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0일 일요일. 흐림


금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청소. 매일 청소를 하는데도 내 청소보다 더 부지런히 내려앉는 게 먼지다. 움직임조차 굼뜬 두 늙은이가 집안에서 애들마냥 공놀이를 하거나 씨름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날마다 먼지가 쌓인다. 특히 보스코가 내복을 입고 벗는 자리엔 새하얀 피부가루가 눈처럼 떨어져 있다. 목욕할 적마다 로션을 몸에 바르라는데도 여전하다. 사람만 늙어죽는 게 아니고 세포들도 점점 더 빨리 노화함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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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오전에 배나무 가지치기를 마저 끝내고, 나는 전날 손님이 다녀가신 후 식탁보와 냅킨 빨래를 하고 있었다. 유림삼거리 돼지갈비집에서 점심을 하자고 미루가 벙개를 쳤다. 미루를 보는 일은 언제나 유쾌한 일이기에 하던 일을 그대로 내려놓고 유림삼거리로 갔다


그집 주인은 함양성당 여교우다. 문정리 주변에 갈만한 식당이 마땅치 않던 차에 그 식당이 열렸다. 겨울엔 돼지갈비와 된장찌게, 여름엔 돼지갈비와 냉면으로 맛이 제법 괜찮다고 소문이 나서 손님이 많다. 얼마 전까지 대구로 궁중 음식과 절 음식을 배우러 다니던 여주인은 궁중도 절도 아닌 시골 입맛과 주머니 사정에 딱 맞는 음식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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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에 마을 앞 정류장에서 드물댁을 만나 싣고 읍내로 데려 갔다. 닷새 전에 치매 검사 후 지적 받은 후속 조치로 군보건소로 정밀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 외지 사는 딸들은 바빠서 보건소 부탁으로 내가 데려갔다. 정밀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말 자체가 동네에선 그댁은 치맨가 봐?”를 거쳐서 당장 그집 치매래.”라고 와전되어 누구도 치매검사 가기를 꺼린다. 드물댁도 안 가려는 걸 내가 설득해서 데리고 나갔다.


보건소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숫자와 그림으로 된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드물댁은 열 개 물으면 한 개나 겨우 대답을 했다"민수는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가서 11시까지 농구를 했습니다"는 문장을 기억시킬 게 아니라 "드물댁은 9시 군내버스로 읍내에 가서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고 11시에 돌아왔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바꿔 물었어야 한다. 그걸 기억 못한다고 치매는 아니다. 예전에 잘 알았던 사실을 모른다면 치매지만 그미에게는 아예 그런 개념이 머리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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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미의 일상생활에 대해 이웃 사는 나에게 질문을 하기에 내가 아는 한 정확하게 말해주었다. '먹을 것 잘 챙겨서 해 먹고, 집안 정돈이나 청소도 잘하며, 옷도 깨끗이 정갈하게 입는다.' '이웃을 늘 살피며 타인이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사리분별도 정확하고 경우도 밝다.' '올해가 몇 년도이고 지금이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르지만 추우면 겨울옷 입고 여름에 더우면 여름옷 잘 챙겨 입는다.' 


그미에게 몇 살이냐 물으니 '매해 나이가 바뀌니까' 자기는 언제나 일흔아홉이라고 대답한단다. 나도 60이 넘으며 늘 69세라고 하는데.... 군보건소에서 그미는 성심병원으로 보내졌다. 피검사와 뇌 CT촬영을 해달라고...


자기가 치매로 매도될까 봐 걱정되는지, 사람 많은 병원에 갔기 때문인지 30분 간격으로 소변을 보러 다닌다. 수십년 살아온 집과 마을 고샅을 떠나면 읍내도 큰딸 사는 대구 아파트촌도 그미에게는 지독한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실을 짐작할 만하다.


오늘 드물댁을 데리고 다니며 내린 결론은 '무식이 치매는 아니다.' 대여섯 시간의 읍내 나들이에 지친 그미를 집에 내려주니 오후에 시이모네 메주 밟아주기로 했다면서 어둑해지는 고샅길을 달음질한다. 누구보다 건강한 몸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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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062

11월 세째주 본당신부님이 미사를 해주러 오셨다. 공소식구 일곱 명과 본당 식구 다섯 명이 오붓하게 미사를 드리고 코로나 후 3년만에 다과를 들었다. 식탁을 함께 하는 일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데 본당신부님은 '역시 술이 들어가야 인간관계가 잘된다'는 농담으로 작은 공동체를 북돋아주고 가셨.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63567: '가난한 사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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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파스타 제노베제(뻬스토)에 오랜만에 포도주를 마시고 기분 좋게 산보를 했다. 가을 꽃이 아직도 몇 송이 피어 있어 꺾어 왔다. '황선생' 전설이 남은 집터는 어엿이 지번까지 붙어 있는데 칡넝쿨로 완전히 밀림을 이루었다.


11월에 들어서며 '산불조심 아저씨'들의 감시가 시작됐다. 집안이나 텃밭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대책 없이 태어버리는 할매들의 부주의가 매해 커다란 산불과 집안화재를 가져오니까 조심은 해야겠지만 밤늦게 불놀이를 하는 아래층 진이엄마를 보니 좀 안쓰럽다나도 텃밭의 고춧대와 호박 넝쿨, 꽃지고 메마른 화단 화초들 줄기를 걷어 어느 날 불놀이를 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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