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7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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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한식을 하루에 한 번 점심에만 먹는다. 아침에는 요쿠르트와 계란, 토마토와 파프리카떡이나 빵, 음료로는 나는 커피를, 보스코는 홍삼차를 마시고, 여러 종류의 과일을 먹는다. 하루 중 가장 풍성한 식탁이어서 사실 우리 집에서 가장 높은 게 엥겔지수다. 저녁엔 고구마나 감자나 늙은 호박, 차와 과일을 먹는다. 빵기가 사준 죽 기계가 있어서 요즘은 여러 종류의 죽을 번갈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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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도 늘 밥을 먹는 것은 아니고 이탈리아식을 가끔 해 먹는다. 그러다 보니 김치는 한 끼에 한두 쪽이나 먹게 되므로 과연 김치 담그는 김장을 해마다 계속해야 할까?’ 고민하곤 한다. ‘일 년 동안 한 통이면 충분하니 차라리 얻어먹을까?’ 하다가 나마저 딴 사람에게 부탁을 하면 그동안 내가 김장 김치를 나누던 사람은 어떻게 하나?’ 그게 더 고민거리! 게다가 해마다 배추와 무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기왕 농사를 지어 놓았으니 하는 수 없다! 어제 배추를 뽑았다. 드물댁과 거두어 텃밭에서 네 쪽으로 가르고 집으로 날라와 우물가에서 간을 쳤다. 잘됐다고 여겨 갈라보면 무름병의 흔적으로 중간이 썩어 있거나 완전히 녹아버렸거나 건강하다 싶은 배추는 속이 차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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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포기만 하려고 했는데 60 포기를 갈라 절여 놓아도 작년보다 양이 적다. 그래도 내가 키운 애들이라, 가을에 병치레를 하고도 다시 살아난 그 수고가 가상해서, 속고갱이를 뜯어 먹어본다. 의외로 달고 탄력이 있다! 이렇게 좌절을 딛고 일어나는 쟤들이 있는 한 어디 나도 힘을 내보자!


나 어릴 적 엄마는 해마다 200 포기나 되는 김장을 하셨다. 아버지가 겨울이면 사냥에서 잡아오는 산짐승 중 꿩으로 만든 만두는 우리 식구들의 별미였고, 그 만두엔 필히 다진 김치를 꼭 짜서 만두소를 하기에 김치가 많이 들어갔다. 김장을 한 날이면 엄마의 앓는 소리가 건넛방 우리한테도 들렸다. 고무장갑이 없던 시절이라 고춧가루가 밴 맨손은 불같이 뜨거웠고 그 통증을 주체할 수 없던 엄마는 참기름을 발라 보지만 이삼 일이 가야 후끈후끈 통증이 갈아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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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혼하던 1973년에 엄마는 처음 고무장갑을 선물 받으셨다. 김장을 앞두고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 물건인지 엄마는 그걸 차마 못 쓰고 광주에서 신접살림하는 내게 들고 오셨다. 그런데 와 보니 나는 그 장갑을 두 컬레나 갖고 있어 하나는 음식할 때 쓰고, 다른 하나는 막일 하는데 쓰더란다. 그래서 가져왔던 장갑을 슬그머니 다시 챙겨 가시며 가출한 딸년의 신접살림에 대한 걱정도 함께 접으셨노라고 먼 훗날 내게 말씀하셨다.


오늘 장날이어서 아침 일찍 서둘러 함양장에 갔다. 김장철의 피크가 지났음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통행량에서 볼 수 있다. 생새우, 생낙지, 갈치, , 황석어를 사고, 채소로는 미나리만 한 단 샀다. 나머지는 다 우리 텃밭에서 자급자족!


어젯밤 자정에 한 번 뒤집은 배추는 아침에 간을 보니 잘 절어졌다. 점심이 지나자 나보다 마음이 더 바쁜 드물댁이 마당을 오가며 빨리 배추 씻자고 성화다. 휴천재 입구 언덕에 양푼들을 늘어놓고 물을 받아 깨끗이 씻었다. 올해는 그나마 진딧물이나 배추벌레는 적어서 병 걸린 배추를 제외하면 양호한 편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한다.


드물댁이 도와주니 보스코는 김장에서 졸업! 저녁 식사 후 무를 채 썰어 달라 했더니 해본 기억이 없단다. ‘기억은 없으나 기록은 있으니해보라고 채근을 하니 유능하게 후딱 채를 썰어 놓고 서재로 올라갔다. (십수년의 일기에 사진들도 올려져 있어 검색하면 모든 기록이 나온다!) 아무튼 아까운 재주는 써야지 녹슬지 않는다! 혼자 남아 배추에 속 넣을 채소를 썰어 놓고 무채에 고춧가루를 버무리고는 아픈 허리를 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내일 일은 내일에 맡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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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파를 물고 있으면 대파를 썰어도 눈물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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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퇴직 후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들을 번역하는 일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다른 저서들을 번역해준 일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지만 금년에 바오로딸에서 부탁한 소책자가 아버지 성요셉이라는 제목을 달고 성탄절 선물로 도착했다. 아내 마리아에게 너무너무 가려진 남편, 성탄절에도 아기와 아기 엄마 곁에 지팡이 짚고 구경꾼처럼 그려지는 요셉(사실 모든 생명의 탄생에서 아버지라는 남자는 구경꾼으로 소외되기 마련이지만)이 안타까워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2021년 한 해를 성요셉의 해로 삼으셨다.


보스코가 공직 시절 대사관 관저에 설치하기로 심순화 화백에게 주문한 성가정그림에서는 성요셉이 가장다운 위상을 갖게 그려 달라고 부탁하여 그렇게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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