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인간학과 르네상스적 배경

 

                                                                                            중세철학 7(2001), 33-66.

 

*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Oratio de hominis dignitate)>(성염, 역주)의 인용문은

경세원(2009)에서 새로 출판한 수정본의 장절로 표기하였다. 그러나 인용문장은 수정본 그대로가 아닐

수도 있다. *

 

1. 르네상스와 피코의 등장

 

1.1 르네상스를 `중세의 가을'(Huizinga)로 보느냐 `근대의 여명'(Buckhardt)으로 보느냐는 시각에 따라서 마치 불란서 혁명이 근현대에 갖는 것과 유사한 의의를 르네상스에 부여하려는 시도마저 있다(Kristeller). 르네상스가 중세와의 단절이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그 시대의 지성인들이 그리스도교를 탈피하는 사상적 분위기와 인간과 그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를 부각시키는 연구 경향이 있다. 17세기 초엽부터의 계몽주의가 교육시키고 확립한 근대인의 인간상의 배경에 르네상스 인간상이 자리잡고 있음은 대체로 수긍하는 학계에서 르네상스 인간관 확립에 (대중적인 의미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 가운데 하나로 불과 32세의 짧은 생애를 산 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 1463-1494)를 꼽는다.

 

1.2 본 논문은 피코의 짧은 저술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 (Oratio de hominis dignitate)」이 함의하고 있는 인간론의 르네상스적 배경을 소개하는데 의의가 있다. 논자는 라틴어로 된 이 연설문을 번역하고 주해하는 기회에 그의 사상체계와 인간관을 약술한 바 있으나, 거기에 소개한 피코의 인간관을 선대의 쟌노쪼 마네띠(Giannozzo Manetti: 1396-1459)의 인간관과 대조하여 어느 정도의 차별성을 보였는지 제시하고자 한다. 범위는 피코의 연설문 전반부(1-7장)를 중심으로 하여 문헌학적 방법으로 개진하게 될 것이다.

 

1.3 ‘르네상스의 천재’로 알려진 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dola, signore di Mirandola e conte di Concordia)는 1463년, 북이탈리아 미란돌라 공국(公國)의 백작 아들로 태어났으며, 14세부터 수학여행(peregrinatio studiorum)을 시작하여 볼로냐에서는 교회법, 페르라라에서는 철학을 공부하였고, 파도바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고 주석가 아베로에스에 심취하면서 아랍 사상 및 히브리 사상과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또 피렌체(1479년)와 파리 소르본느(1485년)에서 철학적 소양을 더욱 깊이 함양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1486년 그는 여태까지 습득한 자기의 철학 지식을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명제 형태로 정리한 「명제집 (Conclusiones)」을 저술 발간하여, 당시까지 알려진 인류 지성의 조화된 통일성을 입증해 보이려는 야심을 보인 바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주의 공현축일이후를 택일하여 유럽의 여러 신학자와 철학자들을 로마로 초빙하여 이 명제들에 관해서 공개토론회를 갖자고 제안하였다. 24세의 젊은 귀족이 자비(自費)를 들여 로마에 일종의 국제철학자대회를 소집한 셈이었다.

그런데 로마에서는 젊은 학자의 이 야심작이 나오자마자, 피코의 문화철학적 개방정신과 다원주의가 보수적 학계와 교계의 비판을 받기 시작하였으므로 피코는 가능하다면 교황 면전에서 자기의 「명제집」에 관한 변론을 펴기로 연설문을 작성하였는데 그것이 `르네상스 인본주의 선언서'(Kristeller)라고 평가받는 문서이다.

피코의 「명제집」에 실린 900명제 가운데 7개 명제가 단죄되고 6개 명제는 삭제 명령을 받고서(1487년 3월) 교계(敎界)의 시비에 대하여 젊은 학자 피코는 강한 반발을 보이고 「변론서 (Apologia)」를 작성 발간하자 교황의 체포명령이 내렸다. 피코는 몰래 로마를 빠져나갔으나 체포되고 불란서국왕의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플로렌스 로렌조경의 개입으로 가석방되어 1488년 피렌체로 돌아온다.

피렌체로 돌아온 피코는 생애 최대의 집필활동에 몰두하여 신의 창조에서 인간의 존엄과 사명을 다시 갈파한 「일곱 형상론(Heptaplus)」,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철학적 융화를 시도한 소책자 「존재와 일자(De ente et uno)」, 천문학을 빙자하는 점성술이 진정한 과학을 가로막고 인간을 숙명론으로 몰고가는데 대해서 비판하면서 자연과학을 옹호한 「점성술 반대 토론(Disputationes adversus astrologiam)」 등을 집필하였다. 피코는 1494년 32세에 플로렌스에서 사망하였는데 그의 임종에는 사보나롤라가 임석하였다.

 

2.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인간존엄성

 

2.1 설흔 한 살로 요절한 피코의 연설문 하나가 “르네상스 선언서”라는 격찬을 받을만큼 인간 존엄성에 관해 관심을 받고 피코 사상의 독창성과 그 배경이 르네상스 분야 학자들의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가장 무난한 평가는 이 젊은 사상가가 짧은 생애에 호흡했던 이탈리아 인문주의의 전통 안에서 그 배경을 살펴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리스도교를 배경으로 하는 교부학(敎父學)의 전통이 창세기(1.28)에 나오는 하느님의 모상(模像),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육화론(肉化論), 그리스도와 그의 역사적 죽음이 띠는 구세사적(救世史的) 의의를 토대로 인간 존엄성을 강조하였지만, 중세에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활동으로 발생하는 세속화 경향에 반발하여 수덕(修德)과 탈속(脫俗) 그리고 관상(觀想)을 강조하던 중세의 영성이나 나그네 인생(homo viator)의 가련함과 비참, 무가치함과 무상함을 부상시키던 인관관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는 문학에서나 철학에서 가장 유행하는 주제가 인간 존엄성(dignitas hominis) 내지는 비참상(miseria hominis)이었다. 중세인들에게도 인간의 존엄한 품위는 인간학의 토대가 되었지만 ‘인간 존엄성’(dignitas hominis)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참으로 빼어나고 탁월한 인간학 주제였다.

