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4.8.14]


[기고]       교황님 어서오세요

성염 |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젊으셨을 적에 폐 한쪽을 수술하신 몸에다 당신의 여름휴가마저 희생하시면서 희수의 연세로 머나먼 아침의 나라를 찾아오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교황님 방한에 따라 온 세계의 눈이 아시아 청년들이 나누는 ‘기쁨’의 축제에 주목하고, 조선 조정으로부터 ‘사학죄인(邪學罪人)’으로 단죄받고 동포들에게 ‘천주학쟁이’로 욕먹으며 목숨을 앗긴 124위 선열이 서울 한복판에서 순교자로 시복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시복식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한국의 신자들과 함께 나누는 기쁨이자 각지에서 진리와 정의와 인권을 도모하다 국가폭력에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 모두를 위한 위로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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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영민 기자


작년 11월28일 로마에서 교황님의 아침 미사에 참석하고 나서 인사를 드리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을 찾아 주셔서 선임 교황님들처럼 인류 사회의 어른으로서 화해를 향한 남북한의 상호노력을 독려해 주십사 부탁드린 바 있습니다. 그때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시던 교황님의 친절에 다시 감사를 드리며 몸소 이 땅을 찾아오신 김에 국제사회가 향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반도 독트린’으로 기억할 만한 메시지를 남겨 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교황님께서는 훌륭한 국가는 당구공처럼 모든 점이 중심에서 똑같은 거리에 있는 구체가 아니라 들쑥날쑥 다면체여서 각각의 가장 좋은 부분을 한데 모아야 한다는 비유를 드셨습니다. 미·소 강대국에 의해 강제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그동안 기득권 세력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을 악용해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시도하는 온갖 노력에 ‘친공’이나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여 탄압해온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반공의 보루가 아니고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인권의 보루여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이 국민의 가슴에 각별히 와 닿습니다. 이런 현실은 최근에 교황님을 찾아간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의 부인들에게서 들으셨으리라 봅니다.

1984년 방한했던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은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군사반란에 저항하다 학살당한 광주시민들을 찾아가셔서 “근래의 여러 비극으로 말미암은 마음의 아픔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위로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 선례에 따라서 일본군에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인들을 비롯하여 현재 남한 사회에서 가장 크게 상처 입은 사람들을 이번 방문길에 만나시겠다는 교황님의 용단이 종교인들에게는 ‘가난한 그리스도의 살을 만지는’ 목자의 모습으로, 국민 모두에게는 인본주의의 표본으로 감동을 줍니다.

그간 교황님의 가르침이 인류 사회에 이른바 ‘프란치스코 충격’을 낳은 것은 세계를 점령하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를 ‘사람 죽이는 경제’로 규정하신 교황님의 용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수의 대기업이 국내외 경제를 장악하여 커다란 케이크를 만들어내면 국민들도 한 조각쯤은 얻어먹으리라는 순진한 ‘낙수효과’란 믿음에 맞서 교황님은 대기업이란 “술을 부으면 부을수록 커져만 가는 술잔”이라고 대꾸하셨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이자 시민인 그들을 써먹다 내버리는 ‘폐기물’처럼 취급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회의 현실은 교황님의 탄식 그대로입니다.

그 숱한 군사반란과 군부독재와 민중학살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국가에서마저 불의한 집단이 정권을 연달아 장악하는 까닭을 교황님은 그곳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보다 돈을 섬기고 있는 우상숭배자들이기 때문이라고 일깨우셨습니다. ‘웰빙 종교’ 차원에서 성당에는 나가지만 정작 돈을 하느님처럼 섬기고 있음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징표가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이며, 이 무관심이 세계화되고 있다고 하신 지적에 공감합니다. 이번 방한 기간 중에 교황님께서 만나 보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나 제주 강정과 밀양의 주민들이 바로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정치가들과 행정기관과 기업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입니다.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은 자신의 특권을 좀체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의 안위보다 훨씬 드높으며 이 가치들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드높여야 한다”고 교황님은 가르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르침을 실천에 옮겨왔고 교황님이 이번에 따로 만나시는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온 한국의 사제들을 우리 추기경 한 분은 “거짓 예언자”라고 손가락질하였고, 다른 추기경님은 그런 활동을 “직접적 정치개입이자 교회적 친교의 분열”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심지어 주한교황청 대사는 그 사제들을 ‘알카에다’ 또는 ‘좌경인물(sinistroidi)’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그러니 가톨릭교회에 “밖으로 나가서 사회를 책임지라!”고 외치시지만 정작 교황님 마음은 얼마나 외로우실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부디 건강하게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셔서 이 겨레와 한반도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도록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