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m-1006.gif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의 세계시민사상
           -세계화 운동의 그리스적 발원

 

 

                                     1999 중세철학 3 (3-68)

 

 

 서   론   

 

        세계인(世界人) 또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즉 세계시민(世界市民)은 지구상에 한번도 구현된 바는 없지만 인류가 사유를 시작하던  당초부터 인류의 의식 속에  하나의 꿈으로 움터왔다. 세계시민의  개념이 대종교의 창시자들과 위대한 철학자들에 의하여 부단히 고무되면서  인류의 이상과 윤리도덕을 고양시켜 왔다는 사실을 돌이켜  볼 때, 최근 우리에게 강압적이다시피 닥쳐온 세계화(世界化 globalization)의 요청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검토할 만하다. 

   동양과 서양, 고중세와 근현대에 세계시민의 개념이 어떻게  정립되어 왔는가를 사상사적으로 고찰하려면, 우리 사정으로는 문헌학적 연구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 (世界, mundus, kosmos)라고 하면, 인간 외부의 지리적 개념이나 일정한 공간으로 상정하기 쉽고 아마도 `사회'(社會, communitas, koinonia)라고 해야만  인간이 몸담아 살아가면서 다각적인 관계를 맺는 활동 영역으로 파악하였을지도 모른다. 현대의 국가나 국민 개념, 즉 국민, 영토, 주권으로 이루어진 국가 관념이 확립된  것은 서구 계몽주의 이후의 일이지만, 고대세계에서도 일정한  지역에 사는 동일한 민족들이 모여 도시를  건설하면서부터 사회니 세계니 하는 용어와 관념이 등장하였을 것이다. 물론 문명사의 초기단계에는 도시국가 또는 왕국을 구성하는 한 집단의 생존과 발전이 일차적인 관심이었고, 구성원 개개인의 독립적인 생존과 자유는 그리스 같은 특정한 지역에서부터 개념되고 거론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문화사의 증거이기도 하다.

 

   종교 영역을 떠나서 철학적으로 세계시민 개념을 인류에게 명시적으로 시사한 최초의 사상가들은 고대 그리스인들로 견유학파와 스토아 철학자들이다. '세계시민'(kosmopolites)이라는 용어나 개념이 곧바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그 요소는 고전시대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신들이나 로고스에 의한 세계의 창조와  세계 통치에 대한 착안, 인간들의 합리적이고 공통되는  자연본성에 관한 명상, 여러 지역에 대한 탐험과 여행,  이 모두가 저러한 선각적 지성인들로 하여금  도시국가라는 생존의 틀을 넘어서 보려는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또는 시민이라는  자유민의 권리개념을 온 인류에게 확대함으로써, 그리고 알렉산더의 헬라 대제국과 로마 제국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이론화함으로써 세계혼(世界魂)의 영감을 받는 인류가 그 빈부귀천과 인종에 상관없이 동등하다는 사회사상을 주장하게 만든다.

 

   이 논문에서는 고대 그리스 소피스트와  견유학파에 속하는 자유로운 지성들이 도시국가의 범주를 넘어서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하여 스토아 학파의 사상사  전체, 즉 아렉산더 대제의  출현과 제국시대를 함께한 초기 스토아로부터 로마 제국의 발흥을 사회적 배경으로 하는 중기 스토아와 로마가 지중해 패권을 장악한  이후의 후기 스토아에 이르는 시대를 망라하면서, 세계를  하나의 국가로 보고 전인류를 한 국가 시민으로 간주한 세계시민사상의 발전과정을 섭렵하는 데에 그 범위를 둔다. 인류 사상사의  위대한 지성들의 혜안은 인간과  우주의 심층을 꿰뚫어 보았으므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인류에게, 특히 20세기 말에도 정치경제 분야에서  한 정부와 국제사회를 책임지는 인물들에게 실천적인 지혜를 제공하는 길잡이가 되리라는 신념에서다.
   따라서 그 방법론은 단편과 저작으로  남아있는 당대 학자들의 글에서 그 단초를 이끌어내는 문헌학적 접근이 되겠다. 사료비판과 해석학적 토론은 다음 단계의 연구로 미루기로 한다. 

1.   세계시민사상의 발원지 견유학파  

 

(1)  최초의 자유주의자 소피스트의 탈도시국가 사고   

 

   인간이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 정의되는 이상, 그리스인들에게는 폴리스에 소속된다는 것 자체가 한 개인의  원천적 특권이자 생존방식이었다. 그래서 자기 폴리스를 떠나서는  한 인간이  인간으로  간주되지도 못하였고, 추방이나 망명이나  배반 등 어떤 이유로든 폴리스라는 정치, 법률 조직을 떠나서 사는 사람(apolis)은 가장  가련한 인간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원전 8세기부터  6세기에 그리스인들이 지중해 연안 전체에 개척한 식민활동이 그들의 안목을 넓혀 주었으며, 해운국의 이점을 활용하여 식민활동을 하면서 당대까지 알려진  세계 전체(oikoumene)를 그들은 도보와 선박으로 섭렵하였고,  자기네와 다른 이방인들의 정치 체제, 사회 및 사고방식을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또 그리스 반도에서  일종의 사회적 연대감을 유지한 채로 여러  도시국가들이 독립되어 병존하던 지중해 연안의 독특한  정치상황에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제국에  복속시켜 하나로 통일하려는 최초의 시도가 페르샤의  침략 전쟁이었는데 대제국 페르샤를 상대로 하여 펠로폰네수스 동맹으로 한데 뭉친 자유  도시국가들의 결합과 평등은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도시국가의 체제와 경계를 초월하는 정치사회를 절실히 체험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정치군사적 체험을 배경으로 여태까지 다양한 법제에 의해서  제각기 독립적으로 통치되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사변적으로 새로운 안목을 열어  준 최초의 지성인들은  소피스트들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사회에 통념적으로  통하던 관습과 도덕 대신에 보다 합리적인  의견과 상충된 견해들을 열거하여 지성인들의 판단을 구하였다.  정의니 법률이니 하는 것이 절대적인 규준처럼 내세워지던  때에 그들은 법의 절대성을 상대화시키고 당시까지 법률과 제도로 확정되어 온 기존질서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그리스인들에게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 이때부터 "정치법과 우주법 사이의 엄청난 간격 내지는  심연이 열리면서 헬라 시대의 세계시민 사상으로 가는 직행로가 열린다. 거기다가 소피스트 철학자들이 없지 않았다. 이들은 법률 비판으로부터 서슴없이 이러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들이야말로 최초의 세계시민들이었다."[1]

   그리하여 비록 후대 플라톤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소피스트 엘리스의 히피아스(Hippias)는 세계시민사상에 관한 거의 완벽한 발언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 계신 신사 여러분, 제 생각에는 우리 모두가 친척이요 친구요 동포[같은 시민]입니다. 법률상으로는  그렇지 않으나 [인간이라는]  자연본성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유사한 것은 본성으로 유사하며 인류를 제압하는  법이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본성에 어긋나게 강요하는 일이 흔합니다"  (Platon, Protagoras 337c).

 

이 구절에서처럼, 자연본성(physis)의 개념을  물리적 우주론적 차원에서 인간학적 차원으로 전환함으로써  소피스트들은  세계시민사상의 단초를 마련하였다고 하겠다. 그들의 비판대로  관습이나 법률이 가변적이라면 그것을 비판하는 기준인 자연(본성)은 불변해야 하고,  진리, 가치, 질서 등은 어디까지나 자연에 입각하여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 통용될 때에만 그 가치를 판단받는 것으로 변한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에게 자연(physis)은 이치 혹은 이성(logos)과  동의어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는 인간다움을 표현하는  데에 있고 인간답게 행동함은  본능이나 권력의지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고 이성에 의해서 움직임을 뜻한다. 정치적 차원에서는  이러한 자연관으로부터 만민 평등이 연역될 것이다. 만일 자유민과 노예 사이의  사회적 지위가 문제되고 평등을 논하게 된다면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차별도 문제시된다면, "그리스인들은 통치하도록 태어났고 야만인들은 예속하도록 태어났다."는 의식적 장벽도 이론상으로는 쉽사리 무너진다.[2]

   소피스트들의 사색과 착안으로 그리스인들과 야만인들간의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보려는 시각을 갖기  시작하고 인간 관계의 상대성을 감지하면서부터,  전통 체제에 안주하지 않거나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그러한 속박에서 벗어난 비교적 자유스러운 지성인들에 의해서 인종이나 국가가 아닌 인간 자체야말로 만물의 척도라는 의식이 곁들여 대두되어 세계시민사상의 토대가 구축될 것이다.

 

(2)   세계시민사상의 발원

 

   고대 그리스 세계의 이방인으로 순수한 자연인으로서 처신하고 실천하였다고 해서 "개같이 사는 사람들"(kynikoi)이라는 별명이 붙은  견유학파야말로 세계시민사상의 착안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들이 인간 본성과 인간  관계에 대해서 새로운 착상을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간들 사이의 인습적 장벽을 극복해야 힌다는 사실을 스스로의 생활양식으로 보여주면서 대중에게 천명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온  인류가 한 무리처럼 살아간다"는 관점을 처음으로 명시한 사람들이고, "만인을 포용하는 만인의 사회"도 그들이 착안하였다고 철학사에서 평가된다. [3]

   현존하는 문전상으로 정작  kosmopolites(세계시민)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구사한 인물은 '고대 세계의 실존주의자'라는 별명이 붙은, 견유학파  디오게네스이다. "어디 출신이냐?"는 물음을  받고서 "나는  세계시민(kosmopolites)이요 세상이  내 도시[국가]올시다."(Diogenes Laertius,  Vitae philosophorum 6.63: 이하 DL로 약칭)라고 그는 답변하였다고 한다.   그의 제자 테바이의 크라테스는 유복한 집안 출신이면서도 재산과 사회 신분을 기꺼이  포기한 사람답게 "내가 나온 지방으로 말하면 빈곤과 암울(그것은 운명도 앗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방의 시민이올시다. [스승] 디오게네스가 곧 나의 도시[국가]올시다."(DL 6.93).라고 말하였다.