인문주의자들은 그리스와 로마 고대 세계의 제반학문에 접할수록 그 인간관이 그리스도교 인간관과 상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는 신념을 얻으면서 고대와 그리스도교가 한데 정립해 오던 이상적인 인간상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행동을 통해서 달성하는 개인의 성취, 덕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간 내면의 도덕적 성취, 르네상스식의 개인존중 가운데 선택의 자유를 부각시키면서 인간 존엄성에 역동적 성격이 부여되고 인간은 사회에서의 동료 인간들과 행하는 활동(vita activa)이든 우주와 그 창조주에 관한 철학적 신학적 관조(vita contemplativa)든 능동적 자유 행사로만 그 존엄성을 체현하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2.2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가 인간의 문제를 정식으로 다룬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꼽히는데 당대의 인간 의식과 도덕적 양심, 그리고 그리스도교 가치관 정립에 부심하던 지성인으로서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덕스러운 행위를 감행 할 수 있는 인간 능력에 대해서 신뢰를 보이는 동시에, 사회적 관점에서도 운명의 온갖 폭풍 앞에서 의연한 인간상에서 인간의 내면적 존엄성을 견지코자 시도한다(De remediis utriusque fortunae). 인간은 원래 신의 모상으로 창조받았을뿐더러 타락한 후에도 그리스도의 육화로 복원되었으므로 그의 존엄성은 세계 속에서 수행하는 개인적 사회적 활동으로부터 연유하고(De otio religiosorum) 그 창조적 활동 덕분에 인류가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문명과 문화에 이바지한다(De viris illustribus). 다음 세대의 인문주의자들이 인간 존엄성에 관한 토론의 폭을 확대하면서도 페트라르카가 제기한 두 주제, 곧 `인간 존엄성'과 `인간의 자유'라는 쌍개념은 르네상스 전역사를 통해서 항구하게 지속된다. 인간 존엄성은 우주 속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역할과 위치로 말미암아 부여되고 인간의 자유를 발휘하여 신적인 경지로 상승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14세기 말에 살루타티(Coluccio Salutati: 1331-1406)는 개인과 `섭리'에 관한 스토아 철학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그리스도교 사상을 조화시키려는 시도 중에 하느님의 의지와 자유가 갖는 수위권(首位權)을 부각시켜 세계 창조와 섭리가 하느님의 의지의 발로이듯이 신적인 섭리 속에서 인간 의지도 숙명론에 대항하여 창조적으로 활동하고 세계에서 인간다운 업적을 내고 사회를 결성 발전시킨다고 설명하였다(De fato et fortuna). 그러므로 인간이 신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조건을 구현하는 것은 자유로운 의지의 활동을 통해서라는 점을 재강조하고, 인간은 후세만 아니고 현세에서도 고유한 목적과 행복을 지닌다고 역설하였다(De seculo et religione).

15세기로 넘어가면서 발라(Lorenzo Valla: 1406-1457)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에피쿠로스 사상을 그리스도교와 조화시키려는 시도 속에 인간 본성에 대한 주지론(主志論)을 다시 부각시킨다(Repastinatio dialecticae et philosophiae). 인간은 지상에서 자기의 쾌락을 추구하고 자신의 정염과 사랑의 충만한 실현을 위하여 전력갈구한다(De voluptate). 고통과 질병도 덕으로 인종(忍從)하면 인간완성의 처방이 될지 모르지만 그러한 덕 자체가 목적은 아니고 그것으로 얻는 쾌락이 궁극 목적이라는 에피쿠로스 지론을 발라는 따랐다.

 

2.3. 마네띠의 인간 존엄성 논의

 

2.3.1 피코의 인간관에 직접 영향을 준 것은 마네티(Gianozzo Manetti: 1396-1459)로서, 피렌체의 인문학자요, 메디치가와 교황 니콜라스 5세, 그리고 아라곤의 알퐁소를 섬긴 정치가였로서 알퐁소 국왕에게 헌정한「인간 존엄성과 탁월성 (De dignitate et excellentia hominis: 1452/53)」을 집필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지상생활과 인간활동에서 인간 존엄성을 착안한 점에서 인문주의 인간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그는 인생을 가리켜 피안(彼岸)을 향하는 피동적인 존재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예: Bartolomeo Facio)에게 반론을 펴면서 지상에 “인간의 왕국”(regnum hominis)을 건설하는 인류의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천명하였고 인간에게는 그럴만한 지성적 신체적 능력이 있음을 입증하였다. 문화의 창조자로서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를 종속시키는데 그 방도는 행동과 지식(agere et intelligere)이었다. 그는 의당히 행동을 지식에 앞세움으로써 인간 존엄성의 개념을 세계내 역동적 활약으로 형용하기 시작하였다. 마네띠는 인간이 신의 모상이라는 성서적 근거대로 인간이 ‘신적 존재’라고 불리울만하지만 영혼의 불사불멸을 갖추고 있다는 점보다도, 하느님의 의도와 그분이 준 능력에 따라서 세계를 건설하는 사명에 있다면서 인간의 탁월성(excellentia hominis)을 시민(市民)으로서, 장인(匠人)으로서의 역할에서 유출한 점은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키케로로 승계되던) 고전사상의 복원이라는 의미에서 르네상스적이다.

 

2.3.2 그의 저서는 신체와 영혼의 탁월성을 장황하게 논하지만 그의 예찬은 인간 역사를 통해서 드러난 인간의 창조와 발견에 집중되고 이 글로만 보아도 근대 초기의 자연사에서 나타난 위대한 업적과 탐험 그리고 예술작품을 목격하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지성인들은 세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역할에 대한 관념이 현저하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교 사회(Chrsitentum) 내에서의 논의이므로 창세기 인간관이 빠질 수 없지만 마네띠에게서 제일먼저 확립된 것은 세계 창조가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해 이루어진”(mundus eius causa factus) 하느님의 작업이라는 인간중심론으로서 이것은 만유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중세적 관점을 크게 넘어선다.

 

인간의 단 하나의 사명(simplex et unicum offitium)은 이 세계가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특히 온 세상에 설정되어 있는 모든 것이 모조리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졌음을 알고 그것들은 인식하고 통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행동함으로써 또 인식함으로써(cum agendo tum intelligendo) 그것을 완성하여 전적으로 충만케 할 수 있어야만 한다.(De dignitate et excellentia hominis 3.45)

 

2.3.3 마네띠의 첫 번 착안은 무엇보다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독자적이고 지배적인 위치이다. 그는 "놀랍게도 인간들이 인식해내고 발견해낸 저 위대하고 거대한 도구 내지 기계장치들(vel facinora vel machinamenta admirabiliter inventa et intellecta)“(Op.cit., 2.36)을 스스로 탄복하면서 다방면(항해술, 건축술, 그림, 조각, 시문예, 역사, 수사학과 법률학, 철학, 의술, 천문학, 그리고 신학)에서 이뤄낸 인간 문명의 위업을 장황하게 예거한다(예를 들어 포르투갈인들의 행해술, 피렌체 대성당의 Brunelleschi의 두오모, Giotto의 그림, Ghiberti의 청동문). 인간이 기술과 기계를 발명하는 재능을 부각시킨 것은 마네띠가 르네상스에 발달을 보이기 시작한 과학기술에 얼마나 경탄을 보내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작업에서 인간은 자신을 “자연의 경쟁자”로 의식하고 “인간 기술은 자연이 생산해내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생산해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의 종이 아니고 자연의 경쟁자(non servi sumus naturae sed aemuli)이다.”(Op.cit., 2.35)라고 자처한다.

