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20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날씨가 풀려 오랜만에 송전길을 걸었다이번 겨울 서너 달 새에 휴천강가에 집터가 여섯 군데나 새로 만들어졌는데도 거대한 굴삭기에 의해 커다란 바위들은 계속해서 쪼개지고 축대로 쓰기에는 불필요한 작은 바위들은 바닥에 깊은 웅덩이에 파묻히고 흙으로 덮인다강가로 300평 넘는 집터가 셋한길 위 산비탈로도 집터가 셋이 다듬어지는 중이다


해마다 줄어드는 함양군의 주민 숫자는 산청 동호강 건너처럼 진주나 마산창원 도시인들의 별장 건축 외에는 회생의 가망이 안 보이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큰돈 들여 겨우내 시행하는 공사가 저 부지들이라도 외지인에게 팔려 몫돈을 손에 쥐고 싶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어느 식물일까? 씨앗을 날려보는데 이토록 섬세한 깃털을 달아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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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을 집터로 다듬는 땅의 주인들 서넛이 한데 모여 있다 지나가던 내가 인사를 건네자 땅주인 아내와 장모인 듯한 두 노파가 웃음으로 답한다, 두어 개는 이가 빠지고 검게 변한 잇몸을 드러내며노파들 이빨 새로 흘끗 들여다보이던 혀는 굴삭기가 쌓고 있는 바위 축대 사이로 흘러내리는 흙더미를 연상시킨다


오후 나절인데도 머리도 못 빗고 세수도 못한 얼굴들은 산골 아낙의 힘겨운 일상을 엿보여주는 듯해서 우리 부부의 한가한 산봇길마저 미안하게 만든다. 세찬 강바람에 나부끼는 옆엣논 허수어미들의 옷매무새도 유난히 너덜거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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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도시에서 젊은이들이 야심차게 시골로, 이 골짜기로도 몰려들었다. 절반은 '농촌후계자'라는 명목으로 농협에서 3년 거치 5년 상환의 저리로 융자를 얻고, 절반은 도시에서 자기 생활을 정리하고서 챙겨온 (얼마 안 되는) 돈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트럭과 사륜구동 새 차를 사고, 양옥집을 큼직하게 짓고, 남은 돈으로 임야 등지를 구입해서 귀농 생활을 시작했다. 군에서 운영하는 '농업대학'의 지침(시골 빈집 임대 → 농작 실험 후 귀농확정 → 농지매입  →  농사 안정후 주택신축)과는 정반대였다. 


주말이면 이쪽저쪽 골짜기에서 한데 모인 젊은이들이 문정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어린애들은 운동장 한구석에서 놀이를 하고 남편 따라 도시에서 내려온 아낙들은 운동장 옆 수십년 묵은 벗나무 밑에서 불을 피워 삼겹살을 굽곤 했다.


그러다 서너 해가 지나면서 비록 저리이지만 은행 이자에 밀려 트럭을 팔고 농기구를 싼값으로 넘기거나 서로 연대보증을 해주며 은행빚을 늘리는 것을 보고서 혹시 모를 젊은 귀농인들의 파산이 걱정스러웠다. 농협이나 임협의 연대보증은 이 골짜기로 내려온 젊은이들 사이에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서로를 얼키설키 엉키게 만들어다. 농협 이 귀농 청년들에게 농사법을 인내하여 안주시키기 보다 그들을 상대로 돈놀이한다는 비난이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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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제일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살던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한동안 안 보여 찾아가 보면 새집만 덩그렇게 빈 집으로 남아 있곤 했다. 새로 지은 집과 새로 사들인 토지를 처분하여 빚잔치를 하고서 또다시 도시로 떠난 것이다. 그래도 본토인 '농촌후계자' 상당수는 (외지에서 들어온) 연대보증인들에게 빚을 떠넘기고 '신용불량자'를 자처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 30여 년 이 골짜기 주변에서 목격하기로는 블루베리 농사에 전념한 우리 아래층 진이네나 오자마자 농산물 통신판매를 시작한 대충씨네가 귀농에 성공한 사례이지만 매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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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에 미루한테 뭘 좀 전하러 가는 길에 석대리 봉재언니에게도 들렀다. 늘 부지런히 뭔가 쉬지 않던 언니가 대낮인데도 누워있었다. 병고로 많이 지친 모습이다. 미루가 자기 집에서 차로 30분 넘는 길을 쉼 없이 오가면서 보살펴드리고 높은 톤으로 언니의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너무 갸륵하여 왈칵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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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산보길을 걸으면서 보니 어제가 '우수(雨水)'여서 겨울잠 자던 버들강아지들도 깨어나고 잔잔한 호수 수초 사이로 잠들었던 물고기들도 꼬리를 길게 뻗어 기기재를 켜기 시작했다


휴천재 창틈으로 기어 들어와 겨울잠을 자던 무당벌레들도 요즘은 잠을 깨 침실 천장을 부지런히 돌아다니거나 심지어 잠결에 우리 얼굴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문제는 초겨울 창틈으로 몰래 들어왔지만 그 동안 '이건창호'로 대체한 창틀이라 날이 풀리더라도 저 가여운 생명들이 빠져나갈 틈새가 없다는 사실이며 이 일을 두고 대자대비한 보스코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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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 특히 딸들 집안의 오미크론  소식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교회 가서 예배와 모임을 마치고 돌아온다는 막내동생(장로)과 통화하다 오미크론 조심을 당부했더니 "누나, 주변에 성격 나쁘고 친구도 없는 사람만 오미크론 안 걸린대요. 이젠 걸릴 테면 빨리 걸리고 편하게 살자는 대세예요."란다.


우리 딸 꼬맹이는 4일짼데 독감을 심하게 앓다 나은 그런 기분이라며 담 주 수요일이면 일주일이니까 검사 없이도 출근한단다. 무엇이나 맞닥뜨리기 전의 공포가 더 무서운가 보다. 요즘 전세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속으로들 전전긍긍 하고 있듯이.


새로 부임한 함양본당 신부님이 문정공소에 처음으로 방문하여 저녁미사를 집전하고 든든한 강론도 해주셨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는 복음 말씀이 신앙인들에게도 심적 부담을 준다는 사실을 잘 풀이해주셨다. 장로님 집안에서 태어나고 신학을 공부하고 구교생활 50년쯤 보냈으면, 신부님 말씀마따나, 내 맘뽀도 깍정이에서 됫박 만큼은 늘어났어야 하는데 대선을 앞둔 요즘은 영 속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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