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일 화요일 위령의 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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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부터 한 잎 두 잎 떨어지던 식당채 옆 능소화 나무가 11월에 들어서자마자 한꺼번에 우수수 무리 져 떨어진다. 오랫동안 비바람을 견디어 왔던 잎새들이 날이 짧아지면서 삶의 끈을 놓고서 져내린다, 제 갈 때를 알고서.... 어디 지는 게 낙엽 뿐인가? 멀리 가까이 내 지인들이 그리움의 바다에 나만 던져 놓고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으로들 떠나고 있다. '올핸 늦동지라서 노인들 부고가 많이도 뜬다'는 입소문도 나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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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톨릭에서 '위령(慰靈)의 날.' 이 깊은 가을에 '죽은 이들을 사랑하는 계절', 곧 '위령성월(慰靈聖月)'을 정한 종교적 전통은 의미가 깊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기억에서도 지워진다"는 서양 속담이 새삼스러워 보스코 같은 구교우는 '추사이망(追思已亡: 이미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날)'이라는, 우리 귀에 선 축일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11시에 '담양천주교공원묘지'에서 드리는 위령의 날 미사에 갔다. 특별한 일 없으면 매해 참석하는 방문이다. 미사 후 그곳 살레시안 묘지를 돌아 보며 보스코를 아들처럼 키워주신 마신부님, 우리 시동생들을 돌봐주신 기신부님과 도신부님께는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오현교 수사나 그 옆 교구 성직자 묘지의 강영식 신부(보스코 중고 동창) 같은 벗들에게도 천국의 문안을 나눈다. 우리 안식년(1997~1998)에 로마에서 가까이 지냈던 이태석 신부와 신현문 신부의 묘소에도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가장 최근에 그곳에 묘를 쓴 박병달 신부님도 잔디이불을 덮고 편히 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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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살레시오 수녀님들의 묘소도 방문했다. 보스코가 누이처럼 사랑하던 이레지나 수녀, 임사라 수녀에게도 살아 생전 못다 나눈 속말을 속삭인다. 어렸을 적에 자기를 아껴주던 밀타 몬딘 수녀님이나 무어 수녀님의 따스하던 미소도 여태 간직하고 있다. 평소에도 보스코와 함께 로사리오를 바치노라면 세상을 떠난 지인들을 그가 얼마나 속 깊이 간직하고 사랑하는지 옆에서 따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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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김희중 대주교님이 집전하신 미사에 김성용 신부님도 공동집전을 하셨다. 더 희어진 머리에 오늘은 쌍지팡이를 짚고 나오셨다. 우리 혼인(1973)을 주례해 주신 김신부님은 신부가 그런 일을 안 하려면, 뭐하러 사제가 돼?라는 책자를 우리에게 주셨다. 이 나라 현대사의 힘든 고비마다 맨 앞에 서서 1970년대부터 불의한 군부독재와 국가폭력에 한 몸을 던져 저항한 신부님들 이야기를 사제단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에서 그분들의 증언집으로 냈으니 송구한 마음으로 한 장 한 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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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월요일 오후에 내 동생 호천이 부부가 외사촌 동생 정미랑 휴천재에 들렀다. 오빠 밑에서 일하면서 노는 날 쉬는 날 없이 마구마구 뛰던 호천이는 퇴직을 하고서 그동안 혼자 외로웠을 올케랑 가능한 한 남은 시간을 함께 즐겁게 보내겠다는 각오다. 착한 정미가 한 팀이 되어 매달 한 번 씩 23일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나


호천이는 '정미는 쩐주, 나는 운짱, 올케는 꼽싸리'라고 자기 팀을 내게 소개하였다. 정미는 자기가 주워다 키우는 유기견 '솔이'의 베이비씨터다. 생전 일에 묻혀 결혼도 않고 퇴직 후 두 살짜리 솔이를 키우며 자기가 시집가서 낳았더라면 아기에게 기울였을 모든 정성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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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후 호천네를 만나 담양 어느 시골집을 찾아가서 너무 매워 뱃속까지 활활 타는 솥뚜껑 닭볶음을 점심으로 먹고서 메타세쿼이아 길 둘레에 만든 담양프로방스촌으로 놀러 가서 메타세쿼이아 길을 서너 시간 함께 걸었다. 오랜만에 동생들과 걸으니 내 나이마저 잊게 되는데, 보스코는 많이 피곤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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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남원 운봉에서 김원장님과 문섐을 만나 저녁을 했다. 이엘리 말로는 이렇게 시간을 쪼개 많은 일을 보는 걸 '들름질한다'는데, "(은퇴를 하고) 노니까 시간이 더 없다"는 문섐의 말에 나도 백번 동의한다. 이렇게라도 바삐 움직여서 늙음이 나를 못 따라오게 피하는 방법이랄까?

오랜만에 만났다고 김원장님이 당신 농장에서 샐러리랑 당근을 잔뜩 챙겨오셨다. 나는 어젯밤 드물댁이랑 캐낸 토란과 토란근을 드렸다. 토란은 같은 뿌리에서 매해 다른 토란이 매달려 큰다는데, 토란꽃은 여러 해 묵은 뿌리에서만 피운다니 식물은 긴 세월이 쌓이면 열매로든 꽃으로든 보답을 한다휴천재에 돌아와 밤늦게 일기장을 펴다가 오늘 담양 묘원에서 나를 일부러 찾아내서 인사를 건낸 내 일기 페친 이아녜스님과도 밤 늦도록 반가운 이야기를 나눴다(오늘 일기를 올리다 보니 두 꼭지 더 쓰면 4000꼭지를 헤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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