인간은 원초의 창조계를 지키는 존재요 인간 세계에 제이(第二)의 자연을 창조하는 존재로 묘사되고 “땅의 경작자로서 세워진 인류에 관해서”(de humano genere... qui quasi cultores terre constituti) 다음과 같이 스스로 탄복한다.

 

인류는 그 노동으로 들과 섬과 해변을 마을과 도시와 빛나는 풍경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우리 눈과 지성으로 이 모든 것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면 그처럼 살아가고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정경(quale et quam mirabile spectaculum)으로 나타나겠는가?(Op.cit., 3.11).

 

2.3.4 저서의 제 3권에서 인간에 대한 신적 창조라는 고전적인 주제가 나오지만 하느님이 왜 인간을 창조하였느냐는 성서적 주제를 그는 “창조의 완성 내지 완결이 인간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위함”이었다는 르네상스적인 결론으로 끌고 간다.

 

비록 새로웠지만 황량한 세계 창조(post... novam ac rudem mundi creationem) 이후에 저 만유는 마치 우리 인간에 의해서, 인간 지성의 특출하고 주도적인 예리한 정곡(正鵠)에 의해서 발견되고 건설되고 완성되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a nobis adinventa ac confecta et absoluta fuisse videantur).. 그런 뜻에서 만유가 우리 것이고 따라서 만유가 인간적인 것이다(nostra namque hoc est humana sunt). 결국은 그것들이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되는 까닭이다(quoniam ab hominibus effecta cernuntur). (Op.cit., 3.20)

 

하느님의 창조를 “새롭지만 황량한 것”으로 규정하고 인류의 손길이 닿고난 세계를 감상하면서 인류가 “만유가 우리 것이고 따라서 만유가 인간적인 것이다(nostra namque hoc est humana sunt)”고 단언할 만큼 르네상스 인간들의 자기긍지는 대단하였다. 그때부터 세계는 분명히 인간들의 손을 거쳐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로 나타난다. 그렇게 경작과 건설과 기술을 거쳐 인간의 손길이 닿은 세계가 원초의 세계보다 “훨씬 아름답고 훨씬 잘 꾸며지고 훨씬 우아하게 가꾸어진” 세계로까지 명명된다.

마네띠의 근대적인 인간관은 인간이 지상생활을 그 목표로 “어디까지나 세계의 주민”(homo vivens mundi incola)이라는 의식 속에서 “항상 행복할 권리”(semper felix beatusque habetur)"를 주장하는 데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자칫하면 인간을 하느님의 영원한 도성을 향해서 나아가는 지상의 나그네(homo peregrinus in terra)로 보려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세에서도 후세에서도 “항상 그리고 어느 시기에도” 행복할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참으로 근대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하한 제도와 이념에 의해서도 인간은 부당한 도덕적 종교적 압력을 받을 수 없고, 인간성을 멸시함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며(homo indignabundus), 그토록 탁월한 경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인류의 “멸시자요 적이며 유린자요 비방자”로 간주된다.

 

이처럼 위대하고 지고한 인간의 품위와 탁월성으로부터(ex tanta ac tam sublimi hominis dignitate et excellentia)... 인간은 자신이 그토록 존엄하게 만들어졌음을 자부하면서 자기가 분명히 모든 피조물들을 통솔하고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다른 무엇에 의해서도 지배당함을 견뎌내지 못한다(profecto non modo ab aliis superari non patietur)(Op.cit., 3.56).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그리스도교 교리를 마네띠도 받아들이지만, 그리스도의 내림은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그분이 다름 아닌 인간 육신을 겸허하게 받아들임으로써(per hanc humilem humane carne susceptionem) 인간을 놀라웁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고양하고 영화롭게 만들기 위함이었다(ut hominem mirabiliter et incredibiliter honoraret glorificaretque).“(Op.cit., 3.58)고 풀이한다. 그리고 인류는 ”단지 그리스도의 위격(位格)을 힘입어서 신성과 결속(結束)되는데서 그치지 않고(non solum coniuncta) 신성 자체와 단 하나가 될 것이다(et sola efficeretur).“(Op.cit., 3.59) 인간의 신화(神化)는 인간 존엄성의 최후 완결이지만 그렇게 되기에 아무것도 결여되어 있지 않은 것이 인간이다.

 

3.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인간선언

 

3.1 소우주(小宇宙)로서의 인간

 

3.1.1 피코의 연설문은 태초의 여섯째날 해거름에 있었던 하느님의 경탄,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는 말씀이 인간 지성사에서 메아리하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세상의 장관(壯觀) 중에서도 가장 경탄할 만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서, 그 무엇도 인간보다 더 경탄할 만한 것이 없다는 고전적이고도 근대적인 감탄사로 허두를 뗀다.

 

오, 아스클레피우스여, 인간이란 참으로 위대한 기적이라오!

(Magnum miraculum est homo)(Oratio 1.2)

 

그리스 철학자들과 그리스도교 교부들 그리고 인문주의자들의 위대한 사상과 주제를 배경으로 피코의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이 출현하지만, 젊은이다운 패기로 피코는 “인간 본성의 출중함을 두고 많은 [석학들에 의해서] 제기된 저많은 논리들이 내게는 충분하지 못하였다!(mihi non satis illa faciebant)," 특히 인간을 정신계와 물질계의 중간자(中間者)로 보는 그리스적 시각이나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보는 히브리적 시각도 "대단하기는 하지만, 인간이 최고 경탄을 특권으로 누릴 만큼, 주요한 것은 아니다!(magna haec quidem, sed non principalia)"(Oratio 3.4)고 단언한다. 여하튼 그는 연설문에는 당대 다수 지성인들이 펼치던 ‘인간의 비참’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점에서 `위대한 기적'인가? 물론 피코는 마네띠나 다른 르네상스 사상가들의 인간론을 알았으므로 그리스 이래의 서구에서 기술의 창조자(homo faber), `소우주'(microcosmos), 이성적 존재(animal rationale), `만물의 척도'(metron panton anthropos) 등의 기본 관념을 익히 알았고, 인간을 `신의 모상'(imago Dei)으로 정의하여 신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로 규정하는 그리스도교 교리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피코도 사상적 전통에 따라서 소우주로서의 인간, 즉 물질계와 정신계 중간존재로서의 인간에서 연설을 시작한다.

