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m-1006.gif세계시민사상의 그리스도교적 연원:
      -세계화(世界化) 개념의 중세철학적 배경

 

                                                                                                          1997 중세철학 3 (3-68)

 

 서  론

 

        인간이 자기가 살아가는 일정한 정치공동체의 장벽을 넘어서서 세계시민(世界市民) 혹은 세계인(世界人)으로서 자기를 의식하는 계기를 사변적으로 언명한 최초의 사상가들이 고대 그리스 견 유학파와 스토아 철학자들이었으며 그러한 사상적 발아가 알렉산더 이후의 헬레니즘국과 로마 제국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거치면서 구체적인 이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음을 필자는 이미 논하였다. 그러나 인류 전체에게 사해동포를 가르쳐 대중의 심리적 공감대를 구현하기 시작한 것은 역시 세계의 대종교들, 특히 서구에서는 그리스도교였다. 유일신의 세계창조라는 교리는 차별없는 평등을 인류에게 일반화시켰고, 만민구원을 목표로 하는 선교 사명은 인간간의 모든 장벽을 원칙적으로 제거하였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조국 아닌 타향이 없고 타향 아닌 조국이 없다." 는 교부들의 말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은 지역국가의 국민된 의무를 다하면서도 현실국가를 초월하는 자세를 함양 시켜왔다. 중세에 이르러 교회와 국가간의 갈등 속에서 사상가들은 인류를 포괄하는 보편종교(토마스 아퀴나스) 내지 보편제국(단테)의 이상을 그려냈다. 

   본고에서는 그리스 견유학파와 스토아 학파를 세계시민사상의 원류로 전제하고서 그러한 사상이 중세의 그리스도교 세계(Christentum)에서 승계되고 헤브라이즘의 합류로 더욱 발전된 경위를 살펴보기로 한다. 주로 그리스 지성인 출신으로 스토아사상을 이어받아 헤브라이즘의 보편주의를 파악한 초대교부들을 약술하고, 이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을 개괄하면서 그의 보편주의(普遍主義)와, 8세기의 간격을 두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세계정부 암시 발언을 살펴본 뒤에, 중세인으로서 세계정부의 필요성과 그 철학적 논변을 본격적으로 개진한 단테 알레기에리에서 논의를 그치기로 한다. 사상 사적 고찰을 전제로 하므로 그 방법은 아무래도 문헌학적 연구가 되겠다.

 

        1.   초기 교부들의 세계시민사상 [1]

 

(1) 그리스도교세계(Christianopolis)와 스토아 철학 

   헤브라이즘의 유일신의 창조와 보편구원의 메시지를 간직한 그리스도교는 300년의 박해를 무릅쓰고 승리한 다음에는 로마 제국과 그 행정조직을 폭넓게 채택하였으므로, 이념상으로도 조직상으로도 사해동포애 또는 세계시민사상을 바탕으로 삼고 있었다. 교회는 보편주의 이념을 기반으로 하면서 정치적 영성적 권하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여일하게 권위와 보호를 행사하는 조직으로 의식하고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칙령과 국교화로 자칫 제국교회의 형태로 전락할 우려가 보였지만, 서로마제국의 때이른(?) 멸망으로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을 대신하여 국민과 인종의 여하한 구분도 고려하지 않고서 전인류에게 미치는 구원의 보편적 권한을 갖고 있노라고 자처하면서 제국이 행사하던 그대로, 특유한 보편성(katholikon)을 고수하였다. 


   세계시민사상의 철학적 요소들이 그리스도교 시대에 와서 괄목할만한 이론적 발전을 본 것은 아니지만, 세계시민사상은 여전히 역사의 추동력으로 존속하고 있었다. 종교적 영감에서 나온 보편주의와 평화주의가 서구에 낳은 지속적 결과는 통일된 그리스도교 문화Christianitas, populus christianus)의 형성이었다.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뒤 천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유럽은 사실상 문화적으로 국경과 민족과 왕국을 초월하는 단일사회가 된다. 각민족은 지역의 특수한 제도와 관습과 언어, 특별법과 정치조직에 지배당하면서도 그 이념 속에 이 보편성은 유지되었으니 모든 민족이 공통된 신앙으로 한데 통일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한 분 하느님에게 창조되고 한 분 구세주에게서 같은 구원을 받는 형제자매로 타인을 인식하고,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같은 교회의 품에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지각하였다. 사람들은 농토와 직업에 정착하고 군주들이 일정한 봉토를 다스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장벽이 되던 국경은 신앙인들의 눈에는 존재도 하지 않았다. 인간이 후세를 생각하면서부터 국가에 대한 소속이나 전통사회에 대한 소속은 절대적 의미를 띠지 못하였다. 

   스토아의 도덕관은 신과 세계(우주)를 바탕으로 하는 관념 위에 서 있었으므로, 그 시각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엄연히 우주의 한 부분이고, 지성을 가진 어떤 전체(= 신)에게서 사랑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인간의 노력, 특히 도덕적 노력은 이 전체적 존재와 합일하고 동화하려는 경향을 타고났으며, 자아에서 벗어나서 신을 향하여 오르려 하고 신을 모방하려 한다. 스토아가 철학의 요체로 삼는 `도덕'이라는 것은,  자기 양심 곧 자기 내면의 "로고스에 따라서 산다"(homologoumenos zen: Zenon/ Arnim II 39.5)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그렇다면 내면에서 로고스를 간직하고 있는 인간의 자연본성(physis)과 거기서 울려나오는 로고스(logos)가 동일한 것, 사실상 동의어로 파악된다.[2]

   다만 로고스라는 것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로고스, 우주의 법 등으로 파악되어 왔는데 비해서 그리스도교 교부(敎父)들에게 이르러서는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하느님의 말씀'(Verbum Dei)으로 파악 된다. 이렇게 해서 스토아에서 인간이 규범으로 추종해야 할 로고스가 각자에게 있는 내면의 로고스 (양심, 이성, 오성 등)냐 아니면 우주를 지배하는 보편적 로고스냐를 두고 개진해오던 토론을 교부철학은 종식시킨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으로서의 로고스는 역사의 일정한 시공간에 육화(肉化)한 보편적 로고스이기도 하므로 한 존재에게서 개체와 보편을 한데 수렴하고 있는 까닭이다. 

   또 교부들이 logos와 physis를 결부시키는 일도 관심을 기울일 만하다. 그들의 글에는 "도덕적이고 자연적이고[천성적] 이성적으로 행동하라"는 삼중부사어 문장이 자주 나온다(Clemens, Stromata 4.163.3).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사해동포사상 내지 세계시민사상에 접근함에 있어서 모든 인간이 로고스를 갖추었다는 인간본질론보다는, 중기 이후의 스토아들이 확립한 자연법론을 강조하여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만일 그리스도교가 자연법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도덕적 접근을 한다면, 현자가 못되는 평범한 인간들도 세계시민의 범주에 들어올 수 있어서 대중적인 세계시민사상을 확립하는 기틀도 마련되고, 나아가서는 주지론에 기울지 않고서 인간의 의지나 전인성을 살려나갈 수 있다.

   사실 자연법 개념의 채택은 이미 창조사상을 신앙으로 받들고 있던 그리스 및 라틴 교부들에게 세계시민사상을 일반화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자연법이라는 용어와 개념을 그리스도교 맥락에서 최초로 사용한 인물은 유스티누스(Justinus: +ca.165)이다. 모세법이라는 특정한 실정법 외에도 자연법이 있다는 것이다(II Apologetica 2.4; Dialogus. 11.2).

 

 교부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 fl.177)에 의하면 도덕법은 "공통적이고 물리적인 인식"을 담고 있으며(Res publica. 14.c.init., 24., 13), 인간에게 천성적인 이성(logos naturalis)을 신법과 동의어로 간주되고(Leges 3) 나아가서는 우주의 질서와 동일시된다.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자연법 이론으로 현실의 도덕적 명분과 의무를 더욱 강조하였고,  다만 그 자연법이, 실정법을 지닌 이교사회나 율법을 간직한 유대인들에게나 공히 구속력을 지니는 신법이라는 기조사상을 만들어 유대인들과 이교도들을 가르는 장벽을 극복하고 만민평등사상과 세계시민사상을 대중화하는 이론적 개념으로 삼았다.[3]

 

(2)  만민평등사상과 세계시민사상

   그리스도교가 당면하는 (적어도 지중해 연안)세계의 인류는, 모든 민족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려고 정복여행을 했던 알렉산더 대제 이후의 헬레니즘과 로마의 대제국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미리서 한 인류였고, 상류층 지식인들로부터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세계시민 사상을 소양받은 인류였다. 특정 국가들의 경계를 넘어서 세계라는 것이 열리던 참이었는데 이전의 철학적 정치적 바탕에 이제는 종교라는 대중운동으로 세계시민사상이 보급되고 확립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과연 그리스도교는 본질적으로 세계시민사상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정치 현실과 스토아 사상을 익히 알고 있던 교부들의 저술에서 `그리스도교 세계시민 사상'(christianopolis)이 뚜렷하게 감지되고 그 사상은 명시적인 언명으로 표현된다. 

   보편적 자연법이라는 이념은 일면으로는 모든 인간들 사이의 근본 평등을 전제하고 다른 일면으로는 세계 차원의 공동체를 함의하고 있다. 사실 교부들의 도덕 사상은 늘상 이 두 주제를 중심으로 개진된다. 바울로는 `이방인들의 사도'답게 인종과 신분을 근거로 한 모든 차별을 `원칙적으로' 폐지하였는데 이 문전이 그리스도교 세계시민사상의 기조가 된다.

