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신학 1995.9 ]

 

북경 남당의 성모상

---북경 세계여성대회에 다녀와서

 

전순란 (여신학자협의회 회원/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공동대표)

 

     북경에 도착한 첫 번 일요일, 내가 속하는 팀은 천주교 북당에서 한국인 미사를 드렸다. 그 미사를 집전한 한국 분도회 소속 김상진 신부는 북경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의 의의를 강론 중에 상기하면서, 적어도 북경 남자들은 남녀평등을 명실공히 이루고 있는만큼, 이제는 남자들도 존중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야기도 덧붙였다.

 

사석에서 들은 그분의 얘기에 의하면, 남편이 밤늦게 돌아오면 아내가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하릴없이남편은 문밖에서 밤을 새야 한단다. 심지어 남편이 잘못을 저지르면 아내가 빨래판에 남편을 무릎 꿇리는 일도 있단다. 최소한 한족(중국인)과 결혼한 여자는 귀한 몸으로 대접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런 일화들이, 변방 조선반도에서 살면서 가부장 문화에 푹 절어온 40대 여자에게는 도무지 생소하기만 했다.

 

그런데 북당으로 시작하여, 최초의 조선인 사제 김대건 신부가 사제가 되기 전 3년을 보냈다는 소팔가자 성당, 길림과 장춘의 성당들을 돌아보면서 유난히 눈을 끄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어느 성당이나 성모화상이 성당 정면에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비해서, 예수상이나 십자가는 한참 눈여겨 보아야 눈에 띈다는 점이었다. 일행의 연변 방문을 안내하다가 우리의 의구심을 알아차린 김상진 신부는 길림성 “성모동산”에서 거행되는 성모성탄 축일 미사에 참례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북경의 화려하고 거창한 황실문화와 대조되어 이 성모동산의 중심지는 거친 돌팍과 시멘트로 얼키설키 꾸며놓은, 그야말로 민중문화의 조악한 동굴이었다. 하지만 칠백리 팔백리 길을 멀다않고 기차나 전세버스나 도보로 찾아온 수만명 순례자들의 인파는 나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전세계에 예수 성탄이 제일 큰 축일이듯이, 중국인들에게는 성모성탄이 제일 큰 축제라는 설명이었다. 북경의 황실문화가 거창하고 하려하고 남성적인 민중수탈의 자취였다면, 이 소박한 서민들의 가난하면서도 여성적인 축제는 중국인들의 심중에 담겨진 여성상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상상해 보았다.

 

수십년 반종교적인 정치 상황에서 천주교도들이 어머니로 받들어 온 성모 마리아. 그러한 공경 중에 남녀 신도들의 마음에 깃든 여성상, 빈곤과 긴장 속에 그들을 지켜 준 유일한 정신력... 그래서 중국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천주교의 성모공경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돌아오던 날, 북경 남당 제단에 서 있던 성모상이 유난히 커보였던 까닭은, 북경 세계여성대회에서 우리가 깨달은 긍지와 기대와도 통하는 바가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