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13일 일요일. 흐림


목요일 오후에 남호리 비탈길에서 20Kg 무게의 퇴비 50포를 나르고는 우리는 둘 다 지쳐 있었다. 보스코는 밤중에 발가락과 장딴지 등의 근육에 쥐가 나더라고 했고, 나는 몸이 쑤셔 자다 일어나 진통제 한 알을 먹고서야 다시 잠들었다. 역시 나이 속임은 참 어렵다.


오늘 아침 도정에서 벌 치는 친구들이 봄철에 벌 깨우는얘기를 들려주었다. 꽃가루를 뭉쳐 벌밥을 뭉쳐 벌통에 넣어주면 그걸 먹느라 추운 겨울에 꼭꼭 붙어 있던 벌들이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한단다. 벌들을 깨우지 않고 놓아두면 꼭꼭 붙은 채로 죽기도 한다니 벌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벌 깨우는 첫날은 온종일 벌통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느라 정말 힘든데, 둘째 날은 견딜 만하고 사흘 쯤 지나면 몸이 풀려 일꾼의 궤도에 도달한단다. 농사꾼이든 일꾼이든 '날마다 하다 보면 힘 안 들어요.' 하던 진이엄마 말이 맞다.


금요일 하루 쉬고  퇴비를 나무마다 뿌리는 일은 토요일에나 하자는 '성나중씨'에게 나는 하던 김에 마저 해야 몸이 풀린다며 속전속결을 주장했다. 그런데 내 일기를 읽고서 우리 부부의 이런 언쟁을 예감한 김원장님과 문섐이 임실에서 전화를 했다. 목요일 고생했으니 금요일 하루 남원에서 만나 점심이나 같이 먹고 영화 구경을 하자는 아주 매력적인 제안. 보스코에게는 바로 이런 게 복음’(반가운 소식). 나 또한 영화를 좋아하기에 즉시 환영하고 남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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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이나 줄거리는 사람 만나는 재미에 비겨 별로 중요치 않았는데, 남원에 새로 생긴 ‘NH시네마에서 상영하는 개봉영화는 아가다 크리스티의 미스테리 스릴러 나일강의 죽음”.  오락영화여서 머리 아프지 않고 즐기기에 좋았다. 보스코는 드론으로 촬영한 나일강 전경, 피라밋 꼭대기와 아부심벨 신전 거상의 근거리 촬영에 흠뻑 빠졌다. 그는 영화의 줄거리보다 영화 속의 관광을 즐기는 편이다.


더구나 영화가 끝난 후 1층 로비에서 김원장님 부부와의 재치 넘치고 흥미로운 대화로 오후 늦게까지 함께 지낼 수 있었으니 몸은 물론이고 (아우구스티누스 번역으로 복잡했던 보스코의) 머리도 한결 가벼워졌으리라. 때 맞추어 휴천재 노친네 부부의 문화생활과 휴식까지 생각해주는 벗님들은 참 고마운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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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은 하늘도 맑고 날씨도 온화하고 몸도 가뿐하여 남호리 호두나무에 봄철 거름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토요일이라 드물댁도 공공근로를 안 나가는 날이라 남호리에 같이 놀러 가자고 불렀다. 백내장 수술로 그미가 대구를 오가자 동네 아짐들이 그미에게 마을회관 출입을 금해서 죙일 집에서 혼자 있었다나? 시골 인심 되게 박해져서 어미로서 대처 사는 자식한테 다녀오거나 자손들이 엄마 보러 동네를 다녀가면 경계와 박대가 이만저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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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시 반부터 다섯 시 반까지 셋이서 밭일을 했는데, 비록 우리 부부가 서툰 일꾼이기는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보스코가 먼저 나무마다 부직포를 고정시킨 핀들을 빼내고 거름 반 포쯤 들어갈 공간을 괭이로 파 놓으면 나와 드물댁은 거름 반 포를 부어 흩어깔고서 부직포를 다시 덮고 핀을 다시 꽂아주는 작업이었다.


드물댁은 지난 여름 저혈당으로 쓰러진 이후 기력을 잃었고, 이번 겨울에 틀니와 백내장 수술 등 병원 출입이 잦아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더구나 백내장 수술 땜에 염색까지 못한 터라 나는 자꾸 앉아서 쉬라고 그미를 말려야 했다. 나 역시 마지막 체리나무, 엄나무까지 퇴비를 주고나니 어지간히 지쳤다. 신선초가 꽃피고 한 길까지 자란 줄기를 지난 가을에 베어다 말려두었다. 보스코가 한 아름씩 안고서 비탈밭을 오르내리며 씨앗을 터는 광경은 북치는 소년’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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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저 호두나무 마흔 그루가 다 자라 호두가 열리면 누가 따먹어주려나 걱정이다. 대책도 없이 농사를 짓긴 하면서도...  딸들마다 열 그루 씩 분양하여 따다 먹게 한다는 게 내 야심 찬 계획이다. 보스코는 남호리 밭을 신선초로 평정하여, ‘데꼬 들어온 딸네’더러 효소 담그는 약초로 쓰게 하겠다는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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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 아침 공소예절에는 공소회장 부부, 우리 둘, 토마스2 이렇게 다섯. 몇 해 전만 해도 주일이면 20여 명 모이던 공소신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무리 코로나 상황이라 하더라도 신구교를 막론 이게 교회의 전반적 모습이라면 하느님도 당신 나라를 구조조정하시느라 고민이 많으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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