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와 국가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 기쁨과 희망」4 (2009  제4호), 92-111면             

 

들어가는 말

 

“교회는 정치 질서에 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나 신자들이 정치문제에 의사표시를 하거나 행동하는 명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1965년, 그러니까 20세기 중엽에 반포한 「현대세계의 사목헌장(Gaudium et Spes)」에 근거한다. “다원적 사회에서는 정치 공동체와 교회의 관계를 올바로 보아야 하며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분야에 있어서 서로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것이다. 그러나 양자 모두 명분은 다르지만, 동일한 인간들의 개인적 사회적 사명에 봉사한다.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의 구원이 요구할 경우에는 정치 질서에 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76항)

 

 “정의구현이 곧 복음선포다”

 

   그리고 정치의 근간은 정의(正義)라고 단언한, 사회학자들의 선견이 가톨릭교회에 받아들여지면서 제2차 세계주교대의원총회(1971)는 가톨릭교회에서는 “정의구현은 곧 복음선포요, 정의수호가 곧 신앙인의 구원”이라는 도식을 확정하였다. 시노드는 “세상 한가운데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며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어야 할 교회의 사명”(5항)을 성찰한 끝에 “정의를 위한 행동과 세계 개혁 활동에의 참여는 복음 선포의 본질적 구성 요소임이 명백하다.”(「세계정의에 관하여(De iustitia in mundo)」6항)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은 현대 세계 안에서 정의를 수호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성취한다.”(50항)고 천명하였다.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위한 정치활동은 사회적 사랑이다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기 교황직의 기조사상을 담은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시다(Deus caritas est)」(2005)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정의로운 사회 구조의 문제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성을 매우 더디게 깨달았던 사실을 인정”하고서(27항) “국가와 사회의 정의로운 질서는 정치의 핵심 임무다."라고 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저 질문, “정의에서 멀어진 국가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라는 힐문을 제기하는 용기를 보였다(28항). 교황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자선적으로 돕는 행동을 “조직화된 사랑”이라고 일컫는 대신에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위하여 일할 직접적인 의무”, 평신도들의 정치활동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용어를 빌려 “사회적 사랑”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29항)

 

 

 

1. 「신국론」에 열린 역사의 지평

 

인류사(人類史)는 곧 구세사(救世史)

 

   단선적(單線的)이든 순환적(循環的)이든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도 인생도 불가해한 것이 되는 까닭에, 인류사의 주도적 지성들은 역사가 논리적 구조와 존재론적 일관성을 갖는다고, 역사라는 것이 개별적 집단적 인간 운명과 그 존엄성에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 역사를 “인생과 인류의 스승”(키케로)으로 정의해 왔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통합한 그리스도교는 연대기를 새로 시작하였을 뿐더러(우리도 사용하는 서기(西紀)는 “그리스도 이전”(B.C. = Before Christ)과 “그리스도 이후" (A.D. = Anno Domini)로 연대를 표기하고 있다.), 인류에게 새로운 역사의식을 조성하였다. 유일한 하느님에게서 기원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최후의 결말을 맺을 단선적이고 보편적인 인류사(人類史)가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부각시킴으로서 인간은 역사의 전개에 있어서 하느님과 더불어 자기와 소속집단의 운명을 건설하는 주역으로 등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지적 작업은, 역사를 (하느님의 은총을 입으면서) 인간이 건설하는 자유의 산물로 의식하게 만들었고, 그러면서도 역사의 유한성과 퇴락성도 강조하기에 이른다. “구세사(救世史)”라고 불리게 될 이 역사는 시작과 끝이 분명한, 창조와 진화, 시험과 구원으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역사가 되었다.

 

하느님과 인간의 의지가 엮어가는 합목적적 역사

 

   서기 410년에 있었던 비시고트족 알라릭의 로마 점령과 약탈은 로마 제국의 모든 시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어 이 사건에 대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해명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당대 그리스도교 최고지성이던 아우구스티누스로서는 「신국론」을 써서, 그리스도인들이 조상전래의 신들을 저버린 데 대한 천벌로 그 재앙과 파국이 닥쳤다고 우기던 이교도들의 공격을 반박하는 동시에, 서기 410년에 이탈리아반도에서 벌어진 사건을 인류사(人類史)라는 거대한 지평에서 바라보도록 당대의 지성인들을 초대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에서 우선 세계는 저절로 존재하는 영원한 무엇이 아니고 하느님의 의지로 이루어진 피조물(esse creatum)이었으며, 따라서 역사는 부족한 데서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창조이자 구원이요, 하느님이 인간들에게 부여하는 사명(使命)이 되었다.

