 (175-204)
 
  서   론 

   0.1  본고의 목적은 로마문학사에 있어서 초창기 (aevitas archaica)에 1) 해당하는 문장가들이 IUS, IUSTUS, IUSTITIA 어휘를 사용해 온 용례들을 살펴봄으로써, 고전 세계에서 이 어휘들이 지닌 상고적 측면과 도덕적 면모를 찾아내는 것이다.  시대적인 연구 범위는 라틴문학의 최고봉인 키케로(B.C. 106-43) 이전까지로 한다. 상고시대의 금석문자나 문헌학자들의 글에 수록 전수되는 상고시대의 문전에 대해서는 범위를 정하지 않으나, 일단 시문학(詩文學)과 산문학(散文學)이 출현한 이후로는 문학가들의 작품에 대상을 국한시키며, 따라서 혹자들이 흥미와 관심을 둘 만한, 공화정 이후의 법조문과 법률가들의 단편에 관한 고찰은 특이한 용례가 아니면 논의에서 제외한다.
   
   0.2 본연구에서는 카토(Marcus Porcius Cato B.C.234-149)를 제외한다면, 거의가 시문학가들의 작품을 다루게 되는데 먼저 로마 극문학에서 그리스풍의 비극(toedia crepidata)을 대표하는  안드로니쿠스(Livius Andronicus B.C.280-post 207), 나이비우스(Gnaeus Naevius 269-200), 파쿠비우스(Marcus Pacuvius 220-130), 악키우스(T.Accius 170-80), 그리고 그리스풍의 희극(commoedia palliata)을 대표하는 플라우투스(Titus Maccius Plautus  254-184), 테렌티우스(Publius Terentius Afer 190- post 160), 카이킬리우스(Caecilius Statius 222-?), 그리고 초창기의 서사시인 엔니우스 (Quintus Ennius 239-169), 풍자시인 루킬리우스(Caius Lucilius (180-103) 등을 단편으로 2) 혹은 온전하게 전수되어 오는 작품들을 통해서 살펴보는 것이다. 초창기의 산문작가로서는 유일하게 작품을 전수시키고 있는 대(大)카토는 로마 최초의 고문학자(古文學者)요 역사가였다.
   수사학이나 문장론에서도 그렇듯이 이 세 어휘들의 의미론적 완성을 보는 것은 대문장가 키케로에게서이지만 그 인물의 사상과 어휘론적 연구는 별도의 깊은 연구를 요할만큼 광범위하고 풍부하므로 여기서는 키케로 이전까지의 용례와 의미 발전을 조사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의 연구 범위는 사실상 B.C.5세기부터 키케로가 작품활동을 시작한 B.C.80년까지에 해당한다.
   
   0.3  본고의 방법은 문헌학상으로 검증된 금석학 및 문헌학 자료들을 이용하여 그 자료에 사용된 이 어휘들의 용례(用例)를 찾아내어 해설하는 색인(索引) 작업을 따를 것이다. 이 방법론을 따르는 이유가 둘 있다. 첫째로, 그리스-로마시대 이래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강학(講學)이든 문헌학자들의 해설이든 간에 거의 고전 작품을 축자(逐字) 해설하는 방법을 채택하였고 축자해석은 당연히 해당 어휘의 역사적 맥락과 작가별 용례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졌다. 현대에 발간된 그리스어나 라틴어 대사전들이 같은 원칙하에 엮어져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2천 3백년이 넘게 서구에 승계되고 있는 학문적 전통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스토아 사상 이래로 "언어는 사고를 따른다" (verbum sequi tur rem) 고 하던 고대의 언어철학 전통에 의거해서다. 왜냐하면 어느 작가가 어느 문맥에서 어떤 일정한 어휘를 선정할 경우,거의 무의식 중이라 하더라도, 어휘의 원의(源意)를 의식했을 것으로 전제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특히 라틴 작가들의 작문에 있어서는, 고대 세계의 시문이나 산문이 거의 그렇지만, 선대작가들의 용례(用例)를 매우 존중하는 관습이 있었다. 따라서 작가가 선대의 용례를 얼마나 충실히 답습하면서 그 어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는가는 당연히 연구 대상이 된다.
   
   0.4 고전 작가 어느 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이 어휘들의 용례에 관한 문헌학적 분석은 이 어휘들의 상고적 의미 곧 종교적(宗敎的)이고 법률적(法律的)인 의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 본래적 어의를 간직한 채로, 도덕적(道德的) 의미로 변전되었는가를 연구하는데 의의가 있다. 물론 여기서는 문헌학적 탐색에 그치고 시인이나 문장가 개개인의 정의관념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어휘들을 문장에 사용하는 이상, 작가는 키케로가 '정의'(iustitia)라는 덕목에 부여한 원초적인 개념, 곧 "각자에게 자기 것을 돌려주며, 인간 관계를 도량있고 공평하게 유지하는 심성"3)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혹자는 단순하게 "지당하다"는 상투어로 ius est, iuste, iustum est를 문장에 쓰고 있지만 혹자의 작품들은 그 집필 의도 자체가 시민들과 백성들 사이에 공평과 선(aecum ac bonum)이 군림하기를 염원하는데 있었으므로 이러한 개념이 묵시적으로나마 어휘 선정과 사용에 전제되었으리라는 가정하에 이 작업을 하는 것이다. 본고는 문헌학적 접근(investigatio philologica)을 시도하는 것이므로 각 저자의 법률적 사회적 정의관이나 일정한 작품에 반영되는 사회정의 사상은 취급하지 않는다.


