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3일 화요일. 흐림


사람들은 좋은 날 다 놔두고 차일피일 미적거리다 춥고 바람 분다면 이렇게 마음이 바빠질까? 어제 새벽부터 섞박지 할 무를 썰어 소금 조금 뿌려 슬쩍 절여 놓고 함양 장날이라 양념 거리를 사러 읍내엘 갔다. 비 오고 바람 분다는 소식을 들었을 터인데도 시장엔 사람들이 김장거리 무더기 만큼이나 많았다. 요즘 며칠 함양의 코로나 상황이 별로여서 서로 만나기도 기피하는 터에, 역시 겨울 양식 마련하는 김장의 위력은 대단하다. 시장통이 와글와글, 코로나로도 그 열기는 여전해서 은근히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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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시작한 섞박지 담그기는 저녁때야 끝났다. 플라스틱으로 네 통을 채웠는데 전년에 비해 양이 적어, 나눠줄 분량이 나눠줘야 할 사람 수에 턱없이 부족하다. 우선 직장 일을 하느라 김장하기가 수월치 않은 사람을 꼽다 보면, 정말 친하거나 내가 담근 김치 좋아하는 사람이 후순위로 밀리기도 해서 애석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충분히 나를 이해해 주겠지 하는 심경.


그런데 단이 좋아 장에서 사온 파와 갓을 다 처리하지 못했다. 도정 체칠리아도 진이엄마도 김장을 끝냈고 나도 더는 일하는 게 귀찮은 나이인지라, 일을 벌린 내가 책임질 수 밖에. 어제 저녁나절 보스코가 두상이 서방님이 작년에 준 미니 비닐하우스를 설치해서 근대, 당근, 상추(일부)를 덮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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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일기예보대로 바람이 쌩쌩 불고 날씨가 퍽 찼다.  간밤에 배추가 어찌 됐나 궁금해 텃밭에 내려가 보니 보스코가 어제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나오다 텃밭 울타리문을 미처 닫지 않아 사단이 나 있었다. 저들도 배가 고파 먹을 게 없었을 테지만 마을까지 내려왔다 우리 텃밭이 궁금했는지, 멧돼지가 들어와서 무 밭은 코로 후비다 짓밟아 놓았고 배추는 여러 통을 밟아 쓰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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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들한테 뽑히고 짓밟힌 무는 어쩔 수 없이 거둬다 전날 김장한 섞박지들과 다시 버무려 한 통을 더 만들고 남았던 파는 까서 갓과 섞어 파김치를 담그니 오늘도 김장놀이로 하루 해가 저물었다. 내가 밭에서 배추라도 뽑는 줄 알고 올라온 아짐이 파 까는 걸 거들어 그래도 쉽게 일이 끝났다


파를 까며 그미는 자기의 머나먼 기억을 더듬으며  라이프스토리를 풀어낸다. 나에겐 파 까는 일보다 그녀의 이바구에 더 구미가 댕긴다내 생일은 동짓달이여.”로 시작되던 그미의 서러운 어린 시절


어무이가 첫 아이로 나를 낳자 시압씨가 문열이부터 가이나를 낳았다고 퍼대기째 뒤엄더미에 갖다 버려버렀어. 어무이는 그것도 모르고 새끼 찾아 산으로 논두렁으로 내달렸지만 몬 찾았고 밤늦게 돌아오던 아배가 김이 폴폴 나는 뒤엄더미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를 내는 내를 안고 들어와서 내사 살았제. 뒤엄 더미에 묻어버렸거나 날이 샜으면 얼어죽었을 끼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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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배가 군대에서 돌아오자, 시압씨가 가이나 난 각시 말고 새 장가 가라캤는데, ‘먹을것도 없는 집에 한 입이 어디라고 새 각시 보냐?’고 아배가 한사코 마다 했다는구만. 그 뒤로 쪼르라니 아들 넷을 나아 바쳤드니 시압씨가 더는 뭐락 안 했데.


그래도 난 여전히 미워라캤제. 시압씨가 밖에 나갔다가 뭐라도 만난 걸 가져오면 할배 목침에 올려놓고 아들 네이만 불러다 먹였어. 나는 가까이도 몬 오게 하고. '추접게 머리도 안감은 비듬 떨어진 목침에 놓은 까자는 줘도 안 먹는다' 했다가 내사 디지게 맞기도 하고. 그래도 아배는 내가 불쌍타고 까자를 사오면 방에 혼자 들어가 사내들 몰래 먹으라고도 했어.


"나가 시집오고 나서도 할배가 죽을 때까지도 나를 징그랍게도 미워해서 행여[상여] 나갈 때도 못 오구라 했어. 그래서 나는 친정 가 본 일도 없고 사내 동상들도 통 안 와.


"윗동네 도정에 오르다 보면 말 입구에 애장터가 있는디, 아그들이 죽으면 거적에다 싸다가 버리기도 하고 가이나면 죽으라고 산 채로 갖다 버리기도 하고 남도 줘버리기도 했다니 백 년 전만 해도 여자는 강아지만도 몬했서.” "......"


전두환이가 죽었다. 저런 살인마도 호사하다 편히 죽는 호사를 누리다니... 죽음조차 아깝다. 다행인 건 내가 아는 김원장님 일꺼리 하나 줄었다. 5.18 주범 찾아가서 인터뷰 하는 일. 대신 한을 풀지 못한 원혼들은 한반도 구천을 떠돌며 오늘밤 휴천재 창밖에 들리는 회리바람 소리 마냥 마구마구 애통해 하려니... 이른 눈발에 덮힌 저 지리산 골짜기로 피난 와 군경에게 학살당한 여수 순천 양민들의 비명과 섞여서...


한겨레에서 퍼온 사진 :  참조글: (20+) 양승국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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