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29일 일요일. 흐리고 비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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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歸農)이든 귀촌(歸村)이든 시골에 정착하려면 세 가지가 필수적이라는 게 함양농업대학에서 들은 첫 번 강의의 요지였다. ‘아내의 적극적인 동반’, ‘그리고 물. 문하마을을 지나서 우리 휴천재에 올라오려면 마의 기역자 코스가 있다. 공소를 끼고 가파른 비탈을 올라오자마자 드물댁네를 끼고 완전 기역 자로 차를 꺾어야 하는데 그 코너에는 커다란 감나무, 툭 튀어나온 바위, 그리고 드물댁네 지붕과 홈통까지 길로 튀어나와 있다. 거기에다 용산댁 축대는 갈수록 배가 불러 오지요, 제동댁 헐린 집 입구에 불쑥 튀어나온 고염나무는 제법 길을 차지하고 있지요...


도로사정을 어떻게든 손봐야 해서 문정리 한길에서 문상마을 올라가는 2차선 포장도로에서 휴천재 조금 위로 차량이 다닐 만한 샛길을 내려 해도, 그 신설 도로에 편입된 땅의 70%를 내놓겠는다는 귀촌인의 제안이 나와도 외지인들 좋으라고 뭣 땜에 길을 내주느냐?”는 식의 심술이 작동하고 있다. 우리 동네 주민의 평균연령이 70대 후반에다, 아동들은 볼 수가 없어 문정초등학교는 십수년 전에 폐교되었고 이젠 면에 초등학교가 두어개 남을 정도인데다, 국회의원 선거구가 함양 산청 거창 합천 4개군을  통합해야 겨우 하나 뽑는 사정이지만 도시에서 유입되는 사람들에 대한 시골 텃세에는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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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목요일에 서둘러 텃밭에 배추모를 심었다. 금요일 9시부터 온다던 비가 오후 3시까지도 안 오고 배추 모종은 목마르다고 널브러져 있어  보다 못해 물뿌리개로 멀칭된 배추 이랑에 물을 주었다(우리집 '성나중씨'는 곧 비올 테니 조금만 참으라는데). 물을 주고 돌아서는데, 후두둑 비닐 멀칭 위로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느님, 이게 무슨 경우랍니까? 지금 저와 장난하시는 거죠?” 감히 하느님께 경우를 일깨워드리는 내 불손한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앞도 안 보이는 세찬 소나기로 돌변했다 그래! 장난이다. 어쩔래?” 


하느님의 일방적인 KO승을 보고서 보스코가 나를 놀린다. “여보, 그래도 당신이 배추에 뿌린 게 마중물이 되어 하느님이 원 없이 하늘 펌프를 뿜어 대시는가 봐. 그것도 태풍에 이어 늦장마로... 아무튼 당신 승질 하고는...” 내 성급한 성미가 한 남자를, 그리고 하느님까지 저리도 흥겹게 했다니 왠지 나도 재밌어진다. 비는 원 없이 쏟아졌고 엄살 부리던 배추 모는 이파리를 발딱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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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는 남호리에 갔다. 거기 심은 호도나무를 보호하는 부직포 위로 환삼덩굴 바랭이 나팔꽃들이 사정없이 기어올라 나무를 휘감는 중이어서 꼭두새벽에 보스코 몰래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는데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함께 가겠단다. 나야 고맙지만 조금만 힘들면 그만하고 가자는 소리가 나올 게 뻔한데.... 그래도 둘이 하니 나 혼자 한 것보단 빨라서 두 시간 반 만에 일을 접었다.


집에 돌아오니 드물댁이 파도 심어야제”하며 정자에 매단 씨파를 꺼내서 다듬고 있었다. 호리호리 떡잎이 나온 무싹도 흙으로 덮어 묻어줘야 했다. 무는 줄기가 무가 되고 뿌리는 그 아래 1~2mm의 솜털일 뿐이다. 오후에는 보스코가 내려가 한 이랑 빈 곳에 괭이질 하고 퇴비를 뿌리고 드물댁과 내가 이랑을 돋우어 멀칭을 하고서 쪽파를 심고 나니 하루가 다 갔다


보스코는 예초기를 돌려 무성한 텃밭 밀림을 정리하였다. 텃밭의 부추를 베다가 다듬고 나니 해가 졌다. 그러니까 새벽부터 해넘이까지 무려 14시간 노동을 했는데 한 주간(5) 120시간을 부려먹겠다는 '윤ㅉㅈ 대통령'의 근로시간을 채우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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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공소예절에는 지난 주엔 다섯, 오늘은 여덟 명이 참석했다. 공소와 가까운 인근 마을에도 가톨릭 신자가 꽤 되는데  공소에 정을 붙이지 못했거나 꼭 성체를 영하고 싶은 사람들은 성당으로 가니까 신자가 늘지 않는다본당엘 차로 가면 반시간에 도착하는 거리다. 공소가 활성화되려면 은퇴사제나 수녀님이라도 모셔야 할 텐데... 금년엔 공소 지붕도 손질했고 방방을 새로 단장했으니 문정공소 와주실 분을 찾아 나설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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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싹이 올라오면 흙을 덮어 가느다란 허리를 가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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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사는 아낙이 제빵기를 사다 딱 한번 써보았는데 손에 안 익어 내놓았다는 당근 장터를 보고서  찾아가 반값에 사왔다. 기계는 진짜 새것이었고 집에서 우리밀로 해보니 빵도 잘 나왔다. 


오늘 오후에는 긴 장마에 곰팡이가 잔뜩 낀 식당채 찬장들을 모조리 비우고 세제로 닦고 락스로 마무리하고 정리해 넣고 보니 밤 10! 보스코의 지청구 대로 너무 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쟁여 두고 쌓다 보니 저것들도 나를 고달프게 한다. ‘남은 날도 적은데줄이고 버리고 더는 안 사고... 해 보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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