I. 문헌상에 나타나는 어원(語源)


   1.1  문헌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으로는 추상명사 iustitia는 형용사 iustus에서 유래하였고 이 형용사는 일반명사 ius에서 파생된 것이다. 포코르니(J.Pokorny)는 라틴어 명사 ius의 어근을 ieous- 에서 찾는다.그리고 이 어근은 베다경전언어에 나오는  yoh 와 아베스타경전 언어에 나오는 yaos 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4) 그 대신에 쩨메레니이(O.Szemerenyi)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어근에 두 가지 모음 교체(alternativa gradus vocalis)를 가정하여 YEWOS/ES- 를 구상하고서 그러나 이보다 앞서 YOWOS/ES- 형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5) 그러니까  쩨메레니이의 의견을 따른다면, ius 라는 어휘의 발생을 모음교체상의 강세계제(gradus fortis)에서 찾아내어 ius < ious < *iou-os 형태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형용사는 정상계제(gradus medius)에서 파생하여 소위 Lapis niger 6)에 나오는 형태대로 ious-es-tod 라는 표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2 본래적 의미에 관해서는 뱅베니스뜨(J.Benveniste)의 설이 널리 통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ius라는 단어가 상고부터 (종교관습과 구분되는) 법(法)과 율(律) lex et decretum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원래는 ius에서 파생되었을 iustus나 iustitia, 심지어 iurare에 내포된 어의는 지니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특히 ius를 전문적으로 알고 이를 관장하는 인물을 가리키는 사역 주체(agens)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고 ius의 합성어 iudex 만 전해져 온다는 면에서 ius와 그 파생어들의 의미론상의 간격을 메우기 힘들다는 것이 뱅베니스뜨의 주장이다.7)
    그리하여 뱅베니스뜨는 베다경의 언어 yoh 와 아베스타경의 언어 yaos를 라틴어 ius와 비교함으로써 그 어원을 찾는다. 두 어휘는 라틴어 ius에 상응하는 어의와 형태를 동시에 보존하고 있어 그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이 크다. 베다어 yoh 는'복'(福) 또는 '건강'을 가리키는 말로 경전에는 언제나 sam 이라는 단어와 함께 나오므로 samyoh  혹은 samca yosca 라는 형태가 되며 경전상으로는 일종의 주문(呪文)에 해당한다.8) 아베스타경에 나오는 yaos는  yaozda-라는 형태로만 발견되는데 자의(字義)대로는 yaos를 받다', 다시 말해서 '계율에 맞갖는 사람이 되다' 혹은 '예배와 규식에 맞갖은 처지에 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yaozdatar-는 '정결(淨潔)을 시켜 주는 사람', yaozdati-는 '정화'또는 '살풀이'가 된다.9)
    이러한 배경에서 본다면, 성스럽게 발설하는 주문에 나오는 yoh 든 마땅히 갖추어야 할 정결한 상태를 지칭하는 yaos 든 둘 다 종교적으로 요구되는 상태나 성스러운 영역에 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대 산스크리트어 yoh와 yaos에 근거하여 뱅베니스뜨는 라틴어 어근 *ious-os/es- 에는 당초부터 어떤 성스러운 의식에 관한 규범을 담고 있다는 추론을 내리고
있다.
   
   1.3  형용사에 관해서도 상고시대부터 종교적으로 요구되는 금기(禁忌)나 계율(戒律) 을 전제로 하는 용법을 들 수 있으니 고전시대까지도 엄연히 쓰여온 숙어들, 예를 들어 "iusta funera(제례 祭禮를 갖춘 장례), iusta facere(죽은 이에게 합당한 제례를 올리다), iustae nuptiae(신법에 어긋나지 않은 혼인),  iusta uxor(신법에 따른 가례 嫁禮를 치러 맞아들인 아내),  iustum bellum(ius fetiale에 의거하여 신의 재가를 받은 전쟁)" 등에 이러한 종교적 성격이 잔존하고 있다. 그런데 형용사의 용법으로는 법률이나 사법과 연관되는 용법, 다시 말해서 ius dicere, iurare 에 상응하는 용법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 애로가 된다.10)

   1.4 라틴어에서는 상고시대부터 ius 라는 어휘가 '입으로 발설하는 주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ius est! iusque fasque! ius dicere, iudex 등의 용법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11) 그러다가 후대에 사법적인 의미가 첨가되어서  in ius ire, vocare, ducere (재판을 받다, 재판에 회부하다[재판정에 호출하다], 재판장에 끌어 가다) 라는 관용어가 생겼고 더 후대에는 재판을 통해서 얻은 권리와 의무를 개념하게 되면서 iura dare, ius reddere, ius civi le 같은 숙어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이 어휘가 도덕적 성격을 띠기 시작하면서부터 단어의 인간들의 어법이나 관념이나 사고방식에 새로운 활로가 열리기 시작하였고 ius eundi, ius meum, adversum ius legesque, ius summum summa iniuria 같은 어법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12)

        II.  상고 문헌에 나타난 어휘
   
    2.1  지금까지 발굴된 라틴어 문헌 중에서 우리의 연구 대상이 되는 어휘를 싣고 있는 최초의 문헌은 앞서 말한, 학계에서 Lapis niger이라고 하는 석주(石柱)이며 거기에 형용사 iustus 로 해석되는 IOVESTOD 라는 문자들이 나와 있다석주에 새겨진 명각의 마지막 두 줄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13)
   
        QVOI HA VELOD NEQV.... ...IOD
        IOVESTOD / LOIQVIOD QO... 14)

   
   추측컨데 묘지(로마인들에게는 묘지는 가장 금기와 형벌이 심한 성스러운 지역으로서 보호되었다)에 접근을 금하는 문구로서 추정 판독이 학자에 따라서 달라 혹자는 iousdikIOD  IOVESTOD (iudicio iusto 적법한 재판에 의하여 [노예경매에 회부하라]) 라고 읽고 혹자는 IOVESTOD LOIQVIOD (iusta licitatione: "적법한 노예경매에 [회부하라]")라고 읽는다. 어떻게 문맥을 판독하든 간에 우리로서 관심을 두는 IOVESTOD 는 쩨메레니이가 복원한 것처럼, 형용사  iustus의 어근 iouos/es- 에 따른 완벽한 형태의 단어 즉 IOU[어근]-ES[정상계제 모음]-T(O)[접미어]-OD[양성에 공히 쓰이던 탈격 어미]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구절을 iustum iudicium 15) 으로 판독할 경우, iudicium secundum ius 즉 ius 에 의거한 재판을 말하고, 당대에 이미 ius 가 재판의 기준이나 규범으로 정립되어 있어 왕이나 판관은 묘지라는 성역을 범접한 죄인을 그 규범에 준하여 재판하고서 (자유인을 노예로) 경매처분하는 형벌에 처하여야 했다는 뜻이다. 문헌상으로 나타나는, 로마 세계 최초의 법치 정의 (法治正義) 관념이라고 하겠다. 무릇 법률을 제정한다는 것은 정의를 구현하는 첫걸음이며 인간간의 시비가 가려지는 재판이 판관들의 자의(恣意)가 아니라 법에 의거하여 이루어진다는 것(iure iudicare → iudicium iustum)은 인간 세계의 공평(公平)을 향하는 뛰어난 진일보임에 틀림없다.
   