   견유학파 사상의 핵심에는  `현자'(sophos)가 자리잡고 있다. 현자야말로 진정한 인간, 자연에 따르는 인간,  이성에 따라서 사는 인간에 해당한다. 현자가 "자연을 따라 산다"(kata physin zen)함은 무엇보다도 인습(因習)을 거부하는 데에 있었다.[4] 견유학파가 인간을 현자와 어리석은 대중으로부터 분리하다 보니 그밖의  여하한 인습적이고 제도적인 분리도 상대화되어 버렸다. 견유학파의 시조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는 인간들을 일단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고 이 구분을  다른 모든 인습적 차별에 앞세우는 논법을 구사한다.

 

     "도덕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은 친우이다. 용맹하고 동시에  의로운 사람들과 동맹을 맺으라. 소수의 선량한 사람들과 한 편이 되어 다수의 악인들을  상대로 싸우는 편이, 다수의 악인들과 한 편이  되어 소수의 선인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보다 낫다. 의로운 사람을  피붙이보다  더 중히 여겨라. 도덕적으로 악한 사람은 모조리 이방인으로 여겨라"(DL 6.12).

 

   출신을 무척이나 따지는 그리스 사회에서 도대체 어느  도시[국가]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자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비극 작품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나는 도시도 없고(apolis) 집도 없이(aoikos), 조국으로부터는 떨어져나와(patridos esteremenos) 떠돌면서 하루의 음식을 구걸할 따름이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DL 6.38). 굳이 출신을 묻는 물음에는 자기를 가리켜 서슴없이 '세계 시민'라고 일컫고 "진정한 국가는 우주에 있는 국가뿐(politeian en kosmo)이라오"(DL 6.72)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5]

 

아마도 현자는  어디를 가든 상관없이 현자만을  동료시민으로 삼는 셈이다. 어디서든  현자를 만난다면 그는 이상향 페라(Pera)의 고국인이요 우주의 시민인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크라테스 자기는 테바이에서  왔고 디오게네스는 시노페에서 왔지만  돌이서는 동향인이라는 답변을 한 것이다(DL 6.93). 그리고 현자들 사이에는 시공을 초월하는 연대와 혈연이  있다(DL 12.105). 그들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지만 "형제들이 한  마음인 이상 그들이 함께하는  삶은 그 어느 장벽보다 튼튼하다"(DL 6.6). 물론 여기서 견유학파들이 말하는 kosmos는 말 그대로  우주, 자연 전체를 가리키지 인류의 주거공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들이 발설하였다는 kosmopolites라는 말도 오늘날 쓰이는 세계시민(cosmopolitan)이라기보다는 현자는  범인들의 지역적 연고로부터 독립되어 우주와 연관을 맺고 살아간다는 선언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정작 평가하는 것은 고대세계에서 도시국가라는 절대 보호막을 의식의 지평에서나마 극복할  수 있었던 그의 착상이다.

 

2.   초기 스토아 철학과 세계시민사상의 정립 [6]

 

   견유학파에 이어 세계국가 내지  세계시민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서구의 지식인들과 일반 대중에게 제시하고 홍보하는 본격적 시도는 스토아  사상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스토아 사상가들 이야말로 세계시민사상을 헬레니즘 세계와 로마 시대에  이론적으로 대두시킨 공적과 책임을 진다. 인류의 단일성(單一性)이라는 개념은, 인생과  사회 문제를 한사코 총체적(總體的)으로 보려고 노력하던 스토아 사조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그들은 우주 전체에 로고스 즉 합리성을  담은 신적인 원리가  미만해 있다고 보았으며, 그  로고스가 인간 개인에게는  지성(nous)으로서 영혼마다 깃들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스토아 철학의  창설자 제논(Zeno)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사는 도시국가(polis)에 적극적 관계를 맺고서 살았지만 스토아 사상은 당초부터 그리스 본토로 본다면 `이방인'(異邦人)들에 의해서 착상되고 개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스토아 사상가 대부분이 (아테네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리스 문화의 변방으로부터, 그러니까 고대의 도시국가에서 지성계의 핵심을 이루던  철학자들과는 다른 배경에서 출현한 인물들이다.[7] 스토아가 로마-그리스 철학계를  지배하던 기원전후 마지막 3세기 동안도  스토아 사상가들은 한결같이 아테네-로마로 보면 이방인들이었다.[8]  또 이 후기 인물들이  행정상으로나 언어로나 소양이나 사회적 배경으로나 그리스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활동한  배경은 하나같이 로마의 정치사회였다. 

   스토아 사상가들은 시종 현실참여의 철학자들이었고, 따라서 제논이 후대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는 주장, 즉  신전도 법정도 체육관도 화폐도 필요없다고 설파하였다는 비난은   어디까지나 그리스 도시국가의 폐쇄된 정치  형태에 대한 부정이었지 견유학파처럼 사회생활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석될  만하다. 제논의 국가관은 도시국가(플라톤의 이상국가론, 크세노폰의 개혁,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진단에서 모형은 언제나 도시국가였다) 모델에 대한 명시적인 거부였다는 해석이다.[9] 제논의 제자로서 스승의 여러  관점을 배척한 키오스의 아리스톤이 "우리는 자연본성상 조국을 지니지 못하였다"(Arnim, Stoicorum veterorum fragmenta 1.371 이하 SVF로 약칭)고 하는 말은 소극적 의미의 세계시민사상이요 그가  말하려는 바는 특정 [도시]국가에 대한 배타적 애국심은 자연본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1) 세계시민사상의 스토아적 발단  

 

   초기부터 그 사상가들이  이방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스토아 사상은  동방지향적이고 전통 그리스 사고와는 이질적이리라는  예단이 가능하지만, 인간에 관한 스토아 사상  역시 헬레니즘의 기본 사유에 근거하고  있으며, 스토아 사상가 자신들도 자기네 사상적  원류를 헤라클리투스에게 두는 언급이 많아, 만유에 침투하는 로고스의 존재, 그리하여 만인이 이성이라는 로고스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여기로부터 인류의 단일성을 논하는 근거를 마련한다.[10]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스토아 텍스트요 제논의 후계자 클레안테스(Cleanthes)의 작품으로 알려진 『제우스 찬가』에서 천지에 미만한 로고스의 보편성은 다름아닌 제우스의 지고한 통치권의 한 면모라고 간주된다(찬가는 제우스의 번개를 가리켜 이렇게 노래한다).

 

        그대는 보편적 로고스를 전하는 운반체요, 그 로고스는 만유를 통해서 흘러나오고, 크고 작은 천상 성좌들의 광채에서 작열하느니(SVF 1.537,7-9: in Stobaeus, Eclogae 1.1.12)

 

   그리하여 스토아 철학자들은 제논에서부터 단적으로 "세계는 하나이다."(eis estin ho kosmos:  DL 7.143)라는 명제로 우주의  단일성을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아울러 우주 또는 자연이 이성을 지닌 세계원리임을 천명하여 거기서부터 일체의 논지를 연역한다.

 

        "세계는 자연의 그지없이 완전한 산물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살아있고 혼이 깃들고 지성
        있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할만한 충분한 논거가 있다. 이성을  사용하는 자는 이성이 없는
        존재보다 월등하다. 그런데 세계보다  월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세계는 이성을
        사용한다(= 합리적이다 :logokon ara ho kosmos).(SVF 1.111: Zeno, in Sextus       
        Empiricus, Adversus mathematicos 9.104) [11]

 

   초기  스토아 사상가들이, 이성을  갖춘 궁극적 실재인  우주를 하나의 [도시]국가(polis)로, 즉  세계국가(kosmopolis)로 언급하였다면 이상할  것 없다. 신들을  포함하여 현자들을 그 시민으로 보는 한에서 말이다. 당대에 우주를 하나의 국가로 비유한 것, 인간들이 아닌 자연이라던가 천체라던가 하는 존재로 엮어진 우주 사회라는 착상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으로서, 우주 만물이 질서정연하게 운행되는 모습은  흡사 잘 짜여진 국가공동체와 같다는 생각에서 제논도 "[세계 원 리인 불로부터 유래하는]  법에 의해서 온 세계가 기이하게 통치되는  품이 마치 올바르고 정의로운 국가  공동체와 흡사하다"는 말을 하였다(SVF 1.98: Zeno, in Aristocles apud Eusebius, Praeparatio evangelica 15.816d).[12]

   우주의 단일성과 합리적인 조화운행으로부터, 이성과 법률을 매개로 하는 인간사회로 건너간다면, 우주의 질서에  따라서 사는 길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는 사유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스토아 철학에 대한 후대의 인용과 언급은 주로 그들의 글을 반박하는 맥락에서 인용됨을 염두에 두더라도 이러한 사조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회의론자 카씨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두고 제논을 공격한다. 그들이  하
     는 말에 의하면,   <정치학>에서는 선한 사람만이 시민이요 친우요  혈육이며 자유민이라고
     한다. (그 결과, 스토아의 전제대로 한다면, 부모와 자식도 현명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한 곧
     원수가 되고 만다.)  또 그는 역시 <정치학>에서 여자는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는 교설을
     편다.   그리고 도시[국가들]에는 신전도 법정도  체육관도 세워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리고
     화폐에 관해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교환할 목적이나 외국에  여행할 목적으로 화폐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DL. 7.31-33).

