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4일 화요일. 맑음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시골길엔 사방에 복병이 숨어 있다. 담벼락에 갑자기 튀어나온 뾰족한 돌, 못이 박힌 채로 집 밖으로 내던진 나무 토막, 밭에서 주어서 생각 없이 내던진 쇳조각, 안경을 써서 내 눈이 네 개지만 갈수록 어두워지고 '어제 거기려니' 하며 안 살피고 지나다 낭패를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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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임신부님이 가림정을 떠나는 내 차를 유심히 살피시더니 앞바퀴 측면이 찢어져 있다고, 빨리 갈아야지 고속도로 가다 터지면 큰일난다는 말씀. 지난 2월에 갈았는데 일년도 못 쓰고 갈아야 하다니... (‘내년에 차를 바꿀지도 모르는데, 그냥 살살 다니며 버텨 볼까?’) 그런데 보스코에겐 안 통한다. 사람 목숨이 달렸으니 당장 가서 바꾸란다.


어제 읍내 타이어 가게에 갔더니 기사 아저씨가 뒷바퀴도 뭔가에 찍힌 상처를 송곳으로 들쳐 보이며 거기도 철심이 끊어졌단다. 졸지에 타이어 두 개에 브레이크 라이닝까지 바꿔야 한다는 진단. 사람의 몸을 두고도 의사가 진단하고 수술하라면 꼼짝없이 따라가듯, 정비사 앞에서도 나는 그만 순한 양이 된다. 내가 너무 속상해하니까 기사는 "어떤 사람은 타이어 갈고 나서 세 시간 만에 바퀴를 찢고 와서 다시 갈기도 해요." 한다. 큰돈이 날아갔는데 저걸 위로라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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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비닐하우스 안은 겨우내 풍성한 채소를 밥상에 제공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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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부스터샷을 맞았다. 이엘리가 모더나를 맞고 고생을 많이 했다기에 보건소에 가서 화이자를 맞게 해달라고 부탁해 바꿨다. 보건소 사람은 '돌파 감염을 막는 데는 모더나가 더 좋다.' 한다. "사람 따라 다르고 효과도 다르니 뭐가 더 좋은지는 아무도 몰라요. 이 말 저 말에 우왕좌왕하지 말고, 국가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라는 것이 우리 동네 주치의 도메니카의 말. 아무튼 어깨가 얼마나 아프고 노곤한지 모르지만 누가 이기나 보자며 진통제 없이 버텨보는 중이다.


엊저녁 '느티나무독서회' 송년 모임을 가졌다. 코로나로 근 2년 동안 만나지도 못했고 그간 각자 독서로 시간을 보냈는지 알 길은 없지만 모두 지쳐 있어 펜데믹이 끝날 때까지 독서회는 잠정 중단을 하잔다. 코로나로 고립되며 힘든 시기를 지내다 보면 마음이 닫히거나 갈라질 수도 있겠다. 우리가 마지막 읽은 책이 공교롭게도 류시화의 마음 챙김의 시였는데... 작년에 일기에서 인용한 키티 오메라의 시에 따르면 오히려 코로나로 마음이 치유되기도 한다는데...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휴식을 취했으며...

새로운 존재 방식을 배우며 조용히 지냈다

그리고 더 깊이 귀 기울여 들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기도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치유되었다... (키티 오메라,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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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오늘 종일 금년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해마다 한 번 성탄 카드로 바티칸, 이탈리아, 교회 인사들과의 소통을 이어가는 기회다. (나는 지인들과 평소에 전화로 소통한다.) 그는 꼼꼼히 주소를 정비하여 스티커로 뽑아 봉투에 붙이고 카드마다 인사말을 달리 쓰고, 주변의 안부를 물으며 근년에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고서 봉투를 풀로 붙이고... 그의 나이 80이기는 하지만 해가 갈수록 그가 부치는 봉투가 준다. 세상을 떠나거나 답장이 없어 연락이 끊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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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소담정 도메니카와 도정 체칠리아가 휴천재를 방문했다.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우리는 따뜻한 차와 달콤한 간식을 한다. 금년 들어 제일 추운 날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 카드로 소식을 전하고 가까이서는 마음 따뜻한 이웃이 찾아오는 발걸음에 마음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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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를 웃음 짓게 하는 것은 손자손녀들이다. 체칠리아의 손녀딸은 유치원에 가기 전 방방을 다 돌며 일 없이 켜둔 전등을 끄고, 엄마에게도 "출근하려면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을 끄고 나가요." 당부한단다. "아무도 안 볼 때 켜진 전등도 아깝다." "과열해서 불이라도 나면 큰일이다." 잔소리하며 챙기는 모습이 딸과 손녀의 자리가 바뀐듯하다는, 체칠리아의 손녀 자랑.


우리 큰딸 이엘리의 손녀 유아원 다니는 윤서는 창밖의 달을 한참 내다보더니 할머니에게 "함미, 와서 달 좀 봐요!" ", 봤다." "함미,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요." 엊그제 검은 하늘에 나뭇잎을 다 떨군 가지 새로 눈섶 같은 초승달을 보며 '~ 아름답다!'라고 나도 감탄했는데, 저 꼬마 아가씨의 보드라운 감성을 저렇게 일깨워준 그 집 어른들은 보기 드물게 사랑스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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