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시오가족 인터뷰

(2007.10.12)

 

1. 재임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일

 

저의 4년 임기 중 2003년에는 한국-교황청 수교 40주년 행사, 2005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와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즉위, 2006년 정진석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 20072월 노무현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 등이 있었습니다. 외교관으로서는 북한의 핵문제가 한반도에 국제적 위기를 몰고 왔으므로 교황청과 그곳 주재 대사들을 상대로 한반도의 평화를 보전하는 일에 일조해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마지막 부활절(2005327) 메시지였습니다. 병이 위중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걸어 나가야 할 교황님은 불과 네 문단으로 그친 그 메시지에서 주님, 우리와 함께 묵으시지요!”라던, 엠마오 제자들의 호소를 무려 여덟 번이나 되풀이하셨습니다. 엄청난 비극으로 점철되는 인류와 문제가 산적한 교회를 주님께 맡겨드리고 떠나는 늙은 목자의 유언이었습니다.

 

2. 교회 안에서 살레시오회의 역할과 위상

 

베르토네 추기경께서 교황청 국무원장(총리)로 취임한지 얼마 안 되었을 적의 일입니다. 브라질 대사가 제 곁으로 와서 보스코, 내가 새 국무원장을 만났는데 분위기가 도대체 달랐어. 그게 뭘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건 살레시안 기질(Salesianita')이 아닐까?”라고 제가 반문하자 그 대사는 맞아, 바로 그거였어! 그분이 살레시안이라는 거였어!”라고 맞장구쳤습니다. 젊은이들과 더불어 살면서 그들로부터 우리가 체득하는 시대적 감수성, 누구나 맞아들이는 개방적 자세, 모든 것을 내놓는 헌신, 성체와 성모와 성하께 드리는 사랑이 교회 안에서 살레시안들이 가면 갈수록 환영받게 만들고 있음을 저는 지난 4년간 바티칸에서 실감하였습니다. 현재 자기 수도회 출신 추기경과 주교의 숫자를 가장 많이 둔 곳이 살레시오회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청소년과의 삶은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고 대처하는 모험이며, 가톨릭교회의 모든 분야에 노쇠 현상이 드러나는 시점에서 살레시오회가 아직 젊은 기백을 보이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3. 아시아교회의 복음화를 위해 한국교회, 그 중에서도 살레시오회 한국관구에 기대하는 것

 

일본 교토에서 바다건너를 바라본 돈보스코의 꿈은 이 21세기에 현실로 바뀌리라고 봅니다. 필리핀을 제외하면 가톨릭신자가 인구 10퍼센트를 상회하는 아시아 국가는 한국뿐입니다. 성소가 급감하는 로마교회는 북한, 몽골, 만주와 시베리아에 복음을 전할 일꾼들을 못 보냅니다. 이 지역 선교는 필리핀, 인도와 베트남, 그리고 누구보다도 한국교회에 맡길 수밖에 없죠. 적은 숫자로도 일당백의 수고를 감행하기에 살레시안의 사망원인은 과로사뿐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정말 한국 회원들의 팔자가 될 것입니다.

 

 

 

4. “생명의 복음과 한국 살레시오 가족

 

제가 대사로 부임하여 교황께 대통령의 신임장을 제정하는 행사나 교황님과 주고받은 연설문이 교황청 일간지에 평소 다른 대사에 비하여 두 배의 지면을 차지하였습니다. 이 신문은 살레시안들이 맡고 있지요. 그분들은 저의 대사 부임과 이임 시에 맨 처음 환영 만찬과 맨 마지막 환송 오찬을 베풀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베르토네 추기경의 국무원장 취임을 두고 모든 대사들이 당신은 좋겠다. 살레시안이어서라고 부러워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교황청을 공식 방문하였을 적에 교황님과 연설문을 교환한 것은 다름 아닌 국무원장 추기경의 예외적인 배려였으니까요. 이처럼 살레시오 가족은 회원, 졸업생, 협력자들이 한 집안으로 뭉쳐 서로 아끼고 보살핍니다. 수도회를 떠난 뒤에도 변함없이 한 가족으로 대하고 오가는 수도회는, 제가 알기로는 살레시오회 하나뿐입니다.

 

5. 앞으로의 계획

 

제가 1980년대초에 로마 살레시안대학교에 유학한 것은 라틴문학을 익혀 교부들의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하려는 목적에서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요 작품들을 몇 개 옮기기는 했지만, 교수생활과 대사생활의 분주함으로 뜻대로 못 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내어놓고 은퇴하므로, 주님이 허락하시는 여생에는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들을 번역하는 일에 몰두했으면 합니다.

 

[사진] 2007.9.15 교황 베네딕토 16세께 이임 알현에서 찍은 가족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