 

   "이제는 유대인도 없고 헬라인도 없으며 노예도 없고 자유인도 없으며, 남성이랄 것도 여성이 랄 것도 없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이기 때문이다."(갈라디아 3,28: 참조: 로마  10,12-13; 2고린토 12,13; 골로사이 3,11)[4]

 

   그 이후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으면서 그리스도인의 "조국은 이 세상에서 멀다"(Pastor Hermae: Sim. 1.1)고 토로하는 구절에서 보듯이 일정한 혈연의 국가를 초연하는 자세로부터 시작하여 디오게 네투스서간의 명구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주의가 여실하다.

 

   "그리스도인들은 "각자가 자기 국가에서 체류하지만, 거류민과 같다. 그들은 시민으로서의 모     든 의무를 받아들이고 모든 부담을 이방인처럼 감수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모든 이역땅이 조국이요 모든 조국이 하나의 이역땅이다."(Epsitola ad Diognetum 5.5)

 

이 텍스트는 "그리스도교가 초래한 탈국가화 내지 초국가주의 이념의 효과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늘에 거처를 정하고 있으므로 지상의 소속 국가를 상대화하였고, 민족과 국가의 주권을 절대화하려는 경향에 반대하는 논거가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요컨데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사상에는 "탈세계적 세계국가사상"이 엿보인다.[5] 클레멘스(Clemens Alexandriae: 145/150-211/217)는 그리스도교도로서 "이 지상에 있는 도시들은... 비록 도시라고 불리우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다"는 문장을 구사하고, 더군다나 "우주(ouranos = 하늘)가 고유한 의미의 [도시]국가"(Stromata 4.26)는 표현도 남기고 있을 정도이다. 

   이것을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55/160-)는 더 명시적으로 다듬어서 "이 세계 전체는 만인에게 유일무이한[단일한] 집이다. 이 집에서는 이미 하느님의 빛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보다도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이교도를 위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빛을 발하고 있다."(De pudicitia 7.)는 구절로 언표하였고, 미누치우스 펠릭스(Munucius Felix: 2C-3C))도 "하느님에게는 이 세상 전체가 하나의 단일한 집이다."라고 하였는데(Octavius 33.1: in hac mundi domo) 이 굴은,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도 전세계가 곧 단일한 집이다"(Pontianus, Vita Cypriani 10.3)라는 문장으로 발전한다. 

   물론 이러한 사해동포사상에는 앞서 언급한 스토아 배경의 사변적 논지가 깔려 있다. 클레멘스는 로고스 사상을 전개하여 말씀은 "모든 사람들 위에서 빛을 발하시는 공동의 빛(Protrepticus. 88.2)이고, 인류는 "출생으로 같은 본성을 갖추고 같은 덕성을 갖추고 있다"(Stromata 4.58.4)고 한다. 그리고 교부들은 로고스의 보편성을 언급하면서도 인간들에게 선천적으로 부여된 천성적(naturalis) 평등, 곧 인간 본성에 근거한 평등을 적극 가르친다. 테르툴리아누스 역시 자연본성이라는 점에서 이교도와 그리스도인을 동등하게 다루고(communio naturae: Marcion.1.10; 4.16), "우리는 모든 사람과 함께 산다. 자연 본성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즐거움을 누린다, 미신만을 빼놓고. 우리는 모두가 평등하다, 규율만을 빼놓고. 우리는 세계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오류만을 빼놓고."(De idolatria 14)라면서 인류(人類)라는 종의 단일성을 굳게 믿었다. 그의 <호교론>에는 "우리에게는 공공사업(res publica = 국가)이라는 것보다도 낯선 것이 또 없다. 우리는 만인에게 오직 하나의 공화국이 있다고 인정하는 바이니 세계가 그것이다!"(Apologetica. 38.3)라는 구절이 나온다. 비슷한 시대의 인물 미누치우스 펠릭스(Minucius Felix)도 "만인에게 공통된 국가, 그것은 세계이다!"(Octavius 17.2)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2.   아우구스티누스의 새로운 세계관 [6]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읽는 독자들은 현실 정치사회를 묘사하는 그의 비관적인 입장에 접할수록 세계시민사상에 그가 과연 무엇을 보태어 주었을까 의심할지 모른다. 그에게 정치는 단죄받은 자들의 신비로운 도성을 특징짓는 무엇(per speculum in aenigmate)이자 경험상으로도 죄악의 신비(mysterium iniquitatis)를 확인시키는 무엇으로 등장하고, 바빌론도 로마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눈에는 신국과 대칭되는 표상으로 나타나며 지상 도성에 관하 고찰이 자꾸만 정치 국가에 대한 비판적 언급으로 옮겨가는 것도 생소한 바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모든 부면에서 인류를 하나로 포용하는 세계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면, 그리고 역사상 범례를 보인 로마의 평화(Pax Romana)도, 우리 눈 앞에서 번영하는 아메리카의 평화(pax Americana)도 결국 제국주의 야망을 결코 포기하지 못하였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므로, 철학하는 사람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지로부터 세계시민사상의 전혀 다른 명분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논자의 입장이다. 논자가 강조하려는 바는, 평화로운 정치적 공존이나  경제적 공동번영이라는 인류의 꿈을 구현함에 있어서 단순한 경제사회적 이해관계의 합치만으로는 세계공동체 실현이 불가능하고 거기에 각국민과 지성인들과 특히 정치가들의 탁월한 정신적 자질이 중요한 마당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종교철학적 지론이 보탬이 되리라는 것이다.

 

(1)   역사철학적 전기(轉機)

   우리가 논구하는 세계시민사상의 대중적 확산에 일조하는 사상적 계기와 역사관을 중세 그리스도인들에게 확립해 준 인물이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평화적 보편주의 사상을 철저하게 이론화한 인물이요 그의 『신국론(De civitate Dei)』이 그 정전에 해당한다는 것이 논자가 천명하려는 바이다.

   서기 410년에 있었던 비시고트족 알라릭의 로마 점령과 약탈은 로마 제국의 모든 시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기원전 390년 갈리아족의 로마 일시 점령 외에는 난공불락의 영원한 도시였던 로마의 이 참변은  역사적이고도 형이상학적 스캔달로 비쳐 이에 대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해명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당대 그리스도교 최고지성이던 아우구스티누스로서는 정치신학과 사회철학의 저서를 써서,  이번의 재앙과 파국은 그리스도인들이 조상전래의 신들을 저버린 천벌이라고 하는 이교도들의 공격을 논박해야만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10년의 사건을 인류사(人類史)라는 거대한 전망에서 바라보도록 지성인들을 초대한다. 인류의 구원사, 인류의 종말론적 드라마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일화(逸話)로 보도록 촉구하는 가운데, 그의 철학적 예지는 인류 역사를 조망하고 해석하는 안목들을 총정리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에서 세계는 더 이상 영원한 것이 아니고 신의 의지 행위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었으며, 세계와 인간을 창조한 신이지만 언제인가는 이것을 허무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창조의 운동이요 변화로 간주되었고, 부족한 데서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운동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 비추어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었다. 즉 역사는 신이 인간들에게 부여하는 사명이고 신이 인간들에게 던지는 도전장이었다. 

   고대사상에서 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사회적 본성'이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도 그리스-로마 전통에 입각하여 이 개념을 일단 수용한다. "인류의 본성에 있어서 사회적이라는 점보다 철저한 특성(genus...tam sociale natura)이 또 없다"(De civitate Dei 12.28). 인간은 천성적으로 사회적 존재요 관계적 존재요 동료 인간들과 결합하려는 자연적 성향이 있다. "인간은 어떻게든 자기 본성의 법칙에 따라서 타인들과 사회와 평화를 맺으려는 경향이 있다"(Ibid., 19.12).[7] 그러므로 사회성은 인간을 구성하는 존재론적 원리이며, 이 원리가 작용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갖가지 형태의 사회들을 모색하게 만들고, 온갖 갈등과 전쟁의 와중에서도 타인들과 평화를 추구하게 만든다.

   인간의 사회성이라는 자연스러운 성격과 가족에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으로 보아서 정치는 정당한 생활 상태(status vitae)이지만, 현실 영역의 정치사회는 죄의 흉계가 엄연하게 미치는 영역(1.1: "여러 민족의 지배자이면서도 바로 그 자신이 지배욕(dominandi libido)에 의하여 지배당하는 세상 도성")임은 부인할 길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이러한 정치적 악을 해소하는 처방은 정의(正義)이다. 정의가 없이는 공화국이 통치될 수 없다(sine sum ma iustitia rem publicam regi non potest: 2.21).  아우구스티누스는 먼저 키케로의 문장을 인용하여 국민을 "온갖 종류의 모임이나 군중이 아니라, 법[정의]에 관한 공통된 인식과 공동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연합된 결사체"(2.21)[8])라고 정의한다. 교부의 날카로운 눈에는 전세계를 지배하고 정복하여 통치하고 있는 로마의 제국도 강도집단과 다를 바 없었다.[9] 그리하여 참다운 정의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는 하느님 도성뿐이라는 암시가 나온다. "참다운 정의는 그리스도께서 창건자요 통치자가 되는 그 공화국에서뿐이다"(2.21). 

