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21일 목요일. 흐리다 잠시 비내림


남호리 밭 한쪽 구석에 6평 짜리 콘테이너 하나를 가져다 놓으려고 군청에 갔다. 신고사항인 줄 알았더니 허가사항이란다. 콘테이너를 놓을 만한, 도로에서 가까운 평평한 장소를 찾다 보니 그쪽은 임야여서 절차가 더 복잡하단다. 3년간 허가를 해주고 기간이 끝나기 전에 연장을 신청하면 3년을 더 설치해 둘 수 있단다. 6년 후에는 반드시 철거 후 재신청해야 한단다. ‘철거하고 그 자리에 다시 놓으려면 왜 굳이 먼저 철거를 하라느냐?’고 물으니 법이 그렇다!는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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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비탈진 지형이라 평평하게 고르려면 포클래인을 불러야 하는데, 제일 작은 포클래인도 일당 60만원, 반나절을 써도 40만원을 줘야 한단다. 어제 보니 우리 밭으로 올라가는 초입에서 묘를 옮겨오는 산일을 하고 있어 그 기사더러 한 시간만 우리 밭 비탈을 긁어 달라고, 반나절 요금을 드릴 테니 와달라니까 못하겠단다


그 기사 말이 흥미롭다. “내가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쉬어야 한단 말이오. 돈도 싫소.” 세상 많이 달라졌다. 돈이 아닌 다른 가치에 우선을 둔다는 건 어쩌면 바람직하다 싶어 잘 생각하셨어요. 편히 쉬세요.”하고 산을 내려왔다. 딴 데에 묻혔다 그 자리로 이사 온 유골들은 이제 한데 모여 영면으로 들 작정인가 본데, 어쩌면 우리 모두 머지않아 땅도 집도 떠나서 그들처럼 산자락에 잠들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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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착하자마자 드물댁을 찾아가니 "죽어라 보고 싶데."라며 짓는 함박웃음이 너무 아름답다. 나 없는 새에 우리 텃밭 지심을 매고 감자순 못 올라오는 포기마다 흙을 치워 주었단다. 내 왼손을 보고는 "어쩌다 서울 가서 그 꼴이 되어 왔나?" 묻기에 "뼈에 조금 금이 가서 한 4주 쫌매고 다녀야 한다."고 대답해 주었더니만, 벌써 오늘 아침에는 "교수댁 서울 가서 팔목을 홀라당 분질러 먹고 왔다!"는 소문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받았다


스물 네 가구밖에 안되는 동네여서 모두 한 밥상머리의 식구들 같고 그것도 안식구들이 대부분인데다 하늘 아래 그날이 그날이라 별다른 소식이 없기에 누가 다리 수술이라도 하거나 넘어져 병원에라도 가면 삽시간에 소문이 빠사하다내가 왼팔을 묶어 어깨에 걸고 풀 뽑는 모습을 아짐들이 지나가다 보고선 혀를 끌끌 찬다. 그래도 코로나로 남에 대한 관심마저 수그러든 요즘 세상에 저런 참견과 관심은 어쩌면 마지막 남은 이웃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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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두 손주가 아침 5시 청담동에서 인천공항으로 떠났단다. 9시에 파리행 에어프랑스를 탔다는 며느리의 전화가 왔다. 두 아들 딸 하나 3남매를 키우신 사돈네는 친손주와 외손주 도합 8명이며 그 중 손녀도 둘이나 있다. 어젯밤 사부인과의 통화 중에 손주들 방문은 '왔을 때 반갑고 갈 때에 더 반갑다'는 속담을 두고 함께 웃었다


새벽 4시에 산청에서 인천까지 남편 이사야와 임신부님을 싣고 올라간 미루도 산티아고 순례자들이 같은 시각에  파리행 루프탄자를 탔다고 전화해왔다. 코로나 재앙으로 닫힌 하늘이 조금이라도 열려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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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중에는 어제 읍에 나가 사온 여름 채소의 모종을 텃밭에 심었다. 흑토마토 6, 방울토마토 3, 보통 토마토 6, 풋고추 6, 땡초 (큰 것) 6, 작은 것 6, 가지 6, 가시오이 4, 조선 오이 4... , 13000원 어치 모종이면 겨울 서리 내릴 때까지 텃밭 남새 푸짐하게 먹는다. '과연 하느님의 기운이 땅에 가득하여' 중생들에게 하느님이 흙을 통해 얼마나 풍성하게 베풀어주시는지 절감한다


보스코는 내가 모종 심을 이랑마다 괭이질을 해 주고, 조루로 물을 주고, 마당의 백일홍나무에 가지치기를 했다. 목단도 영산홍도 활짝 피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종을 심고 나서 예고에도 없던 비가 내려 흙을 적셔주니 목말랐던 꽃과 푸성귀가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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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이 망가지자 설거지에 청소에 밭일까지 보스코가 돕는다. 서울집 집사 레아가 보스코를 한 마디로 (자기 남편처럼) '도무지 개념도 없고 대책도 없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놀려왔는데, 그래도 맘을 써서 가사를 돕는 모습에는 감동을 먹었단다


보스코의 '무개념'이 먹어 버린 건 그뿐이 아니었나 보다엊저녁 5시에 미루네 초청으로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부활 축하 겸, 3년을 벼르다 오늘 산티아고 순례떠나는 이사야를 송별하는 이른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한참이나 컴퓨터 작업에 몰두하던 보스코가 저녁 8시쯤 자진해서 밥상을 차리더니만 나더러 저녁을 먹잔다. 일을 하다 보니 속이 비었나? (우린 좀처럼 야참을 먹지 않지만하는 수 없이 차와 과자를 챙겨 야참을 함께 먹었다. '하루 5식이' 보스코에게 다섯 시 경 먹는 저녁밥은 간식이지 정식이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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