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6일 일요일. 맑으나 무지 춥다


이교수네를 처음 만난 건 성베드로대성당 광장에서였다. 80년대 초는 로마에서 유학하는 한국 학생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여서, 한 사람을 알게 되면 그가 아는 모든 사람의 신상을 모두 알고 공유하곤 했다. 보스코가 워낙 늦깎이 유학생이어서 우리가 맏형이나 삼촌뻘이었다. 이 교수는 그때 로마대 건축과를 다녔고 부인은 로마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명문대를 졸업했고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비교적 쉽게 대학교수가 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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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만난 사람 하나는 로마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화가로 아내의 집에서 결혼을 반대해 격한 투쟁 끝에 로마로 왔는데 아내는 나비씨였고 얼마나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지 우리에게 자기는 나비씨만을 위해 태어난 남자라고 소개했다.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소나무만을 그리는 유명한 화가가 되어 있다.


이교수가 로마대 건축과에 같이 다니던 김총각을 소개하여 우리 집에 몇 달 하숙생으로 있기도 했다. 얼마나 잠이 많았는지 늘 아침엔 학교 수업엘 못 가고, 깨우러 갈 적마다 '잠 정리를 하는 중'이라며 침대에서 딩굴었다. 그도 나중에 대학교수가 됐는데 은퇴한 지금도 아마 '잠정리'로 아내에게 잔소릴 들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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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끝내고 돌아와서도 이교수네와의 인연은 40년 넘게 이어졌고, 25년 전 지리산에 휴천재를 지을 적에 집을 설계해 준 것도 이교수였고, 서울집에는 김승임 화가의 그림이 몇 점 걸려 있다. 그 부부가 정년 퇴직을 하고 산청 방곡에 귀촌한 뒤로 더 자주 만나게 된다. 명절이면 꼭 함께하고 싶은 친구여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전날 오찬을 나누었다.


금요일에는 안충석 신부님이 김택암 신부님이 선종하셨다고 전화해주셨다. '정의구현사제단' 1세대로서 안충석, 양홍, 함세웅, 김택암 이렇게 서울대교구 4총사로 알려진 분들인데 김택암 신부님이 미국에 체류하다 돌아가셨다니 남은 세 분의 상실감이 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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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를 동지로 여겨주시는 이 4총사는 우이동집에 몇 번 다녀가시기도 했다. 그분들과 함께한 소중한 세월이 떠오른다. 5.18 군부에 끌려가 허리꺾기 고문으로 다친 척추병으로, 독재정권과 싸워오다 걸린 암으로도 15년 넘게 고생하셨는데 이제는 하느님 나라에서 모든 고통 내려놓으시고 이 나라의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하느님 대전에서 힘써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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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전야에는 함양본당으로 미사에 갔다. 우리 손주 시아가 변성기여서 노래를 하면 희한한데, 우리 본당 성가대의 성탄전야 합창도 변성기 어른들의 소리 같았고, 그래도 열심히 노래하는 정성을 아기 예수님은 귀히 들어주셨을 게다. 코로나로 미사에 참석 못한 청소년성가대의 비데오에서도 변성기 합창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수고했다며 그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라는 주임신부님의 격려와 신자들의 박수가 나를 즐겁게 한다. '못하면 어때? 우리끼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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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본당 주임신부님과 함께 하는 본당공동체는 참 따뜻하다. 함양 신부님은 성탄미사에 참석하는 모든 교우에게 선물을 주셔서 우리 부부는 죽방멸치와 미역다시마를 받았다. 각자에게 뜨거운 백설기도 한 덩어리씩. 다양한 선물을 안고 성당을 나서는 교우들 얼굴에는 아기 예수님이 오신 기쁨이 '구체적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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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점심은 미루네가 우릴 초대하여 축하를 해주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가면서도 셋째 딸 마음을 전하려는 귀요미 미루의 노력이 고맙다. 오늘도 아래층 진이네 식구랑 성탄을 축하하는 점심을 나누었으니 기쁘고 고마운 일이다. 그렇다. 누군가 태어남은 기쁜 일인데, 인류의 구세주가 태어나셨으니 온 인류가 기뻐할 일이고 "예수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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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대축일이 토요일에 있어 신부님들이 연일의 미사집전으로 힘드시겠다. 어제 성탄절()에 뒤이어 오늘이 주일이고, 새해 첫날도 한국 가톨릭신자들에겐 의무축일(미사참례가 신자의 의무로 규정된 날)인데 토요일이고 다음날이 또 주일이다


올들어 제일 추운 날 새벽, 공소에 딱 다섯 명이 모여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 대축일' 공소예절을 올렸다. 성요셉이 명색이 가장인데 아들('천주 성자')-어머니('천주 성모')-아버지(예수님 양부) 순으로 나오는 축일 이름이 독특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분의 위상을 좀 올려주려고 노력하는 중이어서 보스코가 최근에 옮긴 책도 교황님 취지대로 제목이 "아버지 성요셉"으로 붙어 있다.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성탄카드(이콘화가 최마리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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