   그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지상에서 목격하는 민족 국가들은 만인의 평화로운 삶을 궁극적으로 보장하는 진정한 국가라고 불리우기도 힘들고 그러한 집단이 정치 본연의 사명을 결코 구현하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새로운 정의에 의하면 국민이란 "사랑할 대상에 대해서 서로 합의함으로써 한데 뭉친 이성적 존재들"(19.24)이다.[10] 역사상 현실로 구현되는 일이 결코 없는 법정의(法正義)에 대한 공통된 인식(iuris consensus) 대신에, 인간들이 사랑할 대상에 대한 합의(concors dilectio)가 국기(國基)를 이룬다는 착상이요 다시 말해서 정의 대신에 사랑이 국민을 구성하는 근본이 된다. "두 사랑이 있어 두 도성을 이룬다"(fecerunt itaque civitates duas amores duo: 14.28)는 유명한 명제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2)   아우구스티누스의 세계시민사상

 

① 두 도성의 원리 : 사사로운 사랑과 사회적 사랑
   우주의 기원과 악의 발생, 그리고 선과 악의 싸움이 『신국론』 후반부의 핵심 주제들을 이루면서 인간본성에 대한 심원한 통찰과 인간 역사에 대한 현실적인 안목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리스도교 창조설화(創造說話)에 의하면, 신은 아담에게 어떤 계명을 내렸고 아담은 그것을 위반하였다. 인간을 잡아당기는 중력(amor meus pondus meum)이 하느님 사랑(amor Dei)과 자기 사랑(amor sui)으로 갈라지는데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심원한 신비이고 인간 각자와 인류 전체는 삶의 매순간, 역사의 매순간을 이 신비에 의거하여 살아간다. 인간의 단일한 영혼 속에, 각종 사회를 이룩하는 인류의 집단적 의지와 제도 속에 두 사랑이 자리잡고 쟁투한다. 그 쟁투는 개인적 집단적 탐욕의 중력(pondus cupiditatis)을 따르느냐, 타자와 나누려는 사랑의 중력(pondus caritatis)을 따르느냐에 따라서 역사적이고 사회적으로든 종교적으로든 결과는 구원이거나 멸망이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온 인류를 마치 한 사람처럼(totum genus humanum tamquam unum hominem: De diversis quaestionibus 83 q.58) 세웠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에서도 두 사랑, 두 시간이 작용하고 그에 따라서 두 도성이 존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변증법이 인류 사회의 역사도 지배한다. 결국 인류는 집단적 이기심(利己心)과 위타심(爲他心)으로 해서 둘로 갈라진다. 인간의 신비는 결국 인류 전체의 신비이니 이를 해결하는 방도 역시 똑같이 전인류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지금은 두 도성이 혼재하고 인간적이자 신적인 역사, 역사적이면서도 초역사적인 드라마가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신을 향해 가거나 인류고유의 목적을 망각하고서 자기 자신을 향해 치닫거나 한다. 결국 세상의 역사는 두 사랑의 갈등의 역사이다(14.28). 아시리아와 로마 제국(바빌론과 로마)은 지상국의 가장 위대한 표지로 꼽힐 만하고 성서에 이상적으로 묘사되는 예루살렘은 신국의 표지로 삼을 만하다

   두 도성, 하느님 나라와 지상 나라의 토대 혹은 동력이 `사랑'(amor)이므로,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인류의 전체 역사는 두 도성으로 환원되고 두 도성은 실존적 자세에 입각한 두 인간 유형으로 환원되며 두 인간은 두 사랑으로 환원된다. 그리고 두 사랑은 현실 세계에 대한 두 가지 자세로 드러나는 것이다. 『신국론』만을 보면 두 사랑이 종교적 시각에서만 구분되는 듯하다.

 

   "두 가지 사랑이 두 도성을 건설했다. 하느님을 멸시하기까지 이르는 자기 사랑이 지상 도성을  만들었고, 자기를 멸시하면서까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천상 도성을 만들었다"(14.28).

 

   하지만 사회정치의 근본원리로서의 사랑이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차운에서 그치지 않음을 아우구스티누스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다른 저작에서 그는 기실 두 도성의 기반은 '사사로운 사랑'(amor privatus)과 `사회적인 사랑'(amor socialis)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부연한다.

 

   "두 사랑이 있으니 하나는 순수하고 하나는 불순하다. 하나는 사회적 사랑이요 하나는 사사로운 사랑이다. 하나는 상위의 도성을 생각하여 공동의 유익에 봉사하는데 전념하고, 하나는 오 만불손한 지배욕에 사로잡혀 공동선마저도 자기 권력하에 귀속시키려는 용의가 있다. 하나는  하느님께 복속하고 하나는 하느님께 반역한다. 하나는 평온하고 하나는 소란스럽다. 하나는 평화스럽고 하나는 모반을 일으킨다. 하나는 그릇된 인간들의 칭송보다는 진리를 앞세우지만 하나는 무슨 수로든지 찬사를 얻으려고 탐한다. 하나는 우의적이고 하나는 질시한다. 하나는 자기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도 바라지만 하나는 남을 자기에게 복종시키기 바란다. 하나는 이웃을 다스려도 이웃의 이익을 생각하여 다스리지만 하나는 자기 이익을 위하여 다스린다. 천사들로부터 시작해서 한 사랑은 선한 자들에게 깃들고 한 사랑은 악한 자들에게 깃들어서 두도성을 가른다."(De Genesi ad litteram 11.15.20).

 

②  인류보편사회(universa societatis mortalium)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간 사회의 보편적 차원을 제시한 것은 아마 스토아 철학보다도 성서였다. 성서에 의하면 인류가 한 창조주에게서 기원한 한 조상에서 유래한다는데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이것이 신이 인류가 "자연본성의 유사성에 의해서만 아니라 혈연에 의해서"(non tantum inter se naturae similitudinem vero etiam cognationis affectu: De civitate Dei 12.22) 하나되기 바랐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혈연의 애정이 "평화의 사슬로 묶이는 합심하는 일치"(in unitatem concordem pacis vinculo: ibid., 14.1)에로 모든 인간들을 이끈다는 것이다. 계시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간의 이 존재론적 본성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어 주고 거기에 본성론에서 그치지 않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신의 부성(父性)을 토대로 인간의 유대, 사해동포사상을 대중적으로 보급하였던 것이다. 스토아 철학 이래로 서구사상이 추구해오던 인류의 단일성과 세계시민 의식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뚜렷한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셈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류를 신에게 창조된 단일한 조상으로 유래하는 집단으로 보고, 단일한 본성의 유대로 한데 묶인 무리(unius tamen eiusdemque naturae quadam communione devincta: 18.2)로 간주하여 신의 부성(父性)으로부터 인류의 사해동포애를 이끌어낸다. 인간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용인하지 않는 그리스도교 교리는 대중들을 설득시킬만한 평화의 진정한 토대가 된다. 신의 통치영역이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들 가운데" 미친다는 의식으로 성서 전거와 스토아 전통에 의거하여 만인이 신의 자녀요 평화를 누릴만한 형제들임이 분명해진다.


   우선, 천성적인 인간 사회성은 가정(domus), 도시국가(civitas vel urbs), 그리고 세계(orbis terrae)라는 세 차원에서 엄연하게 실존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사회의 세계적 차원을 명시하고 있다.

 

   "도시 또는 국가(civitas vel urbs) 다음에 오는 것이 인간 사회의 셋째 범주인 세계(orbis terrae)이다. 세계는 넓으므로 그만큼 [평화에] 위험한 일도 더 많다. 마치 넓은 바다일수롣 더 위험한 것과 같다. 이 세계에서는 우선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분리된다."(19.7)

 

   아우구스티누스는 '종'(種)으로서의 인류라는 시각에서 문제를 논하므로 모든 전쟁을 단죄하게 되는 듯하다. 그리고 "도시 또는 국가 다음에 오는 것이 인간 사회의 셋째 범위인 세계다."라는 문장은 그 나름의 세계시민사상을 피력한 것으로, 지상 사회의 목표는 평화라는 것이 이 교부의 지론이므로 평화의 국제적 차원을 고려한다면 세계시민사상에 입각한 세계국가를 염두에 두었을 만하다.

   "죽을 운명인 인간들은 전세계 각지에 흩어져서 사회를 이루었다. 그들은 사회마다 지리적 환경이 많이 다르며, 각각 독자적인 장점과 성공을 추구했지만, 근본이 같으므로 상호간에 일종의 동지적 유대가 있었다."(18.2).

 

(3)   아우구스티누스 정치철학의 현실주의[11]

   그렇지만 『신국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세력자들 사이의 당쟁과 사회의 정치적 긴장과 열강의 세력 경쟁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스토아를 위시한 서구 고전시대의 정치론은 오히려 도시국가의 질서와 정의를 비교적 단순하게 논하여 인간의 이성(理性)이 만사를 합법적으로 처리할 것이고 사회생활의 비합법적 요소들을 이성의 지배하에 장악하리라고 전제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통찰력은 그리스적 합리주의보다는 헤브라이즘의 인간관에서 기인한다.  창조론에 근거하면서도 개인과 사회에 만연한 악의 현상에 깊은 통찰을 하다보니까 제차원에서 인간사회를 위협하는 악의 실재와 심각성을 통찰하였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정치철학의 위대한 착안은 인간의 자연본성이나 합리성에 세계시민사상의 기반을 설정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개념에서 그 가능성을 예견하였다는 점이다. 인류 공통의 인간성(스토아)이나 인류 공통의 이성(근대 계몽주의)이 세계국가를 담보한다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인류가 공통된 인간성을 지니고 있지만 제각기 상이한 언어들로 이야기하는 인류의 현실도 마주보아야 하며, 언어가 안 통하면 차라리 짐승과 더 잘 통하는 경험으로 미루어(신국론 19.7), 사회를 하나로 묶는 공통의 언어적 윤리적 문화의 힘들이 궁극에 가서는 분열적인 성격을 띤다는 사실을 간파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혜안은 세계시민사상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여지껏 설파하지 못하던 교훈이었다. 

