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1일 화요일. 맑음


[크기변환]20211221_190124.jpg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받는 친구가 우리 주변에 몇이나 있을까? 그래도 내게는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게 커다란 기쁨이다. 한 친구는 구족화가 박정님의 그림이 그려진 카드에 긴 사연을 적어보냈다. 대학 다니던 시절 내 모습은 가물가물한데 친구는 나보다 더 잘 기억한다.


미니스커트에 유난히 멋을 냈고’ 내가 ‘여학생회기금을 마련한답시고 딸기쨈을 만들어 팔았다는데 (‘~ 그랬었지. 미제 유아식 공병을 사다가 상표를 제거하고 팔팔 끓여 거기다 쨈을 담아 교수님도 선배 대학원생도, 후배 남학생에게도 걸렸다 하면 강매를 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발라먹을 빵도 없었고 점심값 낼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던 학생들도 많았는데 그들을 상대로 강매를 하다니! 참 어이없는 짓 많이도 했다.


[크기변환]20211221_170602.jpg


친구는 어렵게 예일대를 갔는데 박사학위 받을 학비가 없어 고생하는 친구에게 장학금은 못 보내주고 장학금을 찾게 해달라고 빵기-빵고랑 열심히 기도만 했었다. 아쉽게도 친구는 3년만에 돌아와야 했다. 다시 만났을 때 너무 속상해 함께 붙들고 펑펑 울었다.


친구는 그때 내가 자기를 목공소에 데려가서 책꽂이를 해주었고 그 서가를 지금도 쓰고 있노라고 적었다. 나야 까맣게 잊은 일인데 워낙 머리 좋은 친구라 나의 온갖 비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미가 여목사로 시무하던 교회를 찾아갔더니 여전도회 신도들이 ! 그 유명한 친구분이구나!"라며 비명을 지를만큼 내 연애 사건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성선생과 결혼한 건, 네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었어.”라며 늘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빵기가 외원단체에서 일하고 빵고가 신부가 됐을 때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혼자 살며 어머니를 모시다 작년에 보내 드리고는 기도생활로 여생을 보내는 중. 대학 다닐 때 모습으로 그대로 살아가고, 아직도 긴 손편지를 보내줄 친구가 있음은 큰 기쁨이다.


[크기변환]20211215_141336.jpg


그제가 드물댁 생일이어서 그집 둘째 딸한테 배추 세 상자도 부쳐줄 겸, 어제 마천 짜장면집엘 갔다. 탕수육에 짜장면 한 그릇도 별미로 생각하고 짜장고까지 싹싹 먹는 모습이 영락없이 가난한 시절의 우리 엄마 모습. 라면 세 개를 사다 큰 냄비에 끓여 국수를 섞어 우리 일곱 식구가 맛난 한 끼를 때우던 시절. 그마저도 우리 다섯 남매 것을 다 뜨고 나면 엄마 몫은 멀건 국물이 전부였는데, 그 국물에 식은밥 한 술 말아 드시며 난 가루커를 먹으면 소화가 안돼.” 하시던 말씀. 먼 훗날 내가 끓여 드리는 만두 라면을 맛나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 말씀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너무도 늦게 깨달았다.


떠돌이개가 동네 빈집 마루 밑에 새끼를 낳았다, 여섯 마리!

[크기변환]20211215_141503.jpg


드물댁은 전날 딸들이 와서 미역국 끓여주고 케이크를 사와 촛불 켜고 노래도 부르더라고 자랑한다. 이 경상도 땅에서 딸만 넷을 낳았을 때 여자의 고난이 얼마나 컸을까! (다행히 아들 하나를 낳아 그 가난한 시앗까지 보는 일은 피했단다.) “쓰잘데기없는 지지바만 낳았다고 사다 놓은 미역도 감추고 시어머니가 멀건 토란대국만 끓여주더라는 슬프고도 억울한 기억이 가슴을 밀고 올라오는 표정이었다.


[크기변환]20211221_222414.jpg


이틀간 꼬박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을 읽었다. 2003년에 출간된 책으로 2004동인문학상을 받았다. 그때 사서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새롭다. 1905년 조선이 망하면서 멕시코 에네켄(용설란)농장으로 떠나는 몰락한 양반, 전직 군인, 농민, 도시 부랑자, 파계 신부, 박수 무당, 내시까지 엮어내는 이야기는 나라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은 자본주의에 물질만능에 빠져 한때 애틋한 사랑의 주인공이었던 이연수가 고리대금업에 유흥업 심지어는 매춘업까지 손대며 황폐해가는 모습에서는 역사의 흙탕물에 떠내려가는 가련한 짐승을 보는 듯하다.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소설에서 제일 유쾌한 장면은, 연수를 그렇게 미워하고 걸핏 자살을 기도하던 모친이 조선으로 돌아갈 희망은 없고, 몰락한 양반인 남편은 무능하기만 하고, 딸은 타락하고, 아들은 떠나가자 남편을 과감히 버리고 마야인 감독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장면! ‘그미가 하던 일 중 제일 잘했다.’ (? 이건 내 친구가 나한테 한 말 같은데?)


[크기변환]1639921711525-0.jpg

빵기네의 성탄방학 

[크기변환]1639921711525-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