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 성염 전 주 교황청 한국대사

 

한국천주교회 신앙의 사사화(私事化) 극복 시급

 

월간 <사목정보>는 성염 전 주 교황청 한국대사를 만났다. 20036월부터 4년간 대사로서 교황청과 세계교회를 바라보았던 그는 200711월 외교통상부에서 퇴임하고 지리산 발치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번역에 힘을 쏟고 있었다. <사목정보>는 한국을 대표했던 중책을 마무리 지은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국교회의 현안들을 풀 해법과 미래전망 등을 상세히 들어봤다. 인터뷰는 91일 장충동 분도출판사에서 마련됐다.

 

대사 재임 시절에는 주로 어떤 역할을 했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0036월말에 로마에 도착해 74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게 신임장을 제정하였다. 마침 그해 1211일은 한국과 바티칸의 수교 40주년이었으므로 급히 서둘러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느라 바빴다. 행사에는 교황청 국무원장 소다노 추기경과 내무장관 산드리 대주교를 비롯한 대주교들과 한국주교회의 의장 최창무 대주교께서 축하미사를 공동집전하여 행사가 성대해졌다. 성악가 조수미 선생과 고성현교수의 공연은 미사와 축하행사를 한결 돋보이게 만들었다.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의 역할은 우리정부의 사절로 일하는 것이다. 당시 한국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북핵문제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럴수록 국제사회가 6자회담을 비롯한 평화적 노력을 지지하고, 국내 및 국제사회의 대북원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만드는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였다. 또한, 한국천주교회의 위상이 보편교회내에서 진작될 필요도 컸다. 그리고 로마에서 연학하는 사제·수도자들을 고무하는 길도 모색해야 했다. 외형으로도 전임 교황의 서거와 새 교황의 선출 및 즉위(2005.4)로 바빴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교황청을 방문했고(2007.2), 한국교회에 새 추기경이 서임되는(2006.3) 등 꽤 분주한 기간이었다.

 

신자이자 외교관이라는 두 가지 신분으로 인해 도움이나 어려움이 있었다면?

 

교황청에는 가톨릭신자가 아닌 대사들도 많이 주재한다. 자기 국가의 주요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파견되기 때문이다. 가톨릭신자이자 외교관이라는 처지는 실제로 상호 보완한다. 신자여서 주재국 바티칸 인사들의 특유의 언어나 논리에 익숙하다면, 그런 논지를 따라 외교활동을 펼침으로써 우리의 국익을 얻어낼 기회가 훨씬 많다.

예컨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국제 사회가 응당 북한을 고립시킨다. 그럴 경우에도 6자회담 당사국들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지 않고 협상과 대화의 외교적 노력에 치중하도록 조력하는 것이 교황청의 기조정책이므로 한반도의 평화를 고무하는 바티칸의 정책이 특히 교황의 공식 발언으로 천명되고 국제뉴스에 보도되도록 노력하는 일이 대사의 임무다. 특히 6자 회담 당사국 가운데 일본은 북한을 대하는 입장이 매우 강경했고 북한의 핵실험 후 대북식량원조를 완전히 끊었다. 그러던 차에 일본대사가 새로 부임했고 교황은 그 대사의 신임장을 받는 자리에서 일본 국민에게 어떠한 경우라도 인도주의적 대북 식량 원조를 중지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따라서 이런 기회를 포착하고 적절한 교황의 발언과 교황청의 정책이 있도록 주재국 외교부와 긴밀히 협조하는 일도 대사의 본분이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앞두고 있을 때, 화해와 대화는 교황청에서 당연히 권장하고 장려하므로, 대사로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교황은 주일 삼종기도나 수요일 일반 알현에 참석하는 신자들에게 한반도의 남북 정상회담이 잘되어서 동북아 평화가 신장되도록 기도하자.”는 권유를 했고, 이전의 성탄 메시지나 부활 메시지에서도 한반도 사태가 6자회담의 틀 속에서 잘되기를 기원한다.”고 공언하여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할 수 있었는데 교황의 그런 발언은 정부의 대북포용정책과 우리 국익에 보탬이 되었다.

 

재임 시기 두 분 교황님이 계셨는데 공통점과 상이점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재임 26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선교사로서 위상을 확립하였다. 그 결과 그 교황이 서거했을 때 400만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로마에 운집했고, 80여 개국의 국가 원수가 장례식에 참석할 만큼 인류사회 앞에 교황청의 정치적 위상과 교황직의 정신적 권위가 높이 신장되었다. 그분은 대교황이라는 칭호를 들을 만한 업적이 있었다.