   그가 말하는 신의 도성 또는 신국은 자기사랑보다는 하느님 사랑, 사사로운 사랑보다도 사회적 사랑이 지배한다. 인간의 자기중심이 자연적이고 일반적인 경향이라면, 아우구스티누스가 볼 때에, 신중심은 인간 본성에 맹종 않고서 초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자아보다도 신을 향하는, 자연적이 아닌 어떤 움직임이다. 인간 행위에 대한 성서적 근거에서, 인간 자유의 타락을 내세워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본성 자체를 규범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고도 사회문제를 논할 수 있었다. 그는 자연질서. 자연법칙을 세계시민사상의 기반으로 삼지 않았다. 자연이라고 하면 신의 불변적 규범에다 역사적 규범이나 사회구조를 맞추어 넣고 만다. 역사적으로 죄악에 점철된 사회와 인간 개인의 굴절된 실존을 관찰하면서 그래도 그는 역사적 삶을 이끌어가는 어떤 합리적 질서를 상정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연법론을 피하려 했던 의도가 충분히 이해되는 까닭은, 인간의 자유를 심각하게 궁구한 철학자로서  인간행위와 사회조직에 자연법칙과 똑같이 일정한 형식이 고정되어 있다는 관념(결정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사회철학의 특성은 그가 인간사회에 이상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 개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인간, 역사의 모든 부침에서 인간 정신은 한 기능이지 결코 인간을 지배하는 주인은 아니라고 간파한 데에 있다.

 

        3.   토마스 아퀴나스와 세계국가

 

(1)  중세  그리스도교의 보편주의[12]

   세계시민사상의 기본 요소인 보편주의와 평화주의는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에 활발하게 나타났고 그 뒤로 세계 진보의 활로를 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교의 단일성,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선교]사명, 세계 군주로서의 교황 혹은 황제(monarchia universalis, imperium mundi), (십자군 전쟁이나 래판토 해전에서와 같이) 그리스도교 세계의 존립을 위협하던 세력에 대항하는 유럽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단결, 전쟁 중에도 종교적 명분에 의한 휴전(pax dei, treuga dei), 국가간 분쟁을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등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에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이 빈번하게 다루던 소재였으며, 신에게 드리는 순종과 신과의 친교 내지는 유대가 그 기조 동기가 되고 있었고 적어도 그리스도교인들을 대상으로 해서는 실천적으로 세계시민사상이 구현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세계의 그리스도교화와 그리스도교의 세속화는 병행하기 마련이고 바로 여기서 보편주의 문명이 발생하여 르네상스의 세계시민사상 부활을 초래한다. 초현세에 관한 새롭고 단일한 교의에 대한 신봉, 신을 향하는 사랑의 계명, 신 안에서 타인들을 향하는 사랑의 계명, 이것만으로는 단일한 그리스도교 사회를 결성하는데 충분하지 못하였다. 독립적으로 산재하던 유럽의 여러 국가와 민족들에게 그리스도교가 침투하고 지역에 주교 통치의 속주들이 확립되고 군주들이 개종하면서(496년의 Clovis의 개종) 교회는 현세일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국가가 생각지도 감당하지도 못하던 자선사업, 빈민 구호, 사회로부터 보호를 못받는 추방자와 범죄인들의 보호에도 흥미를 보인다. 이어서 지방을 통치하는 주교들의 권위가 확립되면서 지역사회의 정치문제에도 개입하고 법정의에 관해서 그 종교적 권위를 행사한다. 이처럼 교회가 지향하던 사회적 문화적 통일은 다차원적인 것이엇다

   먼저 공간적 확대가 시도되는데, 그리스도교가 미치는 전영역에 평화를 확립하여 통일을 모색하는 일, 그렇게 이루어지는 사회를 그야말로 `세계'라고 파악하게 만들려는 (제국들에서 흔히 시도되는 개념) 시도가 나온다. 두번째는 그리스도교 사회에 대한 유기체(corpus mysticum christianorum) 개념의 확립으로, 그 유기체를 구성하는 사람들과 영혼들을 돌보는 일을 우선시하면서도, 아직 세례받지 않거나 그리스도교를 모르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도 암묵적으로는 그 대상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 하였다(ut omnes unum sint). 즉 그리스도교의 선교와 사목 목표 또는 대상이 전인류였으므로 보편적 대상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도 정치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신적 신앙공동체임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다. 이 점은 스토아 학자들이 세계국가를 구체적 정치사회로 생각하지 않고 막연한 정신사회로 여긴 것과 다르지 않으니, 그리스도교 역시 로마 제국의 체제를 그 통치 구조에 흡수하면서도 세상의 지배가 목적이 아니었으며 그러면서도 지상에 평화를 도모하는 일에 부단히 관심을 기울였다.

(2)  인간의 정치적 차원 [13]

   이러한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34-1274)의 정치철학적 공헌 하나는 정치를 종교로부터 근본적으로 분리해내어, 정치활동의 자연적 차원과 정치공동체의 본연의 위치를 확립해준 점에 있다. 네로 황제 이후 300년에 긍한 박해를 당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계, 구체적으로는 로마 제국이 하느님과 맞서는 어떤 세력으로, 어둠으로 간주되기 시작하였고, 비록 하느님이 창조한 선한 세계이지만 신앙을 이유로 처형당하는 사람들의 눈에 이 세계는 죄로 믈들어 있는 세계로 비치게 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교회 측에서는 인간을 시민(civis)으로 간주하지 않고 신도(fidelis)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태도를 취하였으므로, 만약에 종교가 정치세력을 대행하면서 사회를 지배하는 즈음에는 시민은 없고 신도만 남게 된다. (그리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서구에서는 이런 시각이 거의 10 세기 동안 지속된다.) 그리하여 중세인들은 마치 교회 공동체의 품 속에서 한데 뭉친 사람들로 이해되고, 사회라는 공동체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사조에 대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그리스도교 우주론에 응용하는 일을 과업으로 삼았으며, 자연(본성)본위의 사고에 입각하여 국가와 인간에 대한 중세 사상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자연의 산물로서의 국가관을 토마스는 자기 정치철학의 근간으로 삼았으며,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받아들이고 토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animal sociale)이라는 정의를 보탠다. 인간 행위 전반을 '정치적'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여 사고하는 일은 새로운 정신적 범주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구 고중세인들이 세계시민사상에 의거하여 꿈꾸어 온 인류의 공존 형태를 토마스 아퀴나스는 세계국가라는 구체적 차원으로 시사한 바 있어 우리의 논의에 괄목할 만한 이론적 발전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우리로서는 본고에서 토마스가 "전세계 공동체 communitas  totius orbis: Questiones disputatae de potentia q.5, a.6)"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경위만 간단하게 살피는 것으로 그칠 것이다. 

   토마스에게 우선 "국가는 단지 인간들의 모임에 불과하다"(civitas est nonnisi congregatio hominum: Sententiarum 4, d.37, q.2, 1). 시민(civis)과 신자(fidelis)를 구분하고서 국가는 인간, 즉 시민만을 위한 것이라고, 국가의 고유한 뿌리와 작용은 교회의 여하한 권위와도 하등의 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국가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산물이고 그 자연적 본질에 본래부터 내재하는 목적, 즉 구성원들의 복지와 안녕을 추구한다고, 이 목적은 국가가 (종교로부터) 독립적이고 자급자족할 수 있을 때에만 보장된다고 단정하는 세속적 사고를 폈다. "시민이란 간단하게 말해서, (종교적 동기에서가 아니라 상식인의) 사려와 판단력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이다"라는 정의에도 자연주의 색채가 분명하다.[14]

 

(3)  세계 국가에 대한 토마스의 암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정치공동체의 존재명분으로 삼아온 평화(平和)를 삼중의 의미에서 보아 하느님과의 종교적 평화, 자신과의 도덕적 평화, 그리고 타인들과의 사회적 평화를 꼽는다. 그런데 토마스에게 있어서 "평화 그 자체는 하나의 덕성(德性)이 아니고 오직 사랑이라는 덕성에서 오는 성과(成果)"(Summa theologiae II-II, q.29, a.3-4)이듯이, 평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거나 가치가 아니라 그 명분과 목적은 정치적 통치이며 사회적 친교이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영원한 생명에로 정향(定向)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오성(悟性)의  평화이면서 또한 외적인 평화이기도 하기 때문에 참되고 완전한 평화이다. 그 대신 세상의 평화는 현세적 번영에로 정향되어 있다."(Super Evangelium Matthaei 10.fin.)

 

 . 실제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개진하는 국가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빌려 '완전 사회'(civitas quae est perfecta communitas: e.g., Summa theologiae I-II, q.9, a.2 co.))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로서는 국가의 기원과 목표를 제시할 따름으로 다만 '자급자족'(autarkia)이라는 척도에서 국가를 '완전 사회'로 다루고 있다.[15] 토마스 역시 정치 조직의 목적을 규정할 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따른다.
 
   "인간 개인이 가족의 일원이듯이 가족은 국가의 일부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론> 1.1에 의하면 국가는 완전한 사회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선이 최종선은 아니고 공동선에로 질서  지워져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가족의 선도 완전 사회인 단일 국가의 선에로 질서지워져 있다."(S.Th. I-II q.90, a.3 ad 3)

 

   그런데 『제후통치론(De regimine principum)』에서는 토마스가 민족국가들이 태동하던 중세후기의 사회상에 준거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시국가론을 넘어선다.

 

   "사람이 혼자만으로는 생명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감당하는데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집단으로 살아야 하므로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감당하는데 충분하면 할수록 그 사회는 더 완전하다고 하겠다... 한 가족의 충족이라는 것은 자녀를 키우고 그와 유사한 것들을 마련하는 자연적 행위에 있는  데, 한 마을에서도 그것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 자연적 행위가 있다. 도시에서도  생활의 모든 필요에 대해서 완전한 공동체로서 그것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연적 행위가 있다. 한 지방은 함께 싸우고 적에 대항해서 서로 도와야 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더욱 크다. 그리하여 완전한 사회를 통치하는 인간은 탁월한 의미에서 군주라고 불리운다."(1.1)   여기서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서에 등장하는 도시국가(polis, civitas)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완전 사회'(perfecta communitas)가 될 수 없다는 토마스의 암시가 분명해진다. 주변 영토와 동맹국가들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방어도 할 수 없는 것이 도시국가이고,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국가의 개념은 변해 왔는데 그가 말하던 자급자족의 국가는 지금과 너무도 차이가 나므로 『제후통치론』에서 토마스는 자급자족이 과연 무엇인지 규명한다. "사물이 고귀한 그만큼 그것은 자족한다. 무엇이든지 타자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하위의 것이다."(Ibid., 2.3).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완전 사회'이면서 타자의 도움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정치조직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토마스의 『마태오 복음서 주석(Super Evangelium Matthaei)』을 보면 도시국가보다 외연이 넓은 주(州 provincia)의 경계를 다시 넘어서는 정치조직을 염두에 두고서 고찰을 한다. 또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보았듯이, 토마스도 평화의 필요성에 입각하여 도시국가보다 광범위한 정치공동체, 도시국가보다 완전한 공동체를 상정하여 일단 왕국(regnum)의 개념에 도달한다. 토마스는 평화를 담보하는 지역사회의 정치단위를 공화국(societas reipublicae: S.Th. I-II q.10, a.5 co.)으로 보기도 라고 왕국(communitas perfecta civitatis vel regni: S.Th. II-II q.5, a.1 co.)으로도 지칭한다.