   2.2  아다시피 로마의 왕정법이나 12동판법은 석판이나 동판으로 그 흔적이 내려오지 않고 고전 작가들의 글, 특히 당대 고문학자들의 글에 수록되어 전수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고대 문전을 충실하게 베껴 옮겼으며 철자의 표기와 문법이 달라진 고문(古文)을 학적으로 해설하고 있어서 연구 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왕정법으로 우리의 해당 어휘가 나오는 법
조항이 하나 있다.16)
   
      
  HOMO SI FVLMINE OCCISVS EST
        EI IVSTA NVLLA FIERI OPORTET.
        "사람이 벼락으로 죽임을 당하였으면
         제례를 일체 베풀지 말라."

   
       형용사가 중성 명사법으로 나온 iusta 는 도덕적인 색채는 전혀 띠지 않고 종교적 의미, 곧 죽은 이에게 베푸는 제례와 제사를 가리키고 있다.17) 그러나 산 사람들이 종교법에 입각하여 망자에게 응당 베풀어야 할 행사라는 점에서 역시 '법에 의한'이라는 원초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2.3 그리고 18) 12동판법의 세째 판에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채무청산에 관한 법조문들에 흥미있는 표현이 나온다.19)
I       
     
  AERIS CONFESSI REBVSQVE IVRE IVDICATIS XXX DIES IVSTI SVNTO.
       "(본인이)자인한 채무에 관해서든 재판으로 평결이 난 사건에 대해서든 30일의
        법정기간을 주라."

   
   여기서 형용사 iusti 는 명사 dies 의 수식어로서 쓰인 최초의 예를 보게 되는데 도덕적인 어감은 전혀 없고 법률적 의미만 나타나 있다. 채무자 본인이 자인을 하였든 법정에서 평결이 났든 간에 채무자가 부채를 청산하는 시간적 여유로 30일간이 유예기간으로 부여되는데 그 기간을 수식하여 iustus (ius 에 의거한)라고 하였다. 이 '법정'20) 기간에는 채무자를 채권자가 구인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윤리도덕적 어감은 없다지만 가난하거나 무능력한 채무자를 부강한 채권자로부터 보호하는 사회정의의 시도를 누구나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 조문에만 해도 채무자 본인의 자인이나 법관의 심리를 통해서 채무사실과 채무액이 산정되고(rebus iure iudicatis), 그 다음에는 채무자에게 30일의 유예기간을 부여하며, 그 다음 조문에 나오듯이 21), 일단 법정에 구인되어서도(in ius ductus) 채무를 이행하거나, 누가 보증을 서면(quis endo eo in iure vindicat) 거기서도 방면될 것이지만 그럴 능력이 없으면 법관에 의하여 구속되는데, 신체구속은 법에 정한 형구를 쓰고, 피구속자의 급식을 책임지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22)
   
   2.4  형용사 iustus 가 고대문헌에 나타나는 위의 세 가지 예에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밝혀지는 것은 이 형용사가 아직 '도덕적' 의미는 담고 있지 않으며 오직 'ius 에 의거한' 이라는 법률적 성격만 띠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상고시대의 문전이나 비문 또는 화폐 등에서는 아직 추상명사 iustitia 가 출현하지 않고 있다. 23)

 

       III. 로마 시인들의 문전에 나타나는 어휘의 용례
       
 
    3.1. 비극작가 Gnaeus Naevius

   단편으로나마 우리에게 문헌을 통해서 전해지는 작가들 가운데 최초로 형용사 iustus 를 사용한 인물은 라틴문학 최초의 비극작가 Naevius인데24) 그것도  iustus 그대로가 아니라 부정형에다 고어체인 iniurus 25)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 그의 희곡 Licurgus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26)
   
        :: oderunt di homines iniuros.
        :: egone an ille iniurie facimus?
   

     "신들은 부당한 인간들을 미워하신단 말야."
        "아니, 부당하게라니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그자를 두고 하는 말인가?"

   
   여기서 쓰이는 형용사 iniuros 와 형용사의 부사형 iniurie 는 형태상의 변화를 암시하는 바가 많을 뿐더러 인간 행동을 어떤 도덕적 규준, 그것도 신의 뜻과 심판까지 결부되는 규범에 연관시키고 있어서 이미 윤리도덕적인 의미가 깊이 어휘에 차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3.2. 서사시인 Quintus Ennius

   그 다음 로마의 영광을 서사시로 옮겨본 Quintus Ennius(B.C.239-169)가 있는데 그는 후대의 Lucretius, Vergilius와 더불어 로마 시문학의 중추를 이루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단편 속에 완력보다 ius 를 앞세운 의미깊은 글귀가 있다: 27)
   
        melius est virtute ius, nam saepe virtutem mali
        nanciscuntur; ius atque aecum se a malis spernit procul.
        "용기보다는 정의가 훌륭하다. 악인들이 용기를 지니는 일은 흔하다.
        그런데 정의와 공평은 악인들을 멀리하고 상대하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후대에 로마의 법정의를 한 마디로 통칭하는 ius atque aequum 이 등장한다. 로마인들의 구체적인 언어감각으로 미루어 이 문구는 정확한 의미의 iustitia 를 가리키는 것이며, 실정법인 '법'(ius)과 인간간의 상식과 관습에 입각한 '공평'(aequum)이 없이는 사회에 정의가 사실상 존재치 못한다는 현실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법정의가 우선 세(勢)를 얻을 수 있는 '용기'(=완력)보다 훌륭하다는 표현이다. 제 2차 포에니 전쟁(B.C.218-201)에서 참패와 굴욕 끝에 카르타고를 제압한 로마에는 승리에 도취한 국민적 오만과 무력에 대한 숭상이 팽배하여 엔니우스로서는 동포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며 법정의가 세워져야 함을 역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정의로운 사회로 보는 곳은 시민들 간의 분쟁이 지혜와 법정의와 협의에 의해서 해결되어야지 압력과 욕설과 적개심으로 결말을 보는 곳이 아니며, 정치 권력이 무력과 군대로 장악되는 곳이 아니라 민의와 협정에 의해서 성립되는 곳이어야 한다.
         그의 선대에서 Naevius 가 이미 사용한 형용사 iustus 는 현존 단편들에서는 용례를 볼 수 없고 추상명사도 iustitia 형태로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 2 * 8
   
  
  3.3. Pacuvius와 Accius

   엔니우스의 조카로 비극문학의 대가였던 Marcus Pacuvius(B.C.220-130)는 이상하게도 단편마저도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우리가 관심을 두는 어휘들에 관한 한 단한 번 iniuria 라는 명사가 쓰이고 선대에서 이미 ius ac aecum의 형태로 쓰던 것을 aecum et rectum 으로 바꾸어 쓰는 용례를 보여준다.29)
     

    :: patior facile iniuriam, si est vacua a contumelia.
        "욕되는 것만 없다면 말일세 불의도 기꺼이 참겠어."