그분의 업적중의 하나는 그리스도교의 <사회교리>를 완성시켜 놓은 점이다. 재임 기간 중 그는 국가사회에서 신앙인들이 짊어지는 책무가 무엇인지, 선의를 가진 모든 인간들이 인권과 정의, 평화와 인류애에 의거하여 국제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하느냐는 메시지를 부단히 제시하였고 그것이 교황청정평위에서 펴낸 <간추린 사회교리>로 종합되었다. 그런 반면 교황청 자체의 개혁에는 거의 손을 안 대고 버려두었다는 평가도 있다.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무려 22년 동안 신앙교리성성에서 수장 노릇을 해온 학자이며 행정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교황직 첫날부터 상대주의라든가 세속주의를 비판하는 확고한 신념을 토로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전 인류의 사고나 문화를 바른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했다. 라칭거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가 유럽연합의 단결을 위해,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리라는 추측이 나왔고 그 대신 크리스천이 3% 밖에 안 되는 아시아에서 종교간 대화를 도모하는 일은 차선으로 미루리라는 추측이 외교가에 있었다. 과연 그는 즉위하자마자 교황청 종교간 대화 평의회를 거의 없애다시피 했는데 200년 레겐스부륵의 발언으로 아랍세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자 다시 그 평의회를 복원하기도 하였다.

 

한국과 한국교회에 대한 두 분 교황의 시각은?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을 2차례나 방문하였다. 방문 중 한반도 분단의 비참한 상황을 여러 번 언급하였고, 본인이 대사로 있는 동안에도 남북대화를 권장하고 국제사회를 향해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하였다. 북핵문제에서도 남북한을 동시에 공평하게 대하였다. 예를 들어, 북핵문제가 대두되었을 때는 대량살상무기는 단계적으로 검증 가능하게폐기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또한 공평하게라는 말을 덧붙였다. 한 편은 강대국의 핵우산을 쓰고 있으면 맞은편도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으로 들렸고, 이런 메시지는 우리정부가 2006년 가을, 한반도 비핵상태를 선언하는 데 반영되었다.

새 교황도 취임 후 교황청 주재 외교단과의 첫 만남을 나는 분단으로 고통 받고 억압받은 나라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국제 문제가 한 민족사에 끼치는 영향을 잘 압니다.” 라는 인사말로 시작했다. 본인도 현재 세계 유일한 분단국에서 왔다는 말로 교황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 때문인지 새 교황은 부활이나 성탄 때 한반도에 대한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대북 식량원조가 지속되기 바란다.’는 말씀을 거듭하였다. 한반도의 문제를 당신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추어 본 듯하다.

한국과 한국교회에 대한 관심은 교황의 새 추기경 임명으로도 확인된다. 그 사건은 교황 즉위식에 정부의 경축사절단으로 파견된 정동채 장관이 새 교황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한국에 추기경 한분 더 주십시오.’라고 요청한 말이 실마리가 되었고,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거치면서 또 한분의 추기경이 나오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으로 본다. 어느 나라에 추기경이 나오면 12억의 가톨릭을 통치하는 조직에 그 나라 교회가 적극 참여한다는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그 당시 유럽의 여러 수좌 주교들이 추기경이 되지 못하던 상황이었으므로 현교황이 그만큼 한반도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는 호의로 여겨졌다.

 

한반도에 대한 교황의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한국교회는?

 

교황청에 가서 처음 느낀 것은 가톨릭 신자가 우리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일본에 커다란 비중을 두는 점이었다. 최근에는 15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고 교황청과 외교관계를 맺을 것을 전제로 중국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드러나게 표방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동북아 사회에서 분단 한국이 가진 지정학적 의미도 중시하고 있다. 비록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새 추기경이 서임된 배경에는 서울대교구장이 평양교구장을 겸임하는 사실도 비중을 지녔고, 분단된 사회에서 가톨릭교회가 화해와 일치, 용서와 나눔이라는 복음적 원칙에 입각하여 민족 공동체를 끌고 가리라는 교황의 기대가 나름대로 작용했다.

북한 핵실험으로 대북 식량원조가 차단되었을 때에 일본 대사에게 무슨 이유로든지 대북 식량 원조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 교황의 태도로 미루어, 지금처럼 정부가 대북강경책을 구사할 때일수록 한국교회가 대북 식량원조의 물꼬를 트고, 정부나 다른 단체가 활동에 함께 나서도록 조장하면서 동북아 사회에서의 화해와 평화의 선도적 역할을 하도록 교황청이 기대하고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선교적인 차원에서도 북한, 연변을 비롯한 중국, 만주, 시베리아 등지에 선교사를 배출하는 역할을 한국교회가 주도하리라는 기대를 여러 장관 추기경들에게서 들었다. 동시에 필리핀, 베트남, 타일랜드 등 동남아사회에서의 교회건축이나 자선사업에 한국 신자들의 관대한 지원을 기대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필리핀은 가톨릭국가지만 재정적으로 힘이 약하고 인도는 자기들 앞가림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한국이 동남아에서 사제·수도자 양성에도 일익을 담당해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임기를 마치고 1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한국교회를 평가한다면?