 

   "공동체는 삼중적이니 가족과 도시와 왕국이다. 가족은 공동 행위가 이루어지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거기에는 삼중 결합이 있으니, 부자, 부부 그리고 주인과 종이다. 도시 공동체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단지 필요한 물건들로만 한다면 도시는 완전한 공동체이다. 세번째 공동체는 왕국인데 완결된 공동체(communitas est regni, quae est communitas consummationis)이다. 적의 두려움이 있을 적에는 도시로서는 스스로 존립할 수  없으며, 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여러 도시들의 공동체가 있어서 왕국을 이루어야 한다."(Super Evangelium Matthaei 12.1)

 

   그런데 완전 사회의 핵심은 평화의 보장이므로, 토마스의 지론대로는 스스로 시민들에게 고전적 의미의 평화를 보장 못하는 공동체는 완전 사회가 아니요, 그렇다면 앞의 텍스트에서 왕국을 '완결된 사회'(communitas consummationis)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토마스의 의중에는 중세에 목도하던 왕국 보다 훨씬 넓은 규모의 정치공동체가 자리잡고 있음에 틀림없다. 현실 정치에서 도시국가나 왕국이 적국의 침략으로나 내란으로 멸망하는 일이 있으므로, '완전 사회'는 결국 타자의 도움을 일체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 즉 스스로의 힘으로 평화로운 사회일 것이며 자체의 의지와 자원만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런 사회 이외의 여하한 사회도 잠정적이고 불완전한 권력조직일 수밖에 없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한, 자족하는 사회일 수가 없다. 여기서 토마스가 세계공동체를 개념이라도 하게 된 평화관은 비록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가 초래한 평화가 어느 특정 지역이나 왕국의 평화가 아니라 '전세계의 평화'(pax totius mundi)이다.

 

   사회를 통치하는 권력이 "무제한한 권력을 갖는다면 그만큼 전세계의 평온(ad tranquilitatem . totius mundi)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통치행위를 수행하게 된다."(Sententiarum 2, d.10 3, 3)

 

   이것은 결국 토마스가 모든 국가의 흥망성쇄를 초월하는 세계국가 내지는 세계정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암시이다. 물론 토마스로서는 세계국가라는 것을 당장 실현가능한 정치 조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인용하면서 전세계적 차원의 인간사회(universa humana societas: S.Th. I, q.10, a.2)를 언급하거나 전세계 공동체(communitas totius orbis: Quaestio disputata de potentia q.5, a.6, ad 3)를 발설할 따름이다. 『명제집 주석』에서도 교회의 위계를 논구하면서는 왕국을 초월하는 `세계 공동체'를 언명한다. 비록 본격적으로 세계 공동체를 논하지는 않지만 지나가는 말로라도 분명하게 도시국가, 주, 왕국에 대한 상위의 정치 단위로 세계 공동체를 언급한 것이다.

 

   "단일 주교와 교황 사이에는 다른 품계들이 있다. 마치 한 주 공동체가 도시 공동체를 내포하고 왕국이라는 공동체가 주 공동체를 내포함과 같이, 그리고 전세계 공동체(communitas totius mundi)가 왕국 공동체를 내포함과 같이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가 서로를 내포하면서 만  들어지는 품계들이 있다."(Sententiarum 4. d.24., q.3, a.2c)

 

   국가론에서 토마스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다른 점은, 도시국가는 도시에 필요한 것마저 스스로 자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 요건이 변화함에 따라서 국가의 규모나 역할이 달라질 수 있음을 현실주의자답게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한 시점에서 완전사회였던 국가도 다른 시점에서는 불완전한 정치 공동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적어도 토마스는 세계국가의 출현을 거부하는 자세는 아니었다. 이에 대한 방증으로 먼저, 토마스는 인간의 관심이 자기에서 시작하여 공동체로 확산하다 결국 전인류의 안녕과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면서 세계적 차원의 사회문제를 염두에 두도록 축구한다.

 

    "인간은 자연본성상 자기 자신만을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속하는 공동체의 상태를 보살  피는 존재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란 가정, 국가 그리고 심지어는 전세계 공동체(communitas  totius orbis)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관심은 양편에 다 미쳐야 하느니, 자기 인생의 목적만 아니라  

    세계의 목적(finis totius mundi)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Quaestio disputata de potentia q.5, a.6, ad 3)

   두번째 방증은, 법률론에서 여하한 정치공동체도 인정법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확대하여, 막연하게 인류 전체를 지배하는 자연법 내지 도덕법을 논구하지 않고 그 자연법을 구체화하여 인류전체에 실정법을 미치는 정치공동체를 암시하고 있다.

 

   "법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법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간의 방자함이 제어되기 위함이요, 사악함  한가운데서 무죄함이 보호되기 위함이며, 엄정한 형벌이 악인들로 하여금 남을 해치지 못하게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시도루스의 말대로] 과연 이것들은 인류 전체에 절실하게 필요하다. 바로 그래서 인정법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S.Th.. I-II q.95, a.1)

 

(4)  토마스와 현대의 세계시민사상

 

   어떤 공동 목표가 설정되고 공동 노력이 경주되는 곳에 사회집단이나 결사가 성립한다. 본성이 동일하고 동등한 모든 인류가 천성적으로 열망하는 현세적 삶에 비추어서 공동선을 국제적 차원에서 보고 전인류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목표가 있다면 세계정부 혹은 세계국가는 가능하다. 또한 서구에는 고래로 국가주권의 절대성을 상대화시키는 매력적 요인이 있었다. 인간이 먼저이고 국가는 이차적이라는 견유학파나 스토아 이론, 그리스도교에서 신의 도성을 내세워 세속 도시를 상대화하는 이론 등은 이미 국제사회, 세계시민사상의 대중적인 이론에 해당한다. 중세인들은 여기에 덧붙여 현세적 의미든 형이상학적 의미든 절대권을 갖는 존재는 신밖에 없다는 종교사상을 품고 있었으므로 지상의 정치권력을 상대화할 수 있었고, 따라서 다른 시대보다 도시국가와 민족사회의 경계를 초월하여 국제사회를 형성하기가 용이하였음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세계정부의 이념이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도 단초를 발견한였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니,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의 '완전 사회' 이론에 비추어 각국이 자기네 주권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교육시켜 나가면 세계화의 진로에 전체 국민이 동참하고 인류가 추구하는 세계정부의 실현에도 이바지하기에 이를 것이다. 두번째로, 토마스가 중세에 확립해준 실정법이론으로서, 인간 사회의 목적은 자연법에 의하여 고정되고 측정되고 있지만, 그 사회가 존속하고 지도되려면 자연법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실정법이 필요해진다. 그리스도교는 로마법과 교회법의 역사를 경험하였고 그 내용을 승계하고 있으며, 법철학에 있어서 뛰어나는 토마스의 『신학대전』이 있으므로, 그리고 그 사상에 따라서, 세계의 질서를 유지함에 있어서는 자연법만으로는 부적절함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실정법에 기반한 세계정부 이론에 동의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면 오늘날 완전 사회란 무엇인가? 토마스는 주로 경제(자립경제)의 수준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로 국방과 경제의 관점에서 국가론을 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 어디를 보아도 경제적 관점에서 완벽하게 자급자족하는 국가는 없다. 타국의 필요성을 갖지 않은 나라가 없다. 그리고 더군다나 세계평화라는 관점에서 자족하는 국가는 존재할 수가 없다. 국방의 차원에서도 오늘날에는 방어가 아예 불가능한 무기체제들이 있다(핵탄두와 요격미사일체제). 방어가 불가능하다면 전쟁을 국방력으로 박아낼 길이 없다. 방공망을 뚫고 적지에 도달한 몇 개의 핵탄두로 치명적 상해를 입게 되는 현대전에서 차라리 전세계 차원에서 전쟁을 예방하고 통제하는 세계정부가 더 현실적일지 모른다.  국가 원수들이 더욱 고차원의 권력에 의해서 통제되지 않으면 정치철학자들이 동경해온 세계평화는 불가능한 시점에 인류는 와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철학자들에 의해서 주창되어 온 완전 사회는 세계국가뿐이라고 하겠다. 그 사회만이 자기충족적이고 자급자족이라는 정치철학의 기준을 달성하는 사회이다. 그보다 작은  모든 사회는 필히 타자들의 도움을 요하는 까닭이다.