 

   공공 제도를  부정하는듯한 제논의 주장 역시,  후대인들이 두고두고 제논을  인용하면서 논박하는 것으로 미루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자 혁명이었음이 분명한데, 이상향에서는 국가 제도나 시설들이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공언하였기  때문이다. 제논의 여타 단편으로 보아서는, 이상국가의 구성원들은 화해와 우애로 단결되어 있으므로  모든 것이 공유되는 공산사회와 마찬가지라는 설명 같다.[13]

 

(2)  현자들의 세계  

 

   그런데 이러한  이상사회의 구성원이 누구냐는  문제가 중요하다. 제논은 인간을  현자(賢者)와 우중(愚衆)으로 나누었다는데 현자들만이 온전한  의미에서 이상국가의 시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자만이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SVF 1.223a: Zeno, in
Plutarchus, Aratus 18). 그런데 이 구절을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현자뿐이다."라고 번역한다면, 그리고 인생의 목적인 `행복해지는  것'은 덕스럽게 사는 일이고, 덕스럽게  사는 길은 이성에 따라서 사는 데에

있다면, 현자만이 선인이라는 위의 등식은 결코 배타적인 도식이 아닐 법하다.[14]

 

        "[인생의] 목적은 행복(to  eudaimonein)이다. 그것을 위해서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행
        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지만 [행복] 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서 [행복이] 추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행복은 덕스럽게 사는 데에서(en to kat'areten zen) 성립한다. 그리고 이
        성에 따라서 사는 데서(en to homologoumenos zen) 성립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연에
        따라서 사는 데서(en to kata physin zen) 성립한다."(SVF 3.16)

 

   그렇다면 현자와 우중을 가르는 이 장벽이  절대적인 무엇, 도저히 뛰어 넘을 수 없는 그런 것은 아니다. 견유학파들이 노예도 여자도  그 무리에 받아들였듯이 스토아 사상가들도 평범한 사람들을  받아들였고 인간들이 우중에서 현자로 건너가는 점진적  향상(向上)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  현자들의 집단에는 남자든 여자든, 자유민이든 노예든,  그리스인이든 야만인이든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여타의 인습적  장벽과 분리를 모두 극복한 셈이다. 이 점을 플루타르쿠스는 다음고 같이 피력한다:

 

        "저 경탄할     제논, 스토아 학파를 창설한 제논의 <국가론>은 한  가지 요점을 겨냥하
        고 있으니 거처를 정하는  우리의 방식이, 자기 나름대로 특정한 법률의 체제를  갖고 있
        는 국가나 국민에게  바탕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우리는  만인을 시민으
        로 생각하고 국민의 일원으로 간주할 것이며, 마치 가축들이 공통의  법과 목축에 의해서
        한데 모아지고 사육되듯이 [만인에게] 단일한 생활 양식과 단일한 세계가 있어야 한다    
        는 것이었다. 이런 글을 쓴 사람은 제논이었고 철학자의 질서정연한 국가관 내지 꿈이었
        는데 정작 이 이론을 구현한 것은 알렉산더였다."(SVF 1.262)

 

 

3.   알렉산더와 로마 제국에 의한 세계시민사상 실험과 중기 스토아  

 

(1)  알렉산더 대제와 로마 제국: 스토아 이념의 실험 [15]

 

   "역사상 놀라운 사건 하나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고 고대 세계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냄으로써, 인간들의 세계시민 사상도 하나의 구체적인  결실을 내고 명확하게 의식되고 정의되기에 이르는데 알렉산더 대제가 정치사에 등장한 일이 그것이다. 그는 아시아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고 그리스와 에집트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세계사에 새로운 향방을 제공하였다." 이것은 계몽주의를 배경으로 볼테르가 가한 알렉산더 평가이다.[16]

   알렉산더의 제국이 세계시민사상에 관하여 그리스  지성계에 끼친 영향을 보려면 우선 역사가 플루타르쿠스의 텍스트를 검토해야 한다. 앞서 인용한 플루타르쿠스의 평대로, "만인을 시민으로 생각하고 국민의 일원으로  간주하는 단일한  생활 양식과 단일한 세계가 있어야 한다는  이상을 글로 쓴 사람은 철학자 제논이었는데 정작 이 이론을 구현한 것은 알렉산더였다."는 말에  이어서 "그[알렉산더]는 세계 모든  백성들을 단 하나의 거대한  술잔에다 부어 넣어버렸다."고 하였다. 

   비록 그가 죽자마자 제국은  분할되고 말았지만, 서구에 세계국가(kosmopolis)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실현 가능한 정치적 사건으로 드러났음은 사실이다. 이론상으로는 견유학파와 초기 스토아 사상가들이 세계시민 사상을 정립한 바 있었고,  자기는 세계시민이기 때문에 자기가 태어나고 소속된 도시국가로부터 스스로 단절할 수 있다는 철학  이론은, 알렉산더가 인간이 거주하는 모든 지역을 단일한 제국으로 묶어 버리는 정치적 실험을 단행한 다음부터 지중해 연안 주민들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꿈으로 바뀐 것이다.  알렉산더의 이념은 초기 스토아주의자들의 사상을 현실적인 단계로 밀어올린 사건이어서 이후로는 스토아 사상이 서방의 정치사상을 사실상 규정한다.

 

   "[알렉산더는] 인간이 사는 세상 전부를 자기네  조국으로 생각하라고 가르쳤고 자기가 주둔하  
   는 병영은 그들의  아크로폴리스요 요새로 간주하라고 가르쳤다. 도덕적으로  선량한 사람들은  
   자기네 친척이요 도덕적으로 사악한 사람들은 이방인으로 간주하라고 가르쳤다."
   "[알렉산더는] 가르치기를 그리스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데는 [그리스인들의 고유한]망토나  
   방패를 갖고서  하거나 [야만인들의 고유한] 뿔모자나  자킷으로 갖고서 하지 말며  다름 아닌  
   덕성을 그리스다움의 표지로  삼고 악덕을 야만성의 표지로  삼으라고 하였다. 의복이나 음식,  
   결혼이나 생활습속은  만인에게 공통된 것으로 간주할  것이고, 만인이 혈맹과 자식을  통해서  
   서로 맺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Plutarchus, De Alexandri magni fortuna et virtute 329 CD)

 

   알렉산더의 절대권력하에서였다면 정치군사적으로만 아니라 경제적 문화적으로도 통합된 세계 국가의 건설은 확실히 예견된 현실이었지만  주인공의 때이른 죽음으로 이 실험은 실현을 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세계국가를 이루어 보려던 그의 정치적 의지는 시대를 두고  거듭거듭 다시 대두되며 세계역사의 진로를 바꾸어 놓는다. 그가  역사의 일정한 시점에서 학자들에게 어떠한 평가를 받든 간에  그는 보편 제국의 안목을 파악하였고, 그 제국은 모든  나라의 모든 국민을 망라하는 체제로 예견되었던 것이다. 

   헬라 세계라는 문화적 통일체가 로마의 정치적 지배하에 편입되면서 현실 정치에서 보편주의가 실현되고, 철학적 이념으로서의 세계시민사상은 중기와 후기 스토아 철학자들의 사변과 저술을 통하여, 로마의 지성계로 확산된다. 물론 소피스트들의 등장과 함께 거론되던 그리스의 자유 정신, 독립된 개인과 개방  사회 등은 대제국 로마의 사회분위기로 말미암아 과거와는  새로운 태도와 행위를 야기한다. [17]

   우리가 세계시민사상의 발달선상에서 보는 로마는 공고한 정치군사적 구조와 사회적  법률적 위계를  갖춘 이데올로기였다.  로마는 당대까지  알려진 인간  거주지역(mundus habitatus을 거의 정복하는  역사적 업적을 이루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국가의 다원성을 인정함으로써 그 안에서  개인들의 자유, 각자가 자기 고유한 목표를 지향하고  추구하는 자유가 보장되었음에 비해서,  단일한 제국(imperium Romanum)으로서의 로마는 모든 민족들을  군사적으로 굴복시켜서 제국의 일정한 위치와 역할에 분담시킴으로써 개인에게도 전제국과 자기 민족 사회에서의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규정하는 결과를 빚는다. 인간은 자기가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존재, 공동체의 현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이바지하는  존재로 규정된다. 그리스의 시민(polites)으로서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인간이 자기의 신념과 명령을 국가  사회에 부과하고 국가의 정체를 스스로 선택하던 경향에  비해서, 로마 권력하의 인간은 자기가 기정 사회에 통합되어 있고 따라서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  개인은 어떻게든 사사로운 자기(res privata)를 초월하려고 시도하였고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연대를 이루어서 공화국( res publica)을 수호하려고 싸웠으며, 국가에다 거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고서 살았다. 로마인들은 자기네 제국 자체를 세계로  자처하였고 실제로 구사하는 통치기술이 제국내의 모든 시민들로 하여금 인종과 종족, 혈통에 상관없이, 자기들이 동일한 조국에 속한다는 대중의식을 초래하였다. 특히 역대 황제들은 제국의 세계화를 추진하여 드디어 제국내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기에  이른다(Constitutio Antoniana: AD 21). 당대의 제국 시민들은 그것으로 만족해했고, 일부 역사가들은 당대(적어도 안토니우스 가문 황제들이 지배하던 황금기)를 인류사의 가장 화려한 태평성대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2) 중기 스토아의 세계시민사상

 

(가) 크리시푸스 [18]

   로마 제국이 발흥하고 그리스-로마 문화가 수립되던 시점에 등장하는 중기 스토아 사상가들에게서는 차이점이 나타나는데, 첫째, 고도의 철학적 사변으로부터 실천적 현실주의로 옮겨가는 움직임으로, 아마도 로마  사회와의 교류에서 유래된 듯하다. 로마인들의 실용정신은 철학적 지혜에 관한 한 정교한 사변의 절정에까지 올라갈 능력이 없어던 반면에 인류와 그 역사를 받아들일만큼의 폭은 있었던 것이다. 둘째, 종합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며 특히 스토아와 소요학파의 융합, 주관적 초탈(autarkia)과 객관적 인간애(phialnatropia)의 조화이다. 인간의 친근(oikeiosis: relatio)이라는 개념이 온 인류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어 가는데  그 논지는 다음과 같다. 모든 생명체는  일차적으로 자기보존을 추구한다,  인간 생명의 근본 충동도 자기중심적이다, 그렇다면 본능적으로는 이웃을 사랑할  만한 여유는 없는 셈이지만, 만일 타인과의 관계를 자기의  연장(延長)으로 간주한다면 두 개념을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시민사상에서 가장 난해한 실천적  문제, 곧 자기 중심적 인간본능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한데 통합하고 조화시키는 문제에 착안한 인물이 중기 스토아 학파를 대표하는 크리시푸스(Chrysippus: ca.280-207 B.C.)였다.  플루타르쿠스가 크리시푸스를 조롱하는 투로 인용하는 구절에  "우주는 하나의 도시국가이고 별들은  그 시민들이다"라는 명제가 나오듯이 크리시푸스에게서는 인류의 단일성에 관한 사고가 더 발달되었으리라고 기대할 만하다.

