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9일 화요일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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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에게는 몸이 100냥이면 눈은 99냥이다. 새벽 430분부터 하루 종일, 잠들 때까지 책을 보든지, 컴퓨터를 보면서 자판기를 두드리든지, 하다못해 먼 산을 바라보더라도 그는 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늦저녁 무렵이면 안경을 탓하며 잘 안 보인다고, 시력이 약해졌다고 탄식하는데 내 보기에 그 누구라도 하루 열 시간 이상 글쓰기를 한다면 시력이 성할 리 없다.


그의 주치의 공안과 이선생님이 작년에 녹내장 의심이 간다고 6개월 후에 검사받으라 했는데 1년이 훨씬 지난 어제 검사를 하러 갔다. 다행히 녹내장은 없었지만 시력이 약해져 돋보기를 맞추었다. 지리산에 살며 먼산보기를 하며 쉬는 시간이 그의 눈에 효도하는 일이다.


어머님의 세례명(1957년에 임종 대세를 받으셨다), 눈을 보살펴 주는 성녀로 숭상받는 루치아여서(시칠리아의 귀족 가문 여인으로 눈이 뽑힌 뒤 순교를 하였다) 천상에서 당신 아들 눈을 지켜주시느라 애쓰시는 듯하다. 큰손주 시아마저 금년에 안경을 쓰고 와서 우리 가족 일곱명 전부가 안경잡이다. 어머님이 루치아 성녀를 수호성인으로 고르신 까닭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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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큰딸 이엘리가 손주 봐주는 알바’(실은 그미가 심신을 다 쏟아 헌신하는 전업轉業이다)에서 좀 자유로워졌다고, 내가 지리산으로 내려가기 전에 한 번 더 보자 한다. 한목사도 수술 후 한번쯤 찾아봐야 했던 터라 4.19탑 근처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식사 후에 4.19 민주공원엘 갔다. 우리 현대사에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T.S. 엘리엇)이다. 일제에서 해방되자마자 1948년 제주 4.3을 시작으로 19604.19를 지나 20144.16 '세월호'까지 우리 역사의 처참한 구비들이 4월에 일어났다


그리고 더 참담한 현상은 1960년에 불의한 이승만 독재와 싸운 그 당시의 투사들과 그 세대가 대부분 극우 보수로 편입되었고 죽어서 무덤에 누운 사람들만 변함없는 민주인사로 남았다는 정치 현실이다. 4.19 혁명 60년 넘은 세월에도 친일 외세를 업은 반민족 세력이 아직도 득세하여 정권까지 장악한 터라 우리의 마음은 5년의 '황무지'를 건너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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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가톨릭 국가들, 예컨대 이탈리아에서는 작은 부활’(Pasquetta)라고 하여 우리 한식(寒食)처럼 점심을 싸들고 온 집안이 들로 산으로 나가서 하루를 즐긴다. 한국에서도 사순절을 보내고 성삼일(聖三日) 전례에 힘들었던 성당식구들이나 수도자들이 엠마우스 소풍을 간다. 예루살렘 인근 엠마우스로 내려가다 서산에 노을이 곱던무렵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뵈온 제자들처럼 한목사와 이엘리와 나 세 여자가 4.19탑을 한 바퀴 돌고 물가에 앉아 지나온 날들을 얘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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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만에 서울집에 올라와 들으니 우리 동네 낯익었던 이웃들이 네 분이나 세상을 떠났다. 노환으로 암으로, 뇌졸증으로 쓰러져 고생하다, 사고로 갑자기 돌어가신 분들이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시낭송 녹음을 해줘서 지리산 골짜기에 들어서면 그 친구가 선물한 녹음 테잎을 닳도록 감상해왔는데, 뇌졸증으로 쓰러져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다는 종혁 엄마 소식에 암담하기만 하다. 우리 나이가 점점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남은 날이 적음을” ‘다음은 내 차례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고요한 권고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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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5일 만에 휴천재로 돌아왔다. 한 손으로 운전하고 오는 길이 멀기는 하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운 지리산 노고할매가, 우리 둘의 여생을 품어주는 휴천재가 기다리는 곳이기에. 함양읍에 도착해서 보스코는 코로나백신 4차접종을 하고 나는 오미크론 감염으로 예방을 대신했다. 5시쯤 휴천재에 도착하니 시금치와 갓은 꽃으로 나를 반기고 감자는 순을 올려 꽃다발처럼 아름답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찬사를 보낸다.


우크라이나 난민들 구호를 위해 루마니아에 가 있는 빵기가 전화를 했다. 루마니아에서도 함께 일하는 현지인들과 무난하고 재미있게 지낸단다. ‘소통하는 언어(외국어) 능력은 아빠에게서 받고, ‘친화력과 요리 솜씨는 엄마에게 받은듯 어디를 가도 어려움이 없단다어제는 현지 고위공직자를 만났는데 한국문화와 음식에 관심이 많기에 아예 그 집에 가서 해물파전과 모밀국수비빔면을 해 주었다며 사진도 올렸다. 무척이나 좋아하면서 다음에 루마니아 오면 아예 자기네 집에 와서 지내라고 하더란다


그 통화를 듣던 보스코가 빙그레 웃는다. 왜 웃느냐 물으니까 빵기가 당신의 외국어 능력에다 내 친화력과 요리솜씨를 닮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어서란다. 버나드 쇼우와 어느 여배우 일화를 연상시켜 나도 웃었다("제가 선생님과 결혼했더라면 얼마나 머리 좋고 잘생긴 아이가 태어났을까요?" "글쎄 올시다. 댁의 머리와 제 외모를 타고 난다면 어떡할 뻔했죠?").


빵기가 루마니아 친구에게 요리하여 먹었다고 올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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