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6일 화요일. 흐리고 눈빨


큰딸이 전화를 했다. '서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는데, 지리산엔 얼마나 추우냐? 눈이 내리면 위험하니 밖에 나가지 말라.' 휴천재에서 올려다 보는 지리산은 푸른 하늘에 동 트는 해가 찬란한 구름 사이로 커다란 고래가 새끼 고래를 데리고 헤엄을 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도 그 아름답던 단풍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회색으로 바뀐 산비탈로 희뿌연 가루가 날아다니다 말았다. 올해 첫눈의 눈발이다. 저녁 나절에 올려다 보니 와불산 꼭대기와 지리산 하봉은 흰 머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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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겨울 바람에 정자 식탁에 펴 말리던 시래기는 자취도 없고 빈 논에 뿌려진 볏집 가루들이 심심해 놀 거리를 찾는 동네 개구장이들처럼 논구석 이쪽저쪽으로 몰려다닌다. 방천 난 구장네 논두럭을 손질한다고 잉구가 마천석재에서 사다가 부려 놓은 바윗돌이 일하기 싫어 죽겠다는 잉구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다. 일을 놓고는 참지 못하던 바지런한 사람이, 언제부턴가 일이 하기 싫어 죽겠다니 두고 보는 내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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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빵고신부가 우리 '은빛나래단'을 위해 마련해준 표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청년 김대건의 위대한 모험' "탄생"을 보러 진주에 갔다. 시간이 안 맞아 남해 형부네는 못 오고 우리 여섯 명만 영화를 보았다. 충청도 은이의 총명한 청년이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었던 모험가,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선구자 성 안드레아로 탄생하고 안타깝게 순교하는 과정을 과장 없는 도큐멘타리 형식으로 엮어가는 작품이었다


24세의 패기 있고 명민한 하느님의 사람, 우리 한국교회의 첫 사제로 태어났지만 안타깝게 순교하는 장면은 눈물겨웠다. 종교인이 아니어도 그 '아름다운 청년의 죽음'은 너무 아까웠다프란치스코교황님도 바티칸 시사회에서 보셨다니 이젠 한국교회의 위상이 제대로 평가 받는 듯해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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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함께 탄 세 여자가 ", 마르코 신부님이네!"하며 우리 임신부님을 알아본다. 그 상영관 관람객 대부분이 가톨릭신자였다는 말이다. 코로나로 소원했던 신앙생활이 이 영화로 깨어났으면 한다


사제 한 분을 만들어 내는데 얼마나 많은 기도와 정성이 필요한지, 이렇게 재미있는 세상에서 독신 사제의 길을 묵묵히 걷는 성직자들에게 고마워하게 된다. 빵고신부에게 전화를 했다. 사제가 돼줘서 고맙다고, 영화 구경 시켜줘서 고맙다고...


페북에서 피파월드컵 개막식에 '드리머(Dreamers)'라는 제목으로 뜬 우리 BTS의 정국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 젊은이와 국민은 이렇게 '세계적인 선진국'인데, 외국에 나간 대통령의 구걸외교나, 화물연대 파업에 대처하는 정부나, 검찰공화국의 광분은 얼마나 후진적이고 부끄러운지 평범한 아낙의 눈에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어느 신문 칼럼 제목처럼, 자고 나서 '눈떠 보니 후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치졸한 정치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나... 


진보정권의 흔적 지우기와 정치인 말살 외에 무엇 하나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처럼 날뛰는 모습은 한반도마저 자칫 우크라이나 비극으로 몰고 갈까하는 기우마저 든다. 단 5년간의 외교관생활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를 늘 염려하는 보스코의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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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저녁 먹고나서 자정까지 꼬박 책을 읽어야 한다. 8일이 느티나무독서회 모임 날. 김장하느라 뭐 하느라 바빠 '게으른 농부 해거름에 바쁘다'는 속담대로, 550쪽의 책을 이제야 하루에 100쪽씩 읽는 중이다.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책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소크라테스, 루소, 소로, 쇼펜하우어, 에피쿠로스, 시몬 베유, 간디, 공자, 세이 쇼나곤, 니체, 에픽테토스, 보봐르, 몽테뉴 등 14명의 철학자들의 생활이나 철학 중에 특이한 부분을 부각시켜 그 인물의 핵심 언행에 비추어 사상을 설명한다. 한마디로 철학책이지만 재미있고 쉬워 머리가 안 아프다. 남편을 철학교수로 두고 있으니 나도 공부 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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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철학자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다들 정상이 아니다.' 모두 다 살캉 맛이 갔다. 그런데 우리 정상인들과 다른 그들의 발상의 전환이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바꿨다는 사실이 놀랍다. 인류사의 먼동을 트게 한다. 칼 막스의 사상이 유럽 전부의 흐름을 바꿨고 우리 한반도야말로 그 사람 사상에 의해 치명타를 입어 남북으로 갈라지고, 지금도 전 대통령을 '문재인 빨갱이'로 몰아가는 미친 짓들을 하고 있지 않나! 정말 사람의 그 조그만 머리 속에는 우주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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