 

   "[크리시푸스는] <자연론>에서 셋째 권에서는 현인들의  우주는 하나요 그곳의 시민권은 신들  
   과 인간들이  공히 소유한다는  말을 하였다.  다섯째 권에서는  우주가 [살아있는] 동물이요  
   이성적 존재이면서 이해력을 구사하며 따라서 하나의 신이라는 명제과 관련시켜 자기 논변을  
   개진하고 있다."(Chrysippus, in Philodemus, De pietate (col.7.12 - 8.4).

 

   "현자들의 우주는 하나이다"라고 한 명제를 키케로는 더욱  발전시켜 "우주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간들에 의해서 이용되는 삼라만상은 인간들을  위해서 창조되고 안배된 것이다"는 명제를 세우고 이를 입증하는 논거로 크리시푸스의 세계국가를 거론한다.

 

   "먼저 우주 자체는 신들과  인간들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물들은  
    인간들의 이용을 위해서 안배되고 계획되었다. 왜 그런가 하면  우주는 신들과 인간들의 공동  
    거처요 혹은 양자에게 속하는  도성[국가]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이성을 구사하면  
    서 정의와 법률에 따라서 살아가는 까닭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아테네인들과 스파르타인  
    들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 맞다면, 이 도시[국가]에 들어있는 것들이 모두 그 국민들에게 속하  
    는 것이 옳다면, 전우주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 전부가 신들과 인간들에게 속하는  것으로 추  
    정되어야 한다."(Cicero, De natura deorum 2.62.154)

 

   크리시푸스는 우선, 자식은 우리 몸의 연장에 해당한다는 말을 하였다(SVF 3.178-9). 이것을 확대하면 초기 스토아 사상에 본래부터 깃들어 있던 인류애가 혈연의 자기 사랑으로부터 확대되어 전인류로 뻗어가는 대중적 바탕이  마련된다.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인정으로부터 사해동포애라는 사회적 덕목으로 건너가는 길은 키케로가  스토아철학자로 자처하는 카토의 입을 빌어 이렇게 전한다.

 

   "자연은 부모에게 자식에 대한  사랑을 심어 주었다. 바로 이것이 어떻게든  우리가 인류의 공  
   통된 친교(profectam  communem humani  generis societatem)에 도달하는 시발점이다.... 우  
   리 자식에 대한 우리 사랑이야말로 인간들이 서로를 위하는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애정의   
   출발점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타인에게  단지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혈육처럼 보이는 근  
   거이다."(Cicero, De finibus bonorum 3.19.62-63)

 

그리하여 이 인인애의 폭은 지성인이 아닌 평민에게도, 여성에게도 노예에게도 확대되어 나간다.

        "만일 사람의 본성이  지혜를 얻을 능력이 있다면, 장인도 농부도  여자도 그러니까 인간
        의 형상을 한 모든 사람이 깨달음을 얻도록 가르침받아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온갖 언어
        와  사회조건과  성과 연령으로부터  현자들의  국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populumque  
        sapientum ex omni lingua et conditione et sexu et aetate conflari). 바로 그래서 스토아  
        학자들은 노예들과 여자들도  철학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애피쿠루스 역시  일체 문  
        자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을 철학에 초대한 바 있다."(SVF 3.253)

 

(나).  파나이티우스  

   한 세기 후에 등장하는  파나이티우스(Panaetius: 185-109 B.C.)도  인류 단일성이나 세계시민사상의 발전에  중요한  인물로  특히 스키피오(Scipio  Aemilianus)  주변에  모인  소위  '스키피오  서클'(Sodalicium Scipianum)에서 스토아 사상을 로마의 상류층에 보급하는데 주력하였다. 키케로의 『의무론(De officiis)』에  전수되는 그의 윤리학에서 인간의 지성은 (초기  스토아와는 달리) 더 이상 '우주적 로고스'라는 머나먼 이념으로 연결되지 않고, 현세계에 작용하는 로고스, 그 세계에서 평범한 인간이 행할 의무와 직결된다. 

   인류를 현자(賢者)와 우중(愚衆)으로 나누는 분리에  대해서 파나이티우스가 취하는 입장은,  지혜를 갖추지 못하면 인간은  덕도 닦지 못하고 상호협조도  못하여 국가사회를 이루지도  못한다는, 제논과 크리시푸스의 지론을  배척하고서, 그는 범상한 인간들의 행동원칙에 관심을 집중한다. 현자든  범부("지혜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든 똑같이 지켜야 할 도덕적 사회적 본분과 의무를 논하는 것이다. 파나이티우스가 엘리트  윤리 아닌 일반도덕의 토대를 발견한 것은 자기를  보존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려는 본능이 인간의 경우에는,  이성의 힘으로 더 넓은 폭으로 확대되므로 타인들을 위하는 애정과 결사의 가능성을 낳는다는 착안이다:

 

     "무릇 모든 종류의 생명체는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생명과 몸을 보호하고, 해롭다고 보이는  
      것은 피하려는 본능이 있다.... 자연은 또한 인간 본성으로 하여금 이성의 힘을 빌려 인간과
     인간이 언어와  사회생활의 공동유대를 맺도록  결합시키며... 자연은 인간 본성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처자식,  그리고 자기가 돌봐주어야 할 딸린 사람들의  안락과 풍요한
     생활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을 마련하는 데 열중하도록 한다."(Cicero, De officiis 1.4.11-12)

 

키케로의 소개대로 파나이티우스의 새로운 정의관은 정의가 인간 사회 전체를 포괄한다는 사실에 있다. 자선(beneficentia)이라는  것을 정의(iustitia)와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는 점도 참신하다. 플라톤과 스토아들을 연관시키는 구절에서도 이 점은 잘 나타난다:

 

     "그러나 플라톤이 명백하게 기술하였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
     니며, 국가는 우리들  본래의 몫과 친구들의 몫을 옹호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스토아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듯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 창조된 것이고, 인
     간은 서로 도움을 주기 위해, 말하자면  인간은 인간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점
     에서 자연상태인 인간 본성을 우리의 안내자로 삼아 따라야  하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항상
     그것을 중심 문제로 생각하고  서로간의 의무를 교환해야 하며, 때에 따라  기술, 노동, 재능
     을 주고 받음으로써 인간  사회를, 인간과 인간의 결속을 공고히 하도록 해야 한다."(Cicero,
     De officiis 1.7.22)
      
(다)  포시도니우스  

   2세기  말엽 아테네에서  파나이티우스의  가르침을 받은  바  있는 포시도니우스(Posidonius: ca.135-51/50 B.C)는,  "그리스도교  시대에 가까와서 그리스 세계의 세계시민사상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였다"는 평을 듣는 인물로서, 당대를 지배하던 그리스-로마  세계관을 간파하면서 인류의 단일 사상을 우주의 폭넓은 단일성에 비추어 확대한다. 그는  자기 주변의 우주와 세계에 부단한 물음을 던지는 학자로서,  대서양으로 해가 지는 광경을 자기 눈으로 목격하였고  스페인 맞은 편 아프리카 해안을 몸소 답사하였으며 마르세이유의 섬들과  거주민들을 관찰하였고 인간 세계의  중심과 변방을 답사하여 당대 세계에 미친 로마 제국의 위력을 절감한 사람으로서, 또 지구의 둘레를  측정하였고 (에라토스테네스의 것보다 더 정확하였다) 기후가 피부와 성격에  끼치는 영향을 주장한 사람이다. 포시도니우스의 주장에 의하면, 세계사(世界史)를 쓰는 사람들의 야망은 세계시민사상에 근거한다:

 

     "만인을 단일하고 동일한 틀 속에 집어 넣기 위함이요 비록 시공간상으로 서로 떨어져 있지
     만 '만인이 혈육으로 친족관계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가들은  신적 섭
     리의 종으로 행동한 셈이다.  섭리에 의하여 눈에 보이는 성좌들의 배치와  인간들의 본성이
     한데 결부되었으며,  별들이  영구히 그 궤도를 순환하게 인도하면서 운명에  따라 각자에게
     돌아가는 바를 배려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저술가들은 인간이 거주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활동들을 단일한 도시[국가]의  사건처럼 묘사함으로써, 그들은 역사라는 것을  과
     거에 대한 단일한 기억이요 공동의 성취로 만든 셈이다."(Diodorus Siculus 1.1.3)

 

디오도루스가 전하는 포시도니우스는,  인간사를 연구하면서 우주의 보편적인  과정이라는 광범위한 배경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인류를 하나의 전체로 간주하고, 사람을 현자와  우중으로 구분하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는다. 단일한 인류라는 것을 세계의 유기적 통일이라는  거창한 지평에 놓고서 살핀다. 인류를 여러 지역에 여러 양상으로 흩어져 살면서도  다양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전체로 보듯이, 또한 인류를 우주라는 총체적인 통일체의 구성 부분으로 설명한다.    키케로 역시 포시도니우스로부터  많은 사상과 문장을 빌어오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신의 본성론(De natura  deorum)』제 2권에서 등장인물 발부스(Balbus)의 입을 빌어 우주가  신들과 인간들의 공동 거처라는 오랜 이념을 다시 상기시킨다:

 