 

        4.   세계 평화를 위한 단테의 세계정부 이론 [16]

 

(1) 교황권과 제권의 알력과 세계 평화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는 하나의 통일된 사회를 구성하는데 교황은 그 일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12세기부터는 교황의 주장이 지나쳐졌고 그것이 황제들과 개별국가의 군주들과 법률학자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특히 보니파치오 8세의 극단적 전권주장(1303년의 칙서 Unam sanctam)은 곧이어 아냐니의 굴욕과 아비뇽 유폐가 따르고(1309-1415), 교황과 가짜 교황이 대립하기를 한 세기 지속하더니 동방교회와의 대분열(1054년)이 돌이킬수없게 확정되어 버린다. 교황은 더 이상 평화회담(pax terrena)을 담보하는 권위를 갖지 못한다. 교황권 실추의 근본원인은 교황이 순수한 영적 권한이기를 중단하고 속사에 간섭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교황권의 실추와 더불어 좁은 의미의 세계시민사상의 부흥이 온다. 단테(Dante Aleghieri), 마르실리우스(Marsilio), 피치노(Ficino)를 거치면서 순수하게 현세적 관점에서 권력을 논하기 시작함으로써 그들은 황제의 지상권을 옹호하고 영토권과 더불어 국왕들의 주권을 옹호하는데 이 논증에는 오로지 철학적이고 세속적인 논지만을 구사한다. 


   단테 알레기에리(Dante Aleghieri: 1265-1321)는 서구 중세를 르네상스에 이어주는 사상가로서 중세 그리스도교 문명에 관한 가장 아름답고 포괄적인 표현으로 간주되는 그의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은  인간의 실존적 종교적 역사적 체험 전체에 대한 빛나는 통찰로 평가되고 있으며, 인유의 평화에 대한 단테의 사랑과 동경에서[20] 인류가 하나의 정치적 집단을 이루어 세계평화를 성취하는 이상향을 보게 된다. 여기서는 단테의 중기 작품(1312-1313년)에 해당하는 『제정론(帝政論 De Monarchia)』에서 단테가  보편 평화(普遍平和 pax universalis) 혹은 세계 평화를 추구하면서 그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 현실 정치체제로 세계군주 혹은 세계정부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소개함으로써 지금까지 서양고중세 세계시민사상 논구의 결론으로 삼는데 목적이 있다.[17]

   단테는 (중세의 당대를 감안할 때에) 인류에게 평화를, 그것도  한  도시나 왕국에서 국한되지 않고 인류 전체를 포용하는 보편적 평화라는 것을 실제로 또 항속적으로 보장하는 유일한 정부 형태는 세계정부(世界政府)라고 여겼고,  당대까지 아직 존속하고 있던 신성로마제국이라는 패러다임에 맞추어서 단테는 그것을 보편군주제(普遍君主制 universalis Monarchia)라고 불렀다. 무릇 어느 공동체나 그것을  조직하고 지도하는 지도자가 있듯이 인류 전체도 단일한 통치자의 권위하에 복속(服屬)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따른다. 그리고 이 통치자는 이미 전세계를, 즉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권력과 소유를 증대시키려는 탐욕에서 전쟁을 유발하는 일이 결코 없으리라는 희망을 걸어본다. 또 만인은 그의 철권 아래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분쟁을  촉발할 힘이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인위적 상황이라야 인간들의 탐욕과 오만이 제어될 것이고전쟁은 방지될 것이며 평화가 군림할 것이다.

 

(2)   단일한 세계국가 존재를 요청하는 철학적 원리 [18]

   『제정론』 제 1권의 논제는 "인류의 선익을 위해서 제권(帝權)이 필요한가?"는 것이며 우리 논문의 주제와  결부시킨다면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세계정부가 필요한가?"는 형식이 된다. 세계평화의 명분으로부터 통일된 정치체제로 넘어가는 기본 논지는 다음과 같다. 인간들은 지상에서 인류(人類 genus humanum)라는 하나의 種으로서 이룩해야  할 고유한 특수 사명 또는 목적(finis totius humanae civilitatis)을 부여받았다. 그것은 인류  전체의 협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고유한 활동(propria operatio humanae  universitatis)이다. 그런데 이 고유한 활동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사회 조건으로서 평화, 그것도 인류 전체가 함께 향유하는 보편적 평화(普遍的平和 pax universalis)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 조건이 조성되기 위해서는 모든 분란을 실질적으로 종식시키고 조정할 단일군주(單一君主 unus Monarcha) 혹은 황제 밑에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단테는 Monarchia(군주국 또는 군주제)라는 중세적 정치용어에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리고서 시작한다:

 

   "현세 군주제,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제권이라는 것은 단일 주권 으로서, 시간 속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위에, 혹은 시간에 의해서 측정되는 모든 사물들 안에서와 그 사물들 위에 군림  하는 주권이다"(제정론 1.2.2).

 

   이 논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단테가 사용하는 두 용어, universalis civilitas humani generis(전 인류의 보편사회)와 humana civilitas(인류사회)라는 용어로서 어쩌면 인류의 사회의식 발달에 중요한 전기가 된 개념이 담겨 있다. 플로렌스의 예언적 사상가로서는 단테는 그리스로부터 발원한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에 새로운 철학적 기초를 제공할 임무를 절감하였다. 단일한 군주 곧 단일한 세계정부하에서, 단일한 법에 따르고, 단일한 행복을 추구하는 인류를 그는 상정하고 있다.

   『제정론』에서 단테는 자기가 제시하는 명제들을 그때마다 삼단논법을 이용하여  개진하고 있는데, 제 1권에서는 인류라는 단일한 종(種)을 이루는 단일한 집단으로서 고유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세계 평화가 요구되고, 그 세계평화가 확립되려면 단일한 제국을 이루어  모든 개인과 정치 집단들을 통치하는 단일군주가 필요하다는 정치철학적 논변을 위해서 11가지 논증을 내놓는다.  본고에서는 단테가 이 논증들의 토태로 삼는 세 가지 사변적 원리 내지는 형이상학적 전제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논증 전체의 원리라고 단테가 일컫는 목적론(目的論 causa finalis), 인류의 단일성을 입증하려는 가능지성(可能知性 Intellectus possibilis) 이론, 그리고 군주의 유일성을 확립하는 단일성논증(單一性論證 argumenta  unitatis) 등이다.

 

① 첫번째 논증 원리: 목적론
   "세계평화를 확립하는데는 단일군주제가 필요하다."는 정치학적 논제를 다루면서 단테는 논변전체에 해당하는 형이상학 원리를 하나 설정하고 그것에 준하여  논리를 개진하겠노라고 선언한다.  단테가 말하는 원리란 "인류 전체가 지향하는 단일한 목적이 있다"는 명제로 간추려진다.

 

   "실천영역에서 모든 것의 원인과 원리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최종목적(最終目的)이므로 (일차적으로는 최종목적이 행동자를 움직인다), 목적을 지양하는 모든 사물들은 모든 [존재] 명분을  바로 그 목적으로부터 얻는다는 결론이 나온다."(1.2.7)

 

   "목적, 최종목적이 행위자를 움직인다(ultimus finis movet  agentem)."는 원칙에 입각할 때에, 정치 문제는 분명히 인간 행위에 해당하고, 행위하는 모든 주체는 의당히 목적을 위해서 행위한다. 부분적이고 특수한 목적들은 나선형으로 상승하면 그 정상에는 최종목적이 있고, 하위 목적은 필히 상위 목적에 종속되며, 부분적인 작용들은 전체 목적의 실현에 존재 명분이 있다.

   만사를 목적론에 입각하여 사고하던 중세인들은 존재계 전체에 목적의 서열이 있다고 여겼다. 하위의 모든 목적들은 궁극 목적을 지향하는데 창조계 특히 인간 개인의 궁극적 목적이 되는 것은 창조주의 외적인 영광이요 후세의 영원한 행복이다. 그러나 개개인을 초월하여 종(種)으로서의 보편 인류 자체가 집단으로서 갖는  고유의 목적을 상정하고 논구한 것은 단테가 처음이다. 그러한 목적은 어느 개인이나 특정집단들이 별도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더군다나 인류라 하더라도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신과 자연은 인류라는 종(種)에게 특수한 사명을  부여 하였음에 틀림없다. 전체 인류 사회의 목적, 다시 말해서 존재계의 한 종으로서 보편 인류의 고유 활동 또는 작용은 그것을 성취하는 주체가 되는 보편 공동체의 존재를 요구한다. 그 공동체는 개인들이 개인으로서의 최종목적을 달성하도록 보장하는 일은  물론이려니와 인간의 집단적 능력의 충만한 실현을 보장하는 데 의의가 있다.

 

    "보편 인류로서의 고유한 활동이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인류 보편이 그토록  다수를 이루면서도 [하나로] 정향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한 인간도, 한 집도, 한 마을도, 한 도시도, 어느 특정 왕국도 그 고유한 활동을 [다] 성취할 수는 없다. 사실이 그렇다면 인류 전체(tota humanitas)의 능력이 그 종국에 다다를 때에야  비로소 그 활동이 무엇인지 드러날 것이다."(1.3.4)

 

② 가능지성에 의한 논증
   이어서 단테는 보편평화 및 보편군주에 대한 인식론적 계기를 마련하고자 소위  가능지성(可能知性: Intellectus possibilis)에 입각하여 그의 목적론을 보강한다. 그런데 개인으로서의 목적이든 집단으로서의  목적이든 인간의 목적은 인간의 본질(本質)에서 연역되어야 하고 인간의 본질적 특징은 다름 아닌 이성(理性)이다. 철학적으로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고 정의되는 이상, 그 정의를 성립시키는 인간의 종차(種差 differentia specifica)가 바로 인간의  이성(理性)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인간들이 인류라는 한 종을 이루게 한 이상, 인류가  전체로서  지향하는 고유활동(固有活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1.3) 중세 플로렌스의 주지론자(主知論者)답게 단테는 그것을 "가능지성의 가능태(可能態) 전체를 항상 현실태화(現實態化)하는 것(actuare  semper  totam  potentiam  intellectus possibilis)"이라는, 중세 특유의 표현을 쓴다.(1.4.1) 단테의 논리는 인간의  고유한 활동작용은 가능 지성을 통해서 충만한 지식을 파악하는 능력에 있고, 전체로 본 인류의 고유한 활동이란 가능지성 전체를 총망라하여 완성하는 일이며, 그 일에는  평화라는 여건이 구비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오직 가능지성에 의한 지각적 존재(esse apprehensivum per intellectum possibilem)라는 점이 [인간을 인간이라는 종으로 종결시킨다]. 이것은 인간 이외의 어느 존재도, 인간 위나 인간 아래의 어느 존재도 갖지 못한 것이다... 인류의 능력에서 종국을 이루는 것은 오성적 능력혹은 기능임이 분명하다."(1.3.7)

   요컨데 인간 개개인은 가능지성을 갖추고 있다. 가능지성이란  능동지성(能動知性)의 빛을  받아서 점진적으로 형상화(形相化)하는 기능을 말하는데, 여기서 인간이 개인으로  얻는  지식은 사실 인류가 한 종(種)으로서 획득하는 지식의 일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식활동 배후에는 인류가 공유하는 단일한 가능지성이 존재하고 그 지성의  능력을  채워줄 지식을 전부 한꺼번에 획득하려면 보편 사회(universalis civilitas) 내지 세계정부가 요구되며,  인류가 전체로서 도달하려는 이 거대한 목표는 소규모의 사회 및  정치  집단들만으로는 성취되지 않는다.

