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27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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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비가 후두둑 몇 방울, 정말 몇 방울만 내렸다. 마당 전부에 내린 빗물을 모아봐야 손바닥만한 물웅덩이가 고작이어서 하늘의 처사가 너무 인색해 보인다. 오랜 가믐으로 사방에서 흩날리는 먼지가 잔뜩 앉았던 유리창에 빗물이 흩뿌려져 형편 없이 얼룩진 창문을 닦는 일은 좀 짜증스럽다. 유리창이라는 게 본디 우리에게 없던 문화여서인지 웬만큼 창이 더러워서는 주부들이 유리창을 닦는 일이 없다. 더구나 아파트, 고층 아파트라면 닦고 싶어도 닦을 방도가 없겠지.


80년대에 이탈리아 오스티아 우리 윗층에 살던 친구 카르멜라는 금요일마다 매주 집안 대청소 하듯 창문을 정성껏 닦았고 아래층에 살던 나도 위층 친구와 소리소리 내통하며(핸드폰이 없던 때) 테라스에 나와 아파트 유리창을 닦곤 했다. 그 습관이 아직도 남아 서울집도 휴천재도 창문이 더러워지면 안 닦고 못 배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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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흐느끼는 내 잠꼬대에 내가 잠을 깼다. 엄마 사시던 화전집에 호연네 네 식구, 순행네 네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좁은 방이어서 엄마는 침대 매트리스를 놓을 자리가 없어 이불 요를 접어서 쌓아 놓고 그 위에 요를 깔고 누우셨는데 울퉁불퉁한 자리가 여간 불편해 보였다. 폭이 좁더라도 단단한 매트리스를 깔아드리면 좀 나을 듯해서 그 물건을 찾아 가구점마다 헤매고 다니는 꿈이었다.


201971일만 해도 엄마는 엄마 방에 혼자 계시면서 앞가림을 하셨다. 도우미가 와서 일주일에 두 번 목욕을 시켜드리고 아침은 방으로 가져왔지만 점심 저녁은 식당에 내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드셨다. 그러나 밤낮 없이 외로우셨는지 한밤 중에도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 비틀거리며 돌아다니셨다. 그러다 발이 꼬여 넘어져 머리도 꿰매시고 다리나 팔에 멍이 들기도 했다. 이미 요실금으로 기저귀는 찼지만 대변은 혼자 보시며 화장실도 혼자 다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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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 담당자는 엄마가 너무 외로워 하시고 또 혼자 계시는 게 위태롭다면서 사람들 있는 아래층 ‘대건효도병원으로 옮기라고 의논해 왔다. 엄마는 며칠 간 병원에 입원해 지내보시더니 사람 구경도 하고 말소리도 듣고 좋다고 하셔서 20여년의 실버타운에서 아래층에 있는 요양시설로 내려가셨다


엄마는 워낙 말이 없는 분으로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일 외에는 늘 입을 꾹 다물고 사셨다. 그런 엄마를 두고 실버에서는 점잖은 분이라고 칭송했는데 매사에 불평불만이고 말이 많던 이모와 비교해서 하는 칭찬이었을 게다. 말씀이 일체 없으신 엄마의 본심은 수원교구의 실버타운이어서 가톨릭계의 명사인 사위 보스코의 체면에 누를 끼치지 않으시겠다는 생각임을 내게 수차 언급하셨다. 4개월 후에 언니 따라 하늘나라에 입성한 이모도 마지막 몇 달은 말을 잃어버렸으니 이승을 떠날 때는 모두가 비슷한 모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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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201975일에 요양병원으로 내려가셔서 2년이 한 달 덜된 202169일에 떠나셨으니 우리가 직접 모셨으면 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엄마가 좀 덜 외롭고 좀 더 행복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가슴에 풀어내지 못하는 물음표로 남아 있다. 엄마에게는 못해드렸지만 거기서 배운 교훈으로 '내 남편은 떠나는 마지막까지 그의 눈에 익숙한 곳에서 살다 가게 하고 내 손으로 그의 눈을 감기겠다'는 결심을 세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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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는 계명대 김교수님 부부가 휴천재를 방문하였다. 교수님이 간행하는 언어학 연구서에 나오는 라틴어 문구들의 표기에 관해서 보스코와 논의하는 일이었던가 보다. 읍내 나가서 김교수님의 점심 대접을 받고 상림을 거닐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 동안 나누었다. 나이 들며 달라지는 점 하나가 가치관과 시국관이 같아야 주변 얘기도 하고 속얘기도 길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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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의 공소예절에는 여섯이 모였다. 몇 안 되는 할매 교우들은 코로나 공포로 공소에 안 나온 지 두 해가 넘는다. 내 주변 가까이에서도 오미크론 환자가 부쩍 늘었을 뿐만 아니라 유아원이나 유치원 어린이들이 오미크론을 전염시킨다는 뉴스가 떠선지 동네 할매들은 손주들 오겠다는 연락에 경계가 유난하다. 이장이 노골적으로 손주들의 할머니집 방문을 자제케 하라는 방송을 내보낸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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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태평씨 부부가 우리집을 찾았고, 오늘은 그 부부의 초대로 유림에 가서 점심을 대접받고 휴천재에 돌아와서 다과를 했다. 20년 가까운 세월에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의 깊숙한 품을 찾아왔지만 오가던 길에 스친 사이처럼 인사 없이 헤어지곤 했다. 성품이 비슷하거나 가치관이 통해서 오가는 사이는 참 적어졌다. 이 부부 같으면 다시 보고 싶을 때는 고향사람처럼 반가워, 우리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주노라면 우리는 서로 고향이 되는 따사로움을 느낀다.


"숨은 그림 찾기" 사진이 아범에게서 보내왔다. 동네본당 미사복사하는 시우 자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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