   
    라틴 비극시를 대표하는 Lucius Accius(B.C.170-80) 역시 전수되는 단편들에 우리가 찾는 단어의 용례를 거의 남기지 않고 있다.
       
 matrem ob iure factum incilas
        genitorem iniustum adprobas.
        "너는 어미가 정당하게 행한 바를 두고서 어미를 힐난하고
        불의한 아비는 옳았다고 우기는구나."
30)
   
   아트레우 집안의 비극은 로마 극작가들도 즐겨 다루는데 그 이유는 거기서 주로 다루어지는 소재가 법정의와 법정의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야심 때문에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희생시킨 남편을 죽임으로써 억울하게 죽은 딸의 복수(ius ulciscendi)를 하였노라는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그렇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는(ius ulciscendi) 엘렉트라 사이의 대화를 엮은 것이 악키우스의 이 대화이다. 복수의 권리(의무)들이 상호 충돌함으로써 정의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것이다.
   
    3.4. 희극작가 Plautus

   희극작가 Plautus에게 오면 우리가 관심갖는 어휘들의 용례를 남김없이 다 발견할 수 있다.31) 이 어휘들이 문학과 법률 및 제도에서 쓰이는 어법과 일반 시정에서 사용되는 속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어 당대의 사생활과 사회생활에 풍미하던 정의감각을 연극 대사에서 다채롭게 간파할 수 있다. 플라우투스의 극중인물들은 ius 라는 단어를 입버릇처럼 사용하는데 우리가 그 용례를 진중하게 검토할 만한 구절들도 많으나 대개는 '지당하다'는 뜻으로 쓰는 상투어 iustum est [iustumst] 의 형태이다. 그리고는 ius dicere, postulare, orare, petere 등의 약간 전문적인 상투어들이 나오는데 더군다나 거기에 희극적 과장을 담아 bonum 혹은 aequom 을 수반하는 용례가 많다.32) 후대에는 aequom et iustum 이라는 숙어가 생겨나지만 아직 플라우투스에게서는 aequom et ius 가 중언법(重言法)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당대까지도 형용사  ius tus 가 그만큼 널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작가가 극중 인물의 입에 올리는 ius bonum, ius et aequom, aequom et bonum 등의 표현은 이미 ius 가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정당하고 공평하다는 선대의 판단이 진일보하여 그것에 '선'(bonum)이나 '공평'(aequom)이 첨부되어야만 공평한 정의가 된다는 의식으로 성장하였음을 보여주며 이후의 거의 모든 작가들의 글에서 발견되는 중언법이 된다.
   그런데 플라우투스는 추상명사 iustitia 를 한번도 쓰지 않고 있으며 부정형으로 iniustitia 가 단 한번 나올 뿐이다. 플라우투스에게서는 ius 가 다른 추상적인 용법을 전부 대신하고 있다.
 

  우선 그의 언어구사에서 ius 는 대부분이 단순하게 '법'을 지칭한다. 그것이 '정의'라는 추사 개념이 아닌 '법'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으로 사용되는 용례는 그의 작품 속에 여러번 나온다.33)  그렇다면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ini quus (악인)이 된다. 플라우투스의 정의(定義)대로, illi iniqui ius ignorant neque tenent "법을 무시할 뿐 아니라 지키지 않는 자 곧 불의한 인간"(Amphitruo 37)이다. 문헌상으로 정의로운 인간 vir iustus 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언급이라고 하겠는데 '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은  iniquus 곧 inius tus 이므로 따라서 의인 (義人)이란 '법에 따라 사는 사람'임을 추론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법령과 법률을 지키는 사람' iura qui et leges tenet 이 선량한 사람 bonus 으로 칭송받으며 후대에 널리 쓰이는 iura et leges 라는 중언법도 플라우투스에게서 비롯된다.34)
   플라우투스가 사용하는 iustus 의 용례는 B.C.3세기 말부터 2세기초엽의 용법과 의미를 여러 모로 전달해 주는데 먼저 고전적인 용법대로 secundum ius fasque(종교와 관습에 의거한)라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ea diem suom obiit, facta morigera est viro.
        postquam ille uxori iusta fecit, illico
        huc commigravit.        (Cistellaria 175-7
7)
       
 "그러다 마누라가 뒈졌지. 서방에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자는 죽은 마누라에게 제례를 치르고나서
        이리로 이사를 왔다 이 말이야."

   
   왕정법에 나왔던 바와 같이 iusta (facere) 는 망자의 권리로 망자에게 응당 바쳐야 할 장례와 제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실정법적 성격보다는 종교이고 관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와 비숫하게 선전포고도 없이 '불법적으로' 쳐들어 온 적군을 inimici iure iniusti (   Amph. !  246-47)라고 부르거나 태생으로 로마시민권을 갖지 못하였다가 '특별법으로 시민권을 갖게 된 시민들'을 iusti cives 라고 부르는 용법35)에서는 '의법성'(依法性)을 부여하며 거기서 그치고 있다. 심지어는 애인에게 선물을 제대로 보내지 않는 정부(情夫)는 할 본분을 등한하므로 non iustus amator (Pseudolus 306-07) 이라는 욕을 먹는다.
   그런데 이 형용사가 윤리도덕적인 색채를 띤 최초의 용법을 우리는 플라우투스에게서 발견하며, 어떤 인간의 공명정대한 품성을 서술하게 된다.
   