 

인간은 피조물들의 중간자(creaturarum internuntius)여서 상위존재들과 친숙하고 하위존재자들의 왕자(王者)입니다. 인간은 감관들의 명민함으로, 이성의 탐구로, 오성의 빛으로 자연에 관한 해석자(naturae interpres)가 됩니다. 인간은 고정적 영세(永世)와 유동적 시간 사이의 중간영역(stabilis evi et fluxi temporis interstitium)이고, (페르샤인들이 하는 말이지만) 세계의 교접(交接) 아니 혼인(婚姻) 자체(mundi copula, immo hymeneus)이며, 다윗이 증언하는 바이지만 천사보다 조금 못한 존재입니다.(Oratio 2.3)

 

3.1.2 소우주로서의 인간을 형용하는 전문용어(internuntius, interpres, interstitium, mundi copula, hymenaeum)들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그리스도교 교부들이 전수받아온 바였을 뿐더러, 피코가 플로렌스에서 직접 만난(Marsilio Ficino: 1433-1499)가 그의 주저 「플라톤의 신론(神論)(Theologia platonica de immortalitate animae)」에서 특히 강조한 개념이었다. 피치노는 인간의 문명 활동에서 인간 존엄성이 구현됨을 알았지만 당대의 플라톤주의자답게, 창조주에게서 받은 우주 안의 특전적인 위치에서 오는 인간의 형이상학적 역할을 강조하였다. 불멸하는 인간 영혼은 존재계의 중간, 감각계와 가지계의 중간에 위치한다. 다만 “이성적 능력은 한 가지 일정한 것에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관점에서다.

 

저 이성적 능력은... 한 가지 일정한 것에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non est ad aliquid unum determinata). 그것은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위로도 아래로도 방랑한다(sursum deorsumque vagatur). 우리는 이성으로 어디까지나 자율적 존재이고(nostri iuris sumus omnino)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풀려난 것처럼 때로는 [대자연의] 이 부분들을, 때로는 저 부분들을 추종해 간다.(Theologia Platonica 3.3)

 

헤르메스서(Libri Hermetici)를 라틴어로 번역한 인물이기도 하였으므로, 피치노는 인간 영혼이 신의 창조계의 중심에 위치함을 찬양함과 아울러 인식론적 측면을 부각시켜 인간이 자율적이며 일체의 외부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다름 아닌 이성에 의해서라고 주장하면서 인식을 통해서 인간 영혼은 모듯 것이 된다는 고전적 표현을 되살려낸다. 피치노는 인간의 놀라운 관찰 능력, 불사적인 것과 사멸하는 것으로 합성된 점을 관찰하면서 인간이 만유의 거울, 혹은 아예 “인간이 전세계”(homo totus est mundus)로서 존재계의 만유를 자기 일신에 수렴하고 있다고 천명한다. 이 말은 “인간은 태어날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 온갖 모양의 씨앗과 온갖 종류의 종자를 넣어주셨습니다.”(Oratio 4)는 피코의 문장에 반영된다.

 

인간은 상위의 생명체들을 숭배하는 생명체이자 영으로도 몸으로도 불멸하는 상위의 생명체들과 영과 육이 타락한 생명체들의 중간에 위치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육으로는 사멸하지만 영혼으로는 불멸한다. 영은 이런 이유로만 지상에 내려온 것이 아니고 원초의 관상에 덧붙여서 신적 섭리를 모방하려고 내려온 것이다(descendit in terram... ut providentiam quoque divinam imitaretur). 그런 뜻에서 인간은 결국 온 세계이다(homo denique totus est mundus).(Op.cit., 3.2)

 

인간이 자기 자유의지를 어떻게 구사하든 간에 그는 자연본성에 따라서 신적 사물과 결속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시종일관 인간의 근본을 영혼에다 두었다. 영혼의 두 기능(ratio et mens)에 힘입어서 인간은 우주를 파악(comprehendit = 포괄)하고, 사유를 통해서 신의 창조계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영혼은 물체들의 주인이지 동료가 아니다(corporum domina est, non comes).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은 대자연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이다(hoc maximum in natura miraculum)"(Op.cit., 3.2). 이렇게 마네띠의 인간이 “자연의 종이 아니고 자연의 경쟁자(non servi naturae sed aemuli)"라는 명제가 피치노에 이르러서는 “영혼은 물체들의 주인이지 동료가 아니다(corporum domina non comes)"라는 명제로 발전하고 있다.

 

3.2 “미완(未完)의 모조품(模造品)”

 

3.2.1 그런데 인간은 피치노의 말처럼 단순히 `대자연 속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maximum in natura miraculum)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메르쿠리우스 신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대로 아무런 수식이 없는, 절대적인 의미의 `위대한 기적'(magnum miraculum)이라고 불리울만한 까닭이 있다는 것이 피코의 주장이다. 청년 피코가 창세기를 모방한 하느님의 발언을 빌려 구상하는 “아담의 새로운 신화”에 의하면,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 생각을 품은 것은 “이토록 위대한 당신의 사업의 명분을 알아보아 주고 당신 사업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당신 사업의 광활함을 탄복할”(Oratio 4.12) 존재를 곁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가 피코의 입을 빌려 각색한 이 창조신화에 의하면, 우주 공간에 일정한 위치를 잡아 존재하기에는 인간의 창조가 너무 늦었으므로 일정한 본성을 신에게 받지 못하였으니, 창조주가 인간 몫으로 따로 챙겨둔 원형(archetipus)이 따로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그 상황은 결핍(缺乏)이 아니라 특전(特典)이 되는데, 인간이 스스로 자기 원의에 따라서, 자기 본성과 위치를 선택하여 채택하도록 허용하는 모험을 하느님이 감행하신 까닭이다. 이 신화(神話)야말로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만들어낸 인간학의 절정으로서, 우주내에 고유한 능력을 의식하는 근대인(近代人)의 출현을 선언한 글이다. 인간 의지의 한량없는 자유에 믿음을 두고서(따라서 맹목적인 운명에 저항함은 인간이 받은 지상명령이 된다), 개인은 자기의 가치를 인식하면서 스스로 자기 삶을 규정하는 경지에 이른다.

 

인간에게는 그가 원하는 바를 갖도록 하셨고(datum id habere quod optat) 그가 되고 싶은 존재가 되도록(datum id esse quod velit) 허락하셨다.(Oratio 6.25)

 

3.2.2. 피코에게도, 앞서 인용한 서론대로, 인간이 가지계와 물체계 두 차원을 잇는 접합점이요 중간영역(copula et medium)이지만, 그가 두 세계의 일치를 한 몸에 담보하는 것은 인간의 자율성(自律性)에 있다. 아담은 자기가 선택해서(optare), 스스로 부여하는 우선순위에 따라서(malle)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피코의 연설문에서 하느님이 아담에게 건넨 창조선언에는 그리스도교 철학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논구하는데 구사해온 거의 모든 어휘(voluntas, votum, arbitrium, libera optatio, animi sententia)가 다 등장한다.