 

대사로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200611EU헌법 초안에 서명하려고 유럽연합 국가원수들이 로마에 모였다. 그런데 그 경사가 교황청에는 매우 씁쓸한 행사였다. 왜냐하면 전임 교황도 새 교황도 유럽이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EU헌법에 명시적으로 언급해 달라고 거듭거듭 요청했는데 유럽연합이 완강하게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때 본인은 중세와 근세 민주주의 발전과 현대국가 탄생에서 가톨릭교회가 별로 이바지한 바가 없는 것으로 유럽 사회가 평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다. 요한 바오로 2세가 4반세기 동안 완성한 <사회교리>가 엄연히 존재한다. 이 교리는 현대 인류와 한반도에 그리스도교가 존재할 이유 중의 하나를 제공한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교회의 제도권 밖에서 운동권이 만든 창작물이 아니고 역대 교황들의 회칙과 주교 시노드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만들어진, 가톨릭 교회의 공식 가르침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좌익이라고 욕하고, 그들을 헐뜯는 사람들이 스스로 보수로 자처한다면, 사실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자기네 주장을 내놓을 이론적 성서적 명분이 없다. 또 교황과 주교단은 <사회교리>를 발표하면서 실천하라고 호소하고서는 정작 그것을 앞장서 실천하는 성직자나 신도들을 교계인사들이 비난하고 불이익을 준다면 국민은 교회에 대한 존경과 기대를 포기할 것이다.

새 교황도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시다>(Deus Caritas Est) 28항에서 정의 구현을 위한 신앙인의 정치적 투신과 행동을 사회적 사랑’(social charity)이라고 명명하였다. ‘사회적 사랑이라는 말은 본래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표현이다. 그는 자기 주저인 <신국론>에서 사람이 신국이나 지상국 어느 편에 속하는지 각자가 판별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는 사랑을 사회적인 사랑사사로운 사랑으로 구분하고서, 사회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성에 속하고, 사사로운 사랑(무슨 명분으로든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지상의 도성에 속한다고 설파하였다. 즉 정의사회구현, 민족의 화해와 통일,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 등은 각자가 이데올로기에 따라서 마음대로 선택할 취향 문제가 아니라, 신앙인이라는 내가 과연 하느님의 도성에 속하는지, 아니면 지상의 도성에 속하는지 구분하는 기준이라는 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그 착안을 드디어 현교황이 공문서에 채택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40년에 걸친 군부독재 하에서 여러 주교들이 비판적 발언을 하면서 사회를 끌어왔고 정의구현사제단도 많은 희생을 하며 앞장 서왔다. 남미처럼 총을 든 게릴라를 따라다니던 사제들이 아니라 본당사목을 충실히 하면서 사회문제에 투신한 사제들이기 때문에 교황청은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사회교리 실천을 위한 어떤 샘플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교회 지도층과 사목자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

 

과거 80~90년대에 교황청 일부 인사들이 정의구현사제단에 제재를 가하라는 주문을 수차 했었다. 그렇지만 한국주교단은 공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일체 취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주교단의 현명한 처사였다는 것이 본인의 평가다. 어떤 사제들은 변방사제로서 변두리로만 이동했노라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덕분에 주님처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특전적인 결과가 왔으니 차라리 십자가를 가까이 따른 영광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어느 교구의 인사이동은 주교단 전체로서 자중해 오던 제재를 드디어 그곳 교구장이 나서서 감행한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정권의 부침이 있겠지만 결국 정의, 인권, 민주, 남북화해 문제 등은 우선적으로 자리에 돌아오고, 안보, 경제, 이념 같은 용어는 뒤로 물러나게 마련이다. 국민이 사제단을 긍정적으로 보는 한 역사가 흐르면서 결국 그런 보복적 인사이동을 감행한 분에게 역사의 부정적 평가가 덧씌워질까 안타깝다. 최근에 우리가 목격하였지만 가톨릭 교회의 인사들마저 친일파 명단에 오르리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한국교회는 신자는 늘었지만 냉담률 증가와 고령화 등 난제들이 많습니다. 먼저 풀어야 할 문제는?

