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 2007.10.21)[노아의 방주]  

 

샴쌍둥이의 봉합수술

 

“바티칸의 외교는 상호주의가 아니다!”

 

작년 9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레겐스부르크 대학교에서 행한 강연으로 아랍세계의 반발이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이슬람 세계에서 온 대사들이 여간 흥분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교황청 아랍문제 전문가와 간담회 자리가 이루어졌다.

아랍 대사들의 이해를 도모하던 그 간담회에서 중동에서 온 그리스도교 신자 대사의 생뚱한 질문이 나왔다. “서구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이슬람 신도들에게 종교자유를 부여하고 심지어 종교세로 성직자 생활비를 보조하거나 사원을 지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전혀 용납되지 않지 않느냐?” 상호주의가 몸에 밴 외교관에게 그 예수회 신부는 “바티칸의 외교는 상호주의가 아니다!”라고 짤막하게 대답하였다.

 

또 작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직후 교황청 국무원장 베르토네 추기경이 신문기자에게서 “북한의 핵실험에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추기경의 답변도 간결하였다. “성좌는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가 아니라 문제를 해소하는 방도를 찾는데 역점을 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남북정상회담 축원

 

서기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국제사회는 김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할 만큼 높이 평가하였다. 3주 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직전이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9월 30일 여름별궁 카스텔간돌포에 모인 신자들에게 “한반도를 위해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곳에서는 두 한국 사이에 중요한 대화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하고서 평양에서 만날 두 정상을 위하여 삼종기도를 바쳤다.

 

열흘 후인 지난 11일 김지영 주교황청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서는 이 회담을 가리켜 “신실하고 지속적인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평가하고 남북한 간에 “유익하고 진정한 대화를 촉진하고, 분단과 적대감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하여 한국이 취해 혼 모든 시도”를 크게 칭송하였다.

 

대북지원이나 식량원조만 해도 교황청의 입장은 분명하다. 작년 북한의 핵실험 직후 우리 정부를 비롯하여 국제사회가 대북식량원조를 일체 중단했다. 6자회담 당사국 가운데서도 일본이 제일 강경한 대북제재를 취하던 참에 우에노 대사가 교황청에 새로 부임하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1월 13일, 그의 신임장을 제정받는 자리에서 “저는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국제사회가 가장 취약한 백성들에게, 특히 북한에 있는 백성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추구하고 강화할 것을 요청합니다. 갑작스런 중단이 시민들에게 참으로 심대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천명하여 일본 정부를 놀라게 하였다.

 

샴쌍둥이 같은 우리 처지

 

필자의 대사 재임기간은 북핵문제가 국제사회를 뒤흔들던 시기였다. 이라크전이 터지자마자 영국 블레어 총리가 “다음은 북한 차례!”라고 공언하였고, 유럽의 극우인사들은 “중국이 북한을 무력으로 점령하여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켜라!”는 칼럼을 세계 유수 언론에 기고하던 분위기에서 참여정부의 “포용정책”을 홍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분단된 한반도를 “샴쌍둥이”에 비유하여 교황청 인사들과 외교관들의 감성에 호소하였다. “우리 남북한은 몸통과 사지가 제각기이고 머리만 붙은 쌍둥이가 아니라 몸통과 사지가 온전한데 머리만 둘로 갈라진 쌍둥이 처지올시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남북한에 해 줄 것은 둘의 분리수술이 아니라 봉합수술입니다.”

 

따라서 필자에게 신임장을 받던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그 답사에서 “대량살상무기 특히 핵무기는 점진적으로, 평등하게, 또 결연하게 폐기되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한 말씀 가운데 “평등하게”라는 단어는 특히 의미있게 들렸다. 그것은 세계 유일의 이 기형아의 봉합을 위해서는 한편의 핵무기 개발 포기에 못지않게 다른 편이 쓰고 있는 핵우산도 접어야 한다는 권유로 들렸다. 새 교황도 김지영 대사에게 여러 나라가 개입하여 “형언할 수 없는 파괴와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진 무기의 생산과 계획을 저지시키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성좌가 전적으로 지지한다”면서 긴장이 해소되어가는 한반도를 두고 우리에게 안도의 말씀을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