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6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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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아침에는 공소에 손님으로 온 박신부님을 아침식사에 초대했다. 보스코가 철학과 교수로 있을 때 서강대 종교학과에 계시던 분이어서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9시가 되자 리프트 회사 직원들이 실측을 하러 휴천재에 들렀다. 내 다리가 고장나 휴천재의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을 때가 오면 의자에 앉아 이층을 오르내릴 장치를 설치할 견적을 낼 사람들이다. 하지만 1층에서 2층까지 (높이 3미터) 올라가는데 무려 5분이 걸리는 장치란다(내 걸음으로 단 5초 걸리는 거리를). 실무자의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 무릎 통증이 싹 가셨다! 아마도 보스코는 내 다리가 빨리 낫도록 분발시키겠다는 저의로 그 사람들을 부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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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집안으로 들여 겨울을 나는 화분을 반으로 줄이자 했는데, 한두 개씩 올리다 보니 정말 보잘것없이 망가진 화분들만 밖에 남겨져 우리에게 애걸하는 표정들을 하고 있다. '칼란코에'는 가격도 싸고 색이나 모양도 예쁘고 또 개화 기간이 오래가서 절대 푸대접을 받을 처지는 아닌데 여름철에 화단 뒤쪽에 숨어 있다 보니 내 손에 분갈이 할 기회를 놓쳤다


웬만한 지체는 다 잃어버린 상이용사들 마냥 목 떨어지고 팔다리 끊어져 뒹구는 칼랑코에들을 주워모아, 망가진 장난감 로버트 재조립하듯, 화분에 주섬주섬 꽂아 다섯 화분을 벽돌방(같은 겨울을 나면서도 마루에 비해서 겨우 목숨만 이어가게 푸대접 받는 제3지대)에 올려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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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선인장인데 인간의 돌봄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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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게발선인장 화분이  둘 있다. 하나는 흰색 꽃, 하나는 분홍색 꽃을 피운다. 꽃분홍 게발선인장은 지난 봄 먼저 데크 밑 응달로 내려가는 바람에 사람 눈에 안 띄는 구석에 버려지고, 흰색 선인장은 늦게 내려가 데크 밑에서도 맨 앞쪽에 자리잡아 해도 잘 받고 거름도 풍족하게 먹어 요즘 벌써 흰색의 찬란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제 마룻방 화분대 정중앙에 자리잡아 무수한 백학(白鶴)이 날아오르는 자태를 자랑했다. 그러나 꽃분홍색 화분은 사지가 부러지고 꽃망울도 못 티운 채 버려져 있다가 오늘 눈에 띄어 분갈이를 하고 벽돌방으로 옮겨졌다. 대통령이란 자에게서 '참사(慘死)', '근조(謹弔)'도 '국정조사'도 금지 당한 이태원 젊은 넋들 신세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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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는 보스코가 텃밭에 상추와 루콜라 이랑 위에 미니 비닐하우스를 설치한다고 부산했다. 그에게 주어진 '8주간의 가사노동 유예기간'이 끝나며 정상으로 돌아갔다는 표다. 세 단 짜리 비닐막은 겨울나기 세 해 만에 햇볕에 해질 대로 해지고 말아 그가 가위질해서 부추밭을 겨우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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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068

오늘은 11월 첫 주일, 임신부님이 공소에 미사를 집전하러 오시는 날. 물건을 살 때 덤으로 받는 것에 더 마음을 빼앗기듯, 공소 미사 오시는 임신부님을 기다리면서도 더 기다려지는 건 (자칭 '아부이가 데꼬 들어온') 셋째딸 미루다. 가족 미사 분위기의 조촐한 공소 식구에 늘 밝고 살가운 분위기를 보태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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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코로나 사태로 중단했던, 미사 후 공소 식당에서 아침상을 벌여 주부들이 한 가지씩 준비해온 음식을 내놓자 식탁이 한 가득! 호박죽, 블루베리 넣은 요쿠르트, 집에서 구운 식빵, 치즈와 햄, 쑥떡, 삶은 달걀, 과일... 먹고 남은 음식은 서로 나눠 가져가니 말 그대로 한 집안 한 식구.


점심 무렵 도정 체칠리아가 '솔바우촌'에서 전화를 했다. "찬은 없지만 우리 집에 올라와 점심을 먹고 법화사에 산보가자, 올가을 마지막 단풍 구경하러." 법화산 길 갈나무들은 모조리 색동으로 갈아입어 뽐을 내지요, 날씨도 맑고 하늘도 푸르지요, 머얼리 천왕봉이 올려다 보이는 산공기는 신선하다 못해 달디 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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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스.선생님이 당신집 이층에서 커다란 화면으로 시에라리온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묘사한, "블라드 다이아몬드"라는 네플릭스 영화(2006)를 보여주었다. "하느님도 떠나버린 아프리카"(영화 속에서 디카프리오의 탄식)에서 그리스도교 유럽 국가들이 석유, 상아,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으려고 저지르는 국제 범죄에 치가 떨렸다.


어느 해 수단에 가 계신 원선오 신부님이 한국을 방문하신 길에 "보스코, 아프리카는 저주받았어요." 하시면서 소년병들이 자기 키만한 장총을 메고 다니며 "신부님, 나 오늘 열 명이나 죽였어요!"라고 자랑하더라며 보스코 앞에서 대성통곡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최근 병상의 원신부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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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탈리아인으로 수단의 전쟁 고아들을 먹여 살리려고 동분서주하시는데 당신 나라를 비롯 유럽 정부들이 분란 중인 아프리카 국가원수를 폭사시키고, 내란을 일으키고, 소년병들을 동원하고, 부족간에 대학살을 일으키게 무기를 대고 있다는 자책감이었다. 원신부님이나 그곳에 선교사로 갔다 병을 얻어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 같은 분들의 희생으로 유럽인 크리스천들의 저 죄악상이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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