 

오, 아담이여, 어느 자리를 차지하고 어느 면모를 취하고 어느 임무를 맡고 싶은지는(tute optaveris) 너의 희망대로(pro voto), 너의 의사대로(pro tua sententia) 취하고 소유하라!... 너는 그 어느 장벽으로도 규제받지 않고 있는만큼(nullis angustiis cohercitus) 너의 자유의지에 따라서(pro tuo arbitrio) 네 본성을 테두리짓도록 하여라. 네 자유의지의 수중에 나는 너를 맡겼노라!(tuo arbitrio, in cuius manu te posui).... 이는 자의적으로(arbitrarius) 또 명예롭게 네가 네 자신의 조형자(造形者)요 조각가(彫刻家)로서 네가 더 좋아하는대로(malueris) 형상(形相)을 빚어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대 정신의 의사에 따라서는(ex tui animi sententia) 신적이라 할 상위 존재로 재생시킬 수도 있으리라.(Oratio 5.18-23)

 

그 점 때문에 인간은 동물들이나 천체로부터만 선망의 대상이 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천사들에게서마저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다. "우주의 위계(位階)에서 인간에게 운명지워진 조건이 무엇이길래 동물들에게서만 질시받는 위치가 아니라 성좌(星座)들에게, 나아가서는 초세적(超世的) 지성들한테서까지 질시받는 (ultramundanis mentibus invidiosam.)위치가 되었는지," 또 “어째서 인간이 가장 행복한 생물이 되는지, 인간이 위대한 기적이요 정말 당당하게 경탄을 받을 만한 동물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여겨지는 이유가 무엇인지”(Oratio 3.7) 묻는 수사학적 물음과 이에 대한 피코의 인간학적 답변이 연설문 전반부(1-7장)를 구성한다.

천사들은 “당초부터(ab initio)나 미구에(paulo mox) 영영세세에 존재할 그대로 존재하게 되었다(id fuerunt quod sunt futuri in perpetuas aeternitates)는 문장에 명기되어 있듯이, 천사들은 한번 내린 선택 결정에 의해서 영원한 운명이 이미 결정되었고 더 이상의 다른 여지가 없다! 그와는 달리 하느님이 넣어준 ‘배종적(胚種的) 이념’(rationes seminales)들로 인해서도, 재선택의 여지에 의해서도 인간에게는 살아 숨쉬는 동안이면 자기 본질규정(本質規定)의 가능성이 부단히 주어진다는 사실이 특전이다.

 

3.2.3 한 마디로 그것은 인간의 가소성(可塑性), 연설문에서 “인간-카멜레온”(noster chamaeleon)의 자유라고 일컫는 것이다. 앞의 물음을 두고 피코는 “피부색을 바꾸는 [카멜레온과 같은 인간의] 면모와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는 본성(se ipsam transformantis natura).” 때문에 인간은 위대하다고 답변하면서 “카멜레온 같이 [무엇이나 될 수 있는] 우리의 [특전을] 누가 경탄하지 않겠는가?" 라고 자문한다.(Oratio 7.34) 인간은 우주에서 특정한 자리가 없고 존재계의 영역 밖에 자리잡고 있다는 인간 본성의 부정형(否定型)을 설명하고 입증하기 위해서 이 연설문은 카멜레온의 이미지를 담은 고대 변신(變身)의 패러다임, 곧 피타고라스 변신론, 마호멭의 이야기, 성서가 인간을 칭하여 ”너희는 모든 살이요 모든 조물“(omnis caro, omnis creatura)이라고 일컫는 표현, 포세이돈의 아들로서 자신의 변신으로 예언과 신탁을 전하던 프로테우스, 히브리 밀교에 전해오는 헤녹의 변신, 오디세우스의 방랑에 등장하는 칼립소 이야기, 그리고 이런 변신을 철학적으로 해명하려던 피타고라스 학파와 엠페도클레스의 주장을 장황하게 열거한다.(Oratio 8-10)

그러니까 르네쌍스 인간 선언이라 할 (연설문의) 제 5장에서 피코가 말하는 인간은 그 첫 언명부터 “미완(未完)된 모상의 작품”(indiscretae opus imaginis)으로서, 전혀 규정되지 않은 존재로서 부각된다.

 

하느님은 인간을 미완(未完)된 모상의 작품으로 받아들이셨고(hominem accepit indiscretae opus imaginis), 세상 한가운데에 그를 자리잡게 하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오, 아담이여, 나는 너에게 일정한 자리도(nec certam sedem), 고유한 면모도(nec propriam faciem), 특정한 임무도(nec munus ullum peculiare) 부여하지 않았노라! 어느 자리를 차지하고 어느 면모를 취하고 어느 임무를 맡고 싶은지는(quae munera tute optaveris) 너의 소원대로(pro voto), 너의 의사대로 (pro tua sententia) 취하고 소유하라(habeas et possideas)! (Oratio 5.18)

 

이처럼 형상화되지 않은 존재로서 인간은 스스로 자기 형상을 부여하는 존재로 등장하며, 창조주가 “지존하신 조성자 하느님”(summus architectus Deus) 혹은 “지존하신 장인(optimus opifex)"으로 불리운 이상 그분을 닮은 모상은 “네 자신의 조형자(造形者)요 조각가(彫刻家)“(tui ipsius plastes et fictor)라고 하느님에 의해서 명명된다. 서양사상사에 가장 현저하게 드러나는 주지주의(主知主義) 인간관이 선포된 셈이다.

그렇다면 피코의 인간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자유를 만끽하는 존재이다. 우주의 법칙을 초월하고 심지어 역사의 법칙도 구애받지 않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그 인간은 자기 존재를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실현한다. “작용은 존재를 따른다”(operari sequitur esse)라는 중세적 명제에 정반대로 “존재는 작용을 따른다”(esse sequitur operari)는 근대 명제를 내건 셈이다. 인간은 자연본성(natura)을 일정한 형태로 부여받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불사불멸까지도 자연본성에서 유래하는 품성이 아니고 인간이 자기의 의지를 구사하여 구현하고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고 발설한다.