     "세계는 늘 그렇듯이 신들과 인간들의 공동 거처올시다. 양자에게 다 속하는 도시[국가]이지
     요(mundus quasi communis deorum atque  hominum domus, aut urbs utrorumque). 그 이
     유는 그들만이 이성을 사용하고 공평과 법정의에 따라서 살아가니까요...
     "인류 전체만 아니라  개개 인간들도 불멸하는 신들의 섭리와 보살핌을  향유합니다. 왜냐하
     면 우리 인간들마저도 전치 인류에 대해 해당하는 바를 보다 좁은 범위에다 적용할 줄 알기
     때문이지요. 이를 테면 갈수록  범위를 좁혀서 더욱 작은 집단에 기울이고는  마침내 개인에
     게까지 적용할 줄 알기  때문이지요. 만일 우리가 지금 거처하는 이  대륙으로부터 까마득하
     게 멀리 떨어져 있는 온갖  해안들과 깊숙한 내륙에 사는 모든 인간들을 신들이 보살핀다는
     것을 믿는다면, 신들은 또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이  땅에서 우리가 함께 사는 사람들도 보
     살핌에 틀림없습니다"(Cicero, De natura deorum 2.66.154,164-165)

 

(라)  아스칼론의 안티오쿠스  

   포시도니우스만 못하지만 세계시민사상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 사상가가 아스칼론의 안티오쿠스(Antiochus)이다. 로마와 접촉하고 로마를 방문(BC 88년)하고서 아테네  아카데미아 원장이 되었는데 키케로와 바로 같은  로마 지성들이 그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다. 후대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바로(Varro)의 사상을 종합하며  다름 아닌 안티오쿠스 사상이라고 소개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 행복한 생활은 또한 사회적이어서 자기의 친구들에게도  해당한다. 친구들의 선을 그 자
     체로 사랑하고 자기 것 같이 여기며, 자기를 위해서  원하는 것을 친구를 위해서도 원한다고
     이 철학자들[안티오쿠스, 바로]은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는 사람의 가정에 있을  수도
     있으니 한 가정에서 사는  아내와 자녀와 나머지 식솔들일 수 있으며, 자기 집이  있는 같은
     도시에 있을 수도 있으니 자기 도시의 시민들일 수 있다.  또는  전세계에 흩어져 있을 수도
     있으니, 사해동포의 인연으로 자기와  묶여진 민족들일 수도 있다(in toto orbe  gentes quas
     societas humana coniungit). 그런가 하면 천지를 포함한 전우주에 있는 존재들일 수도 있으
     니, 예컨데 소위 현자들의 친구로 간주되는 신들일 수 있는데  그들을 더 잘 아는 우리 그리
     스도인들은 천사라고 부른다." (Augustinus, De civitate Dei 19.3)

 

 키케로의 글에도 안티오쿠스의 것임이 분명한 피소(Piso)의 발언  중에 모든 피조물은 자기를 사랑하고 따라서 자기보존과 자기발전을 욕구하는데 그 외연이 저체 인류에 미친다고 역설한다.

 

     "탁월한 도덕에 있어서 그보다 후륭하고 그보다 폭넓게 응용되는 것이 또 없으니 인간이 서
     로 맺는  상호관계가 그것이다. 인간들 사이에  있는 상호관계, 서로 주고받는  봉사, 인류를
     하나로 묶어주는 애정이 그것이다.  이 애정은 우리의 출생과 더불어 생겨나는  것이니 아이
     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온 가족이  혼인과 부모 사랑에 의해서 한데
     묶여 있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인간관계는 차츰 폭이 넓어지는데 먼저 혈연을  통해서 퍼지
     고 그 다음에는 혼인관계를  통해서 퍼지며 그 다음에는 우정을 통해서 퍼지고 다음에는 이
     웃과의 결속을 통해서 퍼진다.  그 다음은 동료 시민들 사이를 통해서  퍼지고 공공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부류와 친우들에게로  확산된다. 마지막으로는  전체  인류를 포용하기에  이른
     다."(Cicero, De finibus bonorum 5.23.65)

 

   이웃이라는 외적인 선을 향하는 인간의 행위는 올바른  행위이다. 따라서 행위자 자신에게 이익을 준다. 그러므로 자기 보존과 자기발전의 고유하고도 궁극적인  목적에 부합하고 그것을 성취시켜 준다. 그리하여 자아로부터 벗어나서 타자를 향하는 애정이  궁극적으로는 온 인류를 포섭하는데 인간이 자기를  보존하려는 본능적인 욕구하고 상합하고 통일된다는 결론을  맺는다. 타인을 돕는 행위도, 인류 평화를 위하는 노력도 하나같이 자기 완성을 위한 행위로 평가되는 것이다. 즉 이기주의는 이웃 사랑과 공존하고 상합한다. 먼 후대에 스토바이우스(Stobaeus: 서기 5세기)가 전하는 안티오쿠스의 사상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동료 시민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한 것이라면, 같은 인종이나 같은 종
     족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애정도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온 인
     류에게로 향하는 애정 역시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이다."(Stobaeus, Eclogae 2..116)
     "그러므로 천성에서 우리는 만인에 대한  선의와 애정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만인을
     향하는] 이 연대가 그 자치로 바람직한 것이며 시인의 다음 말은 단연 옳은 말이다.
        인간들의 종자는 하나이다. 신들의 종자도 하나이다.
        같은 한 어미에서 우리 [신과 인간] 모두가 존재를 이끌어 냈던 것이다."
                             (Stobaeus, Eclogae 2.116)

 

(3)  키케로의 종합 [19]

 

   사회철학에 인류의 단일성에 접근해가는  중기 스토아 철학자들의 경향은 서로 공통된 점이 많다.  그들의 작품이 온전하게 남아있지 않아서 우리로서는 그들의  사상에 접근하는 길이 쉽지 않으나, 그들 바로 후대의 사상가들이나  학자들은 그들에게서 공통되고 일반적인 사상을 뽑아 간추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키케로이다. 키케로가 도달한 세계시민사상은 고대 세계의 모든 발전을 한데 수렴하고 종합한 형태이다.

   먼저, 『법률론(De legibus)』에서 키케로는 타인을 향하는, 자연적인 애정으로부터 오는 감정적인 연대를 출발점으로 삼지 않고 인간 모두가 이성을 공유하고 공통되는 법률에 복종한다는 사실에서 인간 전부의  공통된 본성과 유대를 논한다. 선대의 포시도니우스나  안티오쿠스보다는 크리시푸스의 개념과 유사할 뿐더러 키케로 본인도 크리시푸스에게서 영감받았음을 시사한다.

 

     "여러 종류와 본성의 생물들  가운데서 유독 인간만이 이성과 사유를 갖추고 있으며 그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그것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그런데  이성보다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고
     사람과 신에게 공통으로 있으므로 인간이 신과 맺는 첫번 친교는 이성으로 맺어지는 친교이
     다. 신과 인간 사이에  이성이 공통된 이상, 그들 사이에는 올바른 이성이  공통된다. 그리고
     올바른 이성이 곧 법이므로, 인간들은 법에 의해서 신들과 맺어져 있다고 여겨야 한다. 그들
     사이에 법의 친교가 있는만큼 그들 사이에는 또한 [법]정의의 친교가 존재한다.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이 공통되므로 또한 같은 국가를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주 곧 이 세상
     이 신들과 인간들에게 공통된 단일한 국가라고 여겨야 한다."(Cicero, De legibus 1.7.22-23)

 

   고대로부터 그리스인과 야만인을 가르고 노예와  자유민을 가르고 남녀의 성을 가르고 심지어  도시들을 가르고 민족들을 가르고 부자와 빈민, 귀족과  천민을 가르던 사고방식에 대항하면서 인류의 단일성과 사해동포애를 진작시켜온 이 세계시민사상은 기존 사회의 집단이기심에 정당한 명분을 부여하지 않는다.

 

     "자기 부모나 형제에게서는 아무것도 빼앗지 않겠으나 여타의 동료 시민들에게는 다른 규칙
     을 적용하겠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자가당착이다. 그들의  입장인 즉 동료 시민들과
     는 아무런 본분의 끈도, 공동 선익을  위한 아무런 결속도 없다는 식이다. 이것은 사회의 일
     치를 완전히 붕괴시켜 버리는 자세이다. 그런데 동료  시민들에게는 올바른 원칙을 적용하되
     외국인들에게는  못하겠다는 입장도  결국은 인류를  한데 묶는  연대를 파괴하는  것이다."
     (Cicero, De officiis 3.6.28)

 

   인류의 단일성에 관한 이념이 키케로  사고에 얼마나 현실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는 미지수이지만 인류 보편성에 대한 사상은 그의 윤리철학에  심대한 영향을 남기고 있다. 특히 키케로에게서 humanitas 라는 용어의 착상과  발전이 중요하다. 이 단어로 그가 `인류'를 가리킨 것은 아니다. 그가 인류를 가리키는데 사용해온  단어는 따로 있었고(genus humanum) 인류의 단일성을 나타내기는 '인류  사'(communitas, societas generis humani)라는 어휘였다. 그에게서 humanitas는 'humanus인 인간'의 성품, 인간으로서의 일정한 기준에 맞갖은 언행이었다.

 

    "현자는 생각하기를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인간이라고 불리울 수  있지만 humanitas의 고유한  
    성품들에 숙달된 사람들(politi  propriis humanitatis artibus)만 참으로 인간이다."
                                                (Cicero,  De  republica 1.17.28).