     
   Nam iuste ab iustis iustus sum orator datus;
        nam iniusta ab iustis impetrari non decet,
        iusta autem ab iniustis petere insipientia est;
        quippe illi iniqui ius ignorant neque tenent.
        "나는 정당한 일로 정당한 분들에게서 정당하게 파견받아 온 연사올시다.
        무릇 의로운 사람들이 불의한 일에 말려듦은 점잖지 못할 뿐더러
        불의한 사람들에게 의로운 일을 당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불의한 작자들은 법을 무시할 뿐 아니라 지키지도 않습니다.
"(Amphitruo 34-37)
                                                     
   연극 서막에 등장하는 Mercurius 신은 관객들에게 자기를 소개하는데 올림포스신들에게서 파견되어 왔으므로 스스로 '정당한 변호사' iustus orator 로 자처하고 극중에 시비가 될 사건에 대해 관객들을 '정당한 심판자들'ab iustis 이라 부르면서 '정당한 판단' iusta 을 호소한다. 그리고 iustus↔iniustus, 또는 iustus↔iniquus 라는 대칭법은 단순하게 준법여부를 가리키는데서 그치지 않고 선악(善惡)과 정사(正邪)를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34)
   그리고는 보다 일반적인 관용어 곧 iusta res, iusta pars, iusta causa 등이 나타나는데 특히 iustae leges 37)라는 관용어는 ius ac leges 라는 중 중언법과도 달리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하겠다. 성스러운 권위에서 전승되는 관습법이라고 해서, 또는 법제정권이 있는 당국자가 제정반포하였다고 해서 무조건 정의로운 법이 아니고 그보다는 상위의 정의와 공평이라는 기준에 합치될 때에, 다시 말해서 선하고 공평한 법이라야 iustae leges 라 불리는 것이다.
   
    3.5. 고문학자 Cato maior

   로마에는 일찍부터 고문(古文)과 구제(舊制)를 연구하는 학자들(antiquitatis scriptores)이 있었다. 최초의 고문연구가요 카르타고 토벌을 끝까지 주장한 대(大)카토 (Marcus Porcius Cato: B.C.234-149 Cato maior)38)는 그의 유명한 농경론(De agricultura: Keil 139)에서 농지의 잡목을 치기 전에 돼지를 제물로 바치며 올리는 주문(呪文)을 하나 소개하는데 거기에 신의(神意)와 연관되는 상고적 의미의 ius 를 사용하고 있다. 그가 다른 데서 인용하고39) 있는 ius pontificium 및 ius augurium과40) 더불어 성스러운 종교적인 법도를 가리키는 용법임에 틀림없다. 야산이나 전답을 맡고 있는(cuius sacrum est) 신령은 인간이 그 산림을 낫이나 삽으로 범접하기 전에 '성스러운 법도' ius sacrum 을 이행하여야만 동티가 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이 때 ius 는 법도와 그 관직에 따르는 권리를 동시에 지칭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하게 인간의 '권리'를 가리켜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간통현장에서 아내를 잡은 경우, 재판없이 아내를 살해하여도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가부장권(ius patrisfamilias)이었지만 본인의 의사가 없이 강제추행당한 경우는 남편이 여자에게 손댈 권리가 없다(digito non auderet contingere, neque ius est)는 발언도 그의 연설문 단편에 전해 온다(Orat.68 apud Gellium 10.2.3 [Iordan]). 중언법 ius et leges 도 그의 단편에서 볼 수 있다.41)
   법률가답게 형용사의 용법도 주로 iustum petere '정당한 소청(訴請)' 등 법제적인 색채를 띠지만42) 아주 단순하게 (밧줄을 만들기에) '적당한 가죽천'(in plostrum iustum) 이라는 일상어도 쓰고 윤리도덕적 색채로 사람에게 이 수식어를 쓰는 경우도 그의 격언집에 나온다(Dist. 4.34 Boas):
      
  contra hominem iustum prave contendere noli:
        semper enim deus iniustias ulciscitur iras.
        "의로운 사람에게 악의로 시비를 걸지 말라.
        신은 불의한 분노를 반드시 복수하시느니라."

   여기서는 homo iustus 가 단순한 법정의를 넘어서 초법률적인 정의, 곧 신의 주재하에 상선벌악이 미치는 영역에서 보호를 받으므로 의인이 악인에게 불의한 폐해를 당하였을 때 신의 복수가 내린다는 발언이다. Naevius 와 더불어 이 어휘를 신적 정의 iustitia divina와 연관시킨 구절이다.
   
 
    3.6. 희극작가 Terentius
   테렌티우스(Publius Terentius Afer B.C.190- +post 160) 역시 플라우투스처럼 세태와 시대의 풍물을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극중에 우리가 연구하는 어휘들을 다채롭게 사용하고 있다. 먼저 ius 의 관형적인 문투가 ius et fas 형태 로 나오는 예와 '권리'를 가리키는 ius 의 용례를 볼 수 있다.43)
   
       virginem vitiasti quam te non ius fuerat tangere.
       iam id peccatum primum sane magnum, at humanum tamen (Adelphoe  686-7).
       "너는 네가 건드릴 권리가 없는 처녀를 범했어.
       그것만도 벌써 큰 죄야. 하기야 인간적인 짓이긴 하지만."

   
   그리고 로마 법사상에서 유명한 금언으로 꼽히는 구절이 그의 대사에 나와 있다( Heauton Timorumenos 795-96):

                            verum illud, Chreme,
        dicunt: "ius summum saepe summast malitia."
                    "크레메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옳구말구. '최고의 정의란 흔히 최고의 해악이야'"

   이 금언은 당대에 이미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로마인들의 실제적인 법정신을 나타내는 명구로서 법률이 형평과 정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문자 그대로 적용될 때에는 법정의가 지켜지기는커녕 최악의 불의가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또한 테렌시우스는 여태까지의 ius ac aequum 이라는 중언법을 neque ius neque bonum atque aequom 의 삼중언법(tripertitio)으로 바꾸어 쓴다.44)
   특이한 사실 하나는 테렌티우스는 플라우투스보다 형용사 iustus를 적게 쓰며 사람에게 이를 수식하는 일이 없이 사물에만 해당시키는데 그 대신 사람에게는 iniurius 를 사용한다
는 점이다.45)
   사물에 형용사를 수식할 때에는 법률적 용어로 쓰기도 하고 (tua iusta '너의 권리'    Phormio 280) '바른 것과 바르지 못한 것'(iusta iniusta Ad.990)이라는 일반적이고 도덕적인 의미로도 쓴다.46)
   
   형용사의 사용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용례 하나는 선대의 관습을 불변의 법규로 보는 언사 하나가 나오는데 딸에게 막중한 지참금을 얹어 보내야 하는 처지를 푸념하는 주인공은 앞에서 상대방이 말한 summum ius summast malitia를 되받고 있는 셈이다 (Heaut. 839):
        quam multa iniusta ac prava fiunt moribus!
        "사람 도리라면서 얼마나 많은 불의와 행악이 가해지는지!"