 

3.3 "자기를 빚어내는 조각가“(sui ipsius plastes)

 

3.3.1 피코가 피치노와 사뭇 다른 관점에서 인간학에 접근함을 강조하는 학자들(Cassirer, Garin, Kristeller, Trinkaus, Buck)은, 피치노가 인간이 우주의 중심 위치에 고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음을 강조하는데 비해서, 피코에게는 인간이 “아예 일정한 본성이 없고 존재자들의 위계에서도 자기의 정해진 위치가 없다. 어느 면에서 그 위계 밖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한정없는 자유를 갖춘 채로.... 그리하여 피코는 참으로 여러 세기 동안 서구를 지배한 사상, 존재의 위대한 고리라는 개념을 해체하는 첫 걸음을 내디딘 셈이다.”고까지 강변한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의 타고난 자기 모상이 따로 없고 외래적(extrarias)이고 그때그때 닥쳐오는(adventitias) 무수한 모상들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Oratio 9.45)는 구절을 보더라도 인간은 자연계라는, 자기 “외부에서 닥쳐오는 이질적인 것들(extrariae adventitiae)"로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겠느냐는 해석으로, 인간의 자기규정은 ”존재의 고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하는 입장도 있다(De Lubac, Di Napoli). 다시 말해서 인간은 존재계의 위계 밖에 서 있지 않고 그 위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하느님이 인간을 우주의 한가운데 위치에 두신 까닭도 그 중간위치에서 “아무것이나 편한대로 살펴보고(ut circumspiceres inde comodius)" 선택결정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이자신의 조형자(造形者)요 조각가(彫刻家)가 되어 자기 좋을대로 형상(形相)을 빚어내는 일은 존재계의 모든 요소를 이용하여 행하는 작업임이 연설문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3.3.2 따라서 연설문의 서두에서는 인간에게 미리 규정된 본성이 아무것도 없다는 인상을 받지만 그의 연설문에도 `인간의 본성'(natura hominis)이라는 언표가 분명히 나온다. 비록 유일무이하고 자연 전체를 포괄할만큼 무제한한 것이여 어디까지나 가능태로서의 본성일지 모르지만 절대적인 무정형(無定形)은 아니다. 연설문 첫머리에서도 "어째서 인간이 온갖 경탄을 받기에 합당한 가장 행복한 생물이 되는지, 우주의 위계(位階)에서 인간에게 운명지워진 조건이 무엇인지" 이유를 물으면서 “인간 본성”의 출중함(praestantia naturae humanae)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Oratio 2.3) 가능태로서라도 인간에게는 이미 본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뿐 아니라, 피코는 엠페도클레스의 입을 빌려 인간의 `이중의 본성'을 말한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우리 영혼에 이중의 본성(duplex natura in nostris animis sita)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중 하나 덕분에 우리는 천상 것들을 향해서 위로 오르고 다른 하나 때문에 우리가 아래 것들로 추락한다고 하였다.(Oratio 16.91)

 

여기에 형이상학적 긴장이 있다. 인간은 가능태로서는 만물이고 만유에 대해서 유사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지만, 인간이 자기를 떠나는 승화나 신적인 합일이 인간 본질의 전적인 포기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인간의 가소성(可塑性)은 인간 안에 존재계 전체를 수렴(收斂)하고 자신을 존재계 전체의 일치의 중심점으로 정립하는 데에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모세의 성서나 그리스도교 성서에서 인간이 온갖 육체의 이름으로, 온갖 피조물의 이름으로 호명되는 것도 까닭이 없지 않으니, 이것은 인간이 자기를 온갖 육체의 얼굴로, 모든 피조물의 자질로 조형하고 형성하고 변형하는 까닭이다(se ipsum ipse in omnis carnis faciem, in omnis creaturae ingenium effingit, fabricat et tansformat).(Oratio 9.44)

 

존재계의 중간위치에서 짐승의 처지로 전락하거나 하느님에게까지 이르거나(물론 이 후자가 인간의 목표이지만) 자기가 실현하는 바는 만유의 수렴과 통일에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천상계와 지상계의] 일치의 중심으로 수렴시킨다면, [하느님] 아버지의 고고한 현의(玄義) 속에서(in solitaria Patris caligine) 하느님과 한 영이 되어서(unus cum Deo spiritus factus) 만물 위에 옹립되어 만물에 앞서게 될 것이다.(Oratio 6.31)

 

연설문보다 2년 후에 피코가 집필한 저서(Heptaplus)를 보더라도, 인간은 세계라는 대도시 한가운데 세워진 자기 창조주의 석상 같으며, 그것이 가능태인지 현실태인지를 구분하지 않은 채로 “인간의 실체는 모든 자연사물들의 실체를 자체 안에 내포하고 있으며 온 우주의 충만성을 진실하게 갖추고 있고” "[인간보다] 하위인 모든 존재자들을 완전하게 수렴(inferiorum omnium absoluta consummatio)하고 있다.“고 언명되어 있다. 이 수렴의 이론을 역으로 해석하면 "만유의 최고 원리는 곧 인간(supremus omnium et princeps homo)“이라는 과감한 이론까지 등장한다. 아예 우주가 인간을 범형으로 만들어졌다는 과감한 서술까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일정한 종류(種類)에 속하지 않는다는 말, 일정한 본질이나 본성에 의해서 조건지워지지 않는다는 말이 곧 사멸할 인간이 창조주에게서마저 자유롭다는 의미를, 하느님에 의해서 일체 규정되지 않는 존재임을 공언하는 것은 아니다. 피조물로서의 자연본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하느님에 의해서 규정된 `인간의 본성'을 분명하게 언명한 것이다.

따라서 아담이 식물이나 동물의 하위 차원으로 타락하든, 천사같은 상위의 신적인 차원(천사적 오성의 가지계)으로 승화하든 그것은 고중세의 자연학이 규정하는 인간(homo animal rationale)의 모습은 아니다. 인간은 지금의 영육합일체 상태에서 그치기로 택할 것인가, 천사적 본성으로 승화되기를 택할까, 아니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적인 합일의 경지를 택할까를 결단하고, 인간은 인간이 아닌 존재로 자기를 규정하고 체현해야 하므로, 가지계와 감각계의 중간적 위치를 고수할 경우에는 인간의 자기 실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3.3.3 안티노미아라고 부를 정도로 신묘한 인간의 이 양면성을 일깨우면서 연설문에서 그가 인용하는, "영혼은 날개가 달렸으며 그 날개가 떨어질 때에는 영혼이 육체 속으로 추락하고 날개가 다시 돋으면 천상으로 다시 날아오른다."(Oratio 23.137)는 조로아스터의 구절은 피코의 인간론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을 면해준다. 다만 이런 양면성이, 비관론자들이 강조하던 인간내면의 분열상 혹은 대립상이라기보다는 한 인간 존재에 만유가 통합되는 수렴을 다시 강조한다.

과연 사람마다 자기 내부에 야수를 품고 산다. 마지막에 창조된 인간은 자기 내부에 다른 세 세계(지상, 천체, 천상)를 모조리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제 4의 세계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 세 세계의 종합이자 통일인 피조물, 상하세계 사이에서는 중간자인 인간은 그냥 둘 사이에 끼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은 그 양면 세계에 접근하여 끌어다 연결한다. 중간자라기보다는 중재자이다. 자체안에서 우주를 통합하는 인간이다.

 

3.4. 피코는 공작인(工作人: homo faber)을 몰랐던가?

