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내 인생의 책] (경향신문 2016.8.25)

④ 해방신학 |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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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해방신학의 때늦은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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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수 있는가?” 1970년대 남미에서 국가가 자행하는 사회 불의와 민중 학살을 저지하고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 질서를 건설하는 데 투신하던 가톨릭 신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군사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던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도, 청년들에게도 절실한 실존적인 의문이었다. 그 당시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은 내게도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마르크스의 사회비판과 일부 방법론을 수긍하면서도 크리스천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답이 있었다. 실제 이 책에 근거해 활동하던 ‘운동가’들은 지금까지 크리스천으로 남아 있다.

나사렛 사람 예수의 설교 주제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그 나라는 ‘가난한 사람과 우는 사람과 박해받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나라였다. 예수가 선포하던 해방은 전인적인 무엇이었으므로 도덕적 과오만이 아니라 가난과 병고, 억압과 소외라는 사회적 죄상을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만 참된 크리스천으로 불릴 만하다는 격려도 담겼다.

레이건 정부의 산타페문서(1980년)가 ‘민족주의’와 더불어 ‘해방신학’을 미국의 적으로 꼽자, 동구권의 붕괴를 기대하던 교황청은 ‘해방신학의 일부 측면에 대한 신앙교리성 훈령’(1984년)으로 해방신학 박멸에 나서 30년을 넘게 소모했다. 그 결과는 ‘가톨릭 대륙’이라던 라틴아메리카 기초공동체의 와해, 성령운동을 앞세운 개신교의 물량공세로 인한 남미 가톨릭의 붕괴였다. 30년이 지나 구티에레즈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초대받아 미사를 함께 집전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교황청 공식행사에 연사로 초청받고, 신앙교리성 장관과 공동저서를 냈다. 때늦은 이 복권을 반겨야 할지, 통탄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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