 

그 책에서 그가 역사를 여섯 시대로 구분하는 일은 그냥 흥미의 대상이지만, 인류사를 두 개의 도성(도시국가)이 이루는 역사로 구분한 일이라든가 역사를 추동하는 힘을, 운명과 우연한 세력 대신에 개인적 집단적 이기심과 개인적 집단적 이타심이라는 "두 가지 사랑", 또는 “사사로운 사랑”과 “사회적 사랑”으로 제시함으로써 윤리와 역사를 연관시킨 것은 독자적인 역사철학이었다.

 

그런데 인류사가 인간의 개인적 집단적 사랑의 성격에 따라서 ‘하느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으로 평행을 긋더라도, 시원으로부터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일직선이라면, 당연히 역사에 합리적 목적이 설정되어 있으리라고 전제된다. 역사는 하느님과 인간의 두 의지(意志)가 만들어내는 합작품이니만큼, 의지가 추구하는 이성적 목표가 있어야 하고, 더구나 주역은 창조주이자 구원자인 하느님이므로, 한 마디로 역사는 하느님의 예술 작품이고 인류사 전체는 결국 하느님의 영광(榮光)과 정의(正義)가 입증되는 과정이므로, 역사의 합리성은 응당 담보되는 것이다.

 

교부의 다른 설명은 인류의 교육(敎育)으로서의 역사다. 역사는 인류에 대한 구세사이기에 하느님의 예정과 은총을 통하여 인간의 개선과 구원을 이끌어내는 계도(啓導) 과정이며, 하느님의 주역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어떻게 개인과 민족들의 운명을 좌우하는지 보여주면서 역사의 전 과정을 거쳐 ‘하느님의 도성’이 건설되는 양상을 또한 보여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본서의 스물 두 권이라는 방대한 저작을 통해서 인류에게 해명하는 바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이 교육학이다.

 

시간의 연속성과 우유성이 역사를 구성한다

 

   역사는 인간으로부터(본서에서는 천사들의 등장으로부터), 창조설화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한 최초의 인간 아담으로부터 출발한다.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공간에 존재하는 구체 인간과 그 집단이 행하는 구체 사건이 역사를 만든다. 시간에 대한 의식(意識) 내지 연속의 시간을 착안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이며(그의「고백록」 후편), 그가 강조한 대로, 역사를 구성하는 형이상학적 원리를 꼽는다면 시간의 연속성(連續性)과 우유성(偶有性)이라고 하겠다.

 

시간은 우유이지만 그것을 역사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어떤 질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설화(說話)로 전해 오든 사실(史實)로 확인되든 그것이 과거로서 소멸하지 않고 현재에 생동하고 있을 경우에 한해서 역사적이라고 일컫는다. 그가 원죄의 설화나 성서에 실린 유대인들의 역사, 자기가 입수한 범위 내에서 로마 역사가들의 저술을 장황하게 인용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나자렛 예수”의 생애가 기정의 사건(factum)이면서도, 동시에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을 통해서 현재에 생동하고, 그분의 주재(主宰)로 보다 선하고 보다 정의로운 삶과 사회를 건설하는 인간의 노력에 성공을 예기(豫期)한다는 면에서는, 과거의 사실(Anno Domini)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fieri)는 말이다.

 

인간 각자가 현재를 인식하는 순간 한 인간의 개인사(個人史)가 대두되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 이를 술회하고 있다. 또 인류가 자기 과거의 현존과 자기 미래에 대한 예기 속에서 전체 인류의 현재를 인식하는 순간 인류사(人類史)가 대두되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신국론」에 담았다.