   
   그리고 테렌티우스에게서 선대의 시인들에게서 쓰이지 않던 추상명사 ius titia 가 최초로 출현하는 사실이 흥미롭다(Heaut. 645-46):

        quanto tuos est animu'natu gravior, ignoscentior,
        ut meae stultitiae in iustitia tua sit aliquid praesidi.
        "영감은 나이가 많아 심이 깊고 도량이 넓지 않수>
        내 어리석음일랑 영감의 의덕(義德)으로 뭔가 메워주구려!"

   늙은 부부 사이의 이 대사에는 신중함(gravitas), 아량(magnanimitas) 같은 덕목이 나오고 아낙네의 성급한 어리석음을 대비시키는만큼 그 덕목 중의 하나로 iustitia 가 꼽히고 있다. 마찬가지로 악덕 중의 하나로  불의(iniustitia)를 꼽고 있다.47)
   
    3.7. 풍자시인 Lucilius

   단편으로나마 작품의 흔적을 전해 주고 있는 Caius Lucilius(B.C.180-103)는 로마 최초의 시인이며, 그리스 문학으로부터 모방하지 않고 라틴인들의 고유한 문학영역이라 할 풍자시(諷刺詩 satura)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의 단편에는 형용사나 추상명사의 용례는 찾아볼 수 없도 다만  ius라던다 iure peritus라는 어법을 구사하고 있다.48) 그의 글에서 정의의 개념을 정립한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하나 있다:49)
   
  
      virtus est homini scire id quod quaeque habeat res;
        virtus scire homini rectum utile quid sit honestum,
        quae bona quae mala item, quid inutile turpe inhonestum;
        virtus quaerendae finem re scire modumque.
        virtus divitiis pretium persolvere posse;
        virtus id dare quod re ipsa debetur honori.

        "덕이란 각 사물이 인간에게 갖는 의의를 아는 것이다.
        덕이란 인간에게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유익하고 무엇이 정직함인지 아는 것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임을 알고 무엇이 무용하고 욕되고 부정직한지를 아는
        것이다.
        덕이란 사물을 추구하는 목적과 한계와 분수를 아는 것이다.
        덕이란 받은 바에 대해서 대가를 치를 수 있음을 말한다.
        덕이란 각 사물에 마땅히 돌아가야 할 바를 돌려줌을 말한다."

   루킬리우스의 이 단구시는 virtus 를 iustitia 로 대치할 경우에 '정의'의 덕에 관한 고대문학의 가장 훌륭한 정의(定義)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무엇이 참으로 정의로운가에 대하여 quod quaeque habere res '각 사물이 본디 갖고 있는 그것'이요 id dare quod re ipsa debetur honori '각 사물에 마땅히 돌아가야 할 바를 돌려줌'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후대의 문장가들이 cuique (rei seu homini) suum tribui '각자에게 그 몫이 돌아감'이라고 정의를 규정한 것과 거의 완벽하게 동일하다. 정의의 개념에 rectum, utile, honestum 을 내포시킨 것도 키케로의 정의론(De officiis)에 토대를 닦아준 것이라 볼 수 있다. 선과 악을 구분하고 유용과 무용을, 정직과 부정직을 구분함은 '정의로운' 양심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결   론
        
     4.1. 잠정적 결론
    지금까지 3세기에 가까운 이 시대를 설정하여서, 그리고 문단활동을 계상한다면 B.C.241 년 안드로니쿠스의 연극상연이 있던 해부터 키케로가 문필활동을 시작하기 이전, 즉 B.C.80년 이전을 하한선으로 하여 상고시대의 유적과 로마문학의 초창기 작가들의 글에 나타나는 용례에 준하여 로마인들의 정의관(正義觀)이 어떻게 변천 확대되어 가는가를 살펴 보았다.
   그런데 안드로니쿠스로부터 악키우스에 이르는 150년 가까운 어휘사용의 역사를 통해서, 적어도 현재까지 우리에게 전수된 자료에 의거한다면, 어법에 있어서나 어의에 있어서나 상고시대의 것과 비교하여 괄목할만한 변화가 없다는 것이 우리가 받는 느낌이며 필자가 내릴 결론이다. 작가들은 어휘의 어원(語源)이 담고 있던 제의적(祭儀的)이고 법제적(法制的)인 의미를 핵심으로 충실히 간직해 왔으며, 선대 작가들의 용례를 세심할 정도로 충직하게 고수하고 모방하였음을 알게 된다.
   
