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05.4.4]

 

"교황 마지막 길 지켜보게돼 행복"

초미니 駐바티칸 한국대사관 성염 대사와 부인 전순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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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의 장례식이라는 대사(大事)를 치르고 있는 성염 주 바티칸 대사와 부인 전순란씨. 성 대사는“교황의 저서에 감명받아 5권을 번역했는데, 그분의 마지막까지 지켜보게 됐다”고 말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이 되기 전부터 제가 무척 존경했던 분이지요. 그 덕에 그분의 장례를 치르는 기회가 제게 주어졌나 봅니다.”

로마 동북쪽의 언덕 마을 주택가의 ‘주(駐) 바티칸 한국 대사관’. 대사와 서기관 2명으로 구성된 이 미니 공관에서 조용히 근무해 오던 성염(63) 대사는 부인 전순란(55)씨와 함께 교황의 장례식이라는 세계적 대사(大事)를 현장에서 치르느라 눈코뜰 새가 없다.

성 대사는 직업 외교관 출신은 아니다. 한때 대학 교수였고, 젊은 시절엔 신부가 되려던 신학도였다. 그는 1972년 전순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신부의 꿈을 접었다. 당시 청년 성염은 가톨릭대 부제반에 몸담고 있었고, 전순란씨는 한국신학대 총학생회 부회장이었다. “영혼이 너무나 매력적인 사람이었지요” 부인 전씨는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듯 눈빛을 반짝이며 남편과의 연애 시절을 얘기했다.


 

성 대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의 인연도 남다르다. “그분이 추기경 시절에 낸 설교집 ‘반대받는 표적’을 읽고 감명받아 한국어로 번역한 게 첫 인연이지요.” 성 대사는 교황이 낸 15개 회칙 가운데 초기 5권을 번역했다. 게다가 성 대사의 장남 하은(31)씨도 교황의 마지막 저서 ‘일어나 갑시다’를 번역했으니 각별한 인연이다.


 

이들 대사 부부는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부부 외교관 역할을 해낸다. 이탈리어와 라틴어에 능통한 성 대사는 현재 교황의 장례식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한국 보도진들에게 라틴어로 된 교황청 문서를 번역해 ‘보도자료’를 나눠준다. 부인 전씨도 이탈리아 TV 주요 뉴스를 성 대사에게 모니터링해준다.


 

이들 부부는 80년대 6년간, 90년대 2년간 이탈리아에 살았던 적이 있다. “70년대엔 ‘해방신학’ 등 소위 기독교 운동권의 필독서였던 책을 번역하면서 생업을 이어갔어요. 운동권으로 찍혀 10·26 직전 한 달간 남산 안기부에 끌려간 적도 있지요.”

80년 마흔 나이에 뒤늦은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부인 전씨와 두 아들도 동행했다. 6년 만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한국외국어대를 거쳐 90년부터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지난 2003년 바티칸 대사로 부임할 기회가 주어졌다. 성 대사는 “신상 명세서에는 언제나 키 160㎝라고 쓰지만, 실제 키는 1~2㎝ 모자란다”며 “이 짜리몽땅한 사람이 연미복 입고 외교관 하는 걸 떠올리면 나 스스로도 웃음이 터져나올 때가 많다”고 웃었다.

성 대사는 “군사력·경제력이 아닌 정신적 가치를 무기로 하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바티칸”이라며 “국제질서의 또 다른 면모가 이번 기회에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각자의 종교인 가톨릭과 개신교를 변함없이 간직한 채 30여년 결혼생활을 평화롭게 유지해왔다. 장남 하은씨는 NGO운동을 열심히 해온 어머니의 뒤를 이어 제네바대에서 NGO 국제정치를 전공하고, 차남 하윤(26)씨는 아버지가 접었던 꿈을 뒤이어 살레시오수도원 소속의 수사로 있다.


 

바티칸=강경희특파원 khkang@chosun.com but_blog.gif
입력 : 2005.04.04 18:04 41' / 수정 : 2005.04.04 19: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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