 

범죄(犯罪)와 구속(救贖)의 드라마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에 의하면, 하느님은 인류를 마치 한 사람처럼 세웠다.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두 사랑의 변증법이 인류 사회의 역사도 지배한다. 결국 인류는 집단적 이기심(利己心)과 위타심(爲他心)으로 해서 둘로 갈라진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이 끼친 영향을 꼽는다면, 그가 인간 실존의 역사적 차원을 부각시킨 점을 첫째로 꼽을 수 있겠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면서도 자신의 오만에 끌려가는 처절한 어떤 중력(重力)이 있다. 결코 반복되지 않는 인간, 결코 두 번 나타나지 않는 인생의 유일회성, 즉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실존적 차원에서 본다면, 각각의 순간, 각각의 행위, 각각의 오류는 한 인간의 역사(개인 구원)에는 물론이려니와 서로 유대하고 있는 한 민족 전체,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의 역사에 결정적이다! 그래서 개인과 집단의 모든 결단은, 특히 그것이 그릇된 결단일 때는, 신의 은총에 의해서 용서받지 않는 한,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전 인류에게 원죄를 물려주고, 나자렛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전 인류에게 구원을 준다는 해설이 대표적인 해설이다.

 

그래서 시간의 문제와 함께 자유(自由)의 문제는 역사의 불가분한 요소다.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투쟁, 범죄(犯罪)와 구속(救贖)의 드라마, 범죄할 능력을 갖춘 의지와 은총 사이의 드라마가 이 자유를 축으로 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해법은 윤리적 집단적 악을 제거함으로써, 인간 개인과 집단의 의지가 죄에서 해방되는 일이다. 철학이 고심한 악의 발원을 인간의 의지에 설정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설로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악(개인의 윤리악,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사회악)의 청산이 이론상으로 가능해졌다. 세계가 선악이원론으로 설명되거나 물질이 악이라고 단정된다면 악의 청산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2. 「신국론」에 묘사되는 “하느님 나라”와 국가

 

“은총에 의한 정치의 구원”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를 예찬하거나 정치철학을 수립한 사람도 아니었으나 그의 주저인 「신국론」에서는 인간의 사회적 조건, 국가의 개념, 그리고 국민의 정의로운 공존을 논하는 평화 사상 등이 두드러진다.

 

「신국론」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치사상을 간추린다면 “은총에 의한 정치의 구원”을 그가 일관되게 암시하고 있으며,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므로 국가 사회라는 것을 떠나서 지상의 순례길을 통과할 수는 없으나 인간의 초역사적 여정으로 미루어, 정치가 안고 있는 근원적인 결핍과 그에 대한 대안을 추구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비록 현세적이고 지상적이지만 “공동선에 대한 사랑”이 국가를 이루고, 그 성원들 간의 정의롭고 질서 잡힌 평화와 제도적인 통일이 정치가 존재하는 조건임을 역설한다. 그러나 “지상적 공동선의 추구”가 국가를 존재케 하는 조건인데 그 공동선이 유한하므로 국가의 존립 자체가 내부로든 대외적으로든 불화와 투쟁을 내포한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 속에서 전개되고 있으나 역사를 초월하는 하느님 도성을 바라보고 거기에 비추어 국가의 존재의의와 정의구현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인류의 시선을 열어주려고 「신국론」을 집필하였다.

 

인간의 사회적 본성

 

   고중세 서구사상에서 정치와 국가존립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토대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이요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관에서 유래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인류에게 본성에 있어서 사회적이라는 점보다 철저한 특성이 또 없다."(12.28). 또 "인간은 어떻게든 자기 본성의 법칙에 따라서 타인들과 더불어 사회(社會)와 평화(平和)를 맺으려는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자기에게 있는 것이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얻어주어야 하는 것으로 안다.”(19.12) 오로지 이기적인 적자생존의 본능에서 인간들이 사회와 국가를 협약하는 것으로 개념되던 국가관에 “자기에게 있는 것이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얻어주어야 하는 것으로 안다.”는 새로운 개념이 첨가된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오는 이 사회성은 원죄로도 말소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려니와 가정, 국가, 그리고 세계라는 세 차원에서 엄연하게 실존하는 현상이다(19.7).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류의 단일한 역사를 상정하는 토대로 인간 사회의 보편적 차원을 제공한 것은 서구의 스토아 철학과 성서였다. 성서에 의하면, 인류가 한 창조주에게서 기원한 한 조상에서 유래하는데 그 점이 교부에게는 하느님이 인류가 "자연본성의 유사성에 의해서만 아니라 혈연에 의해서"(12.22) 하나 되기 바랐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혈연의 애정이 "평화의 사슬로 묶이는 합심하는 일치"(14.1)에로 모든 인간들을 이끌어 가정과 부족, 국가와 국제사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용인하지 않는 그리스도교 교리는 하느님의 통치가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들 가운데” 미친다는 의식으로, 만인이 하느님의 자녀요 평화로이 공존할 형제들임을 대중에게 설득할 만한 토대가 된다.

