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일 일요일. 흐림


날이 너무 가물다. 밭에 심어 놓은 마늘과 양파들이 처음에는 실바람에도 춤추며 커왔는데 거의 한 달 넘게 눈이나 비를 못 만났다. 엊그제 서울의 눈발을 탈출한 날도 덕유산부터는 햇살이 눈부셨다. 겨우내 눈이 쌓여 밖으로는 눈이불로 덮어주고 안에서는 지열로 조금씩 녹는 눈으로 새싹이 목을 축이니까 눈이 많이 내려야 보리나 밀도, 마늘농사도 풍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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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이파리 끝부터 타 들어가는 마늘을 보는 내 마음도 애가 타서 마을회관에 모인 할메들더러 어떻게 하면 좋겠냐 물었다. “그것마저 얼려 죽이지 않으려면 행여 마늘에 물을 주거나 하지 말고(얼어 죽는단다) 암짓도 말라!”는 말씀. 가물면 마늘 알이야 쪼잔하겠지만 '시안에 물을 주면 마늘이 죽어삐린다'는 이구동성의 가르침. 말하자면 극성 맞은 엄마의 치맛바람에 애들이 망가지듯 마늘도 홀로 서기를 해야 한다는 이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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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겨울이면 스.선생댁이 어디선가 과메기를 공수해다가 이 산속에서 해산물 특식을 시켜주는데, 그제 금요일이 그날이었다. 우리가 서울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다 날을 잡았다는 그 약속 땜에 오전에 보스코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점심대접을 못하고 차 한 잔으로 돌려보내니 큰죄를 지은 기분이다. (가까운 곳에 식당도 없는 산골이니 때가 되면 으레 밥을 먹여 보내야 마음이 편한 게 산골 어매 마음이려니.) 


도메니카랑 스.선생 부부랑 오랜만에 식사를 하며 새해 인사를 나누고 국민이 선거를 잘 치러 진보정권을 재창출하기를 기도했다. 우리를 바향하고 '솔바우촌'으로 돌아가는 그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올해도 무탈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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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에서 지학순주교님의 책을 사진첩으로 냈다고 큼직한 도서를 우리에게 보내왔다(원주교구 문화영성연구소 발간). 그러니까 40여년전, 1979년 추석에 찬성이 서방님이 번역한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일명: 피압박자의 교육)를 보스코가 출판하고서 두 형제가 그 당시 남산이라고 통칭하는 안기부 6국에 붙잡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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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지주교님이 서울집으로 나를 찾아오셨다. (이제는 말해도 되겠지만) 그 책의 출판비를 지주교님이 메리놀에서 얻어 주셨던 것이다(안기부가 엮자면 그분이 자금책이 된다). '잠시 생과부'가 된 나를 위로하러 찾아오셨지만 이미 1974년 김지하를 도운 일로 '민청학련의 자금책'이라는 죄명으로 옥고를 치르신 분을 다시 얽히지 않게 해드려야 할 것 같아 "염려 마세요. 보스코라면 (자금을 물어도) 죽어도 안 불 거에요."라고 안심시켜 드렸다내 가계부에 얼마 전 곗돈 탄 기록 밑에 '보스코 책출판비 지불'이라고 써넣었다. 과연 안기부에서 가택수색을 나와서 나한테 따지다가 그 장부를 보고서는 더 이상 '자금문제'를 캐묻지 않았다


수사관이 남편한테 할 말 없소?”라고 물어와서 “불구 된 남편과는 살지만 지조를 꺾은 남자와는 못 산다고 전해줘요.”라고 대꾸했더니 6국 지하실에서 밤낮이 없던 보스코더러 당신 마누라 잘났어!” 한 마디 하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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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후 로마 유학시절에 뵈었을 때에 지주교님이 나더러 고맙다 하셨지만 실상 지주교님께 고마웠던 사람은 우리였고 그 책을 읽고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전략을 얻어낸 운동가들이었다. 지주교님은 당신의 투쟁과 옥고 말고도 민주화를 위하여 힘쓰던 사람들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감싸주시던 모습이 한국 가톨릭 교회에 모닥불을 피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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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 오전. 면사무소에서 군에서 주는 코로나지원금10만원씩 준다고 마을회관으로 나오라는 방송을 했다. 때마침 용산댁 큰아들이 회관 할메들에게 밀감을 사다 주고 엄니 보러 요양원으로 갔다기에, 십여 명 아줌마들 앞에서 스피커 폰으로 내가 전화를 걸었다. "마을 도로를 넓히는 일에 면사무소가 나선다는데 그 집 축대 튀어나온 부분을 털고 안전하게 옹벽을 치게 허락하느냐?"는 통화였고 그 아재가 순순히 동의한다고 답변하는 것을 마을 아짐들 모두가 목격한 증인이 되었다.


오늘 주일미사는 함양성당으로 갔다. 인사이동으로 박영진 신부님이 새 주임으로 오셨다. 미사를 정성껏 올리고 학식과 상식이 갖춰진 분이라 인상이 좋았다. 함양은 곶감의 산지여서 신자들이 새 신부님께 그걸 선물했는지 "지금까지 받은 곶감이 이태는 먹을 분량이니 곶감 사절!"이라며 "저 돼지고기도 소고기도 과일도 먹을 줄 알아요" 라는 재치로 교우들을 웃겼다. 나 같으면 "신부님, 곶감 선물 마다 마시고 남으면 저 주세요." 했을 텐데 초면이라서 참았다. '변비로 실려가도 곶감이라면 좋다'는 우리 큰딸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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