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1일 일요일, 맑음


우리 두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병협이 병호 형제와 아주 가까운 친구사이였다. 우리 두 엄마들이 만난 나이가 30대 초반이었고 걔들이 지금 40대 중반이니 두 엄마가 걔들 네 명보다 더 젊은 나이였다. 우이동 골짜기 언덕에서 늘 자유롭고 창의적인 놀이를 하던 걔들이 이제는 뿔뿔이 제몫을 하는 어른이 되었다.


추석 때 못 온 작은아들 빵고신부가 23일 휴가차(수도자들은 본가방문本家訪問이라고 한다. 불가에서는 뭐라고 부르나?) 휴천재에 내려왔다우리 여인들은 아기를 갖고 낳고 키우면서 내 몸 밖에 또 다른 나의 심장을 갖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절감하고 평생 그 기분을 간직한다, 특히 아들, 더구나 혼자 사는 아들이면.... 


일기장20201011_150916.jpg


일기장IMG_1138.JPG


일기장IMG_1134.JPG


집에 오더라도 기도시간과 하루 한번 미사를 함께 하고서는 혼자서 걷거나 책을 읽거나 자기 일에 머무느라 긴 이야기 할 겨를도 없다. 천성이 마르타인 나로서는 아들 먹일 음식과 집안일로 아들 발치에 턱 고이고 마주앉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할 시간도 없다


걔의 어린 시절 친구의 형이자 제 형 빵기의 대자인 협이가 어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거제에서 와서 식사를 하고(미루네 부부도 함께 왔다) 예전에 빵기네가 휴천재에 왔을 때도 함께 간 지리산 뱀사골을 걸어 천년송이 있는 와운마을까지 올라갔다.


일기장1602328303088-3.jpg


일기장1602328303088-21.jpg


일기장IMG_1145.JPG


아직 단풍은 덜 들었지만 뱀사골의 물이 푸르고 깊어 선뜻 발 담그기가 꺼려 지는 건 가을이 깊어 곧 겨울이 온다는 뜻이다. 뱀사골 산행을 마친 우리는 국립공원 입구에서 협이가 충무에서 사온 충무김밥으로 저녁을 퉁치고 그 집 식구들은 거제로 떠났다.


일기장20201010_173452.jpg


일기장IMG_1167.JPG


일기장IMG_1208.JPG


아들 승기가 중학교 1학년인데 아빠 키를 능가했고, 스위스 우리 큰손주 시아도 목소리는 변성기고 아빠 키를 추월했다니 애들은 아비의 키만 추월하는 게 아니라 인생에서 중요한 모든 것을 쉬이 추월할 날이  곧 올것이다. 아들들도 손주들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갈길을 가기 마련이어서 우리는 꿈꾸듯 멀리서 그 뒤를 지켜나보다 사라질 날이 오려니...


일기장20201010_162959.jpg 


일기장IMG_1246.JPG


일기장IMG_1251.JPG


오늘은 오랜 동안 공소예절도 못하던 문정공소에서 빵고신부가 미사를 드렸다. 미사 후 스.선생 부부랑 실비아랑 휴천재로 올라와 아침식사를 했다. 실비아는 남편 이레네오를 급작스럽게 떠나보낸지 6년이라며 오늘 위령미사 지향을 올렸다.


.선생네는 부산으로 떠나고 실비아는 도정 집의 수도가 샌다고 일군을 불렀기에 집으로 올라가고, 빵고신부는 점심 후에 서울 수도원으로 돌아갔다. 사람을 만나는 매사가 기다릴 때가 좋은 거지 지나고 나면 꿈이런 듯 아련하다. 그래도 일상으로 돌아와 내게 익숙한 일들이 변함없이 날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 만으로도 기분 좋다.


일기장IMG_20201011_071450.jpg


일기장20201011_084344.jpg 


빵기가 어린 시절 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우리와 한집에 살던 아이는 보기 드문 수재였다. 여섯 살까지 책도 못 읽던 빵기에 비해 두 살 어린 걔는 어린이동화를 마치 구연동화 하는 어른처럼 으젓하게 감정을 넣어 읽었다. 늦자라던 빵기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 선행학습을 안 시키기로 한 부모 덕분에 빵기는 맘고생이 컸을 테지만 노는 일은 원 없이 했다


우리가 공무로 로마에 가 있던 어느 날, 엄마의 사랑이자 엄마의 자랑이던 걔가 (서울대에 다니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버렸다. (그 새벽 나는 꿈에서 놀라 깨어 한국으로 전화를 했다. 걔 엄마가 비를 철철 맞으며 길가에서 울고 있던 꿈이었다. 아이 아빠한테서 아들의 돌연한 사망 소식을 들었다!)


일기장20201011_150512.jpg


그 이후 걔 엄마의 삶도 지푸라기에 묶인 해삼처럼 녹아 버렸다. 아들이 모든 것이었으니 아들의 죽음이 마치 자기 탓이라도 된 듯 그미의 나머지 삶은  아들을 만날 때까지 시한부의 세월처럼 그미의 어깨를 짓눌렀다. 아들 사랑에 가려 그림자처럼 자란 딸이 시집을 가서 제 오빠를 똑 닮은 아들을 낳은 뒤 그미의 고통이 조금치라도 엷어졌기를 기대했지만 여의치 않은 듯했다.


오로지 모든 것을 쏟던 자녀, 특히 외아들이 죽거나 망가질 때 엄마된 여인들은 모든  탓을 자기에게 돌리고 고통 속에 녹아들어 간다. 요 며칠 비슷한 처지를 당한 내 벗에게도 위로를 보낼 길이 없다. 4세기에 살다 간 교부(敎父) 성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인을 위로하는 글이 있어 적어본다.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 상처를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상처를 내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내지 않는 사람은 끝없이 많은 고통을 당해도 강해진 채 고통에서 걸어 나온다


"자기를 스스로 배반하는 사람은 자신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아무도 그를 반대하지 않더라도 무너져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비록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상처를 주고 부당하게 다룰지라도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통해 고통을 받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깨어있고 분별력을 갖도록 하자. 그리고 모든 씁쓸한 일을 고귀한 마음으로 참아 견디어내자."


일기장20201011_15093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