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7일 목요일. 맑음


서울 갈 때 뿌려놓고 간 씨앗이 곱게 소복하게 싹을 틔웠다. 겨울 시금치, 루콜라, 상추... 엄동설한을 지나며 시금치는 뿌리를 붉게 물들이고 단맛을 낼 것이며 루콜라는 죽은 듯 살아나 한겨울에 신선한 채소가 되어 밥상에 오를 것이다. 상추는 12월 중순까지 버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강추위에 끓는 물에 데치듯 폭삭 내려앉을 것이다. 휴천재 텃밭에서는 12월 중순에도 방울 토마토를 만날 수 있다. 아직도 끈질기게 가지를 뻗어 가는 줄기에 어린 토마토를 매달고 인색한 가을 햇볕에 구걸을 하여 저 어린 것들을 붉혀가는 인내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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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동안에도 드물댁이 밭을 잘 돌봐서 무는 이미 내 다리만큼 굵고 배추는 속을 열심히 채우고 있다. 빈터에 세들어 사는 붉은갓이 얼마나 실하게 컸는지 저 등치로 스러지지 않고 김장 때까지 버티려나 되레 걱정된다.


부엌에 세워 둔 수수몽댕이 빗자루도 뛸 만큼’ 바쁜 추수철이라 드물댁 몸값도 상한가를 친다. ‘무시잎 깔리고’(무성한 무잎을 뜯어내고)고구마 캐기, 집집이 콩 타작, 들깨 타작, 고추 서리거지 등 일손이 턱없이 모자라는 시골에서는 자기 농사가 따로 없는 사람은 이 집 저 집 불려 다니며 남의 일손을 거둔다.


엊그제 된장공장집 깨 타작 하다가 내 차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반가워 일손을 놓고 달려 올라왔다며 나를 꼬옥 끌어 안는다, ‘보고자펐서.’ 라며. 얼마나 순박한 고백인가. 시골 할매의 입에서 저런 사랑의 고백을 다 듣다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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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후 네 시에 세동길로 산보를 갔다. 가을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갈 때는 로사리오 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산국, 꽃등유, 쑥부쟁이를 한 아름 꺾어 안고 돌아왔다. ‘밤새 물에 푹 담가 놓았다가 꽃병에 꽂아 성모님 곁에 놓아드려야지, 가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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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맑은 하늘에 감나무처럼 아름다운 가을꽃이 없다. 동강마을에 사는 인화씨가 대봉감을 따서 파는데 이미 홍시가 된 감은 처리가 곤란하니 가져다 먹으란다. 우리 동네는 유난히 감이 많아 감나무 밑에 가서 입만 벌리고 있어도 떨어지는 홍시로 배가 터지게 생겼다. 나는 상자 둘을 들고 가서 두 상자 가득 홍시를 얻어왔다. 한 상자는 아래층 진이네랑 나눠 먹고 한 상자는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천천히 먹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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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기도와 티벳요가를 하고 부지런히 아침을 먹고서 참깨와 들깨를 챙겨 방앗간으로 갔다. 워낙 아침 잠이 없는 할매들이어서 일찍 가져온 깻자루나 그릇으로 줄을 세우면 내일 아침에 기름을 가지러 다시 와야 하기에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오늘도 어쩔 수 없이 꼴찌여서 사모님은 내일 다시 오시요란다. 그래도 오가는 강가에 구절초와 산국이 만발하여 꽃구경 물구경만으로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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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보는 문상으로 해서 잉구씨네 논을 지나 돼지막을 지나 내려갔다. 돼지치기가 그 전에는 두어 명 동남아 사람들을 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꾼도 구할 수 없어 주인 혼자서 돼지를 친단다. 천 마리에서 숫자를 대폭 줄였단다. 너무 조용해 빈집 같다니까 돼지는 먹고 자고만 하지 소리를 안 내요.” 란다. ‘돼지 멱따는 소리라는 말이 있는데, 돼지는 죽을 때만 소리를 지르나 보다.


보스코의, 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영광의 신비 2)

“갈릴래아로 가거라!”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8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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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감 아내 산소와 유영감 산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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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라 불리는 언덕을 내려오며 로사리오를 드리다 유영감님 묘앞에서 따로 주모경을 바치고, 허은식씨네 가족묘 앞에서 먼저 간 아내를 위해서도 기도를 했다. 읍내 딸내집에 있을 적에 성당에 나가던 예비신자였다. 갑자기 돌아가셔서 미처 영세는 못 했지만 천주교 신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분이기에 내가 미카엘라라는 이름을 붙여드리고 그 무덤에 남몰래 기적의 성패와 작은 십자가를 함께 묻어 드린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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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입구에 있는 허영감 집에 들러 '영감님 아내 이름이 미카엘라니 천국에서 다시 만나고 싶으면 돌아가시기 전 대세(代洗)라도 받으라니까' 그렇게 하겠단다. 아내와 함께 가 있고 싶은 천국이어서, 이웃이 간간이 아내의 묘를 찾아 기도해주는 것이 고마워서라도 세례받고 죽고 싶단다. 산에 사노라면 모두가 쉽게 저절로 도인이 된다. 삶과 죽음이 문 하나 사이기에 그렇게 생소하지도 않고 오가는데 거리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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