 

남미의 경우 해방신학으로 인해 기초공동체가 일어나면서 신앙의 뿌리가 튼튼했었지만, 막시즘에 기울어진다고, 또 과격하다는 평가를 달아서 교회가 해방신학을 단죄하고 말았다. 그러자 남미에 성령운동이 대대적으로 보급되었고 그 후속결과로 개신교가 가톨릭을 엄청나게 잠식했다. 작년에 교황이 남미를 방문한 목적도 그 잠식을 우려해서였다. 그 대륙에 피어나던 기초공동체들을 파괴 해버렸기 때문에 가톨릭신앙을 지켜 줄 힘이 없어져 버린 사실은 이미 잊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중국의 대지진, 쇠고기 촛불집회 같은 사건들이 발생했을 때 교우들은 강론에서 사제들이 그런 문제를 언급하는 말씀을 통해 신앙인으로서 그런 사태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깨달으며, 신자들의 기도에서 그 희생자를 위한 기도가 나올 때 이 문제가 신앙의 문제임을 알아듣는다. 그런데 쓰나미나 중국 대지진 같은 재앙에 대해서 미사 중에 일체 언급이 없으면 이것은 신앙하고 상관없구나.’라고 판단할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 신앙은 사사화(私事化) 된다. 내가 내 이데올로기의 입맛대로 처리할 사사로운 일이 되고 만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내가 기도하고 주님께 은총 받고 영성체 하는 일 빼고 모든 일이 사사로운 것이 되고 만다.

한국의 가톨릭이 중산층교회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중산층교회라는 말은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들을 말이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은 복 받는다고 했는데 중산층의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리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기쁜 소식이 없는 것말다. 서울 어느 재개발 지역에 새 본당이 섰다고 하자. 성당에 나오는 교우가 가난했지만 돈을 벌어 그 동네에 아파트를 샀다면 다행이지만 가난한 빈민들은 재개발 때문에 쫓겨서 경기도 변두리로 가고 그 자리에 중산층 지역이 만들어졌다면 그 본당 공동체가 과연 하느님의 눈에 사랑스러울까? 가난한 이들은 오늘 하루 먹을 양식을 하느님께 빌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절실하게. 그러나 중산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한 달 일 년 먹을 것이 보장되어있기 때문에 오늘 일용할 양식에는 흥미가 없다. ‘주의 기도를 외지만 그 뜻을 이해하기는 아주 어렵다.

결국, 신앙이 사사화 되면, 주일에 성당 가는 문제도 사사로운 일이라서 얼마든지 제쳐 놓을 수 있다. 교우들이 이렇게 훈련되면 교회를 비워지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유럽에서 4~5천명이 모일 수 있는 대성당에서 교구장이 드리는 주일미사에 노인들이 50여명 앉아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신앙이 사사화 되면 결국 신앙 자체에 대해서도 진지함을 잃고, 교회 동공화 현상이 온다는 것이 이태리에 12년 정도 살면서 본인이 관찰하고 느낀 점이었다.

 

차기 서울대교구장에 대한 전망은?

 

한국교회를 지도해온 노장 교구장들의 은퇴로 수년 내에 한구 주교단의 세대교체가 이루어 질 것으로 내다보인다. 바오로 6세와는 달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진보적인 인사들을 교구장에 거의 임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적어도 유럽에 퍼져 있는 평가다.

언제 누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될지 아는 바 없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교우들과 국민에게 대화, 일치, 나눔, 사회교리 혹은 사회적 사랑을 선도해 나갈 교구장이 나온다면 서울대교구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 행운이겠다. 하여튼 새 교구장은 동북아 선교에서 한국교회가 맡을 역할, 또 동남아 사회에서 종교단체들의 신장과 발전에 한국교회 혹은 서울대교구가 이바지할 공헌에 대한 국제적 사회의 기대는 단순히 본인의 개인적 기대나 추측이 아니다.

 

앞으로 계획과 <사목정보>의 역할에 대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방대한 저술을 했다. 현대사회에 주는 메시지가 엄청난 그의 글들은 라틴말로 쓰였다. 때문에 번역하는 분들이 소수다. 내 여생 동안 그분의 저술을 일부나마 우리말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일이 내게 주어진 임무로 보고 있다.

<사목정보>가 사목자들에게 귀중한 정보를 주는 역할을 다하기 바란다. <사회교리>는 반드시 실천해야할 제도 교회의 공식 가르침이므로 사목자들이 개인적 이념적 취향에 따라 선택하거나 무시할 수 대상이 아니다. <사목정보>도 그 자료를 꾸준히 실어 보내서, 사목자들이 활용하여 신자들에게 사회 문제에 시선을 돌리게 만들 정보를 줘야 한다. 정보를 제공하는 편이 일방적이면 독자들이 다른 정보에 접근하여 신앙의 시각을 정화하고 확대할 길이 없다.

<사진에 캡션>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는 로마 교황립 살레시오 대학교에서 라틴 문학을 전공했으며 대사로 임명되기 전까지 서강대 교수를 역임했고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 우리신학연구소 소장과 이사장, 가톨릭교수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고전 라틴어,인간이라는 심연, 님의 이름을 불러두고등이 있고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글 김양석 사진 최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