   4.2. 원래 ius 는 인간과 그 언행이나 사물이 신성한 법도(ius sacrum)나 조상 전래의 법도(mores maiorum)에 합치하느냐 여부를 의미하였고(ius fasque) 그 본의가 시중언어나 문자언어에 꾸준히 보전되어 왔던 것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법제를 가리키는 말로 확대되었고(ius legesque), 그 다음에는 법제에 따라서 시비를 가리는 재판(iuris dictio)을 지적하고, 그러한 재판이나 법률을 통해서 보장되어 가는 '권리'를 뜻하기에 이르렀다. 로마인의 구상적(具象的)인 언어감각은 이러한 법제와 권리를 한 마디로 '정의'(正義)라고 파악하였던 것이다. 자연법이니 신법이니 하는 추상적인 규준을 사유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인들이 그리스 철학과 교류하게 된 이후의 일이며 키케로 시대부터나 문장으로 표상화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끔까지 본 시인들의 용례에서는 이러한 어의론적 발전이 선명하게 전후관계로 파악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이미 3세기경에는 삼중의 의미가 병존하였다는 것이 백년을 상거하는 저술가들이 별다른 차이 없이 관용어로 ius atque aecum을 쓰고 있는 사실에서 엿보인다.
   형용사 iustus 의 의미론적 진화에서도 우리는 세 단계를 추정할 수 있다. 첫번 발원단계에서는 정확한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어떤 언행이 천계의 뜻에 부합하는지 여부(fas an nefas)를 나타내었으며 신법에 따른 행위나 사물을 iustum 이라고 지칭하였다. 왕정법에서부터 바로에게까지 줄곧 나오는 iusta facere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 다음에는 일단 신의(神意) 에 상합하다거나 신에게서 명령된 것은, 비록 속사(俗事)에 관련된 사안이라 하더라도, 인간으로서는 마땅히 수행하고 채워야 할 의무로 개념되었으며, 인간들 스스로 규제하면서 준수할 것으로 여겨지면서 '합법적'인 것을 그렇게 부르기에 이르렀다. 플라우투스를 빼놓고서는 이 형용사가 사람에 대한 보어(補語 praedicativum)로보다는 사물에 대한 수식어(attributivum)로 사용된 점에서 잘 드러난다. 끝으로, 그러한 법제에 자신의 언행과 처신을 맞추어 가는 사람을 수식하는 형용으로 이 어휘가 사용되면서부터 그렇게 행동하려는 심성을 '의덕'(義德)이라고 칭하고 그 심성을 갖춘 사람을 '의인'(義人)이라 일컫게 된다.
   누가 의인인가 하는 단정은 플라우투스에게서만 볼 수 있는데, 로마인의 생각 그대로 "법도를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자"(qui ius ignorant neque tenent)는 불의한 인간이고, "법도와 법률을 지키는 자"(iura qui et leges tenet)는 의인이다.  여하튼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에, 신적이거나 인간적이거나를 막론하고 항상 어떤 '객관적' 규범이 전제되고 그 규범에 따라서 이 수식어가 해당되거나 배제된다는 점에 유의할 만하다(hostes iure iniustos: Plautus).
   초창기 작가들의 글에 iustitia 라는 추상명사가 그토록 드문 이유는 무엇일까?(키케로의 경우에는, 작품량이 방대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50여회가 나온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라). 이 점에서도 우리는 로마인들의 구체적이고 법률적인 언어감각을 유의할 필요가 있으니 ius, 또는 중성형용사 iustum 이 그들에게는 iustitia를 표방하고도 남았다고 할 것이니, aequitas 가 키케로 시대부터 출현하는데 비해서 aequum 은 12동판법부터 나타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4.3   그렇지만 희극의 대사에 입버릇처럼 나오는 ius est, iustum est, ius postulare, iustum dicere, iure, iuste 등의 일상언사들은, 로마인들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언행을 어떤 규범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에 비추어서 판단하였다는 표지이며, 그 기준은 늘 구체적으로 통용되는 법률과 법규였으니,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구체적이고 정당한)법률과 제도 없이는 정의라는 것이 존재하지 못하였음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그들에게 중대한 원칙은 non vi sed iure (힘이 아니라 법으로)라는 관용구에서 볼 수 있는데, 후대에도 그렇지만 힘과 정의는 로마인들에게 영원히 공존 못하는 양단법(兩端法 dichotomia)으로 비쳤음을 알겠고, 희극이든 비극이든 풍자시든 작가들이 집요하게 시민들을 설득하여 폭력보다는 법을, 무력보다는 협의를, 전쟁보다는 협상을 훈계하는 연유도 여기 있는 것 같다. 카이사르에 가서야 이 양분법은 극복되고(summam iustitiae et bellicae laudis opinionem) 그때부터는 로마 위인(偉人)의 이상(理想)으로 부상된다.
   또 하나 명심할 사항은 거의 모든 시인들이 옮기는 로마인들의 중언법 ius atque aequum 이다. 이 두 명사의 병치는 인간사는 법제에 의한 정의만으로 안되고 다른 하나의 원리, 공평(公平)에 의해서 보완되어야 하고 공평 위에서만 어떤 법제도 '의로운' 것이리라는 로마식 사고방식에서 온 것으로 본다. "최고의 정의는 곧 최고의 불의다"(summum ius summast malitia) 라는 테렌티우스의 명언이 이를 웅변한다. 정의와 공평을 두 기둥으로 하여야 인간 사이와 사회집단들 간의 공존이 가능함을 일찌기 의식한 소치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의의 궁극적 준거를, 불의하고 변덕스러운 인간세계를 초월하면서 심판하고 징벌하는 천계와 궁극의원리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항상 있었다. 로마인들도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불의가 도를 넘을 때면 신의 정의에 호소하고 신의 복수를 외침이 당연하였다. 나이비우스의 oderunt di homines iniurios(신들은 불의한 자들을 미워하신다)는 경구가 그것이다.
   마지막 결언으로, 키케로 이전의 작가들에게서 ius, iustus, iustitia가 결코 흔히 사용되는 어휘들이 아니었으며 의미도 사회정의나 철학적 개념으로 분화하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고대의 작가들은 상고의 원의미를 충실히 간직한 채로, 인간의 언행과 구상적인 법도를 연관시켜 보는 로마인의 사고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어휘의 용법과 용례에 일대 변혁을 가져다 주고 중세와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법사상 및 사회사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만큼 풍부한 의미를 새로 도입하고 확장시킨 인물은 키케로였다.
   