 

“지상의 평화가 천상의 평화에 이바지한다”

 

   이처럼 국가가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서 비롯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신국론」에서 두 도성의 기원을 논하면서 보이는 그의 국가관은 퍽 비관적이다. 최초의 지상 도성 또는 지상 국가는 형제살인자 카인에 의해서였고 아벨은 "뜨네기 마냥 도성을 세우지 않았고 세상에서는 순례자요 하느님 도성에 속하는 사람"(15.1)이고 카인은 "인간 도성에 속하는 사람"(15.1)이라면서 암울한 정치의 시원이 카인에게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정치와 국가는 정상적인 인간 생활이면서도 인류가 누적해 온 개인적 집단적 죄악의 상처와 흉계가 현저하게 드러나는 영역이므로 국가는 사회적 차원에서 인간이 개인적 집단적 이기심과 본성의 이율배반을 극복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그렇더라도 카인이 “지상도성의 창건자”이기는 하지만 악마의 도성의 창건자는 아니다. 카인의 도성은 가족(家族)으로부터 출발한 자연스러운 조직이었고, 「신국론」에서도 가족의 번성은 혼인의 명예이고 사람이 범죄 하기 전에 하느님이 내린 선물이라고 단언한다(14.22). 사목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도 현세 국가의 중요성을 알았고 설교와 서간으로 신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신국과 지상국을 하느님 사랑과 자기 사랑으로, 사회적 사랑과 사사로운 사랑으로, 국경 없는 사해동포사상과 집단적 이기심으로 대당시키지만, 그래도 역사의 도정에서 두 나라는 한데 섞여있고 혼합되어 있으며 실제로는 단일한 인류가 지상의 나라에서 하느님의 나라로(아마도 역사의 도정 전체를 거쳐서만) 서서히 옮겨가는 도정처럼 해설한다.

 

또 현세에서 인간의 자연생활을 보장하는 그 나름의 평화라도 보장하는데 국가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되고 따라서 국가는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공통된 사회조직(19.26)이다. 따라서 신앙인은 국가와 평화를 멸시하지 말고, "천상 도성도 순례 중에 있는 동안에는 지상 평화를 이용하며 지상 평화가 천상 평화에 이바지하게 한다"(19.17). 그리고 비록 그리스도교 국가라고 할지라도 정치가 완전한 국가의 건설을 이룩하리라는 희망을 갖지 않지만 신앙인은 정치가들과 국가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바빌론의 지상 평화라도 보전되도록 힘써야만 한다(19.26).

 

"국가는 공공의 것(res publica)이고 국민의 것(res populi)"

 

   「신국론」에 나오는 국가의 개념은 제19권(21-24)에서 하느님 도성과 공화국(res publica)의 관계를 논하면서 제기되는데 우리가 유념할 만한 점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의 정의에 따라서 국가 또는 공화국(res publica)을 어원 그대로 "공공의 사물"(그 반대 되는 res privata는 가문(家門)과 씨족(氏族) 영역을 가리켰다.)이라고 정의하면서 “공공의 사물”(res publica)은 곧 “국민의 사물”(res populi)이라고 단언한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사상은 로마인들에게 일찌감치 친숙하였다. 그리고 키케로에게 있어서 정의(正義)는 단순히 정치 생활의 규범에서 그치지 않고 국민의 구성적 요소였듯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정치악을 해소하는 처방도 정의요 “최고의 정의(正義) 없이는 공화국이 통치될 수 없다.”(2.21)고 단언하였다.