 

   참 인간이 되는데 그리스인들이  설정한 기준은 일정한 인간 도시국가의 일원이고  그 공동체 생활에서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참 인간이 되는 키케로의  기준은 인류 전체와 연대성을 의식하는 사람이다: 폭군은 "비록 인간의 형상을  쓰고는 있지만 그의 잔학한 행동방식으로 인하여 가장  괴기한 짐승에 든다. "정의와의 결속이 없는  조물,  동료 시민들과 더불어, 그리고 어떻게든 인간 문명에 참여하지 않는 조물, 어떻게든 인류 전체의 한 부분과 결속하지 못하는  자(cum  omni  hominum  genere  nullam  iuris  communionem,  nullam  humanitatis societatem velit)를 어떻게 인간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De republica 2.26.48)

 

 

4.  후기 스토아 사상과 세계시민사상의 확산  

 

  후기 스토아 사상가로서는 우주 통치원리를 지상 국가에 반영해 보려는 꿈을 꾸면서 세계국가 이론을 상상하여  에픽테투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디온(Dio Chrysostomus: AD  40-112)을 꼽게 된다.

 

노예출신 에픽테투스(Epictetus:  ca.A.D.55-ca.135)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D.121-180)의 스토아  사상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의 사상은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황제의 기본시각을 깊이 좌우하였다. 둘이서 개진한 세계시민 사상과 개념 또는  용어(kosmos, polis, polites tou kosmou)가 곧바로 서구 근대 이후에  등장한 `인본주의'의 색채를 띤 것은  아니었고, `세계시민'이라는 용어가 필히 개념적 통일성을 담고 있지도  않았지만 인류의 사상 발전에 깊숙한 흔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20]   에픽테투스는 `세계의 시민'(polites tou kosmou)이라는 용어로, 우주를 통치하는 신의 경륜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 거기서 연역되는 바를 숙고하여 행동하는  인간을 지칭하고 있었다(Epictetus, Dissertationes 2.10.3). 그는 이어서 그 시민이라고 불리울 만한 본분들을 간추려 보이고 있다.  즉 세계시민 이념을 정의하고  학적으로 개진하는 일보다도 그것을  적용하는 일에 부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대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런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세계시민으로 의식하고 있었다: "안티니누스로서는 로마가  나에게 국가요 조국이지만, 인간으로서는 우주가 나에게 국가요 조국이다"(hos de anthropo ho kosmos [polis kai patris]: Meditationes 6.44). 그는 "최고 국가의 시민으로서"(ibid. 3.11.2), 전체  우주의 일원으로서, 인생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제반 사건을 관조하고  그 의미를 사색하는 일이 황제의 주된 관심사라고 언명한다. 다만  행동하고 살아가는 문제가 아니라 사색하고 관조하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던가 보다.

 

(1)  디온의 우주 국가(宇宙國家) [21]

 

   우주가 신과 인간의 거처라는  뜻에서 신과 인간의 공동체 또는 [도시]국가가  되는 것하고 전 세계를 인간과 신들의 사회적 조직체라는  의미의 국가로 만드는 것하고는 반드시 동일하지는 않다. 우주는 그 거창한 계획성  때문에 하나의 국가라고 불릴 만하다. 인간의 유기적인  정치조직과 유사하다는 사실에서,  디온(Dio [Cocceianus] Chrysostomus: AD 40-112)은  우주가 제우스라는 단일 군주에게 통치를 받고 있으므로 우주는 조직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논제와 관련되는 디온의 저작은, 에픽테투스에게서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서도 보게 되는 우주와 국가의 이 유비 문제를 해설한 연설문(Oratio 36: 일명 Logos Borysthenitikos)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주가 신들과 인간의  세계국가라고 하는] 이 이치는 인류를 신들
     과 조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이성을 구사하는 모든 존재를 단일한 이치로 포괄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공동체와 정의의 강력하고 해소되지  않는 원리를 이루기 때문
     이다."(Oratio 36.31)

 

스토아 철학자들이 우주를 하나의 국가로 보거나 설명하려는 의도가 그 도식에서 세계시민사상을 유도하려는 데에 있음을 디온은  솔직하게 피력한다. 이것은 "인류를 신들과 조화시키려는 목적"(Cicero, De  legibus 1.22-24)이라거나 "바로 이런 관점에서 우주를  두고 [도시]국가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Arius Didymus, apud  Eusebius, Praeparatio evangelica 15.15)는 중기 스토아 학자들의 견해를 담고 있다.

 

     "이것이 선한  공동체를 설립하려는 철학자들의 이론이다.  인간애가 넘치는 공동체, 신들과  
     인간들의 공동체, 법을 공유하고 헌법을  공유하는 공동체, 그것도 아무 사물에게나  개방   
    된 것이  아니라  이성과 지혜를  공유하는  존재들에게만  개방되는 공동체이다."
                                                                        (Dio, Oratio 36.38)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을 신과  인간으로 이루어지는 정치 공동체라는 스토아 이념과 통합시켜보려는 디온의 시도는 여전하다.[22]

 

     "혹자는 이런 식의  우주의 통치와 조직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그들은  온 우주를 제우스의
     집이라고 기탄없이 부르리라. 제우스가 우주 안에 깃든 모든 존재자들의 어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철학자들이] 제우스의 보다 중요한 역할을  내세워 이를 빗대어 말하듯이 우주
     를 제우스의 [도시]국가라고 하여도 된다. 왜 그런가 하면 `왕권[왕국]'이라는 것은 집안보다
     는 도시국가에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만인 위에 군림하는 자를 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라면 만유가 왕국처럼 통치된다는 데에도 동의하기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주가
     하나의 왕국처럼 통치된다고 한다면 우주가  정치적으로 통치된다고 하는 말도 부인하지 않
     을 것이며, 따라서 우주의 정치적  통치가 존재한다는 말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
     치적 통치'라는 말을 일단 허용한다면 우주를 [도시]국가라고 해도 굳이 마다하지 않을 것이
     고 국가와  아주 유사한  정부의 정치 형태를  갖춘 무엇으로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Oratio 36.35-37)
 
   이러한 우주관에 바탕을 두고서 디온은 정치공동체로서의 세계시민사상을 다음과 같이 개진한다. 도시국가(polis)란 무엇인가? "그들 말로는  도시란 같은 장소에 살면서 법의 통솔을 받는 사람들의 집단이다"(36.20). 이 정의에서 따라나오는 스토아 고유의 귀결을, 디온은 매우 현실적인 안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상 도시가 비록 신법에 의해서 통솔되는  완전한 공동체가 되지 못할지언정,  지상에서나마 적절한 균형을 갖추는데 필요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안목을 갖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신들이 서로  이룩하는 공동체들 말고 나머지  다른 공동체들은 오류에  빠져 정격(正格)을
     갖추고 있지 못하며, 신적이고  지복한 법의 지고한 의로움과 올바른 통솔에  비추어 본다면
     도덕적으로 사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목적을 위해서는, 총체적으로 부패한 공동
     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공정한  공동체를 본보기로 삼아 보충을 받기로 하자.  신들이 서로
     이루는 신들의 공동체야말로  순전하게 행복하다고 불러야 한다. 인간들에게서  신과 동일하
     게 칠만한 것을 헤아리고서 그대가  이성을 구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시킨다고 하더라
     도 [어디까지나 인간 공동체이다](Oratio 36.23)

 

과연 인간의 세계적 공동체의 형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는 문제에도 현실주의자로서의 감각을 잃지 않는다.

 

     "혹자는 만일 그 통치자들과 지도자들이 현명하고 판단력있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백성은 그
     들의 결정에 따라서 또 건전하고 법치적인 방식으로  통솔된다면, 그러한 공동체는 건전하고
     법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적어도 그것을 통치하는 사람들을 보아서도 정말 도시[국가]
     냐고 물을지 모른다. 지휘자가 음악가라면,  또 다른 사람들이 가락에 어긋나는 소리를 전혀
     내지 않거나 아주 가늘고 희미한  소리만 내면서 그를 따른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단체를]
     합창단이라고 불러야 하리라. 오로지 선량한 요소들로만 이루어진  훌륭한 국가에 대해서 아
     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과거에 온 사멸할 인간치고 그리고 장차 미래에  올 어느
     인간치고 [훌륭한 국가가 무엇인지] 개념할 수  없기 때문에 [앞서 말한 국가도 훌륭한 국가
     라고 불러야 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천상에 있는  지복한 신들의 국가가 되고 말  것이다."
                                                                     (Oratio 36.21)

 

(2) 에픽테투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세계인(世界人)

 

   디온에게서 보았던 우주 통치, 우주에서 하나의 통치  조직이 발견된다는 시각은 에픽테투스의 글에서는  더욱 선명해진다. 우주 국가가  이성적 존재재들의 거처로 삼은, 전세계라는 [도시]국가요, 거처(oikumene)인 이상 엄연히 하나의 공동체요 국가인 것이다.

   

  "이 우주는 하나의 단일한 [도시]국가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엮어지는 실체는 하나이다. 만유
     가 친구들로 충만하는데 일단은 신들로, 그 다음에는 인간들로 가득하며, 이들은 천성적으로
     서로 친하게 되어  있다."(Epictetus, Dissertationes 3.24.10-12)

 

    우주 국가 또는  세계 국가에 관한 에픽테투스의 언명을 살펴본다면, 그는  우주를 `이 거대한 국가'라고 일컫고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하지 않는다. 다만 우주에는 주인이 있어 만사를 적재적소에 안배하고(Diss. 3.22.1-4) 신은 행복하라고  만인을 창조하였고 평온하게 살아가게 배려해 준다는 섭리관을 내세우면서(3,24,2) 견유학파의 냉소적인 세계관은 받아들이지  말라고 청중을 가르친다. 에픽테투스는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그가 "나는 아테네인이다." "나는 코린토스인이다."라는 진술을 거부하고 "나는 세계인(kosmios)이다"라고 선언하게 만든다(1.9.1). 그리고 그러한 발언의 논거가 되는  것은 신과 인간들의 동일한 혈통(syngeneia)을 가졌다는  사실이다(1.0.1.). 인간들이 우주의 운행을 주의깊게 관조한다면 우주를 주관하는 최고의 통치는 신과  인간의 합작임을 누구나 직관할  것이다. 인간은 사실 이성을  구사함으로써  신과 결속되어 있고 신과 일치해 있다. 만일 우리가 신들의  혈족이라면 우리는 스스로 우주의 시민이요 신의 아들들이라고 불러 손색이 없다(1..9.1-6).