   
4.4. 키케로의 완결
   키케로(B.C.106-43) 및 그와 동시대인들로 라틴문학 황금기를 이룬 인물들, 즉 시인으로는  철학적인 내용의 서사시를 쓴 Lucretius (100-55), 로마문학사의 어쩌면 유일하고 순수한 서정시인 Catullus (87/84-54), 로마 역사문학의 창시자요 대가들인 Caesar (100-44), Cornelius Nepos (100-30), Sallustius(86-35), 그리고 고문 및 고제(古制)를 연구한 Varro (116-27) 등의 작품세계 및 우리가 연구하는 어휘들의 용례에 나타나는 정의사상은 별도의 심도 있는 접근을 요구하는 과제라고 하겠다.
   여기서 결론에 대신하여 키케로에게서 볼 수 있는 주요 용례를 간결하게 소개하겠는데 이것은 위의 작가들이 사용해온 용례가 키케로의 언어감각과 용법에 그만큼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전제하에서다.
   일반명사 ius 는 그의 글에 참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 의미도 실로 다양하고 풍부하지만 대강 셋으로 그 의미를 함축할 수 있다. 제일 먼저 그는 자연법에서 나오는 보편적 정의를 지칭하는데 이 단어를 쓴다. "법도는 자연본성에 새겨진 이성"(ius est ration insita in natura: De legibus 1.18)이며 신의 지성이 사람들에게 심어준 힘(ibid.,2.10)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한 국가사회, 특히 로마의 법제(法制)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법제를 그는 '법률'과 '관습'과 '공평'으로 나누기도 하고(si quis ius in legem morem aequitatem dividat, Topica 31), '자연법'ius naturale(Pro Sestio 91), '만민법'ius gentium(  De haruspicum responso 32), '공통법'ius commune(Pro Caecina 94), 나아가서는 '신법과 인간법' iura divina atque humana (De inventione rhetorica 2.65) 등의 전문용어를 후대를 위해서 확립해 준다. 마지막으로 개개 법률과 법규를 지칭하는데도 이 어휘를 사용한다.
   형용사 iustus 는 키케로에게서 참으로 완성을 보았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우선 선대의 종교-관습적 의미를 충실히 고수하여 iusta facere(De leg. 2.42 제례를 치르다)를 쓰면서도 iustae exsequiae, iusta funera 라는 어법도 새로 쓰기 시작한다. 페띠알레스 사제들(sodalicium fetialium)의 공식 선전포고로 이루어지는 전쟁만이 키케로에게는 iustum bellum(De officiis 1.36 합법적 전쟁)이 된다.
   그리고 키케로에게서 가장 괄목할 만한 사실은 (본고에서 다루지 않은 동시대 저자들까지 포함해서) iustus 를 좀처럼 사람을 형용하는 호칭(epithetum)으로 사용 않던 라틴문학의 전통을 벗어나서 거의 전적으로 사람들에게 수식어로 해당시키는 일인데 특히 그의 연설문에 많은 용례를 보게 된다. 하지만 "의인과 불의한 인간을 구분하는 선은 법률이다"(est lex iustorum iniustorumque distinctio: De leg. 2.13), "정의로운 인간, 선량한 사람이 할 바는 법에 복종하는 것이다"(iusti hominis et boni est viri parere legibus: De republica 3.18) 라는 단언에서 '의인'(義人)을 규정하는 그의 철저한 로마식 사고방식이 엿보인다. 키케로가 최고의 인간으로 일컫는 호칭 vir bonus ac iustus은 사사로운 덕보다는 공인(公人)으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자세와 결부시키고 있다.50)
   여태까지 로마 저술가들이 삼가고 있던 추상명사 iustitia 도 키케로는 150여회를 사용하고 있으며 하나의 덕목으로 확립할 뿐더러 그 정의(定義)를 내리고 극도의 칭송을 보내고 있다. 그가 로마인 최고의 덕으로 꼽는 선량(善良 honestum)51)을 구체화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사추덕(四樞德)으로 구현되는데 그것이 prudentia, iustitia, fortitudo, temperantia (현명, 정의, 용기, 절제)이며(De inv.rhet. 2.159), 정의야말로 "모든 덕들의 여주인이요 여왕" (De off. 3.6)이며, 인간은 "정의에 기초하여 선한 사람이라고  일컬어진다"(ibid. 1.20). 덕을 정의 내리는 어구는 서론에서 인용한 바 있다. 그러나 정의를 결하면 선량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며(ibid.,1.62) 그것이 반드시 사회 적 단서(端緖)를 달고 있음도 키케로의 로마인다운 특성이라고 하겠다.
   간단히 말해서 키케로는 로마인들의 고유한 전승에 바탕을 두고 ius, iustus 및 iustitia 라는 세 마디의 어휘를 결정적으로 완성한 인물이며, 그리스인들의 풍부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남김없이 도입하면서도 로마인 고유의 어법과 색채를 보존하고 후대에 전수해 준 학자라고 하겠다.

       각     주
   
1)  로마 문학은 상고시대, 제2차 포에니전쟁이 끝나고 안드로니쿠스의 연극상연이 최초로 있었던 B.C.241년부터 키케로의 작품활동이 시작한 B.C.80년까지를 포괄하는 초창기, 키케로의 활약부터 A.D.14년 아우구스투스의 사망연대까지를 황금기, 그때부터 A.D.117년 트라야누스황제의 사망까지를 은성기, 그 이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476년까지를 쇠퇴기로 분류한다.

2)  여기서 말하는 단편(fragmenta)이라는 것은 파피루스나 양피지로 전래되는 자료도 간혹 있지만 근대 이후의 문헌학자들이 복원한 것은 주로 로마 은성기(銀盛期)에 활약한 문법학 내지 문헌학의 대가들이 선대작가들의 문구와 어법과 용례를 인용 해설하면서 수록해 둔 단편들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서기 2세기의 겔리우스(Aulus Gellius ca.A.D.130-ca.180,    Noctes Atticae) 그리고 4세기의 문법학자들인 도나투스(Tiberius Claudius Donatus,     Interpretationes Vergilianae), 세르비우스(Maurus Servius Honoratus,    Commentaria in Vergili opera), 카리시우스(Flavius Sosipater Charisius,    Ars grammatica), 그리고 6세기의 인물 (Priscianus,    Institutiones grammaticae) 등이다.
  
3) Cicero, De finibs bonorum ac malorum, 5.23.65: "quae animi affectio suum cuique tribuens atque societatem coniunctionis humanae munifice et aeque tuens, iustitia dicitur." 키케로와 동시대의 수사학 저서    Rhetorica ad Herennium ! 에 수록된 다른 정의 즉  iustitia est aequitas ius cuique retribuens pro dignitate cuiusque (3.3)은 그리스 문구를 모방한 것으로 보이며 플라톤(Respublica I.6.331e)이 전하는 시모니데스의 명구에 그것이 표현되어 있다:  debitum cuique retribuere est iustum.

4) Cfr., J.Pokorny,    Indogermanisches etymologisches Worterbuch(Munchen 1959), p.512 ad vocem.

5) Thesaurus Linguae Latinae ! , ad vocem: "ius ex    iouestod !  (iusto)... et forte   iovesat !  (iurat ?).... Forma originaria    YOWOS/YOWES-OS !  colligitur, quam prius    YEWOS/YEWES-OS !  sonuisse verisimile est."

6)   Lapis niger: 1899년 로마 Forum의 Rostra에서 발견된 돌기둥으로 (di Grotta Oscura라고도 부른다) 거기에 새겨진 로마문자는 가장 오랜 기록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석주에도 이미 IOVESTOD 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이 석주는 행정당국이 묘역을 보호하는 공법에 의거하여 세운 것으로 보인다. 왕정시대의 것으로 법령 포고자가 왕 (rex)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7)    E.Benveniste,    Il vocabolario delle istituzioni indoeuropee, tr..Miborio (Torino 1976), II.(pp.367-375) p.370. Cfr., etiam G.Dumezil, "A propos du latin    ius",    Revue de l'histoire des religions t.134, 1947/48, pp.95-112.

8)  G.Dumezil (op.cit., p.110)은 리그 베다(I.114.2)에서 몇 가지 예문을 들고 있다.
        yac cham ca yos ca manu ayaje pita
        tad asyam tava rudra pranitisu
        "sam과 yoh, 복(福)과  길(吉), 아버지 마누는 희생을 바쳐 이를 얻었으니
         루드라여, 우리도 당신의 제도하에 이를 바라나니..."

9)  G.Dumezil(op.cit.,p.100)은 아베스타경에서 이 어휘가 쓰이는 용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Avesta, Y.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