 

국민을 키케로는 "온갖 종류의 모임이나 군중이 아니라, 법[정의]에 관한 공통된 인식과 공동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연합된 결사체"(2.21)라고 정의한다. 또 음악의 화음처럼 사회 정치 생활에서 그 구성원들 사이의 일치와 합심을 도모하며 공화국을 이루는 것은 다름 아닌 정의다. 정의의 약화는 그러한 일치단결이 사라지게 하고 그러한 국가는 더 이상 공화국이라 부를 가치도 없다(2.21). 정치는 정의(正義)에 본질이 있다. "정의를 결여한 왕국이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라는 문구(4.4)는, 키케로의 정의에 들어가는 국민의 개념, 곧 법정의에 관한 공통된 인식과 공동의 이해관계가 강도 집단에서도 통한다는 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눈에는 당대에 알려진 세계를 전부를 지배하고 정복한 로마의 제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민이란 사랑할 대상에 대해서 합의하여 뭉친 사람들"

 

   교부의 국가 개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고전적인 개념대로 “각자에게 자기 몫을 돌려줌”(suum cuique tribuere)이 정의라면, 인류가 자기 창조주 하느님에게 맞갖은 몫을 돌려드리고 하느님에게 순종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기본 정의가 인간 세계에서 수립되어 있지 않다면 지상에 정의로운 공화국도 정의로운 국민도 존재하지 못하리라. 그는 정의를 일컬어 "인류의 진정한 공동선인 하느님만을 섬기는 사랑, 그리하여 인간에게 복속되는 다른 모든 것을 잘 통치하는 일"이라고 하였고, "위대한 사랑이야말로 위대한 정의요 완전한 사랑이야말로 완전한 정의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참다운 정의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는 결국 하느님 도성 뿐, "그리스도가 창건자요 통치자가 되는 그 공화국에서뿐”(2.21)이며 국가의 정치는 그 본연의 사명을 결코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리라는 예감이 든다.

 

정의의 개념을 사랑의 개념으로 전환함으로써 그가 내리는 국민의 개념도 그 방향으로 전환된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새로 보완한 정의(定義)에 의하면 국민이란 "사랑할 대상에 대해서 서로 합의함으로써 한데 뭉친 이성적 존재들"(19.24)이다. 법정의(法正義)에 대한 공통된 인식(iuris consensus) 대신에 사랑할 대상에 대한 합의(concors dilectio)가 국기(國基)를 이룬다. "두 사랑이 있어 두 도성을 이룬다."(14.28)는 핵심 주제가 여기서 나온다.

 

두 도성의 판가름: “사회적 사랑”과 “사사로운 사랑”

 

   이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과 지상국의 소속 여부를 가리는 저 유명한 “사랑의 구분”을 제시한다. "두 가지 사랑이 두 도성을 건설했다. 하느님을 멸시하기까지 이르는 자기 사랑이 지상 도성을 만들었고, 자기를 멸시하면서까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천상 도성을 만들었다."(14.28). 이 도식은 다음과 같이 한결 더 구체화한다. "두 사랑이 있으니 하나는 순수하고 하나는 불순하다. 하나는 사회적 사랑이요 하나는 사사로운 사랑이다. 하나는 상위의 도성을 생각하여 공동의 유익에 봉사하는데 전념하고, 하나는 오만불손한 지배욕에 사로잡혀 공동선마저도 자기 권력 하에 귀속시키려는 용의가 있다. 하나는 하느님께 복속하고 하나는 하느님께 반역한다. 하나는 이웃을 다스려도 이웃의 이익을 생각하여 다스리지만 하나는 자기 이익을 위하여 다스린다. 천사들로부터 시작해서 한 사랑은 선한 자들에게 깃들고 한 사랑은 악한 자들에게 깃들어서 두 도성을 가른다."(De Genesi ad litteram 11.15.20)

 

 

3. 국가와 교회

 

제정분리(祭政分離) 이론의 역사

 

   머리말에 제일 먼저 인용한 교회 문헌은 “정치 공동체[국가]와 교회는 그 고유 분야에 있어서 서로 독립적이며 자율적이다. 그러나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의 구원이 요구할 경우에는 정치 질서에 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76항)라는 구절이었다. 이 원칙에는 그리스도고 사상사의 두 명제가 내포되어 있다. 국가와 그 기능에 대한 상대적 관점 내지 종말론적 단서인데, 이것은 지상국과 신국을 구분한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발원한다. 다른 한 명제는 14세기에 초에 단테 알레기에리(Dante Aleghieri)가 수립한 제정분리(祭政分離)의 원칙이다.

