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7일 목요일. 맑음


우리가 잠든 새벽에 빗님이 살짝 다녀가셨다. 테라스에 깜빡 잊고 놓아 두었던 반쯤 마른 고추가 사고치고 머쓱한 표정으로 비맞은 걸 숨기고 있다. “, 아주 조금밖에 안 젖었어요” 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소년같이 볼이 발그레하다. 나는 귀찮아 밭에 놔두었는데 보스코가 아깝다고 따다가 말리는 중이었다. 몇 개 안 되는 데다 요즘같이 인색한 햇볕에는 붉어지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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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50 포기만 심어도 우리 먹을 고추는 충분하니 쓸데없이 다른 농사 짓지 말고 고추 농사나 실속 있게 지으라는 조언도 나올 법하다. 고추에만 매달릴 수도 없으니 동네 어른들 말대로, 고추 건조기 사느라 돈 드리지 말고, 널었다 말렸다 생고생 말라는데 말인 즉 사 먹는 게 제일 싸다는 결론.


한동댁이 대포마을 친구가 농사지은 생강을 팔아 달라고 가져왔는데 1kg에 만원이니 사달란다. 어차피 김장에 써야 하니 샀는데, 순둥이가 서울서 샀는데 킬로에 7500원이더란다. 생강이 서울까지 가려면 차비도 들고 사람이 부스럭거리는 수고를 생각하면 산지가 더 싸야 하는데 농사꾼들이 이웃에게, 특히 '외지것'에게 싸게 주는 일이 없다


처음엔 사람들 마음이 숭해서 그런가 했는데, 내가 직접 지어보니 내가 농사지은 내 것들은 다 귀하고 다 아까워 그야말로 '귀한 내새끼'다. 그래서 팔아도 값을 많이 쳐서 내보내야 귀한 몸이 되는지 비싸게 받아도 당당하다는 얼굴들이다. 마을 이웃집이 장터보다 더 받아도 저 심경이려니 하고 달라는 대로 값을 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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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농사일을 안 시키겠다고 작정했지만, 몸이 가벼워지자 보스코가 배나무 가을 전지를 시작했다. 휴천재 마당에서 제일 늠름하고 기품 있게 자란 은목서가 꽃을 가득 피워 우리집만 아니라 온 동네에 늦가을 향기가  은은하다. 


어제 오후엔 보스코와 운서로 산보를 갔다. 그와 같이 산보하다 보면 내가 마음 조이는 일이 자동차 지나갈 때다. 좁은 길에서는 차가 지나가면 '벽지거라!'하며 길가로 피해야 하거늘 그는 서 있던 자리에서 배만 길밖으로 돌리니 좁은 길을 가는 차에 치일 듯해서 조마조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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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 큰올케도 골목길에 택시가 지나가자 벽에 붙는다고 붙었는데도 그만 발등으로 택시 바퀴가 지나가 오래오래 고생한 적 있다. 운전을 안 하는 사람은 그런 일에 개념이 안 생기는지 오늘 운서 사는 트럭기사에게 길가로 안 비킨다고 우리 둘이서 단체로 야단을 맞았다. 기분은 좀 언쨚지만 보스코의 교통사고 예방과 산보 예절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었을 게다.


밀양 송신부님이 (당신 집에 휴가 오신 노수녀님이랑) 점심에 휴천재에 오셨다. 워낙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라 오는 전화도 잘 안 받는다는 분이지만 보스코의 수술 소식을 듣고서는 몇 차례나 전화로 경과를 물어 오셨다. 60년 넘는 우정으로 그분에게 보스코는 동생 같고 보스코에게는 그분이 형님 같은 분이니 말수가 적더라도 속정이 깊은 분이어서 나 역시 좋아한다. 한국 민주화 운동과 가톨릭 사회운동의 주축 가운데 한 분으로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탄생에 일조한 공적이 크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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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녀님은 영원한 소녀 같은 분. 대한민국 의료계에 호스피스 운동을 발전시키는 주역을 했고(청량리 성바오로병원장을 지냈으며 적어도 가톨릭 종합병원들에는 '호스피스과'가 갖춰지게 했다) 70이 훨씬 넘은 나이지만 아직도 열강을 하고 다니신다. 보스코가 70년대말에 퀴블러로스의 On Death and Dying(인간의 죽음 [분도출판사 1979])를 번역 출판한 것이 이 운동의 효시가 되긴 했지만, 이번에 까딱했다간 보스코도 그분의 호스피스에 맞아들여질 뻔했다. 하기야 웰다잉이야 우리 모두에게 닥칠 문제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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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630분 읍내 도서관에서 느타나무독서회 모임을 가졌다. 지난주가 모임이었는데 공지가 늦어 오늘 모이느라 여럿이 참석을 못했지만 조촐하게 넷이서 얘기를 나누었다. 어려서 본 동네책방 얘기부터 시작해서, 한 친구는 자기 생애 최초의 알바가 서점에서 공짜로 책 읽는 무료 알바였다는 뿌듯한 추억을 자랑했다


책방을 하며 빚지지 않고 하루 세 끼 먹고 사는 일이 정말 힘들 꺼라고, 우리 독서회 사람들이라도 책은 꼭 사서 보자고, 살 때는 꼭 정가를 내자고 다짐했다(그간 회원들이 한 해에 스무 권 가까이 사서 읽고 있다). 책값을 깎는 일은 그들의 밥그릇에 밥을 덜어내는 일이니 그런 부도덕한 일은 우리부터 하지 말자고, 동네책방을 우리부터 지켜주자고 했다서울집 골목에도 "쓸모의 발견"이라는, 하도 작아서 보스코 말마따나 '코딱지 서점'이 있다.   https://blog.naver.com/youthzone0401/222229022955


오랜만에 만난 독서회원 정옥씨는 요즘 절인 배추를 장만하느라 양어깨가 다 망가졌단다. 어렵기는 도시의 책장사나 시골의 김장배추 장사나 다들 고생이다. 그래도 어딘가 나처럼 고생하는 동지가 있다는 생각에 서로 어깨를 다독여주자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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