 

   "이 능력이 어느 한 인간, 혹은 위에서 구분한 특정한 공동체들 중의 어느 하나에 의해서 전체가 동시에(tota simul) 현실화될 수 없는만큼, 인류에는 다수(multitudo)가 있어야 할 필요가 있고 그 다수를 통해서 이 능력 전체가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1.3.8)

 

③ 단일성 논증
   세계의 선익(= 평화)을 위해서 중세 신성로마황제를 패러다임으로 하는 군주제가 필요하다는 11가지 논증이 『제정론』 제1권의 내용을 이루지만, 실제로 논의의 핵심은 군주 자체의 필요성이 아니라 단일군주(unus Monarcha) 혹은 보편제권(普遍帝權 Imperium universale)의 필요성이다. 그런데 특히 후반부 논증들은 인류 전체가 하나(1.6)요 인류의 머리가 (우주에는 한 분 하느님이  군주이시듯) 하나여야 하며(1.7), 인류는 그 원인 곧 유일신(unus Deus)과  유사해야 한다거나(1.8), 인류의 기원은 하늘이요 천계(天界)는 유일한 원동자(原動者) 신이  유일한 동자(動者)를 통해서 움직인다(1.9)는 것을 논거로 삼기 때문에 단일성에 입각한 논법(argumenta unitatis)은 이 책에서 매우 비중이 크다. 그래서 단테는 일성(一性)에 관한 형이상학을 개진하고  있다(1.15)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종합을 본 존재론 즉 존재는 일성(一性), 진리(眞理) 및 선(善)과 환치(還置)된다는 원리를 도입하여 단테는 최상 군주제(suprema Monarchia) 또는 그 정치체제가 확보한다는 세계 평화의 존재론적 논거를 마련하고 있다.

 

   "최고로 존재하는 것은 최고로 일자이며, 최고로 일자인 것은 최고로 선하다. 어떤 것이 최고 존재로부터 거리를 둔다는 것은 하나임(esse unum)으로부터 멀어짐이요 따라서 선함(esse bonum)으로부터  멀어짐이다."(1.15.1)

 

   일성의 철학적 성격을 이처럼 탁월한 경지로 승화하고나면 "그렇다면 화합이  어느 모르든 선한 것이다"(concordia sit quoddam bonum)(1.15.4)라는 결론에 이르고, 화합이란 다수 의지의  획일적인 운동이므로(1.15.5) 그것의 기준과 결집력이 되는 어떤 존재를 요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 화합을 도모하고 성취하는 의지, 여기서는 황제의 단일한 제권은 형이상학적 선을 그 존재론적 토대로 삼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선한 것은 하나로 성립한다는 점에서 선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화합이 어느 모르든 선한 것이라면, 어떤 하나를 뿌리로 삼아 성립함이 또한 분명하다. 화합의 [자연]본성이나 명분이 무엇인지 파악한다면 그 뿌리가 어떤 것인지 밝혀질 것이다."(1.15.4-5)

 

   앞서 언급한 가능지성의 논리 역시 단일성 논증의 인식론적 범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아베로에스가 가능지성의 단일성(unus Intellectus Possibilis)을 주장한, 당대에 논란이 심하던 과제를 차용하여, 단테는 인류 집단의 가능지성을 완성시키는 과제, 인간의 집단적 완성을 제기한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집단적 차원에서도  완결시킴이 보편 제국의 사명중 하나임을 역설한다. 그리고 뒤에 나오지만 단테는  단일성에 관한 우주론적 범례도 제시할 것인데 천체들을 다스리는 신적 통치에서 그  원형을 보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단테의 인간학이 무척 낙관적임을 엿볼 수 있다.

 

   "인류는 평화의 안정이나 평온 중에 자기 고유의 활동을 극히 자유스럽고 극히 용이하게 수행한다. '당신은 그를[=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나이다' 라는 말씀처럼, [인류가 수행하는] 활동은 거의 신적인 것이라고 하겠다."(1.4.2)

 

단테가 인용하는 성서 전거(시편 8.6), "당신은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나이다."라는 구절은 단테의 낙관적 인간학의 기조 관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류가 지상에서 수행하는 활동은 거의 신적인 것이라면, 그 신성한 사명을 보장하는 평화 역시 신성한 색채를 띤다. 과연 인간은 신의 모상으로서 인간들 사이에 평화와 질서와 정의를 이룩할 때에  신의 세계 통치와 가장 유사한 세계를 성취하는 셈이다(1.9).

   세계정부의 중세 개념이라고 할 보편 군주정 혹은 제정(universalis Monarchia vel Imperium), 그것이 인류의 목적 달성에 필요하다는 명제를 사변적으로 입증하는 뜻에서 단테는 한결같이 이 단일성 논증에서 도출하는 11가지 논증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이 제 1권 대부분(1.5-14)을 차지한다.
24) 그러나 단순히 군주의 필요성이 아니라 전세계를 단일 통치권 아래 장악하는 단일군주가 요체이므로 각각의 논증은 반드시 세계 평화를 확보하기 위하여 "온 세상을 통치하는 단일 군주가 있어야 한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단테의 특유한 스콜라적 논증은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논거를 비롯하여 자연적, 생물학적 논거를 거쳐 사회학적 논거로 발전하는 논변을 구사한다. 그가 거론하는 사회 단위는 개인과 가정, 마을, 도시(플로렌스 같은 자치도시), 왕국 단위로 상승 확장한다(1.6-9).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인류라고 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공동체가 천체들을 지배하는 신의 단일한 통치라는  우주론적 범형에까지 확산한다(1,9).

 

(3)   단테의 세계정부론에 대한 평가 

   인류의 안녕을 위한 보편 평화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요청을 근거로 세계 정부 혹은  보편 군주의 필요성을 주장한 단테의 `철학적' 논변에서 몇 가지 논쟁점이 없을 수 없겠다.

   서양 14세기초엽까지의 사상사에서, 세계시민사상에 근거하여 인간의 진보와 사회 발전을 논함에 있어서,  단테 알레기에리만큼, 인간 본성 안에 자리잡고 있는 균열이라던가 인간 개인이 전체 사회에 보이는 저항, 인간 공동체들의 집단이기심 등을 거의 고려않은 것처럼  낙관적으로 이론화한 인물은 없었다. 그리하여 일부 단테 연구가들은 그가 형식논리학적으로만 문제에 접근하다 보니 현실정치를 간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 부딛친다. 두번째로, 개개인간의 궁극 목적이라는 것과 인류 집단으로서 갖는 궁극 목적은 어떻게  연관되는가? 그리스도교는 인격의 절대적 가치를 거의 맹신해 왔는데  '인류로서의  고유한 작용'이라는 것이 과연 개인의 완전성보다 상위이며 그렇게 주장할 권리가 있는가? 단테 알레기에리는 사회집단에 대한 개인의 관계에 대해서 중세인들이  품고  있던 전통적이 개념을 청산한 사람이다. 개인의 구원에다 삶의 모든 차원을 종속시켜  사고하던 방식을 떠나서 인간의 사회적 차원과 집단으로서의 인류가 갖는 의의를 확연하게 정치사상의 지평으로 불러들인 사상가이다. 근대에 와서 콩트 이래로 '인류'라는 종(種)의 개념이 특히 포이어바하와 마르크스에게서 사회철학의 기조어로 재등장한 사실을 상기할 만하며 우리는 그 사상적 전기를 단테에게서 발견한다. 

   고대세계로부터 정치철학의 근간으로 내려오던 기본 개념인 평화와 정의 그리고 자유라는 것 말고도, 단테는 제국(帝國) 또는 제정(帝政)에 대해서, 보편 공동체의 협력과 상호관련에다 단순한 정치적 목표 이상의 것, 다시 말해서 `모든 가능지성들의 영적 완결과 더불어  인류의 것으로 간주되는 단일한 가능지성의 완성'이라는, 그 나름의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목표를 설정해 놓았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에 의한 개인의 재생과 사회의 정화보다  한 차원 높은, 별도의 인류[인간성] 완성을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보편제국에 대한 단테의 서술과 신념이 너무 상상적이고 이상적일지도  모르지만 평화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선의 하나요 천상 축복이라는 신념에서 자신의 지적이 노력을 다 짜내어 그것을 추구했음은 중세 지성인다운 탁월한 노력이었다. 평화와 정의 그리고 인간 진보에 관한 우리의 염원과 진지한 노력이  정말  소망할 만한 무엇이라면 모든 인류의 근본적인 합리성에 대한 단테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리고 이에 대한 불가결한 단서로서 정의와 자유를 구현함으로써 역사의 도정을 정리하고 변경하는 일이 운명이 아닌 바로 인류 자신의 능력에 맡겨져 있다는 긍정적 신념이 요구된다.

