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31일 화요일, 맑다가 흐려지는데 비는 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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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가을장마가 유난히 길다. 장마라고 내쳐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고 5~20mm를 하루종일 구질구질하게 나눠서 내리시니 웬만한 푸성귀들은 녹아내려 뿌리만 앙상하게 남는다.감동 창고에 넣어둔 양파도 습도가 높다 보니 속이 덜 좋은 것들은 썩고 그 수취물로 옆의 것까지 썩어가고 있다. 보스코가 종이상자곽과 신문지를 깔아 싹 쏟아주었는데 그 냄새가 얼마나 역한지 모기조차 안 온다.


썩은 건 골라 버리라지만 내 손으로 농사지어 내 새끼 같은 애들을 죄다 버릴 수는 없어 칼로 도려내 성한 부분은 양파김치라도 담으려고 양푼에 한가득 모았다. 손질을 하다 보니 한 개 양파에 두 쪽으로 채워진 양파가 대부분 다 썩었다. 두 쪽 사이에 이물질이 들어가 말썽을 일으킨 건가? 가정도 마찬가지


아주까리꽃은 시앗본 아낙의 속내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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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남자들이 축첩하는 짓을 알량한 능력쯤으로 치부할 때가 있었다. 한 가정에 시앗을 두었을 때 집안은 저 양파처럼 썩어 문드러진다.남자가 저 좋자고 하는 일에 망가지는 건 여자들.


내 친구 아버지도 잘 나간다고 꽤 방귀나 꾸는 검사’(그집 딸의 표현)였는데 첩이 생겨 집에 안 들어오고, 어디서 살림 차렸다는 소문이 돌면 엄마가 어김없이 하던 짓이 있었단다. 새 이부자리를 꿰매고, 내 친구한텐 된장 고추장 단지가 든 보퉁이를 이고 앞장서라 했단다. 시앗집을 찾아가 젊은 여인을 한없이 측은한 눈으로 한번 내려다보고, 당신이 이고 간 이부자리를 건네 주고는, 딸의 머리에서 장 단지를 받아 부엌에 들여놓고서 , 가자!” 단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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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몇 달 후면 어김없이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후엔 또 다른 시앗을 두던 일이 되풀이 되더란다. 남자의 주색잡기로 속이 문드러지는 건 아버지나 엄마가 마찬가지였을 텐데 아버지가 훨씬 먼저 죽고 나서야 그 행사는 끝이 나더란다. 친정엄마는 오랫동안 사시면서 당신이 연례행사처럼 벌이던 그 이야기를 씹고 또 곱씹다가 여든이 훨씬 넘어 돌아가셨다니 그야말로 남편이라기보다 웬수’, 그것도 팽생 웬수였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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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살면 차를 몰고 나갈 일도 별로 없어서 차 닦을 일도 없는데 요즘 하느님이 나 대신 세차를 엄청 자주 해주신다. 밤새 물을 부어 불려 놓으셨기에 나로서는 세제를 조금 발라 싹싹 문지르고 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부지께서 됐다! 뒷일은 내가 책임지마! 저리 비켜라!” 하시듯 소나기 같이 세찬 물줄기로 세차도 말끔히 해놓으신다.


어제처럼 비가 오는 날은 책 읽기에 참 좋다. 꼬맹이 딸이 보내준 김광기 교수의 아메리칸 엔드 게임을 읽었다. 얼마나 유쾌한지 술술 읽힌다. 중남미에서 가장 가난하고 약소한 섬나라 아이티를 벗겨먹은 전직 미국 대통령들 이야기, 미국의 입시제도, 사모펀드로 노숙자가 된 시민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똥으로 복수하고, 월가와 제약회사, 인종차별, 돈세탁의 천국이 된 바이든의 본거지 델라웨어’... 그야말로 인간이 사라지고 돈이 하느님 된 악마적인 세상, 아메리카가 그야말로 끝장났다는 줄거리다. 저런 쓰레기장에 아메리칸 드림을 걸고 여기서 애써 긁어모은 돈을 싸들고 건너간 사람들은 그곳 쓰레기장에서 지금 뭘 주워 담으며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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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해질녘엔 그래도 비가 멈춰 송전길로 산보를 가는데 드물댁도 따라나선다. 한길가 끝집 주인 남자가 쓰러져 3일간 방치되었다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자 누군가 그 집 검은토끼네 마리가 갇힌 토끼장을 열어 주었단다, 굶어 죽는다고. 토끼는 낮이면 폐교 마당에서 먹고 놀다가 밤이면 자기가 갇혀 있던 토끼집으로 돌아와서 잔단다. 그동안 토끼집 식구는 여섯으로 늘었다. 폐교된 학교마당과 교실에는 고라니들도 소굴을 마련하고 살아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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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8월 마지막 날. 이달이 지나기 전 배를 따기로 했는데 마침 아침부터 날이 들었다, 서울 경기는 폭우가 쏟아진다는데. 내 빨간 원피스가 배밭을 지키고 허수 매도 몇 날을 날았건만 크게 자란 배알은 새들의 입질로 절반 이상이 썩었다. 그래도 두어 상자 거뒀으니 가까운 이들과 나눠 먹어야겠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세상인데 어려운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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