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17일 목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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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들이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퍼할 어무이'를 위로해 준다며 나더러 인천으로 오라 했다. 둘째딸 '오드리(될뻔)'가 남편과 단 둘이서 식당을 운영하는 까닭에 남편이 혼자서 주방과 홀을 감당하다 아내의 손길이 필요해서 핸폰을 때리면 '10분 이내에 달려갈 거리'에 대기하고 있어야 해서 아예 모임을 오드리네 집에서 갖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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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드리네 이웃에 나의 대모 김상옥 수녀님이 계신 노틀담 수녀원이 있어, 요즘 무릎으로 고생하시는 대모님 문병도 할 겸 먼저 수녀원에 들렀다. 언제 뵈어도 늘 가까이 계셔온 듯 따뜻한 대모님은 이젠 친정엄마가 떠나신 자리까지 채우신다. 오늘 원로수녀님들이 코로나 예방접종을 가는 날이어서 우리 모임에는 못 오셨다. 오늘 모임에는 보스코와 한목사부부도 초대받은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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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준비해온 선물들을 나누는데 그 선물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 최목사님도 당신의 새 저서 『커피, Tripti, 공정무역』(동연출판사)와 공정무역 커피 '트립티'와 설탕을 일동에게 선물하였다. 수도권 사는 세 딸이 친자매들 같이 끈끈한 정을 이어가는 데는 큰딸 이엘리가 맏이 몫을 하고, '우리 순둥이' 실비아는 박력으로, 막내 '꼬맹이' 엄엘리는 귀염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세상에, 딸도 못 낳은 불쌍한 여자"라는 친구의 놀림에 서럽던 내가 말년에 배도 안 아프고 딸 넷을 두었으니 내 노년은 차고 넘치게 행복을 누리는 중이다. 지리산에 내려가면 '세째딸 귀요미'가 얼마나 살갑게 하는지, 미루만 보면 보스코 입이 늘 헤벌어져 파리가 날아들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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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마스크를 벗고 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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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서 직업정신이 투철한 딸들은 2시에 각자 자기 근무처로 돌아갔다. 언제라도 번개를 치면 번개처럼 몰려왔다가 또 빛의 속도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도 든든하다.


우이동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오이 100개를 항아리에 담고 끓는 소금물에 절였다. 한여름 반찬은 오이지가 제일이다. 저녁에는 소독통을 짊어지고 미국 선녀나방이 들끓는 감나무와 능소화에 약을 쳤다. 재작년인가는 능소화 봉오리들을 깍지벌레가 똑똑 따버려 꽃 한 송이도 제대로 못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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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 일찍 일산에 있는 후배 전규자 목사가 시술하는 '두손치유센타'를 찾아갔다. 몇 달 전 지리산 휴천재까지 왕진 와주었기에 답방을 했다.그미는 불편한 몸으로도 온힘을 쏟아 3시간 넘게 내 몸의 혈을 찾아 하나씩 눌러 풀어주었다. 보스코가 내 허리를 밟아주는 일이 도움이 된다는 진단도 내렸다. 3시간 넘는 치료시간에 지쳤을 만도 한데 전목사는 환한 얼굴로 선물까지 한 아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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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빨간 맨주먹에 보스톤빽 하나 들고 38선을 넘어서...’


우리 아버지는 테니스를 하면서 당신 폼을 학폼이라고 뻐기셨지만 이모들은 무슨 놈의 학이 오리처럼 다리가 짧다냐?’라고 놀렸으므로 키 작은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불만은 대단했다. 그래서 엄마의 바로 밑 여동생 선옥이모가 185 굴대장신을 남편으로 맞아들였지만, 엄마로서는 큰사위도(큰딸을 훔쳐갈 사내인 줄을 미처 모른 채로 화전집에 놀러온 보스코를 첫 번 본 엄마의 인물평이 '...으로 나온 대추씨'!), 엄마가 정식으로 맞아들인 작은사위마저도 '고만고만 대추씨'였으니....


엄마의 이화여전 시절(맨오른쪽). 담임선생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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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청년 전문규의 구변에 더욱 마음이 동한 조판사는 딸과 아내의 결사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결혼을 시키더란다그래서 1944년 6월 26일에 서울서 혼례를 올리고서 조정옥은 몸종을 거느리고서 평강으로 시집을 갔다가서 보니 대농에다 마방(馬房)까지 하던 시집에서 집안을 휘어잡고 좌지우지하던 시어머니는 워낙 손이 커서 대문간에 커다란 항아리를 두고 밀가루를 채워 넣고서 인근의 어려운 사람들이 지나가면 죄다 퍼 주시더란다.


아무튼 대농 집안의 머슴들을 거느리고 농사를 시작할 무렵 38선이 그어진 이북에서 토지가 몰수되고 재산이 압류되자 아버지는 새색시를 데리고 38선을 넘었다. 도중에 로스케세 명한테 걸려 젊은 아내가 군인들에게 끌려갈 위기에 처했다! 워낙 목소리가 큰 전문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항거하자 놀란 로스케가 대검으로 사내의 허벅지를 찔렀고 그 일로 남자의 비명이 더 커지고 피가 철철 흐르자 로스케들이 엉겁결에 두 사람을 놓아주고 가버리더란다.


엄마는 "맨주먹에 보스톤빽 하나 들고 38선 넘을 적에..."라는 모험담을 들려주며 당신의 힘든 신혼초를 얘기하셨고, 아버지는 당신 허벅다리의 커다란 상처를 우리 다섯에게 보여주시면서 "내가 너희 엄마를 구해낸 영광의 상처"를 자랑하는 무용담을 펼치곤 하셨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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