 

3.4.1 나아가서 혹자(Buck)는 피코가 마네띠와 다른 점은, 신플라톤사상에 깊이 침잠해 있어서였는지 모르지만, 인간의 왕국(regnum hominis)을 건설하는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고 평한다. 실제로 인간의 형이상학적 차원에 시선을 집중한다는 점에서 피치노의 신플라톤사상에 경도된 흔적을 보여준다. 더구나 그의 글에서는 마네띠처럼 육체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일도 없고 인간의 기술적인 작업능력을 내세우는 일도 없으며 오히려 지성 특히 능동지성(能動知性)의 위대한 역할을 찬양하는데 그 지성마저도 인간 사회에서 지상적인 기능을 한다는 점보다는 우주 속에서 존재라는 ‘추상적인 역할’을 관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피코의 인간은 소우주로서 대우주 앞에 마주서 있고 대우주를 관조하는 모습이지 소우주를 경작하는 모습은 아니라는 평이다.

 

3.4.2 하지만 연설문에서만도 자연과학을 예찬하고 옹호한 피코의 글이 있으므로 이러한 비판은 성립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마네띠는 대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의 능력, 노동과 기술로 대자연의 자원을 활용하는 능력을 예찬하면서 인간은 지상 업적과 지상 도성의 건설에 의해서, 시민 생활에 전적으로 몰두하고 과학 지식과 공업으로부터 그 위대함이 드러난다는 점을 주지시킨 바 있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사유는 마네띠 못지 않게 자연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높이 평가하고 자연과학의 신학적, 인간학적 토대를 지적하면서, 논전적 입장에서 당대의 종교인사들이나 무식한 대중이 자칫하면 `마술'(魔術)로 매도하는 연금술이나 천문학이나 실험과학이 잘 살펴본다면 “자연 철학의 완결(naturalis philosophiae absoluta consumatio)" 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극구 변호해야 하는 입장이었다(Oratio 37-38).

특히 르네상스 지성인들이 존중하던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누스의 권위를 빌어 피코는 자연과학이 "대자연의 하인이지 대자연을 조종하는 술사(術士)가 아님"(naturae ministrum esse et non artificem magum: Oratio 33)을 깨우쳐 청중을 무마시키고자 노력한다. 자연과학 덕분에 인간은 우주의 주공(主公)이 되고 "지극히 심오한 사물들의 그윽한 관상을 포함하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대자연 전체에 관한 지식을 망라한다." "하느님의 호의로 뿌려진 능력들 가운데서, 세상에 흩어져 있는 능력들 가운데서 마치 어둠 속에서 빛으로 불러내듯이 그 능력들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과학이므로 자연과학이 이루는 성과는 인간 "스스로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대자연이 기적을 하도록 부지런히 시중드는 것이다." 과학자는 "자연사물들의 상호관계에 대한 투철한 지식을 획득하며, 각 사물에 생래적인 마력 다시 말해서 자체의 마력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이고, "대자연의 품 속에, 그야말로 하느님의 신묘한 창고에 숨겨져 있는 기적을 이끌어내서 마치 자기가 그 술사가 되는 것처럼, 공공연하게 노출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마치 농부가 느릅나무를 포도나무에 접붙이듯이" 과학자는 "땅을 하늘에 접붙인다(ita magus terram caelo maritat). 곧 하계의 사물들을 상계의 자질과 능력에다 접붙이는 것이다."(Oratio 38.250)

 

3.4.3 피코가 보기에 자연과학은 단지 현세적 편의와 실용을 이루어주는데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종교적 의의도 충만하기 때문에, 그는 자기에게 도전해오는 종교인들의 신학적인 편견, 거의 미신적인 공포를 갖고서 자연과학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암시하여 "개가 모르는 사람들이면 마구 짖어대듯이 자기들이 깨닫지 못하면 무조건 단죄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이라고 욕한다. 그가 거론하는 명분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의 신묘한 자연 사물들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일보다 사람을 종교로, 하느님 예배로 촉진하는 것이 또 없다. 우리가 지금 논하고 있는 이 자연적 주술을 통해서 자연 사물들을 잘만 탐구한다면 그것을 만드신 분에 대한 예배와 사랑에 불타오르기 마련이다."(Oratio 38.253)

 

3.5 “철학적 평화(pax philosophica)"

 

3.5.1 그런가 하면 피코의 연설에는 또 하나의 형이상학적 긴장이 있다. 인간은 가능태로서는 만물 곧 세계이고 만유에 대해서 유사성을 갖추고 있는데 “온갖 육체의 얼굴로, 모든 피조물의 자질로 조형하고 형성하고 변형하는” 인간의 변신이 도대체 무슨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느냐는 물음과 대답이 그것이다. 그 물음에 “철학함을 통해서”라는 것이 의외로운 피코의 답변이요 이를 위해서 연설문 대부분(11-44장)을 할애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거룹의 영으로 고취된 사람이요, 사다리 즉 대자연의 계단을 따라가면서 철학함으로써(philosophantes) 우리는 중심으로부터 중심으로 만유를 [우리 자신 안에] 수렴시키게 된다(a centro ad centrum omnia pervadentes). (Oratio 15.87)

 

이를 두고 혹자(Buck)는 피코의 인간은 (비록 과학적인 학문 탐구에 종사하지만) 역사적 사회로부터 고립된 채로 형이상학적인 세계로 편향하는 초월적 상승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로네상스의 고유한 인문주의적 모형으로부터 오히려 이탈하는 모습이 아니겠느냐고 비판한다. 연설문의 후반부에서 인간에 관한 논의에서 삶의 규범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그가 말하는 도덕철학의 기능은 지성의 정화(淨化)에 의의가 있고, 그가 논하는 변증술(辨證術) 곧 논리학의 역할은 오성의 오류를 수정하는데 의의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피코가 볼 때에 인간 정신이 추구하는 내면의 참된 평화는 신학의 경지에서만 얻을 수 있다(pax theologica).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신학이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종교, 과거의 모든 신비학, 히브리인들의 카발라까지 망라한 모든 사조들을 통칭하므로 그의 ‘신학의 평화’는 모든 신학 사상들이 공존하는 이념적 평화라는 것이다. 그 논거로 인용되는 구절이 있다.

 

우리가 악용하여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자유 선택(自由選擇)을 유익하게 사용하기보다는 해롭게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기왕이면] 일종의 경건한 야심이 우리 정신에 침투하여 우리가 중도의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최고의 것을 동경하며 (우리가 원하면 할 수 있으니까) 그것을 획득하는데 전력을 다하여 힘써야 하겠습니다. 지상의 것을 하시하고 천상의 것도 경멸하며 세계의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버려두고서 우리는 지존하신 신성(神性)에 가장 가까운 초세계적인 어전(御前)으로 날아오릅시다.(Oratio 10.49-50)

 

특히 인간이 자의로 타락하는 모습을 담은 신화들이나 지고한 삶의 경지로 승화하는데 인간을 보조하는 것이 피코에게는 (신학 아닌) 철학이라는 점은 인상적이다. 인간이 존재계의 사다리를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는 것도 오성의 추론과 직관을 통해서요, 그 덕택에 피조물 전체의 종(種)과 유(類) 속을 헤집고 다닐 수 있다고 여긴다. 심지어 인간이 어느 면에서 만유가 되는 것은 인간이 소우주인 “자신을 인식함으로써”라는 표현도 있다.