 

그리스도교 역사를 돌이켜 본다면, 초대교회 300년의 박해,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허용과 국교 채택, 서기 800년 샤를르 마뉴의 대관식 이후 교황의 서임권(敍任權) 논쟁을 거치면서, 서구에서는 중세 내내 교황권에 대한 황제권의 독립, 곧 신정(神政)을 주장하는 교권(敎權)으로부터 속권(俗權)의 독립을 주장해온 논쟁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4세기 로마제국의 동서 분할 이후, 동로마제국에서는 동방의 절대군주제와 그리스도교 유일신론이 이상하게 결합하여 바로 황제는 제국의 새로운 질서를 담보하는 역할을 맡아 하느님의 이름으로 각개인과 부족과 국민들이 세계와 사회구조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지정해 주었고 교회를 장악한 것도 황제였다. 더구나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로마 교황과 결별한 다음에는, 교회가 정치사회문제에 간여하는 이론적 시도는 전무해졌다. 서방에서 황제권과 교황권의 알력이 심해지면서 속권이든 교권이든 어느 하나를 절대시하는 관념이 흔들리고 그에 관한 사변적 토론이 이루어진 것과 대조적이었다.

 

그러니까 서구 가톨릭교회가 프랑스 혁명의 철퇴를 맞은 이후부터는 교회가 과연 정치에 간여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다시 조심스럽게 제기되어 지금에 이르렀지만, 그 이전의 중세를 돌이켜 본다면, 동로마 제국과는 달리, 서구에서는 오히려 국가가 교회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율적 영역이냐는 토론이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과 사변적 결말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단테 알레기에리의 「제정론(帝政論: De Monarchia)」(성염 역주, 경세원 2009)이다.

 

교황의 전권(全權) 이론

 

   단테 이전의 서구 중세 그리스도교의 인간관에 의하면, 교회의 세례는 죄 많은 자연인(自然人)을 새로운 피조물로 재생시킨다. 그렇게 세례 받은 신앙인(信仰人)들이 이루는 새로운 사회는 교회이며, 교회가 세계 전체가 된다. 정치적으로 “인간이 정당하게 만물을 통치하거나 소유하려면 육적인 출생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교회를 통해서 재생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대두되었다. 교회 홀로 참다운 사회일 때에, 자연인의 사회적 영역인 국가가 이론상으로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엄연히 민족국가들이 성립하던 단계에서도, 교황권과 황제권의 패권 다툼이 발생하면 지성인들은 목적론적 인생관에서 교황의 전권(全權 plenitudo potestatis)을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그 대표적인 명제가 보니파치우스 8세 교황의 칙서(Unam sanctam 1302년)에 나타난다. “두 검, 즉 영적인 검과 현세적 검 둘 다 교회의 권한에 속한다. 그러나 후자는 교회를 위하여 행사되고 전자는 교회에 의해서 행사되어야 한다. 전자는 사제의 검이요, 후자는 비록 국왕들과 군인들의 손에 있지만 사제의 묵인과 용인 속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검이 검 밑에 놓여야 하고 현세적 권한은 영적인 권한에 종속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 제도는 로마 교황에게 종속되어야 함을 선언하고 고지하며 구원에 필요한 교리로 정의하는 바이다.”(DS 870-875)

 

토마스 아퀴나스와 “목적론상의 상하 문제”

 

   그런데 이보다 반세기 앞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도입되고 그것을 토마스 아퀴나스가 종합한 13세기 르네상스는 자연인(自然人)이 그 자율적 위상을 재정립하는 전기였고 은총이 지배하는 초자연적 차원이 자연적 질서까지 전적으로 지배한다는 논리는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시민(civis)’이 부상하여 ‘신자(fidelis)’를 대체하고, 인간에게 초자연적 목적 외에도 자연적 목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재발견되는 시점이다. 토마스는 인간의 자연적 차원 내지 질서를 정립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현세의 궁극적 행복(ultima felicitas)에 관한 논지를 소개하기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궁극 행복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만다. 그 이유는 궁극적인 행복은 항속적이어야 하는데 현세의 삶에는 항속성이 없으며, 따라서 자연 이성이 밝히기로도 인간의 최종 목적은 후세에 있다는 이유였다.