 

    "그대는 세계시민(polites tou kosmou)이요 그 한 부분이다. 그것도 예속된 부분 가운데 하나  
    가 아니라 지도적인 부분이다"(2.10)

 

   에픽테투스는 우주를 잘 정리된  국가로 상정하고 있으며, 삶과 죽음의 이치를  사람들이 도시를  들고 나는 정경으로 묘사한다. 따라서 세계시민은  전체(to holon)에 비추어서 사려하고 행동해야 마땅하다(2.10.4). "전체가 부분보다, 국가가 시민보다 인간에게는 더 큰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2.10.5). 전체 우주에 무엇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터이므로 우리로서는 우리 의지를 대자연과 조화시키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면 우리 의지에 상반되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거나 우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바가 안 이루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2.10.6; 2.14.7).

   에픽테투스는 일찌기 (키티온의) 디오게네스가 세계시민의 행동 귀감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온 세계를 자기 조국으로 여기던 디오게네스의 공적이 있다면, 동료  인간들을 대하는 태도와 신에게 복종하는 자세였다.  디오게네스의 위대함은 자기 가족에도 친구에게도  국가에도 매이지 않는 초연함이었으니, 자기가 어디로부터 이 모든 것을 받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진정한 고향이요 국가인 우주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도덕적 명상보다는 세계국가  이론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명상록(Meditationes)』에서 그는 "우주는 그 자체가 하나의 국가이다"(ho kosmos polis)라는 명제를 여러 증거로 입증해내고 있다.  우주를 단일한  세계국가로 보는 개념을 그는 두 노선에서  개진한다. 먼저 인간은 지성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거나  공통된 국가를 소유하고 있다고 전제해야 하는데, 스토아 학자들에게는 이 두 명제가 다 받아들일 만하다. 그 논지는 다음과 같다:

 

     "지성이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다면 이성도 그러하다. 이성에 힘입어 우리는  이성적 존재가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즉각 깨우치는 이성이  우리에게 공통되게
     있다면, 법이 우리에게 공통된 셈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시민들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
     리는 유기적인 공동체(politeuma)를 함께하는 셈이다.  그런데 우주야말로 유일한 공동 국
     가(politeuma)이며 온 인류가 이를 함께한다. 그러므로 우주는 하나의 국가이다"
                                                                        (Medi. 4.3.2)

 

   논의의 전제는 다음과  같이 논증된다: "이 공동  국가가 우리 지성과 이성 그리고  법에 대한 양식의 원천이다. 그런데 황제가 인류의 사해동포애와 더불어 세계국가  사상에 도달한 논변은 친교(koinonia)라는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인간은 그 본성이 사회적  목적(to oinonikon)으로  정향된 존재이다(7.55; 3.4.1; 7.5). 따라서 그가 이루는 친교는 인간이 태어난 고유한 목적이기도  하다. 친교야말로 이성적 존재들의 목표이다(4.16; 5.30; 11.19). 이성적 존재들은 보편적 자연에 의해서 타자를 위하도록 조성되었으므로 바로 이 점에서 인간과  인간의 친근과 유사성, 즉 그의 사회적 차원이 발생한다(8.26, 56; 9.1.1; 11.18.1).

   이처럼 인간은 사회  제도의 일부이므로 인간이 하는 행위치고 사회적  목적을 직간접으로  지향하지 않거나 연관되지 않는  한, 당사자의 인생이  분산되고 통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9.23).  그러므로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서는 공동선의 원리가 드러나야 마땅하다(6.30.1;  8.12; 9.16.31). 따라서 인간간에 이루어지는 협력은  대자연과의 조화를 도모하는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2.1; 6.14, 42; 7.13). 그러니까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의 사상에서는 인간들  간의 친교(koinonia)에 관한 원리가 잘 확립된 셈인데, 다만 그 친교가 어디까지나 합리적 이성을 갖춘  인간들 사이의 친교라 것이 중요하고 "합리적이고 사회적인 자연본성을 합리적이고 사회적으로 발휘하는 일"(6.14)이 중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합리성'과 `정치성'이 이어지고는 즉각 `정치적 인간'과 `사회적  인간'으로 이어지는 점을 유의하게 된다. 즉 인간들의 이성 자체가 필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인간들이 이루는 공동체는 세계국가이고 인류의 형제애는 지성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데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대가 무엇에 만족하지 못할 때에 그대는 다음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전
     인류와 맺은 혈연(he syngeneia anthropou pros pan to anthropeion genos)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피와  종자에 근거하지 않고 지성에 근거하는 친교  
     이다."(12.26)

 

   세계국가라는 관점에 있어서도 이성적 존재자들의 공동체는 일종의 몸에 비유하는데 각 지체들은 온전하고 단일한 유기체의 기능에 제각기 협력하고 있음이  관찰된다(7.13; 7.19). 따라서 사람이 타인들의 언행에 심히  불만족하거나 반사회적으로 처신하거나 인류로부터 배치되는 행동을 한다면 그는  마치 전장에서 잘려나간 손발처럼, 몸체에서  떨어져나간 지체와 흡사하다. 그는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합일성"으로부터 스스로 단절되어 나가는  셈이다(8.34). 아울러 인간의 공통된 본성인 이성에 반하여 행동하는 사람은 "우주 속의 암"과  흡사한 존재이며 우주의 이방인(xenos kosmou)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울러 국가 이성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은 추방자 내지 도망자 (phygas)이다(4.29).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 말미에 인생의 끝을 논한다:

 

     "인간이여, 그대는 이 거대한 국가의 시민이었느니라(anthrope, epoliteuso en te megale      
     polei). 그러니 그 기간이 5년인들 50년인들 무슨 상관인가? 대자연은 우리를 이 거대
     한 국가로  이끌어들였거늘 대자연이  우리를 그곳으로부터  쫓아낸들 서러울  것이 무엇인
     가?"(12.36).
     "내 영혼이여, 그대가  신들이나 인간들과 동료시민으로 살아가기 바라는가?  그들에게 결코
     책잡힐 일 없이, 그들을 결코 원망함이 없이 살아가기 바라는가?"(10.1).

 

   에픽테투스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세계시민  사상을 옹호하고자 하였는데 둘다 디온의 논리를 전제하는  입장에서 세계시민사상을 기초하고 있는 듯하다. 분명히  마르쿠스의 이론은 에픽테투스가 개진한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양자가 강조점과 역점이  다르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에픽테투스는  인간이 신과 혈족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마르쿠스는 인간이 지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과 인간은 친교(koinonia)를 위하여  태어났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둘 다 인간이 이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신념'에서 출발하지만 에픽테투스는  이성이라는 공동 소유가 인간을  신들과 결속시키고 우주를  통치하는데 협조하게 만든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비해서, 마르쿠스는  그 공동 소유에서 법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결론과 만인이 공동의 법을 소유한다고 할 정치체제가 우주 뿐이므로, 이성을  사용하는 존재자들의 공동체는 세계국가뿐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4.4; 4.29). 그리고 우주라는 이념을 인간 유기체나 단일한  국가라는 비유로 표상하려는 노력도 마르쿠스의 고유한 사색이다.

 

 

결   론  

 

   지금까지 인류의 단일성에 관한 개념이  착안되고 발전하고 확산하는 과정을 그리스의 견유학파에서 시작하여 스토아 후기사상까지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전통적인  분리와 선입견들은 모조리 깨드려지지 않고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도 보았다.  그 개념이 고대인들에게 사회구조에 대하여 혁명적 변혁을 부르짖게 만들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중기 스토아까지를 종합한 키케로의 경우, 고대 사회의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분리에 대한 그의 태도는 그러한 차별을  받아들이는 입장이지 항거하거나 철페주장이 아니다. 인류의 단일성에 관한 그의  서술은 사실이 그렇다는 묘사이지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사회개혁의 프로그램은 아니었으므로 여성에 대한  편견, 노에제도에 대한 인정에 있어서도  키케로는 당대의 일반 지성인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세계시민사상의 수용 자체가 인간이라고 불리울 가치가 있는 사람의,  본질적인 특성이요 성품으로 간주될 지경까지는 도달하였음을 키케로의 마지막 선언에서 알 수 있다.[23]   문화사적으로 말해서, 유럽 역사에서 세계시민사상을 향한 발걸음, 결국 스토아 사상으로 회귀하는 헬라화 과정은 수세기를 두고 줄곧 이어지면서 결코 중단되는  법이 없다. 뒤이어서 등장한 로마  제국은 그리스 문화를 존중하고 기반으로 삼으면서 그 위에 로마의 국제정치 프로그램을 실현시켜 나갔다. 로마 제국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세계시민적인 통합이 이루어지고 그러한 정치사회공간이 드디어 실현되는 징조가  보였다. 적어도 문화적으로 깨어난 인간들은, 문화적으로 개화된 민족들에게서는 모두가 서로 상통하고 접근하고 교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스토아철학자들이 관념적이고 세계국가라는  추상적인 상상에서 설정하고 글로 표현하던 세계시민사상이 문학가들의 대중적인 글과  구체 정치에서 드디어 현실 사회로 구현되는 것으로 의식하고, 철학상으로 `전인류의 공동 사회'라는  원리가 설정된다. 인류사상 최초로 유럽에  통합된 보편 문화(communis humani generis societas : Cicero, De officiis 3.6.28.8)가 출현한 것이다. 

