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사임] 특별기고 /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교황의 용단,  차후 교황직에 좋은 선례될 터”

사임성명  발표에 전 세계 언론,  바티칸으로  시선  집중
“사임할  권리·책임” 등  평소  교황의  언급 생각해 볼  때
‘공표되지 않은 지병’ ‘바티리크스’ 등  추측  불필요한  일
 
                                                   가톨릭신문 [발행일 : 2013-02-24 제2833호, 13면]
 
 
P2833_2013_0224_1301.jpg    2005년 4월 17일이었던가? 가톨릭교회의 제265대 교황을 뽑으러 바티칸에 모인 추기경들이 콘클라베에 들어가기 전 성베드로대성당에서 집전하는 대미사에서였다. 추기경단장 라칭거 추기경이 열변에 가까운 어조로 강론을 하였다. 현대의 속화된 세계에서 진리가 상대화하고 종교 신앙이 상대화함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각오가 담긴 설교였고, 선거인 추기경들의 얼굴에는 ‘베드로의 유산’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흐르고 있었다. 

   내 곁에 앉아있던 대사가 “저 분이 백조의 노래를 부르는가요?”라고 내게 소곤댔고 나는 “아니오, 새 교황으로서의 취임사요”라고 대꾸하였다. “교황으로 들어가서 추기경으로 나오고 말겠지”(교황으로 유력시되는 인물이라고 언론에 비칠 적에 추기경들끼리 주고받는 농담)라고 그 대사가 중얼거렸으므로 내가 “우리 내기할까요?”라고 했고 그는 “좋아요. 한 턱 내기로 합시다”라고 응수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우리에게는 설날이요, 교회에는 성모님의 루르드 발현 기념일에 열린 추기경단회의에서 라틴어로 사임성명을 발표하시면서 전 세계 언론이 다시 바티칸으로 시선을 집중하였다. 서구 언론은 국제정치, 자연의 대재난, 인류의 도덕문제에 관한 교황의 발언을 미국 대통령의 언행보다 비중 있게 다루지만, 한국 언론은 교황청의 스캔들을 가십으로나 다룰 뿐 신년외교단 하례식장에서의 한반도 문제 언급도, 부활메시지나 성탄메시지에 싣는, 남북대화의 권유와 인도적 대북식량원조 호소마저 묵살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반 언론도 교황 사임 소식에는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현직 교황의 ‘자발적’ 사임은 1294년 교황에 뽑힌 지 넉 달 만에 사임한 성 첼레스티노 5세의 경우와 더불어 가톨릭교회에 두 번째 일어난 사건이다. 이 결정은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최측근으로 20여 년 근무할 적에, 파킨슨씨병을 앓으면서도 임종까지 직책을 수행하신 선임자의 모습에서 일종의 ‘반면교사’를 받으신 결정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2003년 7월초 필자에게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낸 대사신임장을 제정받으실 적에, 고개가 꺾이고 손을 떨고 손수건으로 연방 침을 닦으시면서 환담하시던 요한 바오로 2세. 어디서나 노인들이 퇴출되는 세태에서 병든 노구를 이끌고 최후까지 ‘베드로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여론도 있었고, 풍랑이 드센 현대사회를 헤쳐 나가는 항해에 ‘구원의 방주’의 키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는 호소도 없지 않았다.

시인 단테는 첼레스티노 5세의 사임으로 교황직을 계승한 보니파치오 8세가 교회와 사회에 끼친 해가 너무 크다고 생각해서 “겁에 질려 교황직을 거창하게 마다한”(「신곡」 지옥편 3,60) 첼레스티노를 지옥에다 집어넣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래로 ‘현대세계에 적응’을 화두로 삼아 수도회 장상들의 임기제, 교구장 임기제가 차례로 도입되어 ‘항상 젊은 교회’를 시도하는 가톨릭교회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용단이 차후 교황직에 좋은 선례가 되리라 본다.

교황은 3년 전의 어느 인터뷰에서 “교황직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생각한다면, 그는 사임할 권리가 있고, 어떤 상황에서는 사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까지 발언한 바 있다. 그가 첼레스티노 성인의 묘소를 두 번이나 방문한 일도 요즘 새삼 사람들 입에 오른다. 공표되지 않은 지병을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 6월 필자가 국무원장 베르토네 추기경을 방문하여 나눈 대화로 미루어 사임 동기를 ‘바티리크스’로 표면화된 내부갈등으로 추측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종교간 대화를 포기하다시피 하면서까지 유럽의 ‘새 복음화’를 시도하는 교황의 열의에 ‘가톨릭 성직자들의 미성년자 성추행’이라는 냉소적인 반격을 내놓는 서구세계가 거의 말세적인 집단적 이기주의와 환경파괴에 앞장서는데 실망한 라칭거 교황 역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낯선 길손을 붙잡고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루카 24,29)라던 기도를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걸어나간다.

또다시 시스티나 굴뚝을 올려다보면서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말라키아 수사가 예언했다는 ‘로마인 베드로’의 등장을 기다릴게다. 신기하게도 말라키아 성인이 열거한 111명의 ‘목록’은 우리 목전에 등장할 새 인물에게서 끝난다. 만일 교회일치에 방해가 된다면 ‘베드로의 직무’ 곧 ‘로마 주교의 수위권을 행사하는 새로운 방식’을 협의하자는 과감한 제안(1995년 「하나 되게 하소서」)까지 내놓던 요한 바오로 2세의 혜안이 다시 생각나는 까닭을 모르겠다.
 
              P2833_2013_0224_1302.jpg
              2005년 4월 24일 즉위한 베네딕토 16세를 알현하고 있는 성염 전주교황청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