 

토마스의 방식대로 인생의 목적에 궁극목적이냐 임시목적이냐는 등급을 매기면 인간을 각각의 목적으로 인도하는 지도력도 등급이 매겨지며, 잠정적 목적을 주관하는 자들(정치지도자들)은 최종 목적을 주관하는 자들(성직자)에게 귀속되고 그의 통솔과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중세 최고의 지성 토마스의 이 문제에 관한 주장(1265)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덕에 따라 삶으로써 더 궁극의 목적을, 하느님을 향유하는 경지를 지향하므로, 인간 개인의 목적이 또한 인간 사회의 목적이라고 말해야 옳다. 그러니까 덕에 따라 사는 일이 조직사회[국가]의 궁극목적이 아니라, 덕스러운 삶을 통해서 하느님을 향유하는 경지에 도달함이 조직사회의 궁극목적이다. 이것은 지상 국왕들에게 맡겨지지 않았고 사제들에게 맡겨졌으며, 특히 대사제, 베드로의 후계자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로마 교황에게 이임되어 있으며, 그리스도교 백성의 모든 국왕은 교황에게 복속(服屬)하기를 마치 예수 그리스도에게 친히 복속(服屬)하듯이 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궁극 목적을 주관하는 일을 맡겼기 때문이니 궁극 목적보다 선행하는 목적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복속하고, 그의 제권으로 영도받아야 한다.”(De regimine principum 1.14.6)

 

단테의 “두 궁극목적(duo ultima)"

 

   단테의 『제정론』은 철학적 사변으로는 방금 인용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De regimine principum에 나오는 목적의 상하론(上下論)에 대한 응답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가깝게 교황 보니파치우스 8세의 칙서 Unam sanctam에 대한 답변이라고 평가된다. 그는 국가 권력의 고유하고 자연적 토대를 내세워서, 스스로 정치문제에 책임지는 인간(civis)의 공공 책임을 각성시키고 자연인과 초자연인의 양극성을 철학적으로 확립코저 하였다. 토마스의 목적론의 핵심이라 할 현세적 목적과 영원한 목적 사이의 위계적 등급(位階的等級)을 사변적으로 제거하고, 오히려 토마스의 인간학에 근거해서 현세적 행복과 영원한 행복을 인간의 두 궁극 목적으로 설정하였고, 그 논리적 귀결로 인간의 두 가지 목적을 궁극적으로 관장하는 정치적 권위와 종교적 권위를 동등한 위치로 설정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영혼론』에 의하면 인간은 “부패하여 사멸하는 존재와 불후(不朽)하는 존재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다. 즉 영과 육의 합성체인 인간은 양극단의 두 가지 본성을 지닌다. 그리고 “중간점은 양편 본성에 다 참여하는데, 각각의 자연 본성은 일정한 최종 목표를 지향하므로 인간의 궁극 목적은 이중적이다.”라는 명제를 도출한다. 즉 만일 인간 본성이 이중적이라면 “인간의 (궁극) 목적도 이중적이어야 한다.”(「제정론」 3.16.6). 두 가지 궁극 목적으로 운명 지어진 인간이므로 사멸할 육체 차원에서 죽기 전에 향유할 최종 목적이 있고, 불멸하는 영혼 차원에서 사후에 향유할 최종 목적이 따로 있고, 인간을 그 이중적 목적으로 인도하는 두 지도자가 임명되어 있다. 교황은 계시로 인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하고 황제는 철학과 권력으로 인류를 현세적 행복으로 인도한다.

 

“인간에게는 이중 목적에 의거한 이중 지도(二重指導)가 필요하니, 계시된 가르침에 따라서 인류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교황과, 철학적 가르침에 따라서 인류를 현세 행복으로 영도할 황제가 그들이다.”(3.16.9-10) 이 둘은 상호 독립적이다. 사학자들의 평가대로 『제정론』은 서구 중세가 인간을 단순히 신앙인(fidelis)으로만 보는 단극성(單極性)에 대하여 신앙인이자 시민(fidelis et civis)으로 보는 양극성(兩極性)을 주창한 저서다. “인간은 두 개의 최종목적을 갖는다. 둘 다 최종적이며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귀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느 권위도 양자를 다 관장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렇게 토마스 아퀴나스의 궁극목적론이 교황의 전권이론에 이용될 만큼, 후세적 목적과 현세적 목적을 상하관계로 설정한 데 비해서, 단테는 두 궁극 목적(duo ultima)이라는 논리로 종교와 정치의 절대분리를 이론적으로 확립한 것이다. 머지않아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Marsilius)는 「평화의 수호자(Defensor pacis)」(1324)라는 책자를 통해서 소위 외연론(外延論)을 내세워 인간의 정치생활은 사회생활 전 영역을 망라하는데 종교는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 만큼 종교는 국가에 귀속되고(국가교회) 교황은 황제에게 종속된다는 이론을 개진할 것이다.