 

3.5.2 그러나 당대의 사회적 문제 가운데 절실한 철학적 신학적 평화를 도모하고 설교한 그의 의도는 사회성을 충분하게 반영하고 남는다. 그는 종교재판을 받는 몸으로서 학문의 자유와 토론문화를 설파하고 있는데 그것도 봉건적 체제에서는 사회적 여파가 큰 행동이었고, 보수적인 그리스도교 사회에 비그리스도교 종교진리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설득함으로써 다원주의적 진리관을 개진한 공적이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그간 학문에만 정진하던 스물 네 살의 젊은이로서 정치적 경험이 없었다.

 

3.5.3 젊은 나이임에도 그가 추구하던 이상적 평화는 우선 다양한 철학 교설들 사이의 평화(pax philosophica)였고, 그는 중세에 학자들 사이에 수용여부를 두고 갈등을 빚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 그리고 그리스도교 철학의 두 주류를 대표하는 토마스와 둔스 스코투스 사이에, 아리스토텔레스를 서구에 전수하면서 아리시톹텔레스 해석의 차이를 아울러 전해준 아랍의 아베로에스와 아비켄나 사이에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것은 방법론상으로도 불가피한 것이었다.

 

모든 학설들을 먼저 친숙하게 파악하지 않고서는 자기 고유한 학설을 올바로 수립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릇 모든 학파에는 여타의 학파들과 공통되지(commune cum caeteris) 않는 탁월한 어떤 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Oratio 30.196)

 

하지만 인류에게 평화를 기약하는 것이 철학임을 누차 천명하면서도, 실용주의적 철학관, 즉 "사물들의 원인, 대자연의 이치, 하느님의 의중, 하늘과 땅의 신비들을 눈으로나 손으로 탐구해 나가는 것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생각"(Oratio 24.154)이나 "철학자들에게 아무런 보상이 돌아가지 않고 아무런 상급도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철학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Oratio 25.156)에 대해서 피코는 대단히 분개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는 실용주의적 철학관은 거부하였다.

그가 제반 철학의 연구를 통해서 그 공통점과 차이점 및 탁월점을 섭렵하여 도달코자 하는 목표는 신학의 평화(pax theologica)였다.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과 유대교를 비롯한 당대에 알려진 모든 종교들 사이의 평화(pax theologica)를 주창해야 했다. 그는 히브리인들의 카발라 비전(秘典)에서 “모세의 종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교도 깃들어 있음을 보았고... 바울로와 디오니시오에게서 내가 읽은 것, 예로니모와 아우구스티노에게서 우리가 날마다 읽는 똑같은 내용을 나는 거기서 읽었다.”(Oratio 43.278)고 고백한다. 이방인들에게서는 오르페우스와 조로아스터 “:두 사람 다 태고의 지혜를 가르친 어버이요 저작자로 받들어지고 있음”(Oratio 45.283)을 관찰하였다. 주술이라고 비방당하는 자연과학과 철학 그리고 신학 “이 모든 학문들을 거쳐서 사멸할 인간들에게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 열린다(per easdem artes patere viam mortalibus ad felicitatem)”(Oratio 123.136) 는 신념이 이 젊은이에게는 있었다.

 

4. 결 론

 

4.1 혹자는 피코가 15세기 인물 가운데 부유한 귀족 신분, 고전에 대한 탁월한 교양, 철학자다운 고매한 지성을 한꺼번에 갖춘 인물로서, 시대 정신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짤막한 생애로 그 시대정신을 속속드리 흡수한 사람이 “그리스도교 인본주의를 대변하는 가장 순수한 인물상"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시대의 반항아, 중세와의 단절을 시도한 영웅, 자유사상가의 효시, 실존주의자의 모습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여하튼 피코가 르네쌍스와 계몽주의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특히 인간 존엄성을 고양하고 철학자들 사이에 보편적 조화를 도모한 시도는 문화철학적으로도 크게 평가받을 만하다. 연설문에는 바로 이 두 주제가 간결하게 표명되어 있어 후대인들에 의해서 발전을 보게 만들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관한 그의 관념은 당대의 심원한 염원을 반영한 것으로 그것은 어디까지나 르네쌍스 시대를 반영하는 문서로서, 당대는 한 사상가가 어느 한 저서를 통해서 시대의 문화를 총망라하기에는 너무도 짧게 지나간 잠정적 시대였고 32세라는 피코의 생애는 그의 사상을 정리하기에 너무도 짧았으므로 피코의 연설문이 "그 시대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문서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지만“ 유럽의 정신사에 끼친 영향은 계몽주의가 사상적 변혁을 경제적 변화와 집단적 전환으로 성사시킨 다음에야 참다운 가치가 드러날 수 있었다.

 

4.2 피코의 인간에게서는 중세의 정적(靜的)인 인간상은 극복이 되기 시작하며, 따라서 피코 인간학에서 말하는 인간 존엄성은 기능상의 존엄성, 하나의 가소성(可塑性)으로서의 존엄성이었다. ‘신의 모상’이라거나 ‘소우주’라는 패러다임만으로 존재계에서 어떤 권위를 표상하던 인간상은 사라져 가던 시대였다. 종교적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한없이 굴절되고 억압되어온 존엄성에 대한 분노(homo indignabundus: Manetti)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피코가 「인간 존엄성에 관한 연설」에서 그려내는 인간은 먼저 `소우주' 또는 우주의 `중간자'로서 우주를 관조하는 인간이지만 실재세계를 고전적으로 관상하는 경지가 이미 아니라고 하겠으니, 인간은 한낮의 태양 밑에서 자기와 동류 인간들 앞에, 창조계 전체 앞에 나타나야 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인간의 위대함은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면서 규정하지 않고서 남겨둔 그 본성을 스스로 찾아내서 구현하는 데에 있다.

 

4.3. 학자들에게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선언서”로 간주되는 이 짧은 문헌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Discours de la methode)」이라던가 베이컨의「신기관(Novum Organum)」처럼 사상사의 몇 안되는 문헌 중의 하나로 꼽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당시에 존재하던 다양한 문화들 속을 부단히 순례하면서 그것들의 패러다임과 진리 영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해 보고 설명해 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중도의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최고의 것을 동경하며 (우리가 원하면 할 수 있으니까) 그것을 획득하는데 전력을 다하여 힘써야 하겠다”는 “경건한 야심”(sacra quaedam ambitio)(Oratio 10.50)이 너무도 근대적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