 

        결  론 [19]

 

   세계시민 혹은 세계화의 이상적 귀결이 될 세계정부에 관한 정치와 철학의 조우 가능성에 대해서, 혹은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 또는 단테 알레기에리의 철학 사상을 평가함에 있어서 실증학문을 하는 이들은 사상적으로나 논변상으로나 투명한 논리가 매력적일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처럼 사람들의 사고와 사상마저도 철저하게 철인 정치가들에 의해서 통제되고 지도되는 사회에서라면 사상의 자유나 민주적 방법은 실패를 전제하는 실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또 철학자들이 세계시민사상을 옹호하거나 촉진할 경우에 많은 인사들은 철학자들이 추상적이고 막연한 형식들을 근거로 국제적 이상주의를 내세운다고 비판하면서, 자국의 집단적 이익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한다는 현실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물론 정치에서 현실주의는 사회정치적 상황에서 모든 요소들을 고려하려는 신중한 경향으로서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결코 본 적도 없고 살아본 적도 없는 공화국들과 공국(公國)들에 대한 심상을 갖고 이론을 구사하기 때문에, 현실주의자의 목표는 "사물에 대한 상상력보다는 오히려 사물에 대한 진리를 따르는 것"이라는 명분을 세울 만하다. 

   사실상 주로 철학을 바탕으로 삼는 이상주의자들은 사회정치적 상황에서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이기심에 대한 추종보다도 도덕 규범과 이상을 추종하려는 경향을 보이면서 보편타당한 이상과 규범에 저항하는 인간생활의 구체적 세력들을 무시하는 편이어서 자칫하면 이상적 가치를 내세우면서 사실상 집단적 이기주의를 교묘하게 숨기는 은폐도 가능하다. 사람이 제아무리 이기적이어도, 이기심을 추구하려면 겉으로나마 타인에게 헌신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앞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을 매듭지으면서 그리스도교 수도자요 성직자인 이 사상가가 현실주의자인가 아닌가는 충분히 답변하였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거주가 가능한 세계 전체가 지금은 오로지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21세기야말로 인류가 단일한 사회로의 통일을 어떻게 해서든지 이룩할 수 있는 구체적 시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 통일은 인류의 생활의 필수적 조건이 될 것이다. 토인비의 말대로 하룻 나절이면 가로지를 수 있었던 아테네에서 나온 정치철학과 미합중국을 비행기로 동서를 가로지르는데 열 몇 시간이 결리는 시대에 나와야 할 정치철학은 사뭇 달라야 한다. 서구 문명이 전세계로 확산되는 이 시점에서 한국사회가 생각할 세계시민사상은 언제인가 세계국가 내지 세계관리체제로 체현될만큼 현실성있는 대안으로 나타나야 하리라. 

   그리스도교 문명을 축으로 하는 서구 중세를 주축으로 연구한 명분에 이의를 내세울 분들에게도 토인비의 말을 인용하여 답변하고자 한다.  "처음으로 지구상에 출현했을 적에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로마 문명이라는 보편주의 국가의 거대한 제도에서 혜택을 입었다. 로마 제국, 전유럽에 뻗치던 도로망, 항로를 이용하여 그리스도교는 급속하게 지중해 연안 전체로 퍼져나갔다. 현대 서구의 세속화한 문명은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로마 제국이 전세계를 장악하여 기여하던 그 시대상을 다시 한번 재현할 수 있을 것 같다."(Civilizatuion on Trial, New York 1948, 239).

   우리가 논구해온 세계시민사상은 전인류가 평화롭게 함께 사는 이상사회를 그리는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꿈이었기 때문에 현실 정치가들보다는 이념의 세계를 직관할 특전이 주어진 시인들과 철학자들의 입에서 마치 신탁처럼 울려나왔으며 그래서 범상한 속인들은 여러 세대 때로는 수세기가 지난 연후에야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아듣고는 하였다. 인류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그리스의 견유학파들에게서 비롯한 세계시민사상으로부터 단테에 이르는 선각자들이 천계로부터 받은 신탁을 깨닫기 시작하여  국제연합이라는 기구를 만들었으며, 유럽 연합을 출범시키는 중이고 한국 사회 역시 세계화의 기치 아래 온 인류와의 단일한 공동체를 의식하고 세계시민사상에 동화하려는 도력을 경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  각  주 ---------------------------
1] Michel Spanneut, Le stoicisme des peres de l'Eglise (Paris, 1971), pp.231-257; P.Coulmas, Les citoyens du monde. Histoire du cosmopolitanisme (Paris 1995)pp.138-143: L'unite culturelle de la chretiente.

 

[2] 같은 사상이 Cleanthes ("자연에 따라서 사는 것"), Chrysippus(자연에 순하여 사는 것: Arnim III 1-9), Panaetius ("자연이 인간에게 배려해주는 모든 경향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 Max Pohlenz, Die Stoa I p.200)로 계승된다.

[3] 자연법과 실정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교부들의 이 사상은 꼭 철학적인 계기에서만 유래한 것이 아니고 전거상 사도 바울로에게서도 기원한다. "이방민족들이라고 비록 율법을 갖지 못했을 망정 타고난 본성대로 율법의 요구를 실천한다면  이들에게는 율법이 없는 그들 자신이  바로 율법입니다. 이들은 자기네 마음 속에 율법의 행업이 적혀 있음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양심도 마찬가지로 이를 증언하고 있으며 그들의 판단도 서로 엇갈려서 혹은 고발하거나 혹은 변호합니다."(로마서 2,12-16)

[4] 물론 바울로의 이 세계시민사상 혹은 보편주의는 나자렛 사람 예수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것이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한 것을  모두다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시오."(마태오 28,18-20)

[5] un cosmopolitisme fonde sur un acosmisme: E.Gilson, Les metamorphoses de la cite de Dieu, Louvain/Paris 1952, p.20-21.

[6]  Peter Coulmas, Op.cit.: Christianopolis Ch.6  Saint Augustin : la nouvelle vision du monde; N.H.Baynes, "The Political Ideas of St.Augustine's De civitate Dei", in his Byantine Studies and Other Essays (London 1955), 288-306

[7]  homo fertur quodam modo suae naturae legibus as ineundam societatem pacemque cum hominibus: 19.12). 그러나 두 도성의 기원을 논하는 자리에서 현실적 정치조직에 대한 비관적 견지를 보이기 때문에 그의 정치철학은 수많은 오해를 초래한다: "카인이 최초로 도성을 건설하였다는 기록은 있지만 아벨은 뜨네기였므로 도성을 건설하지 않았다. 선택된 사람들의 도성은 위에 있지만 그 도성은 이 지상에 그 시민들을 낳으며, 그 시민들 사이에서 순례를 계속한다."(15.1)

[8] non omnis coetus multitudinis, sed coetus iuris consensu et utilitatis communione sociatus: Cicero., De re publica 1.25.39.

[9] "로마 제국은 예속 민족들에게 명에를 씌울 뿐만 아니라 평화의 유대라고 해서 언어까지도 강요하기 때문에, 통역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통일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전쟁을 했으며 피를 흘리며 사람을 죽였는가? [전쟁이라는] 이 모든 무섭고 무정하고 큰 악들을 생각하여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모두 이것이 불행임을 인정하리라. 이런 악들을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지 않거나 마음에 고통을 느끼지 않고 견디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더욱 불행한 처지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느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기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19.7)

[10] De civitate Dei 19.24: coetus multitudinis rationalis, rerum quas diligit concordi communione sociatus.

[11] 라인홀트 니버는 정치철학에 있어서 "아우구스티누스야말로 서양사에 있어서 최초의 위대한 현실주의자였다."고 단언한다: cf., R.Niebuhr, "Perspectives of Politica", in J.V.-D.K.Doweton eds., Philosophy (Hart Holt 1971), I, pp.243-257).

[12] Robert M.Hutchins, St.Thomas and the World State, Aquinas Lecture 1949 (Marquette University, Milwaukee, 1949); Coulmas, op.cit., Christianopolis : Ch.7 L'Occident: unite et paix.

[13] J.Catto, "Ideas and Experience in The Political Thought of Aquinas", Past and Present, 71 (1976), 3-21; Daniel Shine, "The Analogy of Individuality and `Togetherness', Thomist 33(1961), 497-518

[14]  civis dicitur simpliciter, scilicet qui potest agere ut civis, id est, consilio et iudicio: Summa theologiae I-II q.105, a.3 ad 2.

[15] "사물의 목적인과 목표는 가장 좋은 것이고, 어느 사물이 자기충족적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또한 최고선이다. 국가가 자연본성의 산물이요 개인에 선행한다는 증거는, 개인은 단독으로 고립되면, 자기충족이 안된다는 사실에 있다."(Aristoteles, Leges 1.1 1252b-1253a) "한 도시국가가 탄생하는 것은 그 공동체가 자족할만큼 충분히 클 때이다"(Ibid.,2.2 1261b 13).

[16] 참조: 성염, "단테의 세계평화론: 『제정론』 제 1권에 나타난 세계평화와 단일 군주제의 철학적 연관성", 서강대 철학연구소, 『平和의 哲學』(철학과현실사 1995) 및 성염, 『단테 알레기에리, 제정론』(철학과 현실사 1997) 참조.

[17] Cf., Kenneth Sills, "The Idea of Universal Peace in the Works of Virgil and Dante" Classical Journal 9(1914), 139-153.

[18] Pier Sergio Ricci, "Monarchia" in Enciclopedia dantesca III, pp.993-1004 [996-997]

[19] John Boler, "Augustine: An Ideologue on Politics" American Catholic Philosophical Association Proceedings 56(1982), 5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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