 

교황의 간접권과 교회의 대사회 발언

 

   단테는 토마스가 도입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자연법 사상을 구사하여 “자연적 사물에는 교황의 재치권이 미치지 않으며 초자연적 사물에만 미친다.”는 논리를 수립하였다. 그런데 중세 그리스도인이던 단테 알레기에리로서는 황제에 대한 교황의 간접권(間接權)까지 거부하지는 않았고 현세 존재의 최종 목적에서 영적인 영원한 목적으로 승화하는 것, 종교계가 세속의 정치 등에 강제적이 아니고 평결적이고 지도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일은 부정하지 않았다. 현대에 논의되는, 교회의 대사회발언을 정당화한 셈이다.

「제정론」3권 말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다만 마지막 문제의 해답은 로마 주공이 로마 교황에게 전혀 종속되지 않는다는 좁은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저 사멸하는 지상의 행복은 어떤 면에서 불멸하는 행복에로 정향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황제는 맏아들이 아버지에게 바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존경심을 베드로에게 구사할 것이다. 자부적 은총의 빛을 받음으로써 로마 주공은 자기가 온 세상을 보다 힘차게 비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영적이고 현세적인 모든 것을 주관하는 그분에 의해서만 세워진 것이다.”(3.16.17-18)

 

 

나가는 말

 

인간의 개인적 집단적 의지(意志)

 

   아우구스티누스의 직선적이고 유일회적인 역사관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자기가 행하는 선악과 국가사회에 대한 각자의 책임이 영원한 운명을 가름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한다. 악의 형이상학에 가장 깊은 사색을 남긴 이 교부는 개인의 행악과 집단의 행악이 개인들의 의지에서 나온다는 결론을 내려, 인간들이 사회악 앞에서 숙명론으로 기피하는 비겁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악이 인간의 의지에서 발원한다면 (물론 은총의 보우를 입어) 인간의 개인적 집단적 의지로 악을 청산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유지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민족국가와 인류사회의 역사에 사멸하는 인간과 더불어 전능하고 영원한 하느님이 공동주역으로 함께 하신다는 섭리관은 아무리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용기를 북돋는 희망이 된다.

 

“사회적 사랑”(caritas socialis)의 재등장

 

   키케로가 국가를 res publica(공공의 사물)이요 이것은 곧 res populi(국민의 사물)이라고 내린 정의가 「신국론」에 소개되어 있다. 국가는 어느 지역 맹주나 특정 사업가들이나 언론을 장악한 집단의 것이 아니라는 공공성을 부각시키고, 선거와 여론에 임하는 국민의 책임을 강력하게 부각시키는 말이다. 더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국민을 다시 정의하여 "사랑할 대상에 대해서 서로 합의함으로써 한데 뭉친 이성적 존재들"이라고 설파한 것은, 신앙인들 특히 그들을 교육시키는 성직자들이 가톨릭신자인 국민을 어떤 가치에로 각성시켜 나가야 할지 시사한다. 시민의 정치적 책임을 “사회적 사랑”이라고 정의한 교부의 표현은 근자에 사회교리의 기조어로 부상하고 있다.

 

가톨릭교회 “사회교리”의 당위성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의 구원이 요구할 경우에는 정치 질서에 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사목헌장 76항)는 1963년의 문서를 본다면 650년을 앞서는 단테의 사상사적 공헌을 짐작할 만하다. 단테의 글귀를 역으로 적용하면 오늘날 가톨릭신자들의 사회참여와 사회비판의 논거가 되는 까닭이다. 또 단테가 국가의 정치생활에 부여한 궁극성이 없으면 신앙인에게서 종교적 순교는 이끌어낼 지 몰라도, 시민으로서 국가의 운명과 개혁에 자기를 희생시키는 참여라는 용기와 동기를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