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30일 화요일.


크기변환_20220828_190137.jpg


월요일 아침이고 비까지 내려 평소에 50분이면 갈 길을 두 시간 걸려 보훈병원까지 갔다. 이틀간은 거의 잠을 못 이루던 보스코가 전날 밤에는 비교적 숙면을 했다. 젊어서는 애들이 놀리기를 밤에는 밤잠을 자고, 낮에는 낮잠을 자고, 아침에는 늦잠을 자는 우리 아빠!’라고 놀렸는데 언제 부터인가 낮잠도 안 자고 늦잠도 안 자는 대신 일찍 잠자리에 들고는 새벽 두세 시에 일어난다


잠을 깨면 그는 서재에 나가 책상에 앉는다너무 자는 시간이 적으면 치매가 온다고 걱정이 되어 “왜 그리 적게 자느냐?”고 물으면 시간이 아깝단다. 나이 들수록 남은 날이 적음을 새삼 깨닫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 한 권이라도 더 번역 각주해 남겨 교부학에 이바지하겠다는 일념에서다. 나이 만80을 넘겼으면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의 소풍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만하다. 그는 천상병의 귀천을 좋아한다. 특히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끝줄을....


크기변환_20220829_070652.jpg


요즘일수록 정말 평생을, 더구나 우리 둘이 걸어온 소풍길을 돌이켜보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사랑을 베푸셨는지, 우리에게 얼마나 잘해 주셨는지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나 역시 지금 오라 하셔도 하나도 여한이 없다. 내 주변에 얼마나 사랑스럽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셨던가! 보스코는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은  만나게 해 주시는 사람들을 거쳐서 내린다는 신념을 품고 있다.


어제 그를 병원에 데려가 입원시켰다. 그 큰 병원을 함께 돌며 입원절차를 밟고, 갖가지 검사를 하고, 입원실(5인실)을 차려주고, 병실에서의 첫 점심식사(열흘은 예상되는 입원)에 나는 옆에서 편의점에서 사온 김밥을 먹으며 밥동무를 하고, 링거 걸이를 밀며 병실복도를 걸음마(?)시켰다. ‘식사 후마다 저 복도를 다섯 바퀴를 돌면 1000 걸음.“ ”세끼 다 걸으면 3000보니 나쁘진 않다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강레아 사진

크기변환_Screenshot_20220830-054759_Facebook.jpg


아홉시 됐으니 이제 그만 집에 가서 자라고 재촉하는 그를 두고 돌아오는 마음이 불편하지만 불편하게 자는 나를 안쓰러워하는 게 싫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아래층 집사 레아는 비오는 설악산 흑백 작품 사진을 찍는다고 산으로 가고, 아들은 아내가 있는 제 둥지 제네바로 돌아가고, 보스코마저 없는 텅 빈 집에 혼자 있으니 잠이 올 것 같질 않았다. 지리산 아짐들(스물다섯 명중 스물이 홀어미!)이 집집에 방 하나에만 불을 켜고 외로움을 달래느라 TV를 크게 켜두고 있는 심정으로 나는 책을 붙잡는다.


보스코는 자투리시간 쓰는데 선수. 병실 차리자마자 아우구스티누스를 편다

크기변환_20220829_140609.jpg


보스코는 어제 서너가지 검사를 했고, 오늘은 점심 금식을 하고 심장 CT를 찍고, 내일은 아침부터 금식을 하며 정밀 폐 CT를 찍는단다. 병원에서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3년반 전에 공사해 놓았던 심장까지 다시 점검하는 듯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친정일로 바빴다. 엄마 돌아가신 뒤 후속절차. 호천이에게 모든 서류가 있었고 내용절차를 알고 있어 여러 곳을 돌며 쉽게 절차를 마쳤다. 동생에게 미안하다하니 이제 하늘 아래 달랑 남은  우리 5남매가 서로 기대고 아끼며 사랑하는 게, 엄마의 뜻을 따르는 우리의 자세라는 훈시다. 엄마 떠나신 뒤 우리가 드릴 효도가 무엇인지 알겠다.


크기변환_20220830_132052.jpg


올케는 수영하러 가고 호천이가 누나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설거지까지 말끔히 해 놓는다. 자기가 이 집 식모라며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올케가 엄마에게 너무 잘해서 이제는 가사에서 해방시켜줬단다. ‘뭐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샛서방을 둬도 말 않겠다고까지 다짐했단다.


보스코 없는 오늘 밤에도 어둠은 내리고 비마저 부슬부슬 내리는 집에 밤늦게 들어선다. 그렇게 오래 살아온 빵기네집이 너무 썰렁하고 낯설다. 집이란 아내가 있을 때 집인 것처럼 남편이 있어야 따뜻한 집이다. 


크기변환_20220830_19243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