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15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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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매화들이 만개하지만 벌이 날지 않는다


폭력은 그 안에 폭력의 씨를 숨겨 간직했다 아들들에게 물려진다. 한 아이가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워낙 영특하여 주변의 찬탄을 샀다. 아버지는 욕심을 좀 더 냈다. 네 살 짜리에게 '돌아오라 소렌토로' 가사를 이탈리아어로 부르게 하고 사람들이 집에 오면 노래를 시키며 아들이 받는 칭찬을 자기 자랑으로 삼았다. 아이는 갈수록 고달파졌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보이면 심한 꾸중을 들었고, 겁에 질려서라도 노래 가사가 틀리기라도 하면 사정 없이 매를 맞았다.


휴천재 마당에 피어나는 초봄맞이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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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소년이 되자 아버지는 큰아들 데리고 사냥가는것을 자랑으로 삼았고 아들은 산탄을 만들어 장전하는 것도 배웠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냥총을 지워 꿩사냥을 다녔다. 그날은 사냥 나갈 차비를 하며 아들더러 다락에서 뭔가를 찾아오라고 시켰다. 다락에서 한참 만에 내려온 아들이 못 찾았다고 하자 아버지는 자기를 기다리게 했다고, 그런 것도 못 찾았다고 아들에게 산탄총을 갈겨버렸다. 아들은 몸을 피해 목숨을 건졌으나 방안 찬장 안의 모든 접시와 컵이 산산조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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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들은 커서 매사를 한 치의 잘못도 없이. 목숨을 걸고 완벽하게 해나갔다. “난 아버지에게 목숨 걸고 매사를 완벽하게 배웠노라고 자랑도 했다. 그에게 심약한 아내가 들어와 심약한 아들을 낳았다. 자기 부친과 달리 육체적 폭력을 안 쓴다 자부했지만 그의 혀에서 쏟아지는 모든 저주와 경멸과 욕설이 아들과 부인에게로 전해졌다. 벌레 하나 못 죽이고, '안 되면 안 하는 거지' 하던 아들은 초딩부터 가출을 시작했고 40대가 넘어서도 매사에 의욕 없고 삶이 두렵고 재미가 없이 살아간다. 부인은 고심 끝에 그의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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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소설 오빠가 돌아왔다를 읽었다. 갓 스물의 오빠가 돌아왔는데 열일곱 아님 여덟쯤 되는 여자애 하나를 달고 왔다. 아빠는 "내 이 연놈들을 그냥"하면서 야구방망이를 들고 뛰쳐나가 오빠의 허벅지를 명중시켰다. 그러나 당하고만 있을 오빠가 아니었다. 방망이를 빼앗아 사정 없이 아빠를 내리쳤다. 등짝과 엉덩이 허벅지를 두들겨 맞은 아빠는 그 뒤로도 가끔 오빠한테 개기다 두들겨 맞곤 했는데, 개도 몇 대 맞으면 꼬리를 내리는 법이어늘 소설의 아빠라는 인간은 똥개보다 지능지수가 낮았다. 아무튼 가정폭력이 잦아들자 아빠의 폭행으로 집을 나간 엄마도 돌아왔다. 그 뒤 아빠라는 그 인간은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악성 민원을 끊임없이 써내는 전업작가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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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이웃에 고3 학생이 있었다. 실업자로 하릴없이 매일 집에서 담배를 꼬시르던 아버지는 남편 대신 살림을 꾸려가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일하는 착실한 엄마를 매 타작하는 게 유일한 스포츠였다. 그날도 야자를 끝나고 집에 들어서던 아들 눈에 엄마의 머리채를 휘어 잡고 사정 없이 두들겨 패는 아버지 모습이 안방창에 실루엣으로 비쳤다. 아들은 신을 신은 채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왜소한 아버지의 팔뚝을 거머쥐고 당신은 사람도 아냐! 한번만 더 우리 엄마에게 손을 대면 그때는 죽여버리겠어!”라며 내팽개쳤다. 그 사내는 그 뒤로 다시는 엄마에게 손찌껌을 못 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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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 동네 아낙들의 표현대로 "남자로 태어난 게 벼슬"인 사내들에게 가보처럼 내려가는, 부친에게서 아들에게로 이어져 가는 이 가정폭력의 고리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과연 아버지의 폭력을 중단시키는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폭력을 쓰는 게 답일까? 이 산골에도 아내(60, 70대까지)에 대한 남성들의 폭행이 지금도 내 귀에 간혹 들린다. 그런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을 보호하겠다고 만든 정부의 '여가부' 폐지를 제일 기치로 내건 자가 대통령이 되었다니. 더구나 20~30대의 이대남들이 모조리 그자에게 표를 몰아준 덕분이라니!


어제 오후 보스코가 텃밭에 내려가 내가 뿌린 퇴비 위에 유박을 뿌리고 있는데, ‘잉구씨가 내려와 보스코와 함께 유박을 뿌려주었다. 뒤이어 윗동네 수영씨가 로터리를 몰고 내려와 두 남정이 우리 텃밭을 갈고 고랑을 치고 비닐 멀칭까지 해 주었다. 저 이랑에다 감자, 옥수수, 토란 씨만 박아 넣으면 올 봄농사는 다 된다. 미니 비닐하우스를 거둬 내면 그 자리엔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를 심어야지


"요로케나 고맙구로 아낙들 일손을 돕는 이우제 남정들"이 대체 어쩌다 자녀에게는 폭력적인 아부지, 아내에게는 손찌껌하는 지아비처럼 되고 말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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