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4일 일요일, 맑음


온종일 비오는 날은 다른 곳에 정신 쓰지 않고 책 읽기에 특화된 날이다. 특별히 밖에 나갈 일도 없으니 공부하는 보스코 옆에서 책을 읽으며 벗을 하니 그도 좋아한다. 내가 밖에서나 부엌에서 계속 뭔가 하고 있으면 가끔 집안을 돌아다니며 나를 찾고 확인을 하는데 어려서 엄마를 잃은 기억이 그의 심리 저변에 깔려있어서라고 본다. 실은 엄마가 100세에 돌아가신 나도 그가 안 보이면 서둘러 집안을 찾아다니니 어쩌면 둘이 살며 갖는 아름다운 관심이려니 해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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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류작가 그라치아 델레다의 소설 어머니를 읽었다. 작가는 이 책으로1926년 노벨문학상(이탈리아인으로서 최초로, 여성작가로는 두 번째로)을 받았단다. 노벨상 수상작품이라는 점보다 이탈리아 특유의 종교생활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이 한 사제의 엄마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이 같은 처지인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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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데냐 아르 본당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가장 가난하고 저주받은 동네라는 것이 그 동네로 부임하는 새 신부 폴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레나가 품고 있는 생각이다. 거의 백년 동안 사제가 없던 본당에 마침내 사제가 왔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춥고 긴 겨울 후 봄날이 온 듯 그들을 열렬히 맞아 주었다. 막달레나는 본래 그곳에서 자란 하녀 출신으로 늙은 홀아비와 결혼 후 아들 하나를 얻어 먼 객지로 떠나 신학교 식당에서 일하면서 기도와 인내와 사랑으로 아들을 사제로 만들었으니 그 여인의 귀향은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이렇게 오랫동안 폐허처럼 사제 없이 버려진 본당에 그 여인과 아들 폴 신부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오늘 주일 아침 일찍 광주에 갈 준비를 하여 차에 실어 놓고 공소에 갔다. 대전에서 공심래 한의원을 하다 돌아가신 원장님의 사모님과 포콜라레 식구들이 새벽 공소예절에 많이 와 있었고 그 중에 내 일기 패친이라는 자매님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점선 부분이 50년대에 '평화원'이 있던 자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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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이 끝나자마자 9시까지 남원의료원 주차장까지 달려가 김원장님과 문섐을 만나 광주로 떠났다. 충장로 초입에 있는 광주극장엘 갔다. 그 극장은 전국에 몇 안 남은 예술극장으로 일반 영화관에서는 상영 않는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곳이어서 김원장님 부부는 간간이 찾는 곳이고 나도 두어 번 간 곳이다. 보스코는 6.25 직후 광주극장과 담을 낀 건물에서 고아원('평화원')을 설립 운영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곳에서 살던 65년전의 추억으로 들떠 있었다.


나이든 형들이 어깨를 타고 몰래 극장으로 넘어가던 시멘트 담은 아직도 극장 건물에 붙어 있었고, 극장 앞 한길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트럭에 부딪치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병원으로 실려가 깨어난 뒤 엄마가 사주셨던 짜장면 맛을 기억하며, 극장 안에 옛날 글씨로 남아있는 임검석(臨檢席)’ 표지나 영사실을 보고는 오래 전을 떠올리며 반가워했다.


거꾸로 쓰인 영어 철자 E가 뒤집한 한 인생과 사회질서를 가리키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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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에게는 단돈 1000원을 받는 극장에서 오늘 상영한 영화 “뉴 오더(Nuevo Orden)”는 최근의 국내개봉작으로 멕시코의 광주사태에다 멕시코판 기생충에다 멕시코식 오징어게임같은 영화로 2020년에 스톡홀름과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이라는데 무거운 주제와 화면이어서 자막이 다 올려진 다음에도 한참이나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고 점심을 먹기 전에 긴 시간 영화의 폭력성을 소화시켜야 했다


부정축재한 지도층이 몰려사는 부촌의 호화로운 결혼, 빈민층의 폭동을 이용해서 사회주의 정권을 사실상 무너뜨리는 군부, 무질서 살인 방화와 군부의 민중학살로 점철로 초래된 멕시코의 현 상황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결혼식을 올리던 친정부 사업가의 그래도 지각 있는 딸이 군부의 손아귀에 유린 당하고 피살 당하는 과정을 그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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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우리는 보스코의 모교 '광주서석초등학교'를 보러 갔다. 보스코가 그 학교 47회 졸업생이라니 65년만의 모교 방문으론 붉은 벽돌 건물과 강당 그리고 100년을 훨씬 넘은 교정의 전나무들이 그 학교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그 다음 오늘 김원장님 부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무등산 증심사를 찾아 올랐으니 내게도 신혼초의 광주생활(1973~1976)을 회상하면서 증심사길을 오르내리며 우리 네 사람은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보스코가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날로 되돌아가 본 하루였고 영화와 자연, 그리고 친구를 배려하는 임실의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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