   물론 세계국가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대까지 헬라화하고 로마화된  지역들만 소위 세계(mundus, oikoumene)로 인정되었기 때문만 아니고,  교양있는 사회 상류층만 철학적 소양을 통해서 세계시민사상을  이론상으로라도 수긍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추이로서 세계시민사상은 로마 제국이라는 정치제도와 그리스도교의 사해동포사상(christianopolis)을 통해서 서구인 전체에  미치는 대중운동으로 보급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서기 6세기부터 9세기에 이르는  민족대이동으로 서구 기존 사회가 다시 한번 재정리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즉 서기 2000년에 걸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 이론은 인류의 공통된  이념으로 확립되어 갈 것이다. 사실 로마 제국의 확장과 그 속민들이 이 제국에  순순히 굴종 하게 된 역사적  현상(pax Romana)은 세계시민사상의 급속한 확산에  결정적인 사회조건을 만든다. 그리고 대민족이동으로  로마 제국이 붕괴된 다음에 새로운 형태의  보편주의(普遍主義), 일체의 차별이 원칙적으로 무너지는  보편주의가 등장하는 바 그것은 그리스도교 세계시민사상이라는 새로운 물결이었다. 인류는 신성로마제국이나 그리스도교세계(Christentum), 추국국과 연합국, 국제연맹이나 국제연합, 그리고 유럽연합이니 하는 새로운 공동체들을 다양하게  만들어보고 모든 인간 조건을 초월하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었으며 새로운 비젼을 띠게  된다.

 

 

 

 

        각   주

[1] Werner Jager, Paideia. Die Formung des griechischen Menschen (Berlin 1954) I, p.412.
[2] 소피스트 엘레아의 알키다마스: (Aristoteles, Rhetorica 3.3 1406b 11): "신은 만인을 자유민으로 태어나게 만드셨다. 자연은 그 어느 인간도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
[3] Cf., H.C.Baldry,  The Unity of Mankind in Greek  Thought (Cambridge, 1965), esp. III. Socrates and the Fourth Century, 8. The Cynics (pp.101-112).
[4]  Antisthenes는 공언하기를  "현자는 자기 도시에서 살기는 살되 실정법에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고 덕성의 법에 따라서(kata ton tes aretes) 산다"(Diogenes  Laertius 6.11)고 공언하고, 디오게네스 역시 "그러므로 사람들은 무익한 수고를 하지 말고 자연에 따라서(kata physin) 하면 행복하게 산 것이 된다"(ibid., 6.71)고 하였다. 사회적 인습에 관해서 유의할 점은 무엇보다도 견유학파의 비조인 Antisthenes의 저작 중에는 『자유와 예속 (Peri eleutherias kai duleias)』이라는 작품이 있었다고 하며(6.16), 디오게네스의 제자  견유학파 Monimus는  노예였다고  전하고(6.82-83),  3세기의  견유학파  Menippus는  페니키아  후손의  노예였다(6.99- 101).
[5] 다음 세대의 크라테스가 남긴 싯구(DL 6.98)에 의하면 견유학파는 어느 도시든 자기 나라로 삼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한  나라도 내 성탑 내 지붕이 아닐세./  아니 온 천하의 도시며 집(pases de kosmu kai polisma kai domos)이 우리에게는 깃들어 살만한 곳이라네."
[6] Cf.,  Brendt  D.Shaw, "The divine Economy:  Stoicism as Ideology", Latomus  44(1985), 16-45;
T.Jacobsen,  ch.5:  "The Cosmos  as  a State"  in H.Frankfort et alii,  The Intellectual  Adventure  of Ancient  Man (London/  Chicago 1972),  pp.125-201;
H.C.Baldry,  "Zeno's Ideal State", Journal of Hellenic Studies 79(1959), 3-15; H.C.Baldry, Op.cit., pp.141-203;
M.Schofield, The  Stoic Idea of  the City (Cambridge 1991).
[7] 스토아 철학자들이 그리스 변방 출신으로  아테네의 정치사회로부터는 주변으로 밀리는 편이었음은 그들의 이름에 따라붙는 출신지명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Zeno Citieus(336-263 B.C.),  Aristo Chius(ca.320-250  B.C.), Herillus  Cartha giniensis (flor.ca.  260 B.C.),  Dionysius Heracleota (ca.330-250 B.C.),  Persaeus Citieus(ca.306-ca.243 B.

C.), Cleanthes Assos(331-232 B.C.), Sphaerus  Borysthenes (ca.285/265- 221 B.C.;  fl.ca.220 B.C.), Chrysippus Soloi  Ciliciae(ca.  280-207   B.C.;  282-206  B.C.),  Zeno   Tar sensis,  Diogenes  Babylonius (ca.240-152  B.C.),  Antipater  Tarsensis  Ciliciae,  Apollodorus  Seleuciensis, Archedemus Tarsensis, Boethus Sidonius (ca. 2C B.C.).
[8] 그들의 이름에도 한결같이 이방 지명이 붙어있다: Boethus  Sidonius(ca. 2C B.C.), Panaetius  Rhodius    (ca.185-109  B.C.),  Posidonius  Apameae  Syriae(ca.135-ca.51/50  B.C.), Epictetus Hierapolis (ca.A.D.55-ca.135).
[9]  제논의  후계자들(Persaeus,  Cleanthes,  Sphaerus)은   국가와  정치를  논하여 소위 『국가론 (Politeia)』을 집필하였지만,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도시국가에 관해서 책을  집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하나같이 넓은  판도의 왕국(basileia)을 염두에 두고서 정치철학을  논했다는 점도 유념할 만하다.
[10] 스토아들이 자주 인용하는 헤라클리투스 문전은 다음 단편들이다: "내가 설명하는, 상존하는 로고스에 관하여 사람들은 늘상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느니... 만유가  로고스에 따라서(panton kata ton logon) 일어나거늘..."(Heraclitus, in Sextus Empiricus,  Adversus athematicos 7.132 (Dies 1); "무릇 [인간들은] 공통된 [법도에] 따라서 살아야 하는데 로고스야말로 [만인에게] 공통된 것이  어늘(tou logou d'eontos zynou..."(ibid., 7.133); "나의 말을 듣지  말고 로고스의 말을 들으라. 만유가 [로고스 안에] 하나임을 (tou logou... hen panta einai) 인정하는 것이 현명하다."(Heraclitus, in Hippolitus, Refutationes 9.9.1).
[11] 그뿐 아니라 우주는 경험론상으로는 궁극적이기도 하다."우주(to pan)라는 것하고 전체(to holon)라는 것하고는  구분된다. 우주는 세계(ho kosmos)이다. 그런데  전체는 세계 밖에 있는 허공까지 내포하는 것이다. 우주는 유한하다. 세계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체는 무한하다. 세계 밖의  허공이 무한하기 때문이다."(SVF 2.522-524: Zeno, in Sextus Empiricus, Adversus mathematicos 9.322).
[12] 중기 스토아 크리시푸스를 조롱하는  투로 인용하는 플루타르쿠스의 글에서 이 명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이 확연하게 정립된다. "우주는 하나의  도시(국가)이고(ton kosmon einai polin) 별들은 그 시민들이다"(SVF 2.645: Chrysippus,  in Plutarchus, De communibus notitiis 34. 1076f).
[13] "우애라는 말은 삶에 소용되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친우들을 우리 자신처럼 대하는 연고이다."(Zeno,  in DL 7.124). Cf., Aristoteles, Ethica Nicomachea  8.1.6.:  "신전도 법정도 체육관도 필요없으리라"는(7.33) 제논의 발언은 "사람들이 우인이  된다면, 우인들 사이에는 정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발언으로 발전한다.
[14] 이것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AD 150-211/216)가 전해오는 스토아의 국가 정의와도  상합한다. "스토아 학자들은 말하기를 우주(ouranos)가 고유한 의미의  [도시]국가요 이 지상에 있는 도시들은 아니라고 한다. 비록 도시라고 불리우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릇 하나의 도시 또는 국민은 도덕적으로 선량한  무엇이요, 법에 의해서 통솔되는 (그것이 세련됨을 보여준다) 인간들의 조직 또는 집단이기 때문이다."(Clemens Alexandriae, Stromata 4.26).
[15]  Peter Coulmas,  Les citoyens  du  monde. Histoire  du  cosmopolitanisme (Paris  1995), pp.58-72:  Malcolm Schofield,  The  Stoic Idea  of  the City  (Cambridge,  1991), pp.104-111: Appendix A  : Zeno  and Alexander.  W.W.Tarn, "Alexander,  Cynics and  Stoics", American Journal of Philology 60(1939), 41-70
[16] Voltaire,  "Alexandre"  in  Questions  sur  l'Encyclopedie  par   des  amateurs  [1773], pp.145-150, cit. Peter Coulmas, op.cit., p.58..
[17] Peter Coulmas, Op.cit.: Ch.6  Byzance: un dieu, un empire, un empereur
[18]  Malcolm Schofield, op.cit., pp.74-84.
[19]  Baldry, op.cit.,  Ch.5 pp.194-203;  Brent  D.Shaw, "The  Divine  Economy: Stoicism  as Ideology", Latomus 44(1985), 16-45.
[20] Max Pohlenz, Die Stoa [Gottingen 1948] I,  341). G.R.Stanton, "The cosmopolitan ideas of Epictetus  and  Marcus Aurelius"  Phronesis  13(1968),  183-195; H.C.Baldry, op.cit.; Christensen, An Essay on the Unity of Stoic Philosophy (Copenhagen 1962); J.Bidez, "La cite du monde et la cite du soleil chez Stoiciens", Bulletins  de l'Academie  royale de  Belgique Classe  des Lettres,  5 ser.18:  7-9(Paris 1932), 244-249; P.A.Brunt, "From Epictetus to Arrian" Athenaeum 55(1977), 19-48
[21] Malcolm Schofield, op.cit., pp.57-92: 3. The cosmic city.
[22] 디온은 헤라클리투스가 "우주의 현질서를...도시국가로 비교한다. 다수의 사물들이 그 안에서 존재로 생겨나고  사라지는데, 그러한  행정의 배려와  질서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Dio, Oratio 36.30)라는 단편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주의 여건은 마치 하나의 정치사회처럼  탁월한 법률을  갖추고 최상으로  통치되고 있다고  하겠다."(Aristoteles apud Eusebius, Praeparatio evangelica, 15.14.2)는 발언을 연상시킨다.
[23] Cf., Bardy, op.cit., pp.201-203.

        연구자들을 위한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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