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0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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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소담정 도메니카가 물어왔다, '내일 노고단을 가려는데 같이 가겠느냐?' 아직 보스코의 체력이 정상 수준으로 왔을까 걱정도 되고 아직 완전히 회복이 안 된 내 다리가 왕복 12Km를 걸어 낼까 염려스러웠는데 보스코가 오랫동안 못 봤던 '슬한재' 김교수 부부도 볼 겸, 시국으로 답답한 심경도 서로 위로할 겸 가겠단다. 언제부턴가 시국관이 다르면 아예 자리를 함께 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내일 그 힘든 산행을 한다는 생각에, 일요일 법화사, 화요일 뒷산 단닥재에 이어 어제도 트레이닝을 겸한 언덕진 운서길을 걸었다. 왕복 8천 보 정도의 거리. 올라갈 때 숨이 좀 차고 내려올 때는 다리를 끈다. 그래도 열심히 걷노라면 내 다리에 근육이 붙고 인대가 조금은 튼튼해져서 약한 연골을 지탱해 주리라는 기대를 품는다.


산보에서 돌아오다 휴천재에서 강건너 마주 보이는 벚나무집에 들러  아기단풍들의 앙증맞은 오손이들, 주인이 없어도 서로 사이좋게 사는 닭장 속의 청둥오리, 공작, 꽃닭들을 구경하고, 그 집 흔들의자에 앉아 우리 집을 건너다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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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봇길에는 해찰을 많이 한다. 널따란 밭에 퍼질러 앉아 양파를 심는 '잉구 엄마'는 밭에다 멀칭한 비닐을 검정비닐로 깔아야 했는데 투명비닐이 깔렸다며 "지심이 양파씨랑 함께 커올라 오면 지심을 우짜 맬꼬 폭폭해 죽겄다. 맘 같아서는 팍 집어 뜯어 불고 싶지만 비닐을 씨워 놓았으니 양파를 심기는 심는데, 마음은 요즘 아그들 말대로 자살이라도 하고 싶다"고 내게 하소연한다. "팍 죽어 뿔고 싶단 속마음 아들한테 얘기하이소" 라니까 "뭐하게? 전생에 내가 원수짓을 해서 이승에서 갚으라고 맺어준 인연이니 쏙으로만 부글부글 끓이고 있제." 라는 대답. 하늘이 맺어준 모자관계는 숙명 같은 은총으로 체득해온 여인의 지혜다.


그제 단닥재 오르다 만난 이엄마는 "교수님 암 덩어리 얼마나 큽데까?" 묻더니 자기 남편은 오른쪽 폐 전부를 잘라냈다며 의사도 '6개월이나 살지, 잘하면 일년 반이나 갈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흔들더란다. "그런 걸 집에 데려다 놓고 온갖 좋은 것 다 구해 먹여서 안방 아랫묵에 떠억 앉혀 놓으니 앞산에 묻어 놓고 온 것 보다 훨 나꾸만." 하는 말에는 남편의 생환과 3년 넘는 생존에 아내로서 최선을 다한 사랑이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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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9시 한길 문정식당 앞에서 일곱 명이 만나 노고단을 향했다. .선생 부부, 김교수 부부, 우리 부부와 소담정. 날씨는 맑고 따뜻한데 바람 한 점 없었다. 붉은 단풍은 이미 다 졌지만 낙엽송이 지리산의 남은 가을을 품위 있고 늠름한 자태로 바향하고 있었다.


성삼재 주차장에 자동차 두 대를 두고 노고단으로 올랐다. 우리 7명 중 69세의 60대 여인이 제일 젊고 80대는 보스코 한 명, 나머지 다섯은 모두 70. 암으로 투병하다 이겨냈거나 다리를 끌거나 허리가 휜 몸들이지만 '살려고 걷는다'는 절대절명의 사명감으로 걷고 있었다.


구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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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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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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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엔 성삼재에서 기껏 '노고단 대피소'까지 가서 두 손들 들겠지 했는데, 묵묵히 앞장서 걸어가는 보스코를 보고선 모두 노고단 정상까지 올라갔다. 천주의 섭리회 수녀님 두 사람도 만나고, 각자가 싸 온 간식을 노고단에서 나눠 먹으며 산, , 산이 사방에서 물결쳐오는 지리산을 실컷 감상하고 2022년 가을과 작별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말벗이 되고, 천주교 신자라는 걸 알게 되면 즉시 가족애가 느껴진다. 자연은 사람을 그만큼 선하고 만들고 '마고할매'는 그만큼 서로를 가까워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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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산자락으로 물결치는 하동쪽, 서편으로 머얼리 무등산까지 바라보이는 구례 남원쪽, 건너편에는 천왕봉 눈 앞에는 반야봉이 보이는 동쪽을 둘러보며 우리가 아름다운 땅에서 한 동네 사는 이웃임을 눈으로 확인한다


서로 어깨를 기대고 살아남아야 하는 한 겨레요 한반도이거늘, 전정권의 모든 정책을 파괴하는 정책 외에 아무 정책도 못 보여주는 현정권이나, 어제 선거로 공화당이 되든 민주당이 되든 세계 평화는 제쳐 놓고 담장을 높이 쌓아 자국 이익만 찾는 미국이나, 30년 전 만 해도 한 나라였다 독립한 우크라이나를 쑥밭으로 만들고 있는 러시아나, 5년도 안 남은 지구의 운명을 논의하자는 데 지구 오염의 주범 국가들이 하나도 참석하지 않은 이집트에서의 '기후회의'를 두고 시국관이 같은 지성인들이어서 서로 아픔을 얘기 나누며 지리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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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 입구에 있는 '뱀사골산채식당' 주인(체칠리아라는 인월 교우)이 요리한 능이백숙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서 집에 돌아오니 다섯 시. 오늘 산행으로 보스코는 우리 일행 모두에게 '잘 걷고 잘 먹고 잘 논다', 완치 인증을 받았다. 하나같이 70년 이상 부려온 기계가 고장 난 몸들이어서 각자의 병력만으로도 일가견 있는 유능한 의사들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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