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가톨릭신문 2008.1.13]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 고난 받으시고”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이 호칭은 오늘 복음대로 요르단강을 찾아와 요한 앞에 나타난 나자렛 사람에게 세례자가 붙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주일 미사마다 이 명칭을 무려 여섯 번이나 되풀이한다(대영광송에서 두 번, 평화예식 다음에 세 번, 영성체 때에 한 번). 필자가 교회의 이 관습을 조금이나마 알아들은 것은 바티칸에 대사로 머문 지난 4년이었다.

 

서구문명이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두 기둥으로 삼아 건설되었다는 것은 유럽연합의 청소년들이 중학교 1학년부터 배워서 외워두는 개념이다. 그리고 문명사가들은 히브리인들이 인류에게 끼친 가장 위대한 공헌 둘을 꼽는다면 ‘안식일’과 ‘죄’라고 말한다. 안식일이야 주 5일근무까지 도달한 현대인의 편안한 노동조건의 시발점이었으니 설명이 필요치 않겠다.

 

그런데 21세기에 와서도 거의 모든 민족이 죄라고 하면 기껏 부정(不淨)이나 실수쯤으로 여기고, 그것도 마귀나 운명이나 물질이나 심지어 사회의 구조 탓이라고 간주하는 터에 죄와 악을 최초로 진지하게 고찰한 민족이 유대인이었고 크리스천들이 그 뒤를 이었다. 한 마디로 죄에 대한 센서빌리티다! 또 세상 종말에는 인류사 전체가 심판받는데 소위 ‘사회악’(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로 떠돌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만 누구나 심문받고 언도 받는다는 깨달음이다.

 

교회가 ‘희망의 제삼천년기’로 축원해 준 2000년대 문턱을 넘자마자 뉴욕의 9.11 폭파, 그 일을 빌미로 이사악의 정신적 후손들이 무소불위의 군사력을 앞세워 아프간,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락(그리고 아마도 이란)으로 돌면서 이스마엘의 후손들에게 저지르는 저 엄청난 죄악, 다르푸르의 학살, 체첸과 코소보의 비극, 인도양의 쓰나미, 제3세계의 기아와 영양실조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서구세계의 풍요와 비만을 인류는 목격하고 있다. 한반도만 해도 제주 4.3 양민학살의 규모, 6.25 전쟁을 전후하여 군경에게 집단으로 처형당한 보도연맹원들과 지리산 등지에서 총살당한 양민들이 수십만으로 추정된다는 경악스러운 현실! 지구를 흔드는 저 거대한 악의 소용돌이를 바티칸 언덕에서 바라보며 교황이 느낄 센서빌리티에 다가가면서 머리가 아뜩할 적마다 필자를 버티게 해 준 사념이 있다.

 

인류악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예나 지금이나 지구상에서 저질러지는 형언할 수 없고 억장이 무너지는 사회악들을 거대한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곳이 있다! 그 블랙홀이 있어 하느님은 여전히 인류를 지상에 남겨두시고 아직도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계시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불리는 저 나자렛 사람이 바로 이 블랙홀이다! 정말 나는 “죄의 사함을 믿는다!”

 

히틀러가 자살하고 스탈린이 병사하고 베를린 장막이 무너졌으나 그들에게 피살당한 피해자들이 되살아나지도, 겪은 고통을 변상 받지도 못하였다. 우리 정부가 진실규명을 내리고 있는 한반도 피해자들의 억울한 죽음 역시 누구도 보상해 주지 못하고, 가해자들이 용서를 빌거나 죄 값을 치르고 있지도 않다. 그러니 저 하느님의 블랙홀이 아니고서는 인류의 역사도, 상선벌악의 이치도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래선지 미사 끝 무렵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을 부르면서 사제가 내미는 “그리스도의 몸!”을 내가 “아멘!”하고 받아먹는 행동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영성체’라고 번역된 ‘콤무니오’(공동유대)는, 세상의 모든 죄를 일신으로 빨아들이는 분과 운명을 함께하겠다는, 내가 나름대로 자그마한 블랙홀이 되겠다는 각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들인 판검사로서 진보당이나 인혁당이나 조작된 간첩사건으로 사형당한 사람들, 군사반란과 긴급조치에 희생된 사람들을 두고 죄책을 안 느끼거나, 신앙인이면서도 이 땅에서 자행된 온갖 정치범죄와 사회악을 묵인했거나 찬성했거나 심지어 자행한 경우에는, 교회의 다음과 같은 얼굴도 한번 쯤 흘끔 쳐다볼만 하다.

 

가장 저주스러운 이름

 

오늘날 전 세계 20억 인간들이 날마다, 아니면 적어도 일요일마다 입에 올리는 저주스러운 이름이 하나 있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그는 서기 26년부터 10년간 유대 총독을 지낸 로마인 정치가다.

 

비록 그 피고의 죽음이 인류의 죄를 씻는 희생제사였다지만, 갈리래아 사람에 대한 까닭 없는 증오에 노호하는 군중 앞에서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요.”라면서 손을 씻은 비굴하고 교활한 법조인! 그의 이름은 지구상에 그리스도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날까지, 그것도 가장 성스러운 자리에서 끊임없이 호명될 것이다.

 

그의 아내가 재판석에 앉아있던 남편에게 사람을 보내어 “당신은 그 의인의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 지난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큰 괴로움을 당했어요.”라는 하소연을 했다고 전해 온다(마태 27,19). 그 여자는 전 세계 어둑하고 널따란 성당에서마다 저주와 원망 섞인 회중의 목소리가 수천년을 두고 남편의 이름을 